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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5

   크라슈가 글렌과 부딪친 시점.

     

   시그린의 앞.

   검푸른 머리카락의 소녀가 비치고 있었다.

     

   검성, 샬롯 발하임.

   그녀를 겪어본 이들에게 그 이름은 두려움의 상징이다.

     

   수많은 천재가 그녀의 앞에서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고, 무너졌으며 꺾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

   과거의 시그린 또한 그러한 인물 중 하나였다.

     

   날 때부터 칭송받으며 태어난 시그린 에파니아.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그녀는 늘 당당했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찬란한 삶 중 만나게 된 아서 그라말테.

     

   세상을 지키는 영웅왕.

   창공의 세대 중심.

     

   그런 그의 반려가 된 시그린은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아, 나는 특별한 사람이구나.

     

   그러나 딱 하나.

   그러한 그녀의 특별함을 전부 깨부수는 사람이 있었다.

     

   재능의 정점.

   아서조차 구태여 그녀와 부딪치기를 꺼리는 인물.

     

   샬롯 발하임.

     

   바로 그녀다.

     

   콰아아아아아앙!

     

   폭음이 거세게 울려 퍼졌다.

     

   라헬른 아카데미가 깔아 놓았던 바닥 타일은 어느새 박살이 나서 토사가 솟아올랐고.

   주변 정원들은 흙만이 가득 남아 있었다.

     

   피어오른 흙먼지 속.

     

   콰아아아아아앙!

     

   또 한 번 같은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한 폭음 사이에서 비친 것은 두 여자였다.

     

   한 명은 검푸른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는 검성, 샬롯 발하임.

   다른 한 명은 바다 빛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는 제국의 3황녀 시그린 에파니아.

     

   둘의 전투는 멀리서 지켜보는 이들조차 오싹할 만큼 격렬하기 그지없었다.

     

   창공 같은 샬롯의 새파란 오러가 대기를 짓이겼다.

   백룡 같은 시그린의 새하얀 오러가 대기를 짓이겼다.

     

   둘의 검이 부딪치며 또 한 번 터져 나온 힘의 파동이 주변을 초토화했다.

     

   샬롯의 눈이 찌푸려졌다.

   부딪쳐온 시그린의 힘이 그녀의 팔을 저릿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슬슬 한계인 거 같은데요?”

     

   그에 반해 시그린은 웃고 있었다.

   그녀는 여유로운 모습과 함께 점점 더 강한 힘을 몸에서 쏟아내고 있었다.

     

   백룡의 핏줄이라 불리는 타고난 육체와 오러.

   거기에 10대 천검 중 하나인 백선의 검.

   전 검황의 비기 검광까지 더해진 결과.

     

   시그린은 최강이라는 말에 가장 가까울 만큼 터무니없는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황가의 핏줄에서 4황녀 시즐리 에파니아가 두뇌의 재능의 절정을 찍었다면.

   3황녀 시그린 에파니아는 육체의 재능의 절정을 찍었기 때문이었다.

     

   콰아아아아앙!

     

   또 한 번 부딪친 두 개의 검이 폭음을 일으켰다.

     

   쩌적!

     

   동시에 부딪친 샬롯의 검에 생겨났던 균열이 더더욱 심해졌다.

     

   그녀의 검이 거의 한계에 육박했다는 증거였다.

     

   그 앞에서 시그린의 눈동자가 반달 형태로 휘었다.

     

   회귀 전.

   처음 샬롯과 만난 그날 시그린은 충격받았다.

     

   세상 모든 것에 사랑받아 태어난 재능아.

   늘 그것이 자신이라고 여겼던 그녀였다.

     

   그러나 샬롯을 앞에 둔 순간 그 모든 생각은 와장창 깨져나갔다.

     

   「너야? 황가의 검이라는 게.」

     

   늘 모두에게 존경받던 시그린은 그날 처음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마주했다.

     

   그것을 용납할 수 없는 시그린이 샬롯의 앞에 검을 든 그 순간.

