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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6

        

         

       “이런. 소저. 괜찮아요?”

         

       “왜, 왜 이제 왔어!?”

         

       모용주희가 버럭 소리치며 안겨들었다.

       무슨 고초를 당했는지 악취가 훅 끼치는 통에 청이 잠깐 인상을 찌푸렸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등줄기를 살살 쓸어주었다.

         

       “왜, 왜 이제 왔냐구, 나, 나, 죽으려고, 죽고 싶은데, 무서워서. 너무 아프고, 아픈 거 싫은데. 왜 이렇게 늦게, 늦게 오고.”

         

       사실, 청도 모용주희가 잡혔다는 사실을 간단한 여흥을 통해 방금 전에야 알아챘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 잡힌 것도 몰랐고, 저 위에도 아무도 모르는 것 같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청의 출신이 중원이 아니었으니, 야만적이기야 중원이나 현대나 다르지 않더라도 잡다하게 쓸모없는 지식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차이점은 있었다.

         

       청이 모용주희를 꽈악 안아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늦게 와서 미안해요. 많이 힘들었죠? 그래도 지금까지 잘 버텨 줬어요. 고마워요. 잘했어요. 아주 대단한 거예요. 내가 많이 늦었죠? 다 내 잘못이에요. 모용 소저는 하나도 잘못이 없으니까. 미안해요…….”

         

       내담자에게 공감하고 동의하며 위로하되 대안을 제시하라. 제시하라? 하지 마라?

       수강신청을 제대로 망해서 들은 심리학이 워낙 오래 전이라 가물가물했다.

         

       “으흑……!”

         

       모용주희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끄윽, 끄으으 숨죽여 소리를 내지 못하는 모양이 참으로 애처롭다.

       청이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을 꼭 품에 안은 채로 진정하길 기다릴 때였다.

         

       “……너. 서문청이라고?”

         

       “모용 소저? 진정이 좀 되셨나요?”

         

       청이 그제야 꽈악 힘주어 안던 손을 풀어주었다. 모용주희가 상체를 젖혀 청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멍하니 풀린 표정을 했다.

       그리고는 변검술사가 가면을 바꾸듯이, 일순간에 선연히 증오를 띄는 얼굴.

         

       “너, 뭐야? 왜 예쁜데? 너는, 너는 왜 다 가지고, 전부 다 가지고 있으면서 나한테, 어떻게 나한테 이래!?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내가, 다 너 때문에……!”

         

       갑자기 모용주희가 줄기줄기 원망을 마구 토해놓았다. 울음기가 섞여 목에서 비틀려 잉잉거리는 소음이라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대충 듣자하니 사연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용봉지회에서 개망신을 당하고 나서는, 제 명예를 되찾을 방법이 잠룡비무회에서 청을 눌러주는 수밖에는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가 낭인에게 패배하고는 완전히 웃음거리, 심지어 봉황회의 계단참에서 제 패거리가 저를 두고 수근수근 뒷담을 까는 소리까지 듣고 말았다는 것이다.

       지가 잘난 줄 안다, 검화니 뭐니 백합은 그렇게 무시를 했으면서 고작 낭인한테 져 버리고, 솔직히 걔 보면 나도 완전 없는 건 아니라고 위안이 되니까 따라다니며 시녀짓 하는 거지……

       결국, 전부 다 미워진 모용주희가 집으로 먼저 돌아가겠다고 편지 한 장 남겨놓고는, 야밤 중에 도주를 한 것이다.

         

       청은 좀 많이 어이가 없기는 했다.

       그게 왜 내 잘못이 돼? 제아무리 세상에 무서운 상대가 없는 오대세가의 아가씨(나름 고수)라도 이 험한 세상, 야밤중에 몰래 떠났으니 지켜보고 있던 혈교 놈들이 이게 웬 떡이 혼자서 굴러들어오나 싶었겠지.

        게다가 먼저 귀가하겠다고 편지까지 남겼으면, 모용세가의 식솔들도 납치되었다고 생각하겠어?

         

       “소저, 조금 진정을 하고 계세요. 세상에 얼굴이 반쪽이네. 저 새끼도 밥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근무가 열두 시진이라 아예 열두 시진치 밥을 싸놓고 들어오는 놈들이었다. 주먹밥 여섯 개의 비밀이었다.

         

       청이 그리 말하며 몸을 일으킬 때였다.

       원망을 줄기줄기 쏟아내던 모용주희가 갑자기 무릎으로 기어 청의 다리를 껴안으며 엉겨 붙었다.

         

       “헛, 가지마! 아니에요, 버리지 마세요, 미안, 죄송합니다. 나 진심이 아니라, 구하러 와 줘서 감사합니다. 나 버리지 말고, 버리면 안 돼. 나도 데려가 줘요.”

         

       “소저를 버리려는 게 아니에요, 저 썩을, 개, 아니. 더러운, 음. 추잡한 자식에게.”

         

       “아니야! 나 안 추잡해요! 나 정말 꾹 참고 버텼어요! 그런 추잡한 짓은 하나도 안 했어! 그러니까 버리지 말고, 나 버리면-”

         

       “끄윽, 뭐야! 이거 뭐야! 안 풀어! 뭐냐! 씨발! 무슨 짓이야!”

