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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6

       “79점!”

         

       극장을 나오면서 엘라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원더랜드에서 우리가 본 공연 중에서 제일 높은 점수였다.

         

       “티케터의 추천 알고리즘이 쓸모가 있군요.”

       “그러게. 연속으로 70점대가 나오고.”

         

       주변에서 키클링들이 낄낄대며 허공을 날아다녔다. 놈들도 재밌는 공연을 볼수록 더 많이 웃는 것 같았다.

         

       “저희 벌써 4개나 봤군요! 슬슬 매의 둥지로 돌아갈까요? 저녁도 먹어야죠.”

         

       내 제안에 엘라는 고개를 저었다.

         

       “난 괜찮은데? 배도 별로 고프지 않고.”

         

       눈을 반짝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밤이라도 새울 기세였다. 체력이 완전히 바닥날 때까지 달리는 그녀의 성격을 아는 나로서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엘피 양은 피곤하지 않나요? 내일 합주도 있잖아요.”

       “걱정하지 마. 그거에 쓸 체력은 남겨뒀으니까. 뭐야, 우리 내일이면 헤어지는데 아저씨는 별로 안 아쉬운가 봐?”

         

       그녀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삐죽였다.

         

       “그럴리가요. 그냥 엘피 양이 무리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오, 나 걱정해주는 거야?”

         

       엘라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찰싹 달라붙더니 팔짱을 껴왔다.

         

       사법 극장 지하에서 올라온 뒤로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나에게 살갑게 굴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 마치 오즈가 아니라 원더스타인을 대하는 것 같았다.

         

       혹시 내 정체를 눈치챈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 걱정은 금방 머릿속에서 털어버렸다. 만약 그랬다면 가면극 퀘스트의 실패 알람이 떴을 것이다.

         

       “근처 카페에 좀 앉았다가 가자. 그리고 딱 하나만 더 보고 돌아가는 거야. 어때?”

         

       나는 못 말리겠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객님 뜻대로 하시죠.”

       “좋아. 그럼 카페까지 업어줘!”

         

       나를 향해 팔을 벌리는 그녀를 보고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소리쳤다.

         

       “체력 넘친다면서요!”

       “내가 무리하는 게 걱정된다며?”

         

       뻔뻔한 얼굴로 맞받아치는 그녀를 보며 나는 고개를 한 번 내젓고는 무릎을 꿇었다.

         

       “어쩔 수 없군요. 업히세요.”

       “헤헤, 여기 와서 내 발로 걸은 것보다 아저씨 타고 이동한 게 더 많은 거 같네.”

       “이러다 페르소나가 변형되어서 어깨에 안장이 생길지도 모르겠군요.”

         

       그녀는 카페까지 가는 길에도 계속해서 나에게 질문을 걸어왔다.

       주로 이곳 생활에 대한 것이었다.

         

       평소에 뭘 하고 지냈는지, 루미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다른 손님들은 어땠는지.

       나는 게임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서브 퀘스트들의 우스꽝스러운 사연을 적당히 각색해서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푸핫, 정말 그런 일도 있었어? 재밌겠는데, 여기서 지내는 것도.”

       “온다 해도 수십 년 뒤잖아요?”

         

       내 말에 엘라는 자조적인 웃음을 띠며 중얼거렸다.

         

       “수십 년까지 안 걸릴 것 같은데…….”

       “네?”

       “아냐, 아무것도……. 그것보다 음……아저씨는 이승에 있을 때, 어떤 공연을 했어?”

       “저요? 그냥 광대였어요. 별로 유명하지는 않았죠.”

       “예명은?”

         

       나는 토치 댄서의 이름을 말하려다가 말았다. 어설프게 단서를 주는 것보다 처음 계획대로 가는 게 나을 거 같았다.

         

       “까먹었습니다.”

       “어디서 살았는데?”

       “까먹었어요.”

       “가족들은? 이름 하나도 몰라?”

       “네. 다 까먹었어요.”

         

       그러나 이론상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기억 소실 변명은 말하면 할수록 대충 둘러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녀도 내가 거짓말한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조금 토라진 목소리로 답했다.

         

       “말하기 싫다면 됐어.”

         

       카페에 도착한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늦은 저녁 시간인데도 손님들은 많았다. 대부분이 요정이었고, 이곳 주민들도 몇 명 있었다. 우리는 창가에 빈자리를 발견하고는 그곳에 앉았다.