     

   「이 정도구나.」

     

   그녀는 처참하게 바닥을 구르는 자신을 마주했다.

     

   시그린은 분명 그 시절에도 어느 사람도 함부로 올려다볼 수 없을 만큼 재능의 끝을 달렸다.

     

   라헬른 아카데미에서도 아서를 제외한 어느 사람도 그녀를 꺾을 수 없었으며 늘 위에서 군림했다.

     

   세상 모든 것의 중심이라 여겼는데.

   시그린은 그날 세계가 가장 사랑 하는 이가 누구인지 깨닫고 말았다.

     

   그러니 그녀는 샬롯이 싫었다.

   자신과 동년배로 태어난 그녀의 앞에 자신의 재능은 늘 초라하게 느껴졌으니까.

     

   싫고, 또 싫고, 싫었다.

     

   그러나 그런 재능의 정점인 샬롯조차 결국 죽었다.

   하지만 그런 장렬한 죽음조차 그녀는 전설이 되었다.

     

   현존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세계 침식자 검존.

     

   창공의 세대조차 홀로 박살을 내놓은 그 앞에서 샬롯은 검을 들었다.

     

   그리고 기어코 검존을 죽인 뒤 한계에 도달한 그녀는 끝내 숨을 거두었다.

     

   그 광경 앞에 창공의 세대 모두가 전율하고 압도당했다.

     

   오죽하면 아서조차 말하였다.

     

   「샬롯이 살아 있었다면 조금은 결과가 바뀌었을지도 모르지.」

     

   멸망이라는 끝 앞에서 아서는 덤덤히 고하였다.

   매번 이렇게밖에 샬롯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며 말이다.

     

   샬롯은 그렇게 전설로 남았다.

   세계 최고의 재능아는 현존 최강을 꺾고, 이제는 더 이상 어느 사람도 자신을 꺾을 수 없도록 잠들어 버렸으니까.

     

   시그린은 그 사실이 미치도록 싫었다.

   샬롯이라는 인물은 늘 자신을 지워 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금.

   샬롯이 전설로 남은 세계는 이제 더 이상 없다.

     

   왜냐하면 자신은 아서를 따라 회귀했으니까.

     

   ‘그토록 특별하던 당신조차.’

     

   이토록 특별한 회귀라는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이 세상에서 전부 지워져 버렸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샬롯도 분명 찬란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눈부신 재능을 보고 있으면 옛날 생각이 나 역할 정도였다.

     

   그러나 샬롯이 지닌 건 그러한 찬란한 재능뿐.

     

   시그린, 자신에게는 회귀라는 특별함이 더해졌다.

   그리고 지금 그러한 특별함이 더해진 자신이 샬롯을 압도하고 있었다.

     

   시그린은 샬롯이 지금까지 자신과 같은 모종의 수로 회귀했을 가능성을 염두하고 있었다.

   혹여나 그녀 또한 회귀했다면 어쩔까 싶어 노심초사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서의 대행을 하는 가짜 아서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싸우니 알겠다.

     

   ‘이 여자는 회귀하지 못했어.’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황들이 의심스러웠지만.

     

   오늘 직접 부딪쳐 봤기에 알 수 있었다.

     

   샬롯은 회귀하지 못했다.

   돌아온 것은 자신뿐이다.

     

   그렇다면 샬롯을 중심으로 일어난 변화는 모두 우연인가.

     

   아쉽게도 그건 아닐 거다.

   그러나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샬롯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은 돌아왔다.

     

   그것은 자신과 샬롯 사이에 절대 채워질 수 없는 벽이 세워졌음을 가리켰다.

     

   ‘세계의 끝에서 돌아온 건 나야.’

     

   쩌적!

     

   샬롯의 검에 또 한 번 균열이 생겨났다.

     

   ‘너는 돌아오지 못했고.’

     

   쩌저저적!

     

   균열은 점점 더 심해져 결국 검 전체를 뒤덮었다.

