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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7

       이후 야영지에 미리 말을 전한 뒤.

       

       마물이 가득한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지난 일 년간 잡아 죽인 마물의 수만 따져도 이 숲을 한가득 채울 지경이지만.

       

       오늘은 사냥이 목적이 아니었다.

       

       “…찾았다.”

       

       지나가다 마주치는 마물을 죽여가며 걸음을 옮기길 한참.

       드디어 찾고자 하는 것을 발견했다.

       

       허공을 찢은 듯 작은 펼쳐져 있는 균열을 말이다.

       

       ‘이걸로 여섯 개째.’

       

       누군가 본다면, 이를 마경문이라 할 만큼 똑같은 모양이었으나.

       

       색이 달랐다.

       

       아주 짙고 탁한 어두운 검은색.

       

       지금까지 봐왔던 마경문과는 전혀 다른 색상이었으며, 풍기는 분위기도 훨씬 지독했다.

       

       더불어 이 균열은 마물을 내뱉지 않는다.

       

       그저 허공에 떠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그런 균열을 보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차분하게 다가가는 손끝은, 균열 속으로 너무나 쉽게 파고든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손을 받아들이는 균열을 보며 떠올렸다.

       이 균열을 처음 봤을 때를 말이다.

       

       처음 이 균열을 발견했을 때는, 전선에 막 도착했을 시점이었고.

       

       구희비가 보여줄 게 있다며 날 데리고 온 것이 처음이었다.

       

       마물을 배출하지도 않고.

       

       범위를 넓혀 커지지도 않는.

       

       그저 허공에 떠올라 있기만 한 균열이었으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는 균열이 아니라 조각임을 말이다.

       

       [끄르릉…!]

       

       균열에 손을 집어넣자 기다렸다는 듯 놈이 반응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마치 신난다는 듯 꼬리라도 흔드는 듯한 감각이었다.

       

       ‘진정해, 그렇게 안 해도 먹여줄 테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끄드드드득-!

       

       균열이 점점 헝클어진다.

       회선을 그리며 내 손으로 빨려 들어 오는 모양새였다.

       

       느껴진다.

       

       팔을 타고 몰려드는 기운이 단전, 그보다 더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음이.

       

       아작 아그작.

       

       들어온 기운을 놈이 씹어 삼키고 있음이 말이다.

       

       ‘잘도 처먹네, 어제 그렇게 먹어놓고는.’

       

       놈이 기운을 집어삼키는 것에 따라.

       

       중단전 어느 한편에 조각이 하나 더 채워졌음이 느껴졌다.

       

       “…후.”

       

       기껏 해봐야 아주 작은 조각이다.

       이건 기운으로 쓸 수도 없다.

       

       이것저것 시험해보긴 했으나, 결과는 같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전선을 뒤적이며 균열을 찾아 이렇게 처리하고 있는 이유는.

       

       ‘놈이 이를 원하니까.’

       

       몸에 있는 놈이 이런 균열의 위치를 끊임없이 알려주고 있을뿐더러.

       찾아서 이렇게 집어삼키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엇을 위함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체 왜 이런 균열이 전선에 일어나고 있는지.

       

       무엇을 뜻하는 균열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전생에도 이런 게 있었을까?

       

       머리를 굴려보지만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검은 균열은 들어본 적도 없었으니.

       

       아마 내가 회귀함에 따라 생긴 부분이 아닐까 싶었다.

       

       혹, 위험한 상황일까도 싶어, 가능한 안 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계…약….]

       ‘알고 있어.’

       

       놈과 맺은 약속이 그러했으니까.

       

       “알고 있어서 이렇게 열심히 먹여주고 있잖아. 재촉하지 마.”

       [끄릉….]

       “그리고, 빨리 노야나 풀어줘. 어차피 시간도 다 되어가잖아.”

       [끄릉…?]

       “망할 짐승 새끼. 이럴 때만 멍청한 척하네.”

       

       뭐라 더 말하고 싶으나, 잔소리를 들을 걸 알았는지 놈이 모른 척 숨어버렸다.

       

       이러면 한동안 또 안 나올 게 뻔했다.

       

       “…하.”

       

       이놈 밥 먹인다고 내 밥도 거르고 왔는데.

       취급이 참 개 같았다.

       

       “나중에 나오기만 해라.”

       

       대답이 들려오지 않을 걸 알면서 말을 내뱉고선.

