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36

       

       

       

       

       

       236화. 자동화와 북부 ( 2 )

       

       

       

       

       

       덜컹… 덜컹…

       

       이스칼의 텅 빈 동공이 마차의 바깥 풍경을 향했다.

       

       “ㅡ…칼?”

       

       험한 산길을 달리고 있음에도 과연 공작 가문의 마차라는 것인지, 약간의 흔들림을 제외한다면 불편한 것이 없다. 엉덩이를 푹신하게 감싸주는 방석의 감촉은 또 어떠한가. 

       

       “어ㅡ…! 이스ㅡ!”

       

       마차 내부의 장식은 단출하였으나 위엄이 서려 있고, 마차를 모는 마부의 솜씨 또한 깔끔하기 그지없다.

       역시 길고 긴 공작 가문의 역사를 닮은 품위가 곳곳이 배어있는ㅡ

       

       “야아! 이스칼!”

       “…헛!”

       

       마차에 대한 감탄을 통해 현실 도피를 시도하던 이스칼의 의식이 돌아왔다.

       퍼뜩 정신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불퉁한 표정의 프리가 공녀가 보였다. 

       

       “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해? 내가 뭐라고 했는지 듣기는 했어?”

       “아, 어…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그… 좀 피곤했는지 좀 멍해서.”

       “뭐야. 졸려? 좀 잘래?”

       “아뇨! 아뇨, 이제는 괜찮습니다.”

       

       제 무릎을 탁탁 치며 권유하는 프리가에게서 애써 시선을 떼어낸다. 계속 보고 있자면 저도 모르게 프리가의 허벅지를 바라보게 될 것 같았다.

       

       마차의 밖은 봄과 겨울이 한데 섞인 오묘한 풍경이었다.

       

       차디찬 겨울바람이 뒤로 한 걸음, 포근한 봄 내음이 앞으로 한 걸음 걸어오며 뒤섞인.

       이 기묘한 풍경은 제법 북쪽으로 올라왔다는 신호였다.

       

       덜컹… 덜컹…

       

       “하아…”

       

       이스칼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크게 하지는 못했고, 조용히 코로 내쉰 것이다.

       

       프리가에게 휘말려 어어ㅡ 하다가 성도를 떠나온 것이 벌써 며칠째. 마차는 그 흔한 산적이나 강도를 만나는 일도 없이 순조롭게 몬테그로스로 향하고 있었다.

       

       프리가는 그것이 영 불만스러웠는지, 찌뿌드드한 몸을 쭈욱 켜며 투덜거렸다.

       

       “으그극ㅡ 여행길이 너무 조용한데. 옛날에 이렇게 대놓고 마차를 끌고 가면 하루에 한 번씩은 주제 모르는 강도 새끼들이 나타났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탄탈로스에 대한 소문이 워낙 퍼졌으니까요.”

       “그러게 말이다… 탄탈로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 에휴ㅡ”

       

       탄탈로스의 얘기가 나오자 프리가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이리 급하게 북부행을 결정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탄탈로스 때문이었다.

       

       프리가는 그녀의 아버지, 루샨 공작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도대체 탄탈로스의 문으로 관광 사업을 하겠다는 그 발상은 어디서 나온 미친 발상이란 말인가.

       

       ‘할 거라면 나한테 미리 편지라도 해줬어야지! 딸이 사도라는 걸 좀 써먹었어야지!’

       

       고향의 소식을, 그것도 이런 대형 사건을 타인의 입에서 듣게 되는 건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에 대해 사전에 들은 것이 하나도 없다면 더더욱.

       

       그래서 만신전에서 그녀에게 북부의 건에 대해 물어보기 전에 도망치듯 나온 것 아니겠나.

       뭐, 겸사겸사 이스칼이랑 둘이서 좀 놀기도 하고.

       

       힐끔.

       

       마차를 타고 오는 며칠 동안 프리가는 이스칼과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은근한 장난도 제법 많이 쳤다.