         

       “아저씨, 저것 좀 봐.”

         

       엘라가 웃음을 흘리며 창밖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커다란 광고판이 걸려 있었다. 그것을 본 나는 엘라를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 그 극장은 크리스티앙의 <멀어버린>이 상연 중이었다.

         

       “우리 좀 있다 저거나 볼까? 이곳에서의 마지막 공연으로 딱 적합하지 않아? 어때?”

       “그렇게 하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했던 음료와 과일, 과자 등이 나왔다.

       그녀는 배가 고프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음식이 차려지자마자 순식간에 반 이상을 해치웠다.

         

       “맛있네. 여기 음식도 입에 잘 맞는 거 같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았다.

         

       막상 배가 차니 잠이 오는 것일까?

       내가 막 그 말을 입 밖에 내려는 순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 있잖아. 이대로 우리 같이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나는 입을 딱 다물었다. 그녀는 삐딱한 자세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 눈빛은 절대 농담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승에 살겠다고요?”

         

       그녀는 뒤통수를 손으로 받친 채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냥 여기 있어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아저씨하고 나하고 루미 언니까지. 이렇게 셋이서. 같이 공연도 하고, 같이 놀러도 다니고, 같이 일도 하고. 아까 사법 극장을 나오면서 봤는데 경매로 나온 중층 매물 중에 괜찮은 곳이 많더라고. 셋이서 힘을 합치면 월세를 낼만 할 것도 같던데.”

       “……엘피 양은 산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럼 죽을까?”

         

       장난스럽게 되묻는 그녀였지만, 그 눈빛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며 되물었다.

       

       “서커스 그랑프리는 어쩌고요?”

       “아, 맞다. 그게 있었지. 그럼 2년 뒤에 죽을까?”

       “엘피 양!”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원더스타인의 가면을 쓰고 있을 때는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이렇게 흥분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나는 분노와 걱정에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킨 채 소리쳤다.

         

       “갑자기 왜 그러시는 겁니까? 키르쿠스의 진실을 알아서 부담스러운 건가요?”

       “그건 아니고…….”

         

       그녀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사실……듀엣 가요제에서……아저씨가 본 게 맞아. 나 마지막에 눈물이 글썽했어.”

         

       그때? 역시 그랬던 건가.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나.

         

       그녀는 한숨을 내쉬듯 말을 토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데, 어쩌면 그 사람은 악마일지도 몰라.”

         

       나는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그녀가 누구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를 내가 아니었다.

         

       “<멀어버린>의 내용처럼 말이죠?”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지만 다른 점이 더 많아. <멀어버린>의 눈먼 여인은 악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좋아했잖아. 후반에 눈을 뜨고도 여전히 악마를 사랑하고. 하지만 나는 자신이 없어. <멀어버린>의 악마는 겉보기와 달리 좋은 사람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겉보기와 달리 악마일 수도 있거든.”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가 테이블을 바라봤다.

         

       “이제 1주, 아니, 2주 정도 남았으려나. 그때쯤이면 확실히 밝혀질 거야.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했는지. 나는 두려워. 그걸 확인하는 게. 그리고 그 이상으로 두려워.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것이.”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내 눈치를 보더니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있지. 나는 고아야. 사부님이 다 죽어가는 엄마의 배에서 나를 꺼냈대. 사부님이 그랬어. 엄마는 곡예사였고, 엄마가 죽기 직전에 말하길 아빠는……광대였다나? 둘 다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 같대.”

         

       그녀는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슬쩍 바라봤다.

         

       “죽으면 가족들이 저승사자로 마중을 나온다고 들었어. 그래서 여기 왔을 때 기대했는데, 다 거짓말이었던 거 같네.”

         

       그녀가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꺼내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그녀의 기분을 달래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득했다.

         

       “엘피 양은 살아있잖아요. 그래서 가족들도 혼의 울림을 느끼지 못했겠죠. 그리고 인스피라가 없는 곡예사가 이곳에 도달할 확률은 30% 이하입니다. 아예 여기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런가?”

         

       그녀의 목소리에서 울적함이 좀 가신 듯하자 나는 억지로 쾌활한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언젠가 올 저승입니다. 열심히 살고 와도 늦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아저씨가 나 기억 못 할 수도 있잖아.”

         

       그녀의 감정 실린 말에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뭘 해줬다고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거지?