     

   ‘샬롯, 네가 쌓아갈 모든 명성과 자리는 이제 내꺼야!’

     

   이윽고.

     

   쨍그랑!

     

   시그린의 힘을 견디지 못한 검이 산산조각이 났다.

     

   깨져 나간 검의 파편이 시그린과 샬롯의 오러를 따라 백색과 청색으로 빛나며 흩뿌려졌다.

     

   언뜻 보기에 아름답기도 한 광경 속.

     

   샬롯과 시그린의 두 눈동자가 교차하듯 마주쳤다.

     

   텅 빈 샬롯의 손아귀 속.

   갈 곳 잃은 푸른 오러가 흩어졌다.

     

   반면에 시그린의 백선의 검에서는 더더욱 강렬한 백색의 오러가 쏟아져 나왔다.

     

   그 한 번의 틈.

   시그린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백선의 검을 샬롯에게 내질렀다.

     

   시그린의 등 뒤에 백색의 피막이 더해진 날개가 펼쳐졌다.

   그녀의 검에 서린 백색의 오러가 주위 모든 것을 얼어 붙이며 세 줄기의 백색의 빛으로 뻗어 나왔다.

     

   샬롯의 눈앞.

   세 줄기의 백색의 빛이 가득 찬 그 순간.

     

   백룡천극(白龍天克)

   삼식(三式)

   백룡삼아(白龍三牙)

   

   

   

   

     

   

   세 줄기의 백색의 빛이 샬롯과 함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각!

     

   검의 파편이 모조리 박살이 나며 주위가 날아갔다.

   응축된 백색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그 속.

     

   시그린은 바다 빛 머리카락을 빛내며 유유히 그 자리에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반면에 샬롯은 연기 속에 가려진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검성이랬나요.”

     

   불어온 바람을 따라 연기가 점차 가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바람이 사라졌을 때.

   검푸른 머리카락이 조용히 흩날렸다.

     

   “그래봤자 이 정도군요.”

     

   그날 자신이 들었던 말과 똑같은 말.

   시그린이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샬롯이 드디어 비쳤다.

     

   그녀의 가슴팍과 몸에는 두 줄기의 검상이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한눈에 보기에도 위험해 보였다.

     

   누가 봐도 샬롯의 패배가 확실시된 상황이었다.

     

   하나, 시그린은 그 상황이 살짝 언짢았다.

   검이 깨졌음에도 백룡삼아의 세 개의 이빨 중 한 개는 샬롯이 기어코 막아낸 것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하나를 막았다면 다시 새겨주면 그만이니까.

     

   시그린의 검에서 백룡의 기운이 다시금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샬롯의 눈이 시그린의 백선의 검을 따라 올라왔다.

     

   “걱정 마요. 금방 끝내줄 테니까.”

     

   시그린이 마지막 일격을 위해 검을 들었다.

     

   “하.”

     

   그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샬롯은 대뜸 한차례 소리를 내었다.

     

   그 의미를 모른 시그린이 살짝 눈썹을 일그러트렸을 때.

   샬롯은 몸에 새겨진 상처에도 불구하고 비틀거리며 두다리로 일어섰다.

     

   “기껏 동생한테 선물로 받은 거니까 안 쓰려고 했는데 말이야.”

   “뭐요?”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시그린이 의문을 품었을 때였다.

     

   샬롯이 허리춤을 툭 두드렸다.

   그러자 허리춤에 달린 파우치의 뚜껑이 열렸다.

     

   그 순간 시그린은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공간 아티팩트.

     

   상당히 비싼 가격의 물품이었다.

     

   “무슨 발버둥을.”

     

   그것을 본 시그린이 눈을 찌푸리기도 전.

     

   오싹!

     

   그녀는 무언가 잘못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느낌을 받은 그 순간 시그린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검을 내질렀다.

   이 느낌은 늘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곤 했기 때문이었다.

