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35

   EP.235

     

   탑의 주인.

     

   내가 살고 있던 지구는 좌표라는 하위 개념으로 세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좌표들이 모여 하나의 차원을 만들었고 그 차원을 성좌들은 탑이라 부르며 다스리고 있었던 것이다.

     

   “탑의 주인은…… 우리가 신이라 부르는 존재들인 겁니까?”

     

   「음. 네가 알고 있는 신의 개념이라면 탑의 주인보다는 성좌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지. 하나의 좌표를 관리하는 관리자의 역할이라 볼 수 있으니.」

     

   “그럼 탑의 주인은 뭡니까?”

     

   「성좌들의 지도자. 그리고 탑에 속한 좌표의 사분의 일을 관리하는 네 명을 말한다.」

     

   그의 말에 나는 더 이상 가볍게 수긍할 수가 없었다.

   세상을 다스리는 신이라는 위치조차 감당하기 벅찬데 그들의 지도자라는 자리는 얼마나 더 큰 책임이 따르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다른 두 녀석은 너의 그 신중한 태도를 보며 적합자가 아니냐는 말을 했지만 나는 같은 이유로 네가 탑의 주인이 되는 것이 껄끄럽다.」

     

   “자신감이 없기 때문입니까?”

     

   「아니, 물론 네 생각처럼 리더는 리더다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 또한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기에 그것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지. 세상의 모든 이를 지키겠다? 눈에 보이는 뚜렷한 목표 하나 이루기도 벅찬 것들이 그딴 생각을 하고 있다니 같잖고 눈꼴사나워.」

     

   그의 말에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이전부터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던 부분.

   나는 나를 따랐던 모든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하지만 가진 힘에는 한계가 있었고 주변을 위협하는 적은 점점 더 강해져만 간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는다면 하나를 잃었을 때, 그 슬픔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망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다른 두 녀석에서 성좌 ‘천세의 악몽’을 탑의 주인 후보로 거론했다. 그놈이 성미는 잔인해도 버릴 건 버릴 줄 알고 확실한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거든.」

     

   16층에서 만났던 만신전의 왕. 내 눈앞에 있는 철 왕좌의 주인은 혼돈을 탑의 주인 후보로 생각하고 있었다 말했다.

     

   「그래서 추가적인 제안을 했지. 너와 혼돈. 둘 중 누가 더 탑의 주인에 적합한 존재인지 확인해 보자고 말이야.」

     

   “그럼 16층에서 그 전쟁이 벌어진 게……”

     

   「그 부분은 미안한 말이지만 내 의견이었다.」

     

   그의 말에 피가 서늘하게 식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탑을 오르며 정말 많은 싸움을 해왔지만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싸움은 없었다.

     

   누군가는 사지가 절단되는 고통을 겪었다. 산 채로 잡아먹히며 눈을 감은 사람도 있었고 몸이 꿰뚫리며 제대로 눈을 감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화가 나는 모양이군. 때로는 대의를 위해 희생이 필요한 법이거늘 너는 왜 그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지?」

     

   온갖 잔인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원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어떤 대의를 위해 희생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까?”

     

   「다른 방법이라…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가? 결국에는 목표한 바를 이루어 냈으니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닌가?」

     

   으득.

     

   나도 모르게 강하게 다문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대에 대한 분노. 타인의 목숨을 한낱 유희 거리로 생각하던 몇몇 성좌들 중 하나가 이놈이라 생각하니 순간 냉정함을 잃은 탓인 듯했다.

     

   「분한 모양이군. 네놈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정확히는 나 또한 억겁의 시간을 보내고 수많은 성좌들을 보았기에 너 같은 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시간의 끝에서 ‘철 왕좌의 주인’이 내린 결론이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위대한 존재였기에, 그리고 차원이 다른 격을 지닌 존재였기에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신뢰하고 의지를 관철하는 것뿐이라는 사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입장일 뿐.

     

   “아니, 당신은 모릅니다. 당신이 말했듯 세상에는 정말 많은 존재들이 있죠. 하지만 그들은 그저 숫자에 불과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는 각자의 시간이 있었다.

     

   보육원에서 자라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왔던 김시인이 있는가하면, 어딘가에는 행복한 가정 속에서 평범한 아이로 자라 인생을 꽃피운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그 꽃을 피우기 직전, 모든 세상이 무너진 어린 시절의 서세영 같은 존재가 있는가 하면 다 허물어져 가는 세상 속에서도 자기만의 빛을 찾아 씩씩하게 성장한 한가민 같은 존재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의 경험과 기억이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그저 ‘시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특히 당신처럼 오랜 세월을 살아남은 존재라면 더더욱.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본 것이 아니기에 이해하지 못할 수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과 이해하지 않으려고 회피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나를 가르치려는 것이냐?」

     

   “필요하다면 그리 해야지요. 물론 당신의 마음이 열려 있지 않다면 아무 의미 없는 개소리에 불과하겠지만요.”

     

   「오만하구나.」

     

   “당신 또한.”

     

   그의 눈에서 살벌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위축되지 않았다면 거짓말. 격의 차이 때문인지 순간 심장이 떨려 왔지만 나는 오히려 머리가 차갑게 식으며 그를 마주할 수 있었다.

