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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5

       

       

       “전기 꽂았어?”

       “네!”

       “그럼 스위치 눌러 봐.”

       “네에! ……와! 바람 나온다!”

       

       자기 방에 들어간 함서주가 선풍기를 켜고는 아이처럼 즐거워한다. 뭐, 만으로 열다섯이면 미래 한국에서는 중3인 나이니까 아이 맞긴 하지만.

       

       ‘결국 두 개 샀네.’

       

       함서주와 함께 시내에 내려간 나는 하나에 20원씩인 선풍기를 두 개 샀다. 탁상용만한 철제 선풍기로, 내 방에 놓을 것 하나, 함원삼·함서주 부녀가 사는 방에 하나씩이었다. 아무리 내 돈주고 사는 물건이라지만 나 혼자만 쓰기는 왠지 좀 뻘쭘했으니까.

       

       한 달에 5, 60원씩 버는 월급쟁이라면 큰맘먹고 사야 할 값이겠지만, 부모 돈이 많은 나에겐 크게 거금도 아니었다.

       

       선풍기로 인한 전기세도 내가 방세와 별도로 짬짬히 주는 생활비를 생각하면 크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어차피 전기라고도 전등 말고는 쓸일이 없는 집구석이기도 하고.

       

       “학생손님! 이거 봐봐요! 아”아”아”아”아”아”~~~”

       

       선풍기 앞에서 입을 벌리고 아아아 소리를 내는 함서주. 어릴 때라면 다 해보는 짓이긴 하지만, 얘는 처음 해보는 건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잘 살았다던데 그때도 집에 선풍기같은 건 없었던 모양이었다. 

       

       “어떠냐? 시원해?”

       “헤헤, 그럼요! 학생손님이 최고! 선풍기두 사주구!”

       

       저렇게 좋아해주니 돈 쓴 보람이 있다. 나도 내 방에 선풍기를 틀여놓고 바닥에 늘어진 채로 근대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누워있자니,

       

       “서주 이 년, 애비가 왔는데 나와도 안 봐!”

       “아부지! 이거 봐봐요!” 

       “으응, 웬 선풍기냐?” 

       “학생손님이 사주셨지 뭐예요!”

       

       하는 소리가 방문 밖에서 들려온다. 저녁 늦게 인력거 일을 마친 함원삼이 집에 돌아온 것이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내가 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고 인사하자 함원삼은 뒤통수를 긁으며 나에게 말했다.

       

       “아이구, 학생양반은 어쩌자구 저런 비싼거를 덜컥덜컥 사주는가? 계집애년 버릇 버리게……”

       

       그 말을 들은 함서주가 방 안에서 빽 외쳤다.

       

       “피! 말이라지만 무슨, 딸한테 계집애년이 뭐람? 밖에 물 받아놨으니깐 아부지도 얼른 씻구 와서 바람이나 쏘여요!”

       “이 년이, 조용히 하지 않아!”

       

       함원삼은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히죽히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참지 못한다. 

       

       “으응, 학생양반! 그래 고맙기는 하지만서도, 나두 염치가 있는 사람인데 값이 한두 푼으로 헐한것두 아니고 저런걸 맨손으로 받는 것도 계면쩍어서 어쩌나……”

       “제꺼 사는 김에 겸사겸사 하나 더 샀습니다. 별 거 아니니까 어르신도 마음껏 쓰세요. 전기요금 많이 나오면 제가 도와드릴테니까.”

       

       함원삼 아저씨한테는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고, 이렇게 저녁 늦게까지도 더운 날에 인력거를 끄는 육체노동을 하는데 선풍기라도 없어서야 되겠는가.

       

       그렇게 감사인사를 받고 다시 내 방에 들어간 나는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옆 방에서 함원삼·함서주 부녀가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헤헤! 아부지두 좋지요?”

       “아이구, 좋다. 학생양반 덕분에 이 무슨 호강인가, 응? 문화주택 사는 사람두 아닌 형편에 선풍기를 다 쏘여보구.”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밖에서는 번갈아 우는 풀벌레 소리며 개구리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쪽마루 위에 피워놓은 모기향이 그윽한 정취를 풍겼다.

       

       여름이었다.

       

       

       

       ***

       

       

       

       “얼리버드 기상……!”

       

       다음날 아침. 나는 만족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선풍기라도 있으니까 좋네. 모기도 덜 물리고.

       

       선풍기 전원을 뽑고 교복을 입은 나는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방에서 나왔다. 함서주가 쪽마루에 앉아있다가 아침인사를 건넨다.