     

   뻗어진 시그린의 검이 백색의 기운을 흩뿌리며 샬롯에게 마지막 일격을 감행했다.

     

   전 검황의 비기가 검광이 수없이 쌓인 시그린의 검은 이제 샬롯이 막아낼 수준이 아니었다.

     

   무엇을 꺼내더라도 자신이 이긴다.

     

   그 확신이 담긴 검이 샬롯을 향해 덮쳐든 순간이었다.

     

   쩌엉!

     

   그리고 백선의 검 끝에 무언가 닿았다.

     

   시그린이 자신의 검 끝에 닿은 무언가에 의문을 표하자 그녀는 서서히 밀려 나는 자신의 검을 느꼈다.

     

   “윽!?”

     

   곧이어 그녀가 마주한 것은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었다.

     

   두근-

     

   시그린은 심장이 거세게 뛰는 감각을 느꼈다.

   그녀는 이 감각의 출처를 알고 있었다.

     

   그녀가 아닌 핏줄 깊디깊은 내부 속에 새겨진 꺼림칙함이었으니까.

     

   “그, 걸 왜 당신이!”

     

   시그린이 소리친 그 앞.

   샬롯은 검 한 자루를 들고 있었다.

     

   백선의 검과 언뜻 보기에 비슷한 하얀색의 금장식이 달린 검.

     

   그러나 그 검에서 넘실거리는 신성력은 검이 백선의 검과는 종류가 완전히 다름을 가리켰다.

     

   성검.

     

   신성 왕국 프리만의 보물이라고 불리던 검.

   그리고 프리만이 크라슈에게 떠넘기듯 넘겼던 그 검이 지금 샬롯의 손아귀에 들려 있었다.

     

   “내 동생이 선물해줬으니까.”

     

   샬롯은 아무렇지 않게 성검을 빙글 돌려 쥐었다.

   그러자 성검에서 솟아난 신성력이 샬롯의 몸에 흡수되며 그녀의 육체를 강제로 수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샬롯은 아쉬운 듯이 성검을 보았다.

     

   “선물로 준 거니 아끼려 했는데. 검이 부서져서 안 되겠어.”

     

   이번 대항전에서 시그린을 상대할 때 쓰라고 기껏 줬더니.

   정작, 샬롯은 선물이라고 아껴 쓴 황당한 상황이었다.

     

   반면에 시그린은 자기 몸에 샘솟는 꺼림칙한 감정에 이를 바드득 갈았다.

   황가의 핏줄이 성검을 볼 때마다 반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녀의 눈에는 분노가 들끓었다.

   세상의 중심이자 완전무결 해야 할 아서의 검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다.

     

   그것은 시그린에게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당신게 아니에요!”

     

   아서 그라말테.

   오직 그만이 성검을 쥐어야 한다.

     

   성검은 영웅왕 아서의 것이니까.

     

   “내놓으세요!”

     

   시그린의 두 눈이 백색으로 물들었다.

   더불어 그녀에게서 쏟아 나오는 기운은 아까보다도 훨씬 더 강렬해졌다.

     

   파직!

     

   스파크가 튀는 게 눈에 보일 만큼 넘실거린 기운이 시그린의 주위를 장악했다.

     

   언뜻 시그린의 얼굴 위에는 백색의 비늘 같은 것이 돋아나 보였다.

   시그린의 두 눈동자 또한 도마뱀의 것을 떠올리게 할 만큼 날카로워졌다.

     

   쩡!

     

   그러나 그러한 시그린의 기운을 무언가가 뿌리쳤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샬롯에게서 쏟아나온 기세였다.

     

   휘몰아친 샬롯의 기세는 아까와 달랐다.

   성검의 부가 효과인 신성의 힘이 그녀의 힘을 더욱 증폭시켰기 때문이었다.

     

   시그린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샬롯은 마치, 자신의 검인 양 자유롭게 성검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건, 오직 아서만이 다뤄야 하는 검인데.

