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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5

    <235 – 잘 자 응애야>

     

    이사장은 웃는 낯으로 에이프릴이 보낸 지원요청서를 툭툭 손가락으로 튕겼다.

     

    “용사의 견제라… 착한 아이의 일상을 위협하는 사악한 악당이 나타났군요.”

    ‘그걸 당신이 말하는 겁니까?’

     

    비서실장은 속으로 이사장을 욕했다.

    물론 고개를 숙인 채로.

    이사장은 일순간이라도 눈을 마주쳤다간 단숨에 자신의 감정과 속내를 장본인도 모를 밑바닥까지 읽어내고도 남을 작자였다.

     

    “오크노디의 집사는 분명 조나였죠. 구부러지지 않는 철목처럼 단단한 심지를 지닌 아이.”

     

    그는 기억한다.

    ‘아가씨’를 잃고 광분하던 조나의 모습을.

    쏟아지는 빗속에서 진흙에 옷이 더럽혀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바닥을 기며 시신을 회수하던 모습을.

    힘이 세고 유능하지만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개에게는 튼튼한 목줄을 달 필요가 있다.

    그래서 더욱 부러지기 쉬운 인형들을 달아주었다.

    한 번의 상실로 분노를.

    두 번의 상실로 절망을.

    세 번의 상실로 애원을.

    네 번째가 되어서야 복종을 선택한 그는 마침내 주인을 향해 이를 드러내기를 멈추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덤벼들지 않아도, 짖지 않아도, 이를 드러내지 않아도, 몸을 낮추며 고개를 숙여도.

    고개 숙인 조나의 얼굴에는 차가운 살의와 복수심이 존재하리라는 사실을.

     

    “조나 와이히엠하이. 그를 신용하셔도 되겠습니까? 그가 아카데미에 들어간다면 오크노디와 함께 아카데미의 품에 숨으려 들지도 모릅니다.”

     

    비서실장은 조언을 건넸다.

    이사장은 꺼림칙하고 두려운 존재지만 그에게 필요한 충언을 건네는 것을 아끼지는 않는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요직에서 내쳐지고 두 번 다시 이사장을 마주할 수 없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차기 집사장으로 손꼽혔던 자.

    조나 와이히엠하이가 그랬던 것처럼.

     

    “후후. 비서실장의 충성심이 참 기특하군요. 답례로 좋은 것을 하나 알려드리죠.”

     

    이사장이 테이블 위에 놓인 찻잔을 쥐었다.

    캐모마일티.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며 염증과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건강에 좋은 차.

    비서실장이 손수 고른 차였다.

    조금이라도 저 광기어린 정신머리를 정상인의 영역으로 가라앉혔으면 좋겠다는 의도에서였다.

    그가 고르고 고른 회심의 캐모마일티는 이사장의 손에 들린 채, 창가에 놓인 화분 옆에 놓였다.

     

    “아카데미는 그 아이들이 제게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소굴입니다. 하지만 그 소굴이 자신들을 해치려 든다면 그때는 반대가 될 겁니다.”

    “아카데미로부터 도망쳐서 재단의 품에 돌아오게 만들겠다는 뜻입니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환경을 피하고 싶어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지요.”

     

    쪼르르.

    찻잔에 담긴 맑은 캐모마일티가 화분에 부어졌다.

    아작아작.

    작은 벌레에게 잎을 뜯어 먹히는 화분 속 식물이 부르르 줄기를 떨었다.

     

    “맑은 정신은 건강의 상징이지만 실제로는 어떨까요. 역병이 도는 마을에서 홀로 살아남은 아이가 광기를 잊고 제정신을 되찾으면 즐거움을 느낄까요?”

    “…더욱 괴로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친구처럼 많이 괴롭겠죠.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자각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행위는 곤경에 처한 사람일수록 괴로운 일이니까요.”

     

    또각. 또각.

    가지치기용 가위로 이파리 몇 개를 잘라낸 이사장이 왈칵왈칵 수액을 흘리는 줄기에 소독제를 바르고 밀랍으로 페인트칠을 했다.

