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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6

     

    파티와 합류해서 잠시 캠핑하고 있으니 결계석의 효과가 끝났다.

     

    “우왓, 파우스트군이 사라졌소! 용사님도! 황녀님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게요! 그리고 왜 소녀는 푹신한 이불에 감싸여 있는 것이오이까?!”

     

    시간이 다시 흐르자마자 앰브로시아가 이리저리 뿅뿅 튀어 올랐다. 이불은 내가 재밌을 것 같아서 장난으로 덮어놨다. 아니나다를까 만족스러운 반응이 나왔다.

     

    “롤빵이 되어버리오오.”

     

    이불을 혼자 풀지 못하고 바닥에 데구르르 구르는 앰브로시아의 얇은 다리를 잡아 들어 올리며, 우리는 상황을 공유했다.

     

    모은 결계석은 셋, 남은 건 하나. 적에게 상황이 전해지기도 얼마 시간이 안 남았으니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마지막 남은 어둠의 결계석은 마왕성 서쪽에 위치했다. 동쪽의 인간계에서 온 마도사 부대도 그 위치까지는 도달하지 못했기에 직접 움직여야 했다.

     

    하루 더 이동한 끝에 암흑용군단의 서식지에서 결계석을 찾아 훔칠 수 있었고, 얼마 후 우리는 드디어 마왕성 왕궁 앞에 섰다.

     

    “생각보다 상당하구나. 저급한 놈들 주제에 이만큼이나 왕실을 크게 지어놓다니.”

     

    재밌게도 마족과 인족 양측의 고위직은 서로를 하등하다고 비하한다. 통하는 게 있나 보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쪽이 부지 자체는 제국 황실보다 조금 더 큰 느낌이었다. 안에는 공터가 많긴 했다.

     

    횃불 하나 없어도 부지는 환했다. 강렬한 달빛이 대낮처럼 사방을 밝히고 있었다.

     

    “잠입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구려. 마계에 온 후로 달이 더 커 보이는데, 착각이오이까?”

     

    “착각은 아닙니다. 실제로 마계의 달은 조금 성질이 다릅니다. 몇 년에 한 번 마기를 강하게 뿜어 마물을 진화시킨다고도 하는군요.”

     

    내 대답에 앰브로시아가 몸서리를 쳤다.

     

    “그때는 달에 마기가 차서 파란색으로 보인다고도 합니다.”

     

    “같은 대륙 위라고는 믿기지 않는구먼.”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다. 황실 부지가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황실과 다르게 이곳은 결계가 침입자를 가로막는다.

     

    “시작합시다.”

     

    우리는 네 개의 결계석을 조심히 한데 모았다.

     

    ―파즈즈!

    스파크가 일더니 우리 앞의 결계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렸다. 신속하게 진입하는 용사 파티.

     

    순찰하는 마족병을 이리저리 피해 흑요석으로 지어진 건물 사이를 지나간다.

     

    “잠깐, 양쪽에서 오는데.”

     

    골목에서 위기가 발생했다. 쓰레기더미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는데 양쪽 길목 모두에서 순찰병이 진입해오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나는 아이템박스에서 골판지 박스를 꺼내 파티원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마지막 하나는 아셀라와 함께 머리에 뒤집어썼다.

     

    “제정신이야? 겨우 이걸로 몸이 숨겨지겠어?”

     

    툴툴대는 아셀라의 머리를 눌러 쪼그려 앉도록 했다. 쓰레기 더미에 나타난 수상한 골판지 박스가 다섯 개.

     

    틈새로 내다보니 순찰병이 별다른 의심 없이 우리 앞을 지나쳐간다.

     

    “이걸 못 알아본다고?”

     

    “유구한 전통의 은신 장비입니다.”

     

    멍하니 입을 벌리는 아셀라 앞에 손가락을 튕겨 정신을 차리게 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본성의 뒤쪽에 도달한다. 여기는 성벽이 둘러져 있었다. 타냐가 갈고리를 걸어 밧줄을 타고 먼저 올라가서 다른 파티원들을 도와줬다.

     

    “적습이다!”

    “경보를 울려!”

     

    그런데 앰브로시아를 끌어 올려주던 때, 하필 아래에서 순찰병이 둘 지나가다가 우리를 발견했다.

    그들이 아티팩트로 무전을 취해 지원을 요청하려는 순간.

     

    ―파팟!

     

    그들이 입을 열 틈도 주지 않고 어느새 리셰가 한 명의 뒤를 기습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였다.

     

    “읍…!”

     

    다른 하나가 즉시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목에 뭐가 걸린 듯 컥컥댄다.

     

    옆을 돌아보니 마법을 즉시시전한 아셀라가 당당하게 서 있다. 금언의 마법을 썼다.