     

   지금껏 상대를 두려워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적을 얕보지 않고 목숨을 걸고 싸웠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랬기에 나는 패배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하나의 진리였다.

     

   「하하핫! 네놈 정말로 실성이라도 한 것이냐?」

     

   내가 검을 뽑아 들자 그가 광소를 터트리며 나를 내려다 봤다.

     

   “당신이 살기를 풍기지 않았다면 저도 검을 뽑아 들 일은 없었겠죠.”

     

   「고작 살기를 받은 것만으로 나에게 검을 들이대다니… 이딴 겁쟁이를 탑의 주인으로 추천한 두 녀석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지?」

     

   그가 뭐라고 말을 하던 나는 그의 빈틈을 노리기 위해 조용히 그를 응시했다.

     

   언제라도 급소를 찌를 수 있게.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하든 곧장 반응할 수 있게.

     

   그리고 그런 대치가 이어질수록 처음에는 비웃음을 흘리던 성좌도 점점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진심이냐?」

   “……”

   「진짜 미친놈이군.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듣기는 한 것인지 묻고 싶을 지경이야.」

     

   곧장 미간을 찌른다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놈의 흑색 갑옷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성좌를 초월한 성좌가 몸을 보호하기 위한 갑옷을 입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신체가 무적이 아님을 추측할 수 있다.

     

   「자, 잠깐만.」

     

   갑옷 위로 드러난 부위는 얼굴과 유연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는 관절 부분.

   그마저도 사슬로 보호를 받고 있긴 했지만 큰 초식을 펼쳐 연속적인 대미지를 준다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만월을 펼쳐서 한 번에-

     

   「잠깐 멈춰!!!」

     

   그의 다급한 외침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봤다.

   지금까지의 보였던 거칠고 사나운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모습.

     

   “왜 그러십니까?”

     

   「너, 너 방금 내가 소리치지 않았으면 정말 검기를 날릴 샘이었나?」

     

   “감이 좋으시군요.”

     

   당연하다는 듯한 나의 답변에 그가 황당하다는 듯이 가늘게 뜬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애초에 나를 도발한 것은 철 왕좌의 주인. 심지어 살기를 풍기며 위협하기까지 했으니 나의 본능이 그를 적으로 인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피식-

     

   나를 가만히 보고 있던 그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크크큭. 푸하하핫!!!」

     

   그의 웃음에 나는 영문 모를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전까지 대치를 하며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었는데 순식간에 김이 팍 새는 기분이 드니 어이가 없던 탓이었다.

     

   “뭐가 그리 웃기십니까?”

     

   나는 뽑았던 검을 자연스럽게 칼집으로 되돌렸다.

   아무런 전투 의사가 느껴지지 않는 상황.

   이제는 배를 잡고 끅끅거리는 사람 앞에서 혼자 칼을 들고 서 있으려니 좀 민망한 기분이 든다.

     

   「아아, 미안하구나. 아까 했던 말들은 사과하도록 하지. 네놈 꽤 쓸 만한 놈이었군.」

     

   “……갑자기?”

     

   「사실 네가 나의 말에 왜 화가 났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 함께 탑을 오르며 고생했던 주변인들의 죽음을 대놓고 비하했는데 그걸 가만히 참고 있는 건 도리가 아니니.」

     

   “???”

     

   그의 분위기가 완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누그러졌다.

   아까까지 나와 대치하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부드러워진 그의 모습에 인지부조화가 오는 기분이 든다.

     

   「지금까지의 발언은 사과하도록 하지. 물론 내가 너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그리고 한 가지… 네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

     

   분위기가 한껏 가벼워진 그가 말을 이어갔다.

     

   「내가 처음 너에게 지금 이 장소를 소개할 때, 뭐라고 설명했는지 기억하나?」

     

   “……1층은 실존하는 공간이 아니다?”

     

   「그리고 너는 이렇게 물었지. 탑이 도대체 왜 사람들을 ‘시험’하는 것이냐고. 여기에서 생기는 의문점이 하나 있지 않나?」

     

   실존하지 않는 공간과 시험이라는 말.

     

   「너희는 탑에서 죽지 않는다. 죽기 직전까지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인 고통은 수반되겠지만 결국 영혼은 파괴되지 않지. 마치 네가 경험했던 3층의 임무처럼 말이야.」

     

   “그렇다는 것은……”

     

   「우리는 다른 차원의 습격으로 전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 와중에 굳이 훈련 과정에서 소중한 병력을 허무하게 죽도록 놔둘 것이라 생각하는가?」

     

   3층에서 죽은 인원들은 사망하지 않고 로비로 돌아가는 페널티를 받았다.

   잠깐 동안 성장이 멈출 뿐,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모두는 이 탑에서 성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에 올라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그것은 모두에게 주어진 기회이며 예외란 없다.」

     

   “그럼 과거의 제가 잃었다는 동료들은……”

     

   「차원 간의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완전한 소멸이었지. 우리는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자 한다. 그렇기에 네가 다음 층에 가게 되면 신중한 선택을 해주었으면 하는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과하게 충격적인 발언.

   나는 밀려오는 부담감을 끌어안은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화 보기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