    꼼꼼하게 붓질을 마친 그가 만족스럽게 분재도구를 내려놓고 빈 찻잔을 테이블에 돌려놓았다.

     

    “맛이 좋네요. 한 잔 더 주시겠습니까?”

     

    …당신은 마시지도 않았잖아.

    두려운 마음을 애써 억누른 채, 비서실장은 조심스럽게 직접 주전자를 기울여 찻잔을 채워주었다.

     

    “세상은 재단의 아이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수석장학생이라는 지위는 더욱 그렇죠. 오크노디. 그 아이가 뛰어날수록 스트레스는 더 심해질 겁니다.”

     

    재단이 두려우니까요.

    재단의 사람이 될 오크노디는 더욱 그렇고요.

    두 번째 찻잔의 내용물을 이번에는 어항에 들이붓는 이사장.

    뻐끔뻐끔.

    해초류를 물어뜯던 물고기들이 경련을 일으키듯 부르르 떨더니 쿵쿵 어항 벽을 들이받았다.

    파괴적인 자학행위도 잠시.

    물고기는 곧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잊은 것처럼 둥실둥실 물속을 떠다니다가 다시금 해초류를 물어뜯었다.

     

    “그때가 되면 조나와 오크노디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밀랍을 칠할 때까지 피 흘리며 괴로워하는 분재가 될지, 고통을 잊고 우둔한 물고기가 될지 말입니다. 아, 참고로 저는 개인적으로 물고기보다는 분재가 좋습니다.”

     

    우둔한 물고기는 제 집이 어딘지도 모르지만 분재는 자신이 달아날 수 없음을 알고 있으니까요.

    꼭 캐모마일티를 마신 사람처럼 이사장의 온화하고도 차분한 웃음소리에 비서실장은 생각했다.

    캐모마일티는 대실패다.

    이 인간의 광기는 자신의 얄팍한 속셈을 꿰뚫어보며 완전히 가지고 놀았다.

    오히려 이제는 두려워지기까지 시작했다.

    이 미치광이가 정말로 ‘제정신’이라는 것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어떤 모습이 될지.

    애초에 저것이 미친 상태가 맞기는 한지.

     

    “…정체가 발각된 것으로 추정되는 재단의 하급장학생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꼬리가 드러났다면 새로운 꼬리를 심어야겠지요.”

     

    이사장의 얼굴에 차분함이 깊어졌다.

    입가에 그려진 미소의 편안함은 더욱 그러했다.

     

    “오크노디의 훈련과정에서 그녀를 보살폈던 암살메이드가 한 사람 있었지요?”

    “예. 리프 라이프Reaped Life입니다.”

    “리프 라이프… 아아. 기억났습니다. 로자니아 엘프령의 들판을 불태우며 거둔 마지막 새싹이었죠.”

     

    녹색의 싱그러움을 품은 머리카락을 지닌 아이.

    하지만 그 소질에는 한계가 있었다.

    순혈인간이 아닌 자는 이 시대에 결코 주류의 자리에 올라설 수 없으니까.

     

    “멸종위기종을 위험지역에 보내서는 마음이 불편하고 걱정되지만, 너무 감싸고돌기만 해도 바르게 자라지 못하겠죠?”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리프를 먼저 아카데미에 보내도록 하죠. 우선은 메이드로.”

    “전의 꼬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후후. 비서실장. 알고 있습니까? 당신, 지금 캐모마일티가 한 잔 필요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

    “농담입니다. 그리 화내지 마시죠.”

     

    비서실장은 깊은 시름에 밀려나오려는 한숨을 속으로 꾹 눌러 삼켰다.

    위장이 헐어버릴 것만 같다.

    어쩌면 정말로 캐모마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마음이 안정된다고 뭐가 달라지는가.

    이사장의 뜻은 확고했다.

    자신이 손을 쓰지 않으면 그가 직접 손을 쓴다.

    열심히 스파이 노릇을 해왔던 꼬리에게도 그편이 더욱 절망적인 미래다.

