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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6

   EP.236

     

   탑에서 마주했던 모든 죽음이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는 사실은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선사했다.

     

   물론 신체의 고통마저 거짓은 아니었겠지만 그것 또한 어느 정도 탑의 보호로 상쇄된다고 하니 ‘훈련’이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탓도 있었다.

     

   ‘신중한 선택이라……’

     

   사실 말이 신중한 선택이지 이건 그냥 탑주의 자리에 앉아 달라 부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드는 의문점은 그가 왜 지금까지처럼 나를 강제하는 것이 아닌 권유를 했냐는 사실이었다.

     

   스윽.

     

   나는 진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를 조심스레 살폈다.

     

   만약 탑주라는 자리에 내가 꼭 필요했다면 나를 속이거나 끝까지 탑의 임무인 것처럼 그 자리를 맡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계속 탑을 올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전장으로 나를 보냈어도 진실만 말하지 않았다면 모를 일.

     

   그랬기에 나는 이들의 의중이 더 궁금해졌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무엇을 말이지?」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그냥 저를 이용해도 되는 것을 왜 굳이 진실을 드러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 질문의 의도는 순수한 호기심인가? 아니면 우리에게 어떤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라 의심하는 것인가?」

     

   “……처음에는 호기심이라 여겼지만 지금 생각하니 후자도 포함되는 것 같군요.”

     

   나의 솔직한 답변에 그가 어울리지 않게 씨익 미소를 지으며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도움이 필요하니까.」

     

   “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런 생각이 없이 움직이는 전략 병기가 아니다. 함께 생각하고 함께 의논하며 등을 맡기고 싸울 수 있는 동료지.」

     

   “……”

     

   그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의 분위기나 기세를 생각하면 그의 입에서 동료라는 말이 나올 거라는 생각을 못 했던 것.

     

   이제는 떠오르지도 않는 기억이지만 나는 나의 의지로 그들에게 힘을 빌어서 회귀를 선택했다.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회귀.

   어쩌면 나는 그들에게 큰 은혜를 입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고민이 많은 얼굴이군.」

     

   “관상도 보십니까?”

     

   「재미없는 농담이구나. 아무튼 후회가 남지 않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앞으로 두 걸음쯤 남았으니.」

     

   과연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후회가 남지 않을까?

     

   「다음 층에서 탑의 첫 번째 주인을 만나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그런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띠링!

     

   [탑의 18층을 클리어했습니다.]

   [탑의 19층으로 향하는 포탈이 열립니다.]

     

   그가 슬며시 옆으로 물러나며 자신의 뒤로 나타난 포탈까지의 길을 열어 주었다.

   갑옷이 맞물리며 철그럭거리는 소음을 만들어냈고 나는 그에게 짧게 포권을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황금빛의 포탈의 앞.

     

   그들이 만든 탑의 정상이며 이 이야기의 끝이 저 너머에 있었다.

     

   ***

     

   츠츠츳-

     

   포탈을 통과한 나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이제는 너무 특별해져 버린 한 도시의 전경이었다.

     

   “……여긴?”

     

   내가 나고 자란 고향. 그리고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곳은, 그 모든 것이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스카이 게임즈 본사 빌딩’의 옥상이었다.

     

   발아래로 펼쳐진 빌딩의 숲과 크고 작은 구조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도로를 달리는 차들과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튜토리얼이 시작되기 이전, 그리고 멸망이라는 단어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모습들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나의 등 뒤에서 미성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내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목소리의 주인은 나를 지나쳐 도시의 전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당신은……?”

     

   「인사가 늦었습니다. 탑의 첫 번째 주인이라고 합니다. 이명은 따로 있지만 그냥 탑주라 불러 주시면 편할 것 같군요. 동료들은 다들 그렇게 불러서요.」

     

   그가 고개를 슬쩍 돌리며 나를 바라보자 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젊은 청년.

     

   머리 또한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백금빛을 띠고 있던 그는 웃기게도 평범한 회사원처럼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좀 어울립니까?」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나를 돌아본다.

   그에 따라 고개를 살며시 끄덕여 준 나.

   특별한 의미 없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지만 그는 나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던지 익살스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어떠셨습니까?」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뭐든 좋습니다. 기억은 안 나겠지만 다시 시작해 본 삶이 어땠는지도 궁금하군요. 물론 탑을 올라본 소감도.」

     

   그의 말에 나는 지난 시간들을 천천히 떠올렸다.

     

   박조철, 서세영, 남궁천호, 한가민과 함께 탑을 올랐던 일.

   화영을 만나 검을 배우고 천월문의 무공을 통해 천천히 성장했던 일.

