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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6

       “강의를 시작하도록 합시다.”

       

       그 말에 학생들의 억장이 무너졌다.

       

       “네?”

       “교수님?”

       

       당황한 학생들이 너도나도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시각은 8시 10분.

       

       일리야드의 1교시는 9시에 시작한다.

       

       따라서 지금은 담임 재량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수업 진도를 나가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러한 불문율을 에테르가 유리창 깨부수듯이 산산조각 내 버렸으니.

       

       학생들의 얼굴에 불퉁한 감정이 어리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런데도 에테르가 멈추는 일은 없었다.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성토에도 불구하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처럼 폭주하며 분필을 집었다.

       

       [마도수리학]

       

       “제가 맡은 과목은 이겁니다. 마도수리학.”

       

       마도수리학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론 과목이다.

       

       금안족이라는 걸 숨기고 있는 에테르에게는 실전 과목을 맡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냥 수식 몇 줄 적다 보면 수업이 끝나 있을 테니까.

       

       “이 과목에선 마법에 필요한 수학을 배웁니다. 기하, 해석학, 대수학, 표현론 등등. 이것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고위 마법을 구사하거나 복잡한 스크롤을 작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겁니다.”

       

       공공연한 이야기였다. 이걸 누가 모르나.

       

       지루해하는 학생의 빈도가 분 단위로 증가하고는 있었지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여기까지 질문 있나요?”

       

       이리저리 떠들던 에테르가 한 템포 쉴 겸 물었다.

       

       당연히 질문이 안 들어올 줄 알았는데, 고맙게도 여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혹시 선천적으로 마력량이 적어도 수학을 잘 익혀 놓으면 괜찮을까요? 그러니까, 제 말은… 작은 마력만을 가지고 실전에서 고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생각보다 정상적인 질문에, 에테르는 내심 감탄했다.

       

       “…좋은 질문이에요.”

       

       제한된 마력량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마법을 운용하는 방법론은 한때 자신이 미치도록 연구했던 분야였다.

       

       그런 연구가 있었기에 마력초 몇 모금만으로도 최상급 마도를 슝슝 쏴댈 수 있었던 그녀였다.

       

       당연히 질문의 답을 알고 있었다.

       

       “가능합니다. 쥐꼬리만큼 작은 마력을 가지고도 최상급 마법이 담긴 스크롤을 작동할 수 있어요.”

       “정말인가요…?”

       “네. 이런 걸 연구하는 분야를 ‘최적화’라고 합니다. 본래 이것 자체는 대학원에서 배우는 과정이긴 한데…….”

       

       질문한 여학생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처음 보는 학생이긴 한데.

       

       머리카락은 애플민트처럼 싱그러운 초록이었고, 눈은 일리야드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처럼 맑은 푸른색이었다. 혼자서 필기구를 들고 끼적이는 것이 퍽이나 웃겼다. 

       

       그렇다고 우습진 않았다. 저런 애들이 나중에 교수가 되는 거니까.

       

       물론 그래봤자 세상은 1년에서 2년 이내에 멸망할 것이기에, 소녀가 마도사로서 꿈을 펼치는 일은 없을 터였다.

       

       그래, 저승길 선물로 이 정도는 알려줘도 괜찮겠지.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칠판이 위로 올라갔다.

       

       “그래도 모처럼이니 최적화 얘기를 해 봅시다. 우선 학부생 수준에서, 간단한 것부터…….”

       

       그러면서 칠판에 알파벳과 수식을 몇 개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이를 바라보는 엘프 소녀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

       

       

       아는 내용이다.

       

       또한 배운 내용이다.

       

       로테는 아스테야 교수가 끄적이는 일련의 수식들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여기에 부분적분을 사용하면 재미있는 항이 관찰되죠. 여기, 이쪽을 잘 보면 적분의 발산정리를 쓸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변분 이론.

       

       무한차원의 미적분학을 다루는 이론으로, 함수를 최적화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선 반드시 배워야 하는 내용이었다.

       

       로테는 저것을 에테르에게 배웠다. 물론 홀로 예습한 적도 있었지만, 그땐 이해하지 못했던 것투성이였다.