   시그린의 회귀 전 과거를 부정하듯 샬롯은 아무렇지 않게 성검을 다뤘다.

     

   “뭐래.”

     

   샬롯은 굉장히 언짢은 표정으로 시그린을 노려보았다.

     

   “이건 내 동생이 준 거야.”

     

   유일하게 건드리면 안 되는 걸 건드린 듯.

   시그린은 살아오며 자신이 본 샬롯 중 가장 짜증을 부리는 얼굴을 보았다.

     

   “그럼.”

     

   폭발적인 기세 속에서 시그린이 두 눈이 냉담히 변했다.

     

   “뺏어야겠죠.”

     

   그리고 시그린이 다시금 검을 휘두르려는 그 순간.

     

   쿠우우우우우웅!

     

   들려온 소리와 함께 시그린과 샬롯이 멈칫했다.

     

   두 사람이 언짢은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웬걸.

   거기에는 엄청난 크기의 골렘이 하나 있었다.

     

   구름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거대한 골렘.

   그러한 골렘은 어느새 백양단 건물 코앞까지 다가와 양 주먹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허?”

     

   시그린이 기막힌 소리를 낸 그 순간.

     

   이윽고, 골렘의 양 주먹이 망설임 없이 건물을 향해 내려쳐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내려친 주먹과 함께 건물이 산산붕괴 되며 주위가 초토화되었다.

   그 여파에 휘말린 시그린과 샬롯이 연기 사이로 사라진 그 순간.

     

   화아아아악!

     

   터져 나온 시그린의 기운이 순식간에 연기를 짓이겨 사라지게 했다.

   시그린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백양단 건물이 박살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히, 누가!”

     

   그리고 그녀가 소리쳤을 때 그녀는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눈치챘다.

     

   어느새 샬롯이 사라진 상태이었다.

   그 여자, 도망친 것이었다.

     

   샬롯이 떠난 이유는 간단했다.

     

   질 것 같아서 같은 이유가 아니라.

   단순히 크라슈가 준 성검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시그린이 열이 한껏 뻗쳐 샬롯을 쫓으려 했지만.

   골렘이 또 주먹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백양단의 학생 단장.

   샬롯과의 전투도 중요했지만, 백양단이 박살 나버리는 걸 둘 수는 없었다.

     

   그보다 지금 시그린에게는 샬롯보다도 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크라슈 발하임.’

     

   시그린은 걸음을 옮기며 샬롯에게 성검을 준 샬롯의 동생을 떠올렸다.

     

   ‘프리만의 영웅이 된 건 전부 성검을 얻기 위해서?’

     

   시그린의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시그린은 샬롯이 회귀자가 아닌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것을 확인하고자 오늘 전투에 기꺼이 샬롯과 직접 맞부딪친 것이기도 했다.

     

   그 결과, 샬롯은 회귀자가 아님을 오늘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 상황을 주도한 인물은 누구인가?

     

   그런 그녀의 의심은 알게 모르게 서서히 크라슈를 향해 가고 있었다.

   샬롯에 의해 발생 되는 사건보다도 크라슈에 의해 발생 되는 사건이 더 컸으니까.

     

   ‘……설마, 설마 그 저주받이가? 정말로?’

     

   그러나 의문과는 별개로 시그린은 도저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크라슈 발하임은 그녀의 눈앞에서 처참히 아서를 부르짖다 세계의 멸망으로 죽었으니까.

     

   죽은 이가 어떻게 여기에 있단 말인가.

     

   그녀는 그 사실을 선뜻 인정할 수 없었다.

     

   그녀가 회귀 전 기억의 선입견.

   그로 인해 모든 정황이 크라슈를 가리키고 있음에도 마음속에서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라슈가 지금까지 보인 행보는 가히 파격적이었다.

     

   아서조차 이맘때에 이런 행보를 보이지 못했거늘.

   크라슈는 그런 아서마저 뛰어넘은 것 같이 엄청난 성과를 내고 있었다.