     

    “처분지시를 내리겠습니다.”

     

    하다못해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자.

    비서실장은 살인지령을 품은 채, 비서실에 지시사항을 전달하였다.

    낡은 꼬리를 떼어내면 새 꼬리를 붙인다.

    어려울 것도 없는 간단한 일이다.

    심지어 자비롭기까지 한.

    비서실장은 생각했다.

    역시 자신에게 캐모마일티는 필요하지 않다고.

     

     

    * *

     

     

    모기들이 얼마나 피를 빨았는지 엉겁결에 혈석이 하나 만들어졌다.

    학기 초와 달리, 학생들도 마나가 풍부한 지역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며 마나량이 늘어난 덕분인지 혈석의 크기는 작아도 광채는 더욱 진했다.

     

    “혈마법은 취향이 아닌데.”

     

    혈석유행도 벌써 끝났고.

    이걸 뒀다가 어디다가 쓰지?

    손가락 위에 혈석을 올려놓고 빙글빙글 돌리다가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응애.”

    “안 돼. 응애는 이런 거 먹는 거 아니야. 지지야 지지.”

     

    애가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런 것까지 눈독 들여?

    혈석은 그냥 주머니에 넣었다.

    가지고 있으면 어딘가에는 쓰겠지!

    그런데 어째 응애 만드라고라의 표정이 억울함과 불만으로 가득차보였다.

     

    “응애!”

    “아이 참. 안 된다니깐. 왜 자꾸 고집 부려?”

    “응애애애애!”

     

    화가 난 응애 만드라고라가 물병 밖으로 잔뿌리를 내밀어 쓰레기통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유미 선배에게 받았던 혈액튀김가루를 보관했던 주머니가 들어있었다.

     

    “봤어…?”

    “응애.”

     

    너도 피 먹는데 나는 왜 안 돼!

    나도 줘!

    반찬투정을 부리는 응애 만드라고라.

    하지만 어림도 없지.

     

    “응애는 이런 거 먹으면 큰일 나. 성장하기 전에는 절대로 안 줄 거야!”

    “응애애애.”

     

    잔뿌리로 물병의 표면을 팡팡 내리치며 아등바등 몸부림치는 응애 만드라고라.

    생각난 김에 물병의 물을 물컵에 따르고는 새로운 특제영양액을 부었다.

     

    “흥흥. 이번엔 우리 응애 얼마나 자랐나 볼까?”

     

    벌컥벌컥!

    응애의 영험한 기운이 담긴 물을 시원하게 원샷 때렸다.

    충만한 기운이 식도를 타고 위장에 쏟아진다.

    이 정도 기운이라면…

    마나 총량이 1년 치는 더 늘었다!

     

    “흠. 지난달보단 상승세가 적네. 다음엔 잔뿌리도 깎아서 먹어야 하나?”

     

    첨벙첨벙 세차게 물을 내리치던 응애의 움직임이 우뚝 멎었다.

    부르르.

    몸을 떨며 영양액 속에 몸을 푹 담그는 응애 만드라고라.

    갑자기 물이 달라져서 추위를 타나보다.

     

    “뜨거운 물이라도 부어줄까?”

     

    보글보글.

    물병 속에서 기포가 올라왔다.

    응애의 뿌리에 난 입이 작게 움직였다.

     

    [응애]

     

    지금이 딱 좋다고 한다.

     

    “앞으로도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으면 나중엔 혈석도 먹게 해줄게. 지금처럼 말 잘 듣고 편식하지 말고 많이 먹고 쑥쑥 자라야해. 알았지?”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나는지 또 다시 부르르 몸을 떨어댄다.

    꼭 진동모드가 켜진 휴대폰 같다.

    아차.

    내일도 운동회에서 피 모으고 다니려면 빨리 자야지.

     

    “잘 자, 응애야!”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왠지 오늘은 엉엉 울며 달아나는 응애 만드라고라를 입에 물고 우물우물 거리는 꿈을 꿀 것 같다.

    응애가 빨리 자랐으면 좋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쏙 빼닮은 부녀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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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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