         

       “꺄아아악!”

         

       그때 마침 간수가 깨어나며 소리를 치니, 모용주희가 자지러지는 비명과 함께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돼지년! 오냐! 오늘 한번 죽어 봐라!”

         

       “안돼! 잘못, 잘못했어요, 제발, 악, 아악! 억, 허억, 아악!”

         

       모용주희가 물 밖으로 나온 생선처럼 파닥거렸다. 눈깔이 뒤집히고 침과 콧물을 줄줄 흘리니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아, 저거 고독을 먼저 빼뒀어야 하는데.

         

       청이 다급히 몸을 날려 간수를 덮쳤다.

       한 손으로는 목을 틀어쥐어 바닥에 밀어붙이고, 반대편 손은 간수의 윗배의 피부를 뚫고 쏙 파고들었다.

       목이 막힌 간수가 뻐끔거리며 꿈틀거려도 그뿐, 여항적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청이 창자를 더듬어 손가락 끝의 감각에 집중했다.

       뜨거운 피가 손가락 마디마디를 휘감고 손등을 간지럽히는데 놈의 심장소리가 피부를 타고 두근, 두근, 두근.

       순간 전신으로 소름이 타오르며 전기가 튀는 것만 같은, 아니, 집중, 집중…….

         

       마침내 청의 손이 조심스레 빠져나왔다.

       손에 들린 고독, 검은 줄이 두 개인 이선혈고를 확인한 청이 바닥에 휙 내팽개친 후 발로 콱 밟았다.

         

       “하으, 하, 후우, 헉, 허억…….”

         

       뇌옥 안쪽에서 모용주희가 숨을 몰아쉬는 소리. 청이 아직도 꿈틀거리는 간수의 목덜미를 더 짓눌러 기절시키고는 다시 뇌옥에 모용주희에게 다가갔다.

         

       “잘못, 잘못했어요……”

         

       “모용 소저. 이제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음. 얘가 상태가 진짜진짜 안 좋은데.

       청이 머리 처박고 양손을 싹싹 비벼대며 그저 잘못했다는 말만 되뇌이는 그 뒤통수를 난감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고통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예전에 지존 호소인 그 새끼한테 처맞고 나선 청도 완전히 맛이 가 버렸으니까.

       하지만 청은 이제 딱히 그때를 생각해도 새삼 짜증이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청은 그 이유를 안다.

         

       “모용 소저. 이리 좀 와 볼래요?”

         

       “잘못했어요, 제발, 아픈 건 그만.”

         

       “자자. 모용 소저도 재미있을 거니까.”

         

       청이 모용주희를 안아 들고 뇌옥 밖으로 향했다. 뇌옥 문을 넘는 순간 모용주희가 안된다면서 새된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치고 난장을 부렸다.

       조금 곤혹스럽기는 했지만, 청이 가만히 서서 품으로 꽈악 안아주니 이내 조금 정신이 드는 모양이었다.

         

       “나, 나가도 괜찮을까요? 가축은 나가면 안 돼요. 저는, 저, 저는.”

         

       “모용 소저. 저 서문청이에요.”

         

       “하지만, 아픈 건 싫어. 나는.”

         

       “괜찮아요. 자아. 저기 저 새끼 보이죠? 이제 모용 소저를 더 아프게 하지 못해요. 그리고, 그러면 이제 모용 소저가 복수를 할 차례죠?”

         

       “복수.”

         

       모용주희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덕분에 초점은 아주 선명하게 돌아왔다.

         

       “저 개같은 새끼! 씨발 새끼가!”

         

       모용주희가 청을 밀어내곤 득달같이 몸을 날려 간수의 목을 졸랐다.

       청이 깜짝 놀라서 모용주희를 말렸다.

         

       “모용 소저? 그러면 안 돼요.”

         

       “왜! 내가 이 새끼 때문에! 놔! 죽여버릴 거야!”

         

       청이 모용주희의 양 손목을 잡고 좌우로 벌렸다. 나름 힘을 주어 버티려고 하지만, 청의 비하면 어린아이도 못 되는 힘이라서 버틸 수가 있나.

         

       “왜! 이 새끼 죽여야. 용서 같은 소리를 할 거면 꺼지라고 해! 나는-”

         

       “모용 소저. 목을 졸라서 죽이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안 그래도 고독 빼다가 독이 새서 오래 못 사는 놈인데, 최대한 괴롭혀야죠.”

         

       “어?”

         

       “자자. 일단 깨울까요? 제가 하는 거 잘 보세요.”

         

       청이 간수를 뒤집어 손을 묶은 옷자락을 풀어주고는, 이내 양어깨를 단단히 붙들어-

       우득.

       크지 않은 소리이나, 사람의 어깨가 종이 구겨지듯이 팍 쪼그라드는 광경을 배경으로 하면 참으로 천둥같이 크게 들렸다.

         

       “끄아악!”

         

       격통에 정신이 번쩍 든 간수가 재차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어깨가 박살이 나서 축 늘어진 주제에 나름 힘을 주어 움찔거리는 모양이 참으로 용을 쓴다 싶기도 하고.