       

       나름대로 진전은 있었는지, 창밖을 바라보는 이스칼의 귀 끝이 약간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마 그녀가 무릎베개를 해준다고 한 게 이유일 것이다. 

       

       티 안 나게 본다고 하는 것 같은데, 은근하게 허벅지를 흘기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주 흡족하다.

       

       ‘킥… 셀리나 그 도둑고양이 같은 년은 지금 방방 날뛰고 있겠지?’

       

       그런 상상을 하며 프리가는 조소를 흘렸다.

       

       갑작스러운 출발이기는 했지만.

       

       만신전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여정이. 

       썩 괜찮을 것 같다는, 그런 예감이 들었다.

       

       

       

       *****

       

       

       

       다그닥… 다그닥…

       

       어둠 속에서 묵직한 말발굽 소리가 걸어왔다.

       

       한 손에는 기다란 창을 들었고, 커다랗고 늠름한 군마를 탄 모양새였는데 영락없는 기병의 모습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갑주가 밤하늘처럼 까맣기 그지없었다.

       들고 있는 긴 창과 군마도 어두운 밤의 그것이었다. 투구 안에서 불길한 안광이 도깨비불처럼 흔들린다.

       

       “…”

       

       말의 숨소리만이 작게 들려왔다. 밤을 두른 듯한 기병에게서는 숨소리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밤의 기병이 사방을 둘러봤다.

       

       기억나는 것은… 없다. 허나, 제 안에 뚜렷하게 각인된 사명과 이글거리는 복수심은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악마를 죽여라. 지옥으로 인도하라.

       

       “…”

       

       악마를 죽인다. 찢어 죽인다.

       찌르고 터뜨리고 밟고 꿰뚫어서 죽인다.

       

       악마를 죽여야 한다.

       

       밤의 기병은 자신이 오로지 그것을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 사실이 썩 기꺼웠다.

       

       세상을 좀 먹는 버러지들은 위대하신 분께서 하사한 이 창으로 모조리 꿰뚫어 죽여야 했다.

       

       냄새.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비루먹은 것들의 악취가 그를 인도한다.

       

       

       척.

       

       길고 뾰족한 창의 자루를 들어 어느 지점을 가리켰다. 까만 군마가 그 방향으로 고개를 틀더니, 한 차례 크게 울부짖었다.

       

       이히히힝ㅡ!

       

       마치 제 존재를 온 세상에 알리려는 듯, 군마의 울음이 사방으로 퍼졌고.

       

       화악!

       

       한 차례 크게 도약하며 군마와 기병은 그 이름처럼 밤의 장막을 둘렀다.

       

       어두운 밤, 흐릿한 달빛이 기병을 잠시 비추는 듯하더니 구름에 가렸고.

       

       기병의 첫 번째 사냥이 시작됐다.

       

       

       

       *****

       

       

       

       다시 찾아온 북부와의 재회는, 충격적이었다.

       

       “어…”

       “…음…”

       

       당장 이스칼의 입이 떡 벌어진 것은 물론이고, 몬테그로스에서 나고 자란 프리가마저 할 말을 잃었다.

       

       둘의 머릿속에 있는 북부의 색채는 투박하였으나 우직한 맛이 있는 그런 동네였다.

       

       성벽은 짙은 회색이었으나 수많은 상흔으로 하여금 지난한 세월을 품고 있었고, 도시와 닮아 투박하고 솔직한 사람들은 북부 특유의 향기를 물씬 머금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저거, 암석 거인…이죠?”

       “…”

       

       성벽을 통과하여 도시로 들어서면, 곧장 거대한 암석 거인이 방문객들을 반겨줬다.

       

       짙은 갈색의 돌도 이루어진 암석 거인은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박력을 보여줬는데, 도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입 안에 불길이 이글거렸다.

       

       “조각상… 인 것 같네요.”

       “……”

       

       그 위로 새겨진 커다란 글씨가 압권이다.