       

       “인나셨어요?”

       “응. 너도 잘 잤냐?”

       “네에! 덕분에……. 근데 학생손님, 혹시 밤새 방문 닫구 선풍기 틀어놓으셨어요?”

       “어, 왜?”

       

       그렇게 별 생각 없이 대꾸하자 함서주가 별안간 소리를 친다.

       

       “문은 열고 주무셔야죠! 큰일날라구……”

       “어?”

       

       당황한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함서주가 일장 잔소리를 쏟아낸다.

       

       “모르셔요? 사방 꽉꽉 막힌데서 선풍기 쏘이면요, 피부가 말라서 혈액순환두 나빠지구요, 위장에두 안좋구 입이 삐뚤어지거나 잘못하면 병신이 된단 말예요!”

       “아니,”

       

       뭐야. 선풍기 사망설이냐고. 이게 이 시절부터 있던 미신이었던 건가……. 대체 어디서부터 지적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함서주에게 해명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틀고 잔다고 사람이 어떻게 되지는 않아. 그거 미신이야. 애초에 이 방이 완전히 밀폐되는 방도 아니고—” 

       “신문을 봐두 과학자입네 박사입네 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다아 그러는데 머가 미신이예요! 저같이 보통학교밖에 안나온 사람두 아는 걸!”

       

       ‘아이고……!’

       

       선풍기 사망설 앞에서 논리와 사실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이 뿌리깊은 미신은 앞으로 80년이 지나도 근절되지 않을 정도였으니, 도무지 논리로 설득할 수가 없는 문제인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조잡한 변명을 둘러댔다.

       

       “나는 각성자라서 괜찮아. 잔소리 그만!”

       “각성자가 아니라 각성자 할아버지래두 큰일나는게 선풍기예요! 잔소리가 아니구 학생손님 걱정되니깐 하는 말이지요!”

       “알았어, 알았어. 내일부턴 방문 열고 잘게. 나 학교 간다.”

       

       얘도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러는건데 뭐라고 하겠나. 그냥 그러마 하고 얼른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었다.

       

       

       

       ***

       

       

        

       “병오야. 너 사는 하숙집에 선풍기 있냐?”

       “허어! 있을 성 싶은가?”

       

       하숙집을 나온 뒤, 언제나처럼 등교길에 송병오 녀석과 마주친 나는 녀석과 이야기를 나누며 학교 진입로의 언덕길을 올라갔다.

       

       “없지? 그럼 너도 선풍기 사줄까? 그렇잖아도 어제 사서 틀고 잤더니 좋더라.”

       “말이야 고맙지마는 됐네. 어차피 내 하숙방에는 사시꼬미(差し込み; 콘센트)도 없으이.” 

       “전기야 뭐, 한전…… 아니 경전 불러서 달면 되지.”

       “제기랄, 내 집도 아닌데 누가 구태여 돈을 들여서 그런 방구석에 전기를 다나? 돈이 썩어나는 모양이지! 그리고 나는 돈이 많아도 선풍기라면 일 없네.”

       “왜?”

       

       내가 묻자 송병오가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이 사람아. 그런 것으로 더위를 면하다보면 결국은 선풍기에 마약처럼 의존하게 되어서, 없으면 못 버티는 사람이 되는 걸세.”

       

       흐음. 이건 나름 그럴듯한 말이었다. 한번 쓰면 계속 의존하게 될까봐 싫다는 건가. 송병오 녀석은 말을 이었다.

       

       “또, 선풍기를 틀고 자자면 필히 문을 열어두어야하지 않은가. 헌데 나는 개인의…… 요컨대 ‘푸라이베—트’한 사생활이 퍽 신경이 쓰여서, 방 문을 열고는 도무지 남들이 들여다볼까봐 살 수 없는 사람일세. 그런데 문 닫고 선풍기 틀고 자다가 병신이 된다면 누가 책임질 텐가?”

       

       아니, 얘도 결국은 이 소리네. 또 선풍기 사망설—아직까지는 선풍기 때문에 죽는다는 얘기까진 없었으니 ‘선풍기 위험설’ 정도 되려나. 근데 나름대로 똑똑한 편에 속하는 송병오 너마저 이걸 믿는 거냐고.

       

       “그러든가……”

       

       나는 결국 설득을 포기했다. 그렇게 언덕길을 올라 학교 정문을 통과하는데,

       

       “어? 뭐지? 저기 사람들 모여있는데.”