       의구심이 불쑥 치솟았지만, 나는 반박하는 대신 그녀를 설득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제 이름은 잊어도 엘피 양의 이름은 절대 잊어먹지 않을 겁니다! 30년, 40년이 지난다고 해도 말이죠! 그러니 늙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내 진심이 통한 것일까.

       그녀는 눈물을 한 차례 훔치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약속!”

         

       나는 그녀와 손가락을 걸고 맹세를 했다.

         

       잠시 후, 우리는 광고판에 나온 <멀어버린>을 관람하러 갔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배우들의 열연을 감상했다.

         

       우리가 본 것은 모든 곡예를 활용하는 원본에 가까운 버전이었다. 몇 군데 각색된 부분도 있긴 했다. 그것은 주로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구간에서 나타났다.

         

       그것은 엘라가 말했던 ‘원더랜드 공연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다. 이곳의 연기자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갈구했다. 그 덕에 무대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떨어트려 가면서까지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

         

       객석에 앉은 우리는 관객으로서 역할을 다했다. 환호할 때는 환호했고, 야유할 때는 야유했다.

       극의 중반부에 들어가자 우리가 불렀던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마을’이 나왔다.

         

       마귀 역을 맡은 배우는 내가 놓쳤던 마무리 대사를 멋지게 해냈다.

         

       나는 옆자리를 슬쩍 돌아봤다. 그녀도 아마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녀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졸고 있었다.

         

       이만큼 일찍 잠든 적이 없었는데.

       아마 오늘 오전에 키르쿠스를 직접 마주했던 피로가 상당했던 것 같았다. 나는 막 중간에 그녀를 안고 극장을 나왔다.

         

       그녀가 눈을 뜬 것은 매의 둥지 입구에 도착했을 때였다. 빠른 이동 중에 나타나는 중력감이 그녀를 깨운 듯했다.

         

       “끄응! ……뭐야? 왜 숙소지?”

       “엘피 양이 자고 있길래 그냥 안고 나왔죠.”

       “아, 깨웠어야지.”

         

       그녀는 가볍게 투덜거렸지만, 다행히 다시 돌아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연습은 이미 끝난 듯 대기실의 불은 꺼져 있었다.

       하지만 극장 안에서는 악기 연주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지는 못했지만, 누구인지는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낮은 베이스의 울림이었다.

         

       무대 위에는 뿔이 달린 새하얀 가면을 쓴 여인이 서 있었다. 언제나 저녁 시간대를 연출하는 카드순의 하늘 때문인지 그녀의 연주는 분명 활기찬 곡조인데도 어딘가 서글퍼 보였다.

         

       그녀가 쓰고 있는 가면 때문인지도 몰랐다.

       뿔까지 달린 것이 흡사 악마를 형상화한 것 같았지만, 어딘가 우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선물한 할로윈 가면이었으니까.

       우는 여자(La Llorona).

         

       레이나의 연주는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조잡했다. 그녀답지 않은 솜씨였다. 중간중간 현을 뜯다가 놓쳐버리거나 음을 끊어먹는 등의 실수가 잦았다.

         

       나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 처연해 보였기에 감히 중간에 끼어들 수 없었다.

       연주가 끝나고 난 뒤 엘라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괜찮아?”

         

       레이나는 그제야 우리가 들어온 것을 알아차렸는지 흠칫 놀라며 악기에서 손을 뗐다.

         

       “그냥 바람 쐬러.”

       “이 야밤에 악기까지 들고?”

       “어차피 이곳은 바람이 위로 불어. 침실까지 소리가 닿지는 않을 거야.”

       “난 비난할 의미로 말한 거 아냐. 가면은 또 왜 쓰고 있어?”

       “가면?”

         

       레이나는 가면에 손을 올렸다. 그녀는 새하얗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더듬었다.

         

       “이걸 벗어 봤자 어차피 그 안에는…….”

         

       그녀는 거기서 말을 멈추고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냐. 아무것도……. 잠시 걸을 테니까 따라오지 마.”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무대에서 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려다가 말았다.

         

       원더스타인의 모습이었다면, 아니, 상태창의 부가 기능이라도 사용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가 나간 문을 바라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마야 일러스트의 옷 색깔을 이모티콘에 맞게 바꿨습니다. 별생각 없이 표지로 뒀는데, 어디선가 민주당원 마야 드립을 보고 아, 선거 시즌이구나 싶어서 표지에서 내렸습니다. 가스통의 경우처럼 전혀 의도치 않았던 곳에서 정치 드립이 나오기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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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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