       

       《탄탈로스의 땅, 몬테그로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프리가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할 말은 많은데, 도대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말이 안 나오는 것이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자, 자! 싸다, 싸! 탄탈로스의 풍경화! 풍경화를 지금 사면 무려! 심판자 이시디움의 그림도 함께!”

       

       목청을 높여 호객하는 상인이 가득하고.

       

       “길 좀 묻겠네. 여기서 제일 가까운 숙소가 어디인가?”

       “어이쿠, 나으리! 마침 아주 딱 맞게 찾아주셨구만요! 저희 ‘알레한드로 여관’은 몬테그로스에서 제일 싼 가격으로 손님들을 모시고 있으며ㅡ”

       “야이 사기꾼아! 너네 숙소에서는 수프에 고깃건더기도 안 넣어주잖아!”

       “뭐! 이 상도덕 없는 놈이! 너희 숙소는 뭐가 그리 잘났어?!”

       

       손님을 모시려는 이들끼리 멱살을 잡고 바닥을 나뒹군다.

       

       화려하다. 요란하다. 화사하다.

       

       그 모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온 사방이 시끄러운 소음과 색채로 가득했다. 좋게 말하자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났고, 나쁘게 말하자면 번잡했다.

       

       “으…음. 벽화도 있네요?”

       “허…”

       

       중간중간 골목의 텅 빈 담벼락에는 커다란 벽화 따위가 그려져 있었는데, 용암으로 이루어진 거인이며 머리 세 개 달린 기묘한 형상의 것이 보였다.

       

       대로를 가득 채운 사람의 행렬.

       

       마차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굼벵이처럼 기어갔다. 그럴수록 이스칼의 마음은 초조하게 타들어 갔다. 

       

       마차를 탄 동행인의 심기가 점점 언짢아지는 것이 뚜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딱. 딱. 딱. 딱.

       

       프리가 주변의 공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착각마저 든다. 마차의 팔걸이를 두들기는 손가락에는 짜증이 가득하였고, 한껏 구겨진 눈썹은 마치 도화선처럼 보였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화산의 도화선.

       

       “자, 여러분! 이쪽! 이쪽입니다! 탄탈로스 순례를 신청하신 분들은 저한테로 와주세요!”

       

       우렁찬 외침과 함께 작은 깃발이 보였다. 분명 전에 봤을 때는 사냥꾼이었던 이가 깃발을 들고 관광 가이드를 자처하고 있는 모습.

       

       여기저기서 튀어나온 순례객들이 어미를 따라가는 새끼오리처럼 깃발을 따라 졸졸졸 길을 나선다. 마수의 산 방향이다.

       

       그쯤에서 프리가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걸 느꼈다.

       

       ‘아빠…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탄탈로스로 관광 사업한다는 걸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여관이나 좀 늘리겠구나 싶었다. 아니면, 뭐 그래. 가는 길을 좀 다져놓고 용돈벌이하던가.

       

       그런데 이건…

       

       “…저건 심판자 모양의 작은 조각상이네요… 기, 기념품인가 봐요.”

       

       작은 심판자의 조각을 판다. 네크로마니콘을 읽기 좋게 개정한 것도 판다. 탄탈로스의 초상화도 팔고, 온갖 조각상이며 그림, 벽화가 가득하다.

       

       프리가의 상상 이상으로 본격적이지 않은가.

       

       도시 전체가 화사한 색채로 뒤덮여 맥동치는 이 모습을 보라.

       

       오가는 순례객과 관광객을 붙잡아 물건과 작은 그림을 팔고, 손에 쏙 들어오는 조각상을 쥐여준다.

       

       그리고 짤랑거리는 동전들.

       

       오색 종이가 여기저기 걸려있는 모습은 축제를 방불케 한다.

       

       그럴수록 프리가의 미간에는 깊은 계곡이 생겨났다. 

       

       도시가 활기를 띠는 것? 관광 사업으로 사람이 북적이는 것?