       

       제대로 배우고 이해한 건 에테르를 과외선생님으로 두었던 3월 초.

       

       그리고 지금, 그때 들었던 강의 내용이 눈앞에서 다시 한번 재생되고 있었다.

       

       “여기까지 하면 최종적으로 이 방정식이 나옵니다. 이 식 하나로부터 연속적인 계의 최적화를 먼저 생각해 볼 수 있고요.”

       

       로테는 싱긋 웃었다.

       

       숨기는 게 너무 서투르잖아.

       

       어떻게 된 게 수업 진행하던 방식부터 시작해서, 특정 알파벳을 휘갈겨 쓰는 것까지 전부 에테르와 판박이였다.

       

       이젠 완전히 동일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확신에 확신을 더한 로테는 옆자리를 흘겨보았다.

       

       아쿠아마린처럼 푸른 눈에 하얀 머리카락을 한 소녀.

       

       이제야 모든 얼개를 짜 올릴 수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서 한숨을 픽픽 내쉬고 있는 저 무뚝뚝한 소녀가, 에테르의 쌍둥이 여동생이었다.

       

       아카샤. 그녀와는 작년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만났다.

       

       예리한 살기를 내뿜고, 재앙급 마수인 펜릴을 단칼에 죽여버리는 무시무시한 금안족이었지.

       

       그래서 로테는 아카샤가 절멸급 마수가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품은 적도 있었다.

       

       그 의심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지만, 이 점에 대해선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 로테였다. 에테르를 믿자고 했는데, 그 쌍둥이 여동생이라고 믿지 못할 게 어디 있나.

       

       신기하게도 아카샤에게서 그때와 같은 한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선생님, 저쪽에서 저긴 왜 저렇게 되는 건가요?”

       “어디. 이쪽?”

       “아뇨, 거기보다 조금 아래요. 네, 거기요.”

       

       정신이 팔려 있던 사이, 왼쪽 구석에 앉은 엘프가 잇달아 질문을 던졌다.

       

       로테는 저 엘프와 일면식이 있었다.

       

       유피엘 피어바인.

       

       세계수를 관리하는 하이엘프 가문의 일원이었다.

       

       “저기서 왜 갑자기 식이 사라지는지 모르겠어요.”

       “이쪽에 적분이 보이죠? 발산 정리를 쓴 거예요. 표면이 무한히 간다 생각해서 0으로 날려버린 겁니다.”

       “아….”

       

       왜 질문을 계속하냐고 따가운 눈길을 보내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로테는 흡족한 눈빛으로 유피엘을 보았다.

       

       꼭 에테르에게 질문하던 예전의 자신을 보는 듯했다.

       

       “이해됐어요. 감사합니다!”

       “좋아요. 다른 질문 있나요?”

       

       유피엘을 제외하고 질문하는 학생은 없었다.

       

       로테야 내용을 전부 알고 있었으니 에테르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 이외의 목적으로 들을 필요가 없었고, 나머지는 곯아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질문 없으면 다음 내용으로 가겠습니다.”

       

       결국 수업은 11시까지 세 시간을 꽉 채워서야 끝났다.

       

       문제는, 이 뒤로 다시 두 시간 분량의 수업이 있다는 것.

       

       이것 말고도 각자 수강신청한 결과에 따라 오후 선택과목을 들어야 한다. 첫날부터 강행군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오늘 배운 내용을 주제로 두 장 내외의 에세이 한 편을 써 오세요. 기한은…. 다음 주까지.”

       

       그 말에 혼곤히 잠들었던 학생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났다.

       

       첫 강의부터 과제 폭탄.

       

       로테야 별 문제는 없었다. 필기를 열심히 해 두었던 유피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머지는 칠판의 흔적을 주워 담고자 필사적으로 펜을 놀렸다.

       

       “칠판 지울게요.”

       “아, 안 돼! 하지 마세요!”

       

       어디선가 나타난 대학원생이 지우개질을 하는 동안, 에테르와 아카샤는 제일 먼저 교실을 빠져나갔다.

       

       빠져나가려고 했다.

       

       로테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뒤쫓았다.