   탈람바르를 만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일이나 남궁명을 만나 그를 가르쳤던 경험 또한 나에게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썩 나쁘지 않았던 것 같군요.”

     

   나의 답변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과거의 일이나 사건들이 어떠했든지 간에 내가 나쁘지 않았다면 되었다는 반응.

     

   「이쪽으로 오시죠. 오랜만의 고향인데 함께 구경하면서 대화나 나눌까 싶네요.」

     

   나는 그의 옆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잠시 정장의 안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작은 목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손으로 직접 깎아 만든 것인지 조잡하기 그지없는 목갑.

   그리고 그가 목갑의 뚜껑을 열었을 때, 나는 그 안에 바짝 마른 보랏빛 이파리가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언젠가 꺼내 든 작은 종이 위에 목갑 안에 들어 있던 이파리를 툭 하고 털어냈다.

   그리고 온 신경을 집중해 돌돌 말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이 담배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피우시겠습니까?」

     

   “당신, 담배도 하십니까?”

     

   「안 될 건 없지 않습니까?」

     

   내가 담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그가 목갑을 닫아 품속에 넣는다.

   그의 손끝에서 피어난 불꽃이 담배 끝에 빨간 불씨를 만들어냈다.

     

   「하아…」

     

   그의 얼굴에 근심이나 걱정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편안함. 17층과 18층에서 두 성좌가 말했던 것 같은 심각한 느낌이 그에게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탓이다.

     

   “……”

     

   「왜요? 할 말 있어요?」

     

   “아니… 원래 당신이 할 말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제가 회귀하는 것을 도왔고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한 장본인이잖아요.”

     

   「으음.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한데…… 솔직한 제 심정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의 말에 나는 인상을 잠시 찌푸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이한 사람… 아니, 성좌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묘하다.

     

   「정말 솔직히, 제가 당신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회귀를 시켜준 건 제가 맞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의지가 강했지만 격이 그렇게 높은 존재는 아니었거든요.」

     

   “그래서요?”

     

   「여기까지 올라온 건 순전히 당신의 의지였습니다. 당신의 노력이었고 이 모든 것을 이룬 것은 당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나였기에 가능했다는 말. 그렇게 한 번 숨을 고른 그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이것은 당신 스스로가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제가 ‘탑의 한 축을 맡아 달라느니’ 하는 건 좀 이상하단 말입니다.」

     

   “이상……하다고요?”

     

   「지금까지의 시련과 고난은 당신의 것이었으니 앞으로의 선택 또한 당신의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혹시 17층에서 모험하기를 좋아하는 별이 당신의 과거를 보여 주지 않았습니까?」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나의 과거를 보여 준 것은 맞는데 그게 나의 선택이랑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하지만 그의 말이 이어지며 나는 그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똑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의 저는 당신에게 그저 탑의 정상에 올라 다시 한 번 제안을 들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냥 탑주가 되어 달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요.」

     

   “……당신은 신적인 존재가 아닙니까?”

     

   「흠, 그렇다고도 볼 수 있죠.」

     

   그가 옥상의 난간에 슬며시 기대며 흥하고 콧바람을 뿜었다.

   나의 말을 들은 이후, 뭔가가 떠오른 모양. 그리고 그는 나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우리도 실수를 합니다.」

     

   “……네?”

     

   「저희는 격이 높은 존재이지만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계의 존재들이 습격을 했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겠죠.」

     

   그가 말했다.

     

   「우리가 성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실수’에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싸움에서 패배했고 쓰러졌고 죽을 뻔한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는 단 한순간도 포기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노을이 지며 황금빛 빛줄기가 도시 전체를 아름답게 비춘다.

   해가 기울고 밤이 되어가는 과정. 낮이 꺼지며 달이 뜨는 시간이었다.

     

   「보통 성좌로 승격한 존재는 탑을 오르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세상을 다스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 일만의 존재가 10층에 올랐다면 구천구백 이상의 존재가 3000년이라는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며 그곳에 머물기를 선택하죠.」

     

   한 세상의 신이자 대리인으로 군림하는 일.

   탑을 오르며 지치고 목숨을 걸고 싸워왔던 존재들에게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당신은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곧장 다음 층을 도전했고 그 누구보다 탑을 빠르게 올랐어요. 얼마 지나지도 않은 과거, 실패와 좌절의 시간이 그렇게나 많았음에도 당신은 두려워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것보다 더 위대한 리더의 자질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의 주먹이 꽉 쥐어진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눈을 빛내며 조금 전에 언급했던 제안을 조심스레 던졌다.

     

   「탑의 주인이 되어 우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협박이나 강요 따위는 없이 주어진 마지막 선택.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듯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에게 답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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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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