    그 틈을 타 리셰가 마저 남은 순찰병도 처리했다. 그들의 뿔이 툭,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든든하네.

     

    “큰일 날 뻔했소이다.”

     

    “처리는 제가 맡죠.”

     

    투명화 포션으로 마족의 시체를 숨긴 후 길을 안내한다.

     

    “이쪽입니다.”

     

    여기부터는 내 전문이다. 능숙하게 기억을 따라 루트를 찾는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준비된 하수인을 하나하나 쓰러트리며 마왕이 기다리는 최상층까지 올라가야 합니다만.”

     

    덜컹, 내가 쓰레기 처리용 통로를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 좌측의 외벽을 허물었다.

     

    “이 외벽은 이중구조입니다. 최상층까지 연결되어있죠. 들키지 않고 단숨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암벽 오르기인가, 쉽지는 않겠구려.”

     

    “틈새가 좁아. 등을 붙이고 기어가듯 올라가면 돼. 애벌레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지?”

     

    발렌이 몸소 시범을 보였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아셀라가 마음에 안 든다는 눈치를 보였지만 금방 체념하고 라이트 마법으로 어두운 내부를 밝혔다.

     

     

    탁, 탁. 틈새에서 벽돌을 잡아 조금씩 위로 전진한다.

     

    빠직!

    도중에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셀라가 잡은 벽돌이 낡아서 깨진 것이었다.

     

    나는 균형을 잃은 아셀라가 떨어질 뻔한 것을 곧장 잡아주었다.

     

    “이것도 벌 받을 행동이었습니까?”

     

    “언제까지 그러려고. 올라가기나 해.”

     

    아셀라는 농담을 나눌 기색은 아닌 모양이었다. 조금은 긴장한 태도였다.

     

    마지막 싸움이 코앞이니 그럴 만도 했다.

     

     

    흐르는 침묵 속.

    벽돌을 타고 오르는 소리만이 묵묵히 이어지기를 세 시간.

     

    마침내 널찍한 벽 앞에 도달해서 내가 말했다.

     

    “여기입니다. 이 벽을 부수고 나가면 마왕의 알현실입니다. 전원 체력이 많이 소모되었을 테니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시죠.”

     

    내가 파티원들에게 활력 포션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틈새를 돌아다니며 장기간의 등반 때문에 상처가 난 손과 다리도 치료했다.

     

    아셀라의 손은 특히 꼼꼼히 보았다. 마법 예장의 장갑이 찢어져 틈새로 살짝 피가 흐르는 게 보였다.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감아줬다.

     

    “구식 치료법이네.”

     

    “하지만 효과적이죠.”

     

    내 대답에 아셀라가 피식 웃었다.

     

    “긴장되십니까.”

     

    “리치가 그러더라고. 마왕은 자기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한 마법사라고. 적어도 8위계를 구사할 수 있단 소리겠지. 공격마법일 테고.”

     

    “공략법은 말씀드렸던 대로입니다만.”

     

    “이겨야지. 뭐가 됐든.”

     

    먹먹한 어둠 속에서도 아셀라의 눈동자는 확실하게 보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파티원들을 돌아보았다.

     

    “안의 구조는 이야기했던 대로입니다. 마왕의 알현실은 공방도 겸하고 있기에 그는 부관을 들이지 않습니다. 기습하면 숫자로는 유리하게 싸울 수 있지요. 기회를 살려야 합니다.”

     

    “음, 숙지하겠소.”

     

    “준비하시죠.”

     

    전원이 자세를 잡았다. 발을 뒤쪽 벽에 도움닫기하고 튀어나갈 준비를 마쳤다. 타냐가 가운데에서 검을 벽에 댄다.

     

    리셰의 신호. 셋, 둘, 하나.

     

    ―콰아앙!!

     

    타냐의 오러와 함께 벽면이 터져나간다. 동시에 우리 여섯 명이 일제히 안으로 뛰어들었다.

     

    알현실은 마왕성의 최상층. 천장이 없었다. 훤히 뚫린 하늘에서 마계에서만 볼 수 있는 조금은 불길한 커다란 달이 환하게 안을 비추었다.

     

    내부는 원형. 그리 넓지는 않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완연한 방 구조가 아니다. 외곽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지하로 떨어지는 낭떠러지다. 본래 이 알현실은 중앙의 엘리베이터로 올라오게 되어있다.

     

    벽에서 바닥까지는 거리가 조금 있다. 뛰쳐나간 우리의 발밑을 새카만 낭떠러지가 마중 나왔다. 미리 지형을 설명했음에도 겁을 먹었는지 앰브로시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리고 방의 한쪽 끝.