       

       거리를 딱 붙인 채로 걷는 두 사람.

       

       키도 그렇고, 체형도 그렇고.

       

       도플갱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똑같은 둘이었다.

       

       “아카샤!”

       

       로테는 확신을 담아 외쳤다.

       

       그러자 백발의 소녀가 귀신같이 뒤를 돌아보았다.

       

       “…….”

       

       틀림없이 반사적으로 보인 움직임이겠지.

       

       백발 소녀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곧바로 도망쳤다. 아스테야 교수, 그러니까 에테르도 걸음을 빨리하며 길모퉁이를 돌았다.

       

       “왜 도망가지….”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줄행랑을 친다.

       

       특히 에테르.

       

       지금 자기가 마수라는 낭설이 떠돌고 있는데, 자신에게 해명할 생각은 안 하고 다른 사람 행세나 하고 있다.

       

       최소한 귀띔이라도 해 주면 좋을 텐데.

       

       로테는 한숨을 쉬며 교실로 돌아왔다.

       

       “살리에르.”

       

       버멜이 말을 걸어온 건 그 무렵이었다.

       

       그 순간, 로테의 머릿속에서 현묘한 빛이 일렁거렸다.

       

       “아, 맞다. 너희!”

       

       버멜과 프레이는 ‘증기의 비’ 사건 때 그 자리에 있었다.

       

       당연히 에테르의 행방이 어떠한지도 물어볼 수 있을 터였다. 다음 시간도 준비해야 해서 비록 많은 대화는 못 하겠지만.

       

       어디 보자. 무엇부터 물어봐야 하지?

       

       고민하던 로테를 앞에 두고, 버멜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랑 프레이랑 너, 우리 셋이서 과제 같이 할래?”

       

       

       **

       

       

       복도를 쏜살같이 빠져나온 에테르와 아카샤 자매.

       

       한숨 돌릴 겸 생수병을 따서 나눠마셨다.

       

       물을 계속 마시는데도 갈증이 가실 줄 몰랐다. 뜨거운 감자라도 삼킨 것처럼 목이 따끔거렸다.

       

       “살면서 이렇게나 오래 떠들어 본 건 처음이군.”

       “언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아카샤의 눈동자는 민들레꽃처럼 노랗게 명멸하고 있었다.

       

       “아, 미친. 우리 들킨 것 같아.”

       

       교실을 나온 이후로 잠깐 방심하고 있었는데, 로테가 아카샤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아카샤는 뒤를 돌아보았다.

       

       “하, 미친.”

       

       에테르도 이를 알았기에 한숨을 담배 연기처럼 뻑뻑 내쉬었다.

       

       “그걸 왜 돌아봐?”

       “나, 나도 모르게 그만.”

       

       그야말로 치명타였다.

       

       이대로라면 세계수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는 계획을 다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작전이 틀어지면 네 탓인 줄 알아라.”

       “잠깐, 이게 왜 내 탓인데?”

       “네가 먼저 들키면 나까지 들킬 테니까.”

       “내 생각엔 언니가 먼저 들켰어. 그 빨간 머리 계집애한테.”

       “아닐 거다.”

       

       아카샤는 쿡쿡거리며 웃었다.

       

       “아니면 그 수인족이나 엘프에게 들켰을 수도 있겠지. 특히 그 둘은 언니 정체가 까발려졌을 때 현장에 있었잖아?”

       “한 놈은 기절했었고 나머지 하나는 심성이 유약하니 잘 입막음하면 된다.”

       “그러면….”

       

       아카샤의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에테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첫날부터 과제를 내줬으니 성실한 살리에르는 따로 놀 테고, 엘프는 쓸데없는 짓만 하다가 시간을 버릴 가능성이 농후하지.”

       “아하, 그렇구나. 일단 셋을 찢어버린 다음에 각개격파하자는 거지?”

       “뭘 좀 아는군.”

       “생각하는 게 거기서 거기지 뭐.”

       “좋아.”

       “좋아.”

       “말 안 해도 알지?”

       “말 안 해도 알지.”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더 잘못되기 전에, 사냥감을 물어야 한다.

       

       아카샤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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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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