       

       막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자 했다.

       

       돌아가면 모용희아를 만나야 했고.

       남궁비아와 함께 구희비를 찾아가야 했다.

       

       슬슬 당번이 돌아, 나와 남궁비아가 중심지까지 같이 들어가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막사를 향해 도약하려는 찰나.

       

       -끄으악…아악!

       “음?”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다.

       

       

       

       

       

       ******************

       

       

       

       

       빠악!

       

       평지에서 숲으로 넘어가는 시작 부분에서.

       누군가가 쓰러져 구타를 당하고 있다.

       

       “감히 비명을 질러?”

       

       입고 있는 어두운 황색 무복과 거대한 몸짓을 보건대.

       이들은 황보세가의 무인이었다.

       

       “끄르륵…끅.”

       

       더불어 바닥에 쓰러져 한껏 구타를 받는 이 또한 황보세가의 무인 같으나.

       

       주변을 둘러싼 이들과 다르게 몸짓이 작고 뼈대가 얇아 보였다.

       그런 청년을 한껏 괴롭히던 사내가 웃음을 머금은 채 말한다.

       

       “주인의 허락도 안 떨어졌는데, 비명을 함부로 지르는구나. 그런다고 누가 도와줄 것 같더냐.”

       “잘, 잘못했습니다….”

       “아니, 네 잘못이 아니지. 교육을 똑바로 하지 않은 내 잘못이지.”

       

       팍!

       

       “끄악!”

       

       사내의 발길질에 배를 맞은 청년이 비명을 참지 못하고 또다시 토해낸다.

       

       “이 황보가 방금 소리를 지르지 말라 한 번 더 말했거늘, 여전히 비명을 지르는구나.”

       “…흐그윽….”

       “아니면, 같은 황보 씨라고 너와 내가 동등하다 생각하는 게냐?”

       “아, 아닙니다…. 제가 감히 어찌….”

       “아니라면 어찌 말을 듣지 않을꼬….”

       

       낄낄!

       

       사내가 비웃음을 가득 머금고서 말을 내뱉는 한 편.

       

       뒤편에서 이를 지켜보는 또 다른 청년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말려야 하거늘.’

       

       사내의 폭력을 방관하고 있는 청년은.

       다름 아닌 황보철위였다.

       

       그리고 폭력을 행하는 이는 황보철위의 형인 황보척이다.

       

       이제 겨우 후기지수로 이름을 불리기 시작한 황보철위와 달리.

       황보척은 나름 중원에서 알아주는 무인이었다.

       

       발로 툭툭 쓰러진 이를 건들던 황보척은 이를 지켜보던 황보철위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우야.”

       “…예 형님.”

       “나는 이만하면 되었는데, 너도 하겠느냐?”

       

       황보척의 말에 황보철위가 쓰러진 이를 살핀다.

       

       끙끙거리고 있는 청년은 황보가의 방계 출신으로.

       그중에서 피를 가장 적게 물려받아 유약한 청년이었다.

       

       황보선.

       

       청년의 이름은 황보선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음?”

       “다른 이들의 눈에 띄면 곤란하니, 저 방계 놈은 제가 치우겠….”

       “아우야.”

       

       황보척의 두꺼운 손이 황보철위의 어깨를 부여잡는다.

       

       “형님…?”

       

       황보철위는 마주한 황보척의 눈을 보며 살짝 어깨를 떨어야 했다.

       

       “저번부터 이상하구나. 마치 저 방계 놈을 신경 쓰는 모양새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깟 놈을 제가 왜 신경 쓴다는 말씀이신지요.”

       “그러니까 말이야. 왜 그러지?”

       

       아마도 재작년.

       

       황보철위가 용봉지회를 끝내고 자신의 세가로 돌아왔을 무렵부터일 것이다.

       

       어째서인지 황보철위는 방계를 낮잡게 보고 괴롭히는 행동을 멈추었으며.

       자신의 세가를 드높이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던 언행을 멈추었다.

       

       그게 알게 모르게 황보척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광스러운 본가의 피를 가득 타고났음에도.

       

       저토록 유약해진 자신의 아우가 말이다.

       

       “아우야.”

       “예, 형님….”

       “이 참에 확실히 해야겠구나.”

       “예?”

       “네 태도가 우리 황보가에 썩 어울리지 않는 게, 이 형은 참 마음에 들지 않아.”