     

   실제로 크라슈의 행동으로 인해 세상은 바뀌어도 너무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시그린에게 크라슈는 영원한 저주받이였다.

   저주를 빼앗는 것 말고는 별다른 재주가 없는 성격 더러운 남자.

     

   그런 선입견은 자꾸만 크라슈의 변화를 무시하고, 깎아내리려고 하였다.

     

   그녀에게는 일종의 방어 기제였다.

     

   자신이 평생토록 무시했던 저주 받이 크라슈.

   그가 혹여나 멸망을 막기라도 한다면.

     

   멸망을 막지 못한 자신들은 무시했던 저주받이보다도 아래라는 소리가 아닌가?

     

   하다못해 샬롯이 해낸다면 모를까.

   늘 자신의 아래, 밑바닥에 있었던 크라슈가 멸망을 막기라도 한다면.

   시그린은 그 사실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은연중에 꾸준히 크라슈가 회귀를 한 것 같은 정황이 보여도 회귀 사실을 부정했던 것이다.

     

   ‘그럴 리가!’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다.

   시그린은 평생토록 이 생각에 의심 없이 살아왔다.

     

   그러한 생각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그것을 외면한 채 계속해서 자신이 중심이라 외쳤다.

     

   크라슈 발하임이 회귀했을 리가 없고, 그가 이 세상을 멸망에서 지켜 낼 리가 없다.

     

   그건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아서 님, 대체, 대체 어디에 계신 건가요.’

     

   대체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서는 지금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연인이자 시그린의 자존감을 가장 드높일 수 있는 아서.

     

   그런 그가 다루던 검이 자신이 가장 증오하는 인물인 샬롯에게 쥐어져 있었다.

   그것도 크라슈가 선택한 인물인 샬롯에게 말이다.

     

   그 사실은 자꾸만 아서와 자신을 이 세계에서 필요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 같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척이나 꺼림칙하고 지독한 감각이 느껴졌다.

     

   “윽.”

     

   그녀는 순간 혼미해진 정신을 느꼈다.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 거대한 일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이 세계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개입할 수 없는 동떨어진 인물이라는 양.

     

   그녀는 어느새인가 내버려진 기분을 느꼈다.

     

   ‘아니야.’

     

   시그린의 두 눈에 부정이 담겼다.

   이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다.

     

   그것은 절대 변하지 않은 사실일 텐데…….

   어째선가 그러한 사실이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었다.

     

   ‘아닌데…….’

     

   어쩌면 시그린은 이미 오래전에 망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멸망해 버린 세계를 보며 무력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

   그녀는 세계의 중심인 자신을 의심했고, 자신과 같은 중심인 아서를 의심했었으니까.

     

   누구보다도 아서를 사랑하던 그녀가 지금 이 시점에서 아서를 적극적으로 찾지 않았던 이유.

   그것은 어쩌면 스스로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게 아닐까였을지도 몰랐다.

     

   크라슈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는 것을 꿰뚫어 보는 능력 하나만큼은 뛰어났다.

     

   그리고 그런 크라슈의 눈치는 이번에도 시그린을 정확하게 꿰뚫어 봤다.

     

   그녀는 정상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내부에서부터 스스로 좀 먹어 가고 있었으니까.

     

   난 세상의 중심이니까 괜찮아!

     

   라는 생각을 애써 내세우며 말이다.

     

   “아니라고……. 아니야…….”

     

   세계를 지키지 못한 시그린 또한 멸망이라는 트라우마에서 멀쩡할 수 없었다.

     

   그녀가 지닌 모든 것들이 불타오르는 광경은 그녀에게조차 충격적이었다.

     

   오늘의 전투는 그런 그녀의 정신을 거세게 뒤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뒤흔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크라슈였다.

     

   그녀는 애써 자신의 불안감을 짓누른 채 걸음을 옮겼다.

     

   어서 빨리 자신의 정신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 했다.

     

   시그린은 그렇게 망가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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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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