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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6

    <236 – 의젓한 아이>

     

    오전 9시.

    평상시라면 1교시 강의를 시작할 시간.

    오늘도 즐거운 피뽑기를 시작하러 학생들이 없는 곳으로 걸음을 돌리는 나를 누군가가 불러 세웠다.

     

    “어이, 쥐방울!”

    “오천아저씨?”

    “또 어딜 가려는 거냐?”

    “잠깐 갈 곳이 있어서요!”

    “그런 소리 해놓고 어제 책상던지기 종목에도 참여하지 않았잖아.”

    “앗. 깜빡했어요!”

    “거짓말이군. 아카데미에서 기억력 좋기로 한 손에 꼽히는 네가 까먹었을 리가 있겠냐.”

     

    손오천은 단단히 벼르고 찾아왔다.

    그의 얼굴에는 오늘 오크노디를 이대로 보내면 사약을 먹고 죽겠다! 같은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눈치가 보여서 그러냐? 너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는 잡것들이.”

    “뭐 어때서 그래요. 시합 한두 개 빼먹을 수도 있죠.”

    “내가 아는 너는 절대로 그럴 녀석이 아니다.”

    “오천아저씨가 제 뭘 안다고요?”

    “요즘 들어서는 너에 대해서는 그다지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네가 얼마나 놀기 좋아하는 녀석인지는 알고 있지.”

     

    손오천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돌 모으기. 곤충채집. 모래성쌓기. 숨바꼭질.”

    “!”

    “남들이 죽어라 수련하는 와중에도 이렇게나 잔뜩 놀고 다니는 주제에 책상던지기를 하지 않다니, 그럴 리가 있겠냐고!”

     

    아니, 저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네.

    정말로 논 건 아닌데.

    모래파기만 해도 그렇다.

    모래사장의 모래바닥 어딘가에 숨은 아이템을 더 빨리 찾는 히든트리거 모래성쌓기.

    훌륭한 성을 쌓으면 모래 속에 파묻힌 보물상자가 스스로 모래성 속으로 올라오는 기믹 때문에 열심히 쌓았던 것이 그냥 열심히 논 것으로 오인 당했다.

     

    “아니면 뭔데. 그게 놀이가 아니면 다른 훈련의 의미라도 있었나?”

    “아, 아무튼. 오천아저씨랑은 상관없잖아요!”

    “이사벨이 걱정하잖냐.”

    “앗.”

    “그 녀석, 너 주려고 도시락도 열심히 싸왔던 거 알고는 있냐? 어둠의 요리사인지 뭔지가 되어서 더 많은 다양한 요리법을 실험해보겠다고 해서 이쪽도 숲에서 온갖 식재료를 수집하는 걸 거들었다고.”

    “기숙사에서 알려줬으면 미리 찾아갔을 텐데…”

    “지금도 살금살금 환풍구로 몰래 나오면서 하는 소리냐?”

     

    쳇. 원숭이수인 주제에 분할 정도로 말재주가 뛰어나다. 반박 한 번 할 수가 없다.

     

    “뭐, 네게도 무언가 사정이 있으리라는 건 이해한다. 그러니 말해라.”

    “…꼭 말해야 해요?”

    “싫으면 자기가 만든 요리는 이제 먹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다며 우울해하는 이사벨이 운동회가 끝날 때까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두고 보던가.”

    으으… 그런 치사한 방법을 쓰다니.

    불쌍한 척 행세하기는 내 주특기였는데!

    그래도 이사벨이면 어쩔 수 없지.

     

    “알았어요… 알려드릴게요.”

     

    괴로워하는 이사벨을 생각해서라도 그간 뭘 하고 있었는지 손오천에게만 귓속말로 속닥속닥 전했다.

     

    “피를 모으고 있었어요.”

    “피?”

    “이걸로요.”

     

    투명해제.

    신호를 보내자 투명상태로 주변을 비행하던 모기편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기?”

    “넹.”

    “네가?”

    “넹.”

    “모기를?”