       “그게 무슨 말씀이신….”

       “이놈의 다리를 으깨거라.”

       “…!”

       

       황보척의 말에 황보철위의 두 눈이 커진다.

       

       설마 황보척이 그런 말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형님…. 여긴 맹의 영역입니다.”

       “알고 있다. 그걸 이 형이 모르는 것 같으냐.”

       “한데 어찌….”

       “하.”

       

       황보철위의 말에 황보척이 헛웃음을 내뱉는다.

       

       동생의 걱정이 참 하찮고 부질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고작 방계 놈의 다리를 작살 낸다고, 맹에서 신경이나 쓸 것 같더냐.”

       “하나…!”

       “지금까지 이놈을 건들지 않은 이유는, 가주님의 눈초리가 있었기 때문인데. 이젠 상관없지 않겠느냐.”

       “형님…. 그 말씀은….”

       

       황보세가의 가주는 전성기가 지났으며.

       조금 있으면 황보척은 소가주 자리에 오를지 모를 일이니, 이런 일 까지 눈치 보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쓸모도 없는 놈이거늘, 이렇게 된 거 아우의 정신건강을 위해 써먹으면 딱 좋겠지.”

       “…”

       

       황보척의 말에 황보철위는 속으로 침음을 삼켜야 했다.

       제 형의 눈에 싸인 광기가 여간 짙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체 어쩌다가.’

       

       생각하면서도 황보철위는 제 입술을 깨물었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게 아닐 것이다.

       

       알고 있으나 느끼지 못한 것뿐이겠지.

       자신도 형과 다를 바 없었을 테니.

       

       “…형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뭐야. 얘가 왜 여기 있어.”

       

       애써 말을 꺼내려던 황보철위가 흠칫 놀라며 거리를 벌렸다.

       

       모르는 목소리가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황보철위는 물론이고.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황보가의 무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끼어들 때까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기척을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황보척은 투기를 끌어올리며 묻는다.

       

       “네놈은 뭐냐….”

       

       황보척이 당황한 듯 물으나.

       

       끼어든 청년은 신경도 쓰지 않고 쓰러져있는 황보선쪽으로 다가가 몸을 살폈다.

       주변의 무인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고 있다는 태도였다.

       

       “많이도 패놨네, 게다가 멍청하게도 패놨어, 이러면 티가 나서 수습이 안 될 텐데…. 참나.”

       “이 놈이…! 누구냐고 물었다!”

       

       황보척이 손을 뻗어 청년의 어깨를 움켜잡는다.

       청년을 잡아서 들려고 했던 모양인데.

       

       “…!”

       

       놀랍게도 들리지 않는다.

       

       청년의 몸은 바닥에 쫙 달라붙어 있는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놈…?’

       

       무투계열로 유명한, 그것도 한 덩치 하는 황보세가의 혈족의 힘이거늘.

       

       힘을 이렇게 많이 주고 있음에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다니.

       황보척이 당황을 숨기고 이내 내기를 가득 끌어올리려는 찰나.

       

       청년의 고개가 황보척을 향한다.

       

       “야.”

       “…엇!”

       

       청년이 고개를 돌림에 따라.

       같이 얼굴을 확인하게 된 황보철위는 속으로 헛숨을 삼켰다.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저 사납게 생긴 얼굴이 세상에 둘이나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하나 황보척은 이에 대해 알지 못하는지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진다.

       

       “하, 이 미친 놈이. 내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이구나.”

       

       주제를 모르는 잡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까.

       황보척은 이놈을 어찌 해야 할까 고민이 드는 한편.

       

       그보다 먼저 청년이 황보척을 입을 열었다.

       

       “다섯.”

       “뭐라?”

       “다섯 셀 동안 이거 놓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지금 기분이 썩 좋지가 않아서 좋게좋게 봐줄 수가 없어.”

       

       청년의 말에 황보척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가소로운 말이었기 때문이다.

       

       “안 놓으면 어쩔 생각이지?”

       “하나.”

       “이 황보가의 황보척을 어떻게 하기라도 할 생각이더냐?”

       “둘.”

       “무슨 사술을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네까짓 놈이 무슨 수를 쓴다고 한들, 이 황보척의 옷깃 한 번 스치는 게 가능하리라 보더냐? 하찮도다…. 아쉽게도 네놈은 오늘 여기서 죽….”

       “셋.”