     

    정확히는 우리가 진입하는 각도, 낭떠러지가 시작하는 외곽 지점.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옥좌가 우리에게 등을 돌린 채로 높이 솟아있다.

     

    ‘정확해.’

     

    여기서는 진입과 동시에 마왕의 등을 칠 수 있다. 처음부터 계산한 각도였다.

     

    “흡.”

     

    타냐가 오러를 폭발시켰다. 공중에 뜬 우리의 발밑에서 그녀의 바람이 거칠게 분출하고 반발력으로 더욱 속도가 난다.

     

    “하앗!”

     

    성검에서 빛을 뿜으며 검기를 제련해내는 리셰. 그녀의 궤적이 정확하게 옥좌의 중앙을 노리고 순식간에 그어졌다.

     

    ―사악, 쿠웅!

     

    두말할 것도 없이 깔끔한 일격이었다. 옥좌가 반으로 갈라지며 지면으로 떨어졌다.

     

    “마왕은?!”

     

    상태창에 변화는 없다. 승리는 아직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리셰의 검이 가른 것은 의자뿐.

    이미 주인은 없었다.

     

    “어이, 저기.”

     

    발렌이 적대감과 함께 이빨을 드러내며 활시위를 당겼다. 알현실의 중앙 쪽이었다.

     

    마찬가지로 전투태세에 들어가는 파티원들.

     

    “…방금까지 저기에 없었지?”

     

    “옥좌에 앉아있었습니다.”

     

    다른 마족에 비해 두 배는 큰 키. 떡 벌어진 어깨가 위압적이다. 붉은 피부와 이마에서 돋은 세련된 뿔이 그가 여지없는 마족임을 알려준다.

     

    그런 흉악한 몸에 두른 정갈한 슈트. 체크무늬다. 넥타이는 하지 않고 단추를 몇 개 풀었다.

     

    마왕.

     

    마계의 정점에 오른 자는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며 암살을 시도한 우리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듯 돌아볼 생각도 않은 채, 손에 든 책을 읽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커다란 덩치 때문에 소인족의 것처럼 보이는 깨알같은 글자를 꼼꼼히 읽어나간다.

     

    “하.”

     

    그를 향해 무작정 지팡이를 들이밀고 마법진을 구축하는 아셀라. 그런 그녀를 향해 마왕이 점잖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기다리게나. 지금 흥미로운 부분이거든.”

     

    ―콰콰쾅!!

     

    아셀라가 기다리지 않고 얼음창을 난사했다. 마왕이 서 있던 자리에 강철도 뚫을 위력의 5위계 공격마법이 작렬했다.

     

    “성질이 급하군.”

     

    마왕의 목소리가 다른 방향에서 들린다. 좌측이었다.

     

    어느새 그는 자리를 옮겨 층계참에 걸터앉아 있었다.

    여전히 시선은 책에서 떼지 않은 채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군요.”

     

    “꼭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 같군.”

     

    파티원들이 긴장하며 전투태세를 단단히 굳혔다. 방금 마왕이 보인 움직임은 명백하게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탁, 마침내 읽던 책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난 마왕이 정장을 단정하게 고쳐 입으며 고개를 높게 들었다.

     

    그 시선은 하늘 높이 뜬 커다란 달을 향했다.

     

    “지식의 탐구는 즐거운 일이야. 평생에 걸쳐 모든 지력을 바친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경지가 있지.”

     

    여전히 우리를 무시하고 마치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있는 듯한 마왕.

     

    “그대들은 하늘을 몇 번이나 올려다 보았는가. 필멸자는 지상의 하루를 견뎌내기도 바쁠 따름이지. 대륙을 지배한들 하늘에는 닿을 수 없고, 영계와 신계는 출입조차 할 수 없다.”

     

    그가 마침내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런 그대들의 존재에 의미가 있는가?”

     

    마왕의 말을 들은 아셀라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갔다.

    당장에라도 싸움을 붙고 싶어서 안달이 난 기색이다.

     

    마왕이 우리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천리안의 관측보다 3년 빨리 도착했군. 용사 외에는 모두 다른 인물이라.”

     

    “재미있구나.”

     

    또각, 아셀라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시간 계열의 현자였을 줄이야. 거기에 즉시시전.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겠어.”

     

    아셀라의 황금의 마나가 입방체를 그려간다.

     

    “과연, 그리 된 것이었나.”

     

    눈 깜빡할 사이 마왕이 아셀라의 옆에 붙어 있었다. 그가 흥미로워하며 그녀의 마법진을 살폈다.

     

    그리고는 그 역시 즐거워하며 웃었다.

     

    “그대도 미래를 관측했는가.”

     

    ―콰앙!!

     

    리셰의 성검이 작렬하며 마지막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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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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