     

    몇 번이고 거듭 되물으며 어이없어하는 손오천에게 시범을 보여줬다.

     

    “모기야. 짖어!”

    “왜앵!”

    “모기야. 찔러!”

     

    모기편대가 뾰족한 침을 내밀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돌멩이를 쿡쿡 찔렀다.

    구멍이 잔뜩 뚫린 돌을 보며 넋이 나간 오천아저씨의 한심한 표정이 봐줄만하다.

    리액션이 좋으니까 서비스도 하나 보여줄까?

     

    “모기야. 빵야!”

     

    블러디부스트를 킨 모기편대가 적색궤적을 그리며 돌멩이를 향해 압축된 피를 기관총의 탄환처럼 투두두두 연사했다.

    파괴력을 견디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버린 돌멩이의 모습에 손오천이 어버버거리다가 물었다.

     

    “그러니까 이걸로 물었다고? 사람을?”

    “넹!”

    “몇 명 죽었냐?”

     

    웃음기 하나 없는 진심이었다.

     

     

    * *

     

     

    손오천이 모기 타령을 할 때는 이 인간이 잠결에 모기한테 물리고 정신이 나갔나 싶었지만 믿져야 본전이라고 따라가 보니 정말 모기가 있었다.

    그것도 오크노디의 명령을 따라서 은밀하게 학생들에게 접근해 피를 빨아 훔쳐오는 피 도둑 모기들이.

     

    “저 애들, 너무 불쌍하게 당하지 않아?”

     

    기사학부 지망생 한 명은 무의식중에 투명모기를 감지하고 모기침을 연달아 피했다.

    이에 단단히 화가 난 모기들이 블러디미사일을 두두둥 쏘아대니 따끔한 감각에 깜짝 놀란 학생이 그만 우당탕탕 나자빠졌다.

    바닥을 짚은 틈에 재빨리 손목에서 피를 쪽쪽 빨아먹는 모기들.

    빨갛게 드러난 모기형태에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숫제 창을 들고 매머드나 코끼리를 사냥하는 원시인처럼 영악한 사냥법이다.

     

    “사냥법 이전에 노림 받는 학생들이 신경 쓰이는군요. 자세히 보십시오.”

     

    주의 깊은 지젤의 지적에 이사벨과 손오천도 무언가를 깨달았다.

     

    “다른 학생들에게 위해를 끼치려고 하고 있어.”

    “쥐방울 녀석… 남들을 지켜주고 있었던 거냐?”

     

    자신을 헐뜯는 소리를 듣기 무서워서 도망친 줄 알았더니 실은 뒤에서 모두를 지켜주고 있던 소녀.

    이사벨은 벌써 훌쩍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어깨를 토닥토닥 위로해주는 지젤의 모습까지 보자니 손오천도 괜히 가슴이 복받쳤다.

     

    “쥐방울아. 이제 됐다. 암흑상회 녀석들하고 내가 같이 거들어줄 테니 뒤는 우리에게 맡기고 너도 가서 좀 놀고 다니고 그래라.”

    “엥. 싫어요. 전 이게 더 가성비 좋단 말이에요!”

    “가성비 같은 소리 마라. 너 한 몸 희생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행복하다는 소리 따윈 아무 소용없어. 너같은 어린애의 희생이 없으면 대운동회도 즐길 수 없는 녀석들이라면 아카데미 그만둬야해.”

    “힝. 알았어요. 그럼 아카디아 주변만이라도 잘 확인해주세요. 그 근처에 유독 많이 나오거든요.”

     

    감동이 메아리치듯이 2차로 몰려왔다.

    공공연히 퇴물 취급받는 아카디아를 남몰래 또 감싸주고 있었다니!

    손오천마저도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

     

    어리둥절해하는 오크노디의 손을 이사벨이 붙잡았다.

     

    “가자, 오크노디. 네가 좋아하는 종이비행기 던지기 종목이 아직 남아있어. 같이 하자.”

    “하고 싶어요?”