       

       등교하고보니 어째 학교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학생들이 너도나도 몰려있었는데, 기숙사가 있는 방향이었다. 송병오가 외쳤다.

       

       “저기 구급자동차일세! 누가 변을 당했나보이!”

       

       송병오 녀석의 말대로 붉은 십자 마크가 그려진 탑차 트럭 한 대가 기숙사 건물 앞에 세워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도 가 보자.”

       

       가까이 가 보니 뭔가 일이 생긴건 여자 기숙사 쪽인 모양이었다. 여자 기숙사에는 남자 출입이 안되지만, 어수선한 틈을 타서 이미 여학생이든 남학생이든 죄다 몰려와 입구에서부터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나는 가방에서 완장을 꺼내 팔뚝에 차고는 외쳤다.

       

       『잠깐 비켜 보세요! 경찰, 경찰입니다!』

       

       몇몇 학생들이 내가 찬 완장을 보고 길을 비켜주었다. 이럴 때 경찰 완장이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여자 기숙사에 들어가서 학생들 틈을 겨우 비집고 계단을 올라 사건 현장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다다르니, 

       

       『흑…… 으흑, 흑.』

       

       입입금지(立入禁止) 테이프가 둘러쳐진 방 문 앞에 주저앉은 채 울먹거리는 여학생은……

       

       ‘아이까와?’

       

       우리 분대원인 아이까와 사또미였다.

       

       『아이까와? 아이까와! 무슨 일이야?』

       『시, 시라바야시 군! 도미꼬 쨩이, 도미꼬 쨩이.』 

       

       아이까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양복자의 이름이었다. 양복자가 왜 여기서 나와? 나는 훌쩍거리는 아이까와의 어깨를 붙들고 외쳤다.

       

       『무슨 일인데! 말해 봐!』

       『저기, 그게, 흑, 흐윽. 아침에 등교할 시간이 되어도 안 나오기에, 도미꼬 쨩의 문을 두드렸는데……』

       

       그 말과 함께, 테이프 쳐진 문으로부터 양복자가 들것에 실려나왔다. 미동도 없이 눈을 감은 채였다.

       

       『뭐……!』

       

       나는 기절한 듯한 양복자의 모습을 보고 숨을 삼켰고, 아이까와는 기어코 울음을 쏟아내며 말했다. 

       

       『흑……! 도미꼬 쨩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의사의 말로는, 혼수상태라고……』

       

       그 소리를 듣고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혼수상태? 양복자가? 어째서?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분명, 뭔가 일이 있었다. 

       

       “병오. 너는 아이까와 데리고 구급차에 동승해서 복자 따라서 병원에 가 봐. 혹시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양복자를 지켜.”

       

       나는 이를 악물고 송병오에게 말했고, 송병오는 비장한 얼굴로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네! 헌데 자네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입입금지 테이프를 위로 올리고 방 안에 들어갔다.

       

       『응? 이봐, 생도는 진입하면 안 돼!』

       

       방 안에는 이미 신고를 받고 먼저 출동한 경찰 두어 명이 현장을 살피고 있다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외쳤다. 나는 경찰 완장을 그들에게 보이며 말했다.

       

       『종로경찰서의 무라사끼 서장으로부터 임명된 명예경찰 시라바야시 데쓰젠입니다.』

       『종로서의 서장으로부터…… 아아, 예의 그 생도인가!』 

       

       다행히 경찰 내에서도 나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경찰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우리도 출동 받고 왔지만 모르겠군. 별로 흔적도 없는데……』

       

       나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내가 다른 기숙사 방을 본 적은 없지만 꽤나 반듯하고 정갈한 방이었다. 하긴, 원래 렌까가 지내기로 했던 방이니 당연하겠지. 

       

       ‘으음……’

       

       경찰들의 말마따나 내가 봐도 딱히 수상한 흔적은 없었다. 창문도 굳게 닫힌 채 잠금장치가 걸려 있었고, 부서지거나 더렵혀진 가구도 없었다. 애초에 외부인이 들어오기가 쉽지 않은 곳이리라.

       

       ‘그럼, 양복자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때, 

       

       『저, 저것 봐! 방 안에!』

       

       방 밖에 몰려있던 학생들 중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술렁거리던 소리가, 조용한 적막을 깨고 터져나왔다.

       

       『……선풍기다!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센푸끼가 마왓떼루!!!!!!!

    대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용!!!! 무섭다 무서워!!!!! 이 사건의 전말은 과연!!!!!!1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저는 목요일에 돌아오겠습니당!! (호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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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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