       그에 청이 재주도 좋게 휙휙 옷자락을 감아 재갈을 물렸다.

         

       “저는 비명 소리 듣는 걸 좋아하는데, 너무 시끄러우니까 일단 막을게요. 음. 모용 소저. 일단 손톱부터 뽑아 볼래요? 아래에 가시부터 박고 뽑는 게 정석이긴 한데. 뭐 즐길 거리는 한참이나 있으니까.”

         

       “어? 나는.”

         

       “자자. 빼지 마시고.”

         

       청이 모용주희의 뒤로 돌아 끌어안고는 손을 꼭 쥐어 친절한 설명으로 요령을 직접 체험하게 해 주었다.

         

       “여기를 이렇게 잡고, 위로, 자, 힘 주고. 이쪽으로 힘줘서 천천히. 각도가, 조금 더. 자. 들리는 거 보이죠?. 짠. 깔끔하게.”

         

       그에 간수의 몸이 크게 튀었다.

       제 손으로 닿는 끔찍한 감촉에 몸을 움츠렸던 모용주희가, 고통에 바르작거리는 간수의 꼴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자. 별거 아니죠? 애초에 저런 놈이야. 고독을 조금 다룰 줄 아는 놈이지, 고독을 빼고 나면 그냥 벌레 그 자체잖아요.”

         

       “응…….”

         

       “이런 걸 무서워할 필요가 있을까요?”

         

       모용주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천천히 즐겨 봐요. 손끝 발끝 신체 말단부터 차근차근 부수면 되는데. 여기 손톱 빠진 자리를 이렇게 자, 손가락. 꾸욱. 꾸우욱. 저거 꿈틀거리는 거 보여요?”

         

       사실, 청은 조금 신이 났다.

       본래 인간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공유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욕구가 있는 것이다.

         

       “좀 시끄러워서 그렇지, 나는 재갈을 푸는 쪽을 추천해요. 비명도 듣고, 하다 보면 살려달라고 아주 별의별 소리를 다 해. 어때요, 한 번 재갈 풀고 해볼래요?”

         

       중원식으로는 마귀 그 자체, 서양식 표현으로는 악마 그 자체의 속삭임이었다.

         

       그에 모용주희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청은 이제 고독의 준준 전문가쯤 된다.

       이선혈고대 선임대원이 준전문가 정도의 지식을 전수했다.

       필사적인(사실 실제로 목숨이 걸린) 강의이기는 했지만, 원체 두서가 없어 청의 이해도는 준준 전문가쯤에 이르렀다.

         

       사실, 청은 제대로 듣고 기억하려고 하면 잘 기억할 수 있다.

       청의 능력치 중 오성 역시 인간을 훌쩍 뛰어넘은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뇌의 기능이 으레 그렇듯이, 아주 사양이 좋더라도 쓰는 사람이 대충이라서 애초에 주의 깊게 듣고 입력하는 일이 드문 것이다.

       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최신식 사양으로 큰돈 들여 맞춰놓고는 지뢰 찾기나 하는 꼴이었다.

         

       어쨌거나 청이 모처럼 감명 깊게 들었던 고독의 생태학에 따르면, 아주 귀찮기 짝이 없는 생물이다.

         

       고독은 기본적으로는 살상력이 없다.

       왜냐하면 기생충이란,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면 숙주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고독은 위협을 받으면 독액을 쏟아낼 뿐이었다.

       종에 따라 고통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람이 정신을 놓고 땅바닥을 뒹굴도록 하는, 아주 치명적인 수준의 통증을 불러일으킨다.

         

       고독의 살상력은 독이 아니라 독정이라고 하는 특수한 기관에서 나온다.

       고독이 죽기 직전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 맹독으로, 혹은 죽고 나서 고독의 시체에서 새어 나오는 맹독이다.

         

       간수의 표현으로는, 여기까지는 평범한 독물의 생태와 같다고 했다. 동물의 몸속에 살 뿐이지, 독물의 기본적인 성질이라고.

         

       고독의 특이한 점은 바로 서열과 동조에 있었다.

       고독은 독정의 독성에 따라 서열을 갖추는 독특한 생물이며, 상위 고독을 자극하면 일정 범위 내의 하위 고독들에게 전부 그 자극을 전달하는 것이다.

         

       즉, 간수들이 고독으로 고통을 주는 방식이란, 제 속에 있는 고독을 내공으로 살살 건드려서 위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독술사들은 채식을 한다.

       그것도 자극이 되는 향신료 계열은 먹지 않으니, 애초에 고독이 독액을 만들어내는 음식을 일절 섭취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이 년 정도 고독을 기르면서 채식하다 보면, 신체의 독성도 다 빠져 고독이 독액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고 나면 뿜을 독액이 없는 것이다.

       사방으로 자극을 전달만 할 뿐.

         

       이선혈고대가 고독을 다루는 원리였다.

       

       

       청이 생각하기에, 고작 그딴 걸로 평생 채식에 향신료까지 못 처먹으면 그냥 죽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

       힘에는 대가가 따른다지만, 좀 너무 심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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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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