    “그래. 엄청 하고 싶어.”

    “헤헤. 이사벨이 하고 싶으면 어쩔 수 없죠. 오늘은 특별히 제가 같이 놀아드릴게요.”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며 지젤이 나직이 말했다.

     

    “손오천 씨. 모기들이 단속하던 학생들을 사람이 잡으려면 다소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야 합니다. 학생회에 걸리면 징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한 소릴. 쥐방울 녀석 불쌍한 거 안 보이냐? 저 작은 것이 아무리 강해도 사람 사는 재미를 모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다 아프다. 이렇게라도 도와줄 수 있다면 오히려 환영이지.”

     

    두 남자는 다짐했다.

    오크노디가 전담마크하던 불순한 학생들은 암흑상회와 자신들이 어떻게든 처리하겠다고.

     

     

    * *

     

     

    종이비행기 던지기 대결장.

    날먹을 꿈꾸고 찾아온 하급반 학생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넋이 나갔다.

     

    “종이비행기에서 왜 미사일이 나와?”

    “아아악 내 비행기 격추당했어!”

    “상도덕도 없는 새끼들… 흑흑. 꼭 비행기에 화염탄 사출술식까지 새겨야만 했냐?”

    “응 3단 가속 술식으로 빠져나가면 그만이야.”

    “방어술식 새길 줄 모르는 흑우 없제?”

     

    대충 과학실습이라도 하러 나온 경연장에서 총매출 100억을 때릴 개발품과 경쟁을 붙는 수준의 비참한 경쟁에 직면한 학생들!

    상승치의 한도가 보이지 않는 실력자들의 화려한 비행쇼는 오크노디의 등장에 더욱 긴장으로 물들었다.

     

    “상급반도 아닌 애들도 그렇게나 날뛰었는데 오크노디는 얼마나 잘하는 거지?”

    “의외로 해볼만하지 않을까? 오크노디는 그냥 놀러 나왔을 수도 있잖아.”

    “그 전에 누구 오크노디가 이번 운동회에서 다른 종목 나오는 거 본 사람?”

    “정보지에 나온 종목에 얼굴 비친 건 이번이 처음 같은데. 아닌가?”

     

    개인전 종목은 학생들 수백 명을 줄지어 세워다가 한 번에 대충 다 털어 넣듯이 일렬로 벌이는 대규모 경쟁이 아니었다.

    5명에서 10명으로 끊어가며 인원이 채워질 때마다 경쟁을 벌이는 방식!

     

    “에휴. 니들은 쎈 애 나왔다 싶으면 알아서 사려라.”

    “화염마법사 로지니 얘도 지 종이비행기부터 태워먹을 줄 알았더니 화염탄 사출로 다 불태우고 지만 살아남아서 1등하더라…”

    “비가 내리면 일단 피하고 봐야지.”

     

    너도 나도 눈치를 보며 참가라인 밖으로 발을 빼는 학생들.

    오크노디와 손잡고 라인에 들어왔던 이사벨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 오크노디. 좀 더 눈치를 보다가 들어갔어야 했는데.”

    “괜찮아요. 어떤 술식을 새길지 생각할 시간이 길어지면 더 좋죠.”

     

    이사벨의 미안한 마음은 더 깊어졌다.

    영특하고도 마음씨 깊은 아이.

    경쟁상대가 나타나지 않고 자신을 꺼려하는 모두의 시선 탓에 마음이 위축될 법도 하건만 싫은 소리는커녕 도리어 의젓한 발언으로 자신을 위로한다.

    이래서야 누가 애이고 어른인지 모르겠다.

     

    “거기 1학년. 상대가 없어서 곤란한가본데. 우리랑 해보는 건 어때? 상호 합의하에는 우리끼리도 대결할 수 있는데.”

     

    열심히 술식을 준비하던 도중, 낯선 목소리가 그들을 불렀다.

    종이비행기 너머로 고개를 든 두 사람을 반기는 것은 옷깃에 휘장을 단 2학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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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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