       

       좋다. 전부 좋은 일이다. 삭막한 북부가 이리 사람으로 북적이는 건 정말 환영할 일이었다.

       

       그러나.

       다른 것도 아니고, 지옥문으로 돈벌이하려고 했다면.

       

       ‘나는 아니어도! 만신전에는 미리 말을 해야 했던 거 아니냐고!!’

       

       프리가가 온몸을 뒤틀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도대체 루샨 공작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일을 크게 벌였는지,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 그녀로서는 짐작할 수도 없었다.

       

       도대체 북부에 자리 잡은 만신전 지부는 뭘 했기에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성도로 편지 하나 쓰지 않았으며.

       

       아버지는 도대체 왜 그녀에게 말 한마디 없었단 말인가.

       

       콰앙!

       

       “아빠!!!!”

       

       공작가의 묵직한 문을 부서질 듯 열어젖혔다. 프리가의 기세가 그대로 실린 문에 살짝 금이 갔다.

       

       그리고 드러난 방 안의 풍경.

       그것에 프리가는 잠시 멈칫했다.

       

       “뭐, 뭐야 이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끝도 없이 높게 쌓인 종이와 서류의 산.

       

       사이사이로 간신히 걸을 수 있을 정도의 틈만 있고 무수한 서류들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으… 으음…”

       

       그중 서류가 수북이 쌓인 어느 한 부분이 작게 들썩이며, 죽어가는 신음이 들려왔다.

       

       “……버, 벌써 아침인가…?”

       

       서류에 파묻힌 것이 몸을 일으키자, 마치 타고 남은 재로 이루어졌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격렬하게 제 몸을 불사른 재와도 같은 느낌.

       

       아니.

       그것은 사람이었다. 눈 밑으로 내려온 그림자는 광대뼈에 닿을 지경이었고, 당장이라도 꺼질 듯 희미한 목소리와 덧없는 기색이 흘러넘쳤지만.

       

       거기에 휑하게 비어가는 정수리가 살짝 반짝였지만.

       

       틀림없는 프리가의 아버지, 루샨 공작이었다.

       

       “아, 아빠…?”

       “…아, 우리…딸…”

       

       프리가와 눈이 마주친 루샨 공작이 살짝 미소 짓는다.

       

       동공이 흐릿하니 눈을 마주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미소를 짓는 것은 너무나 여려서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분위기다.

       

       “…어, 어서 오… 렴….”

       

       달싹이던 입술이 멈추더니.

       

       툭.

       

       루샨 공작이 목이 힘없이 꺾였다.

       마치 떨어치는 잎새처럼, 혹은 허물어 가는 고목의 그것처럼.

       

       “아, 아빠! 아빠아ㅡ!! 사제, 사제 어딨어!!”

       “일단 제가 임시로 조치하겠습니다!”

       

       기겁한 프리가가 달려들며 사제를 부르짖었다. 일단 이스칼이 약간의 신성력을 불어넣으며 공작의 상태를 살폈다.

       

       ‘단순히 기력이 부족해서 잠드신 것 같기는 한데…’

       

       들썩들썩…

       

       사제를 부르짖는 외침에 다른 서류 더미가 미약하게 들썩이더니.

       

       “….사, 살려… 살려, 줘… 자고 싶… 어…”

       “시, 신이시여… 업무… 그, 만…”

       

       북부로 파견된 사제와 성기사들이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그들의 몰골은 루샨 공작과 비슷했으면 비슷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풀썩.

       

       그렇게 몸을 일으킨 그들도 힘없이 목을 떨궜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고요하게 잠든 루샨 공작을 품에 안은 프리가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아빠아아아ㅡ!!”

       

       프리가 공녀의 비통한 외침이 공작가에 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봄의 초입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야그라이?트…!! 프리가는 과연 이스칼과 무슨 일이 있을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저도 무척이나 흥미진진…!!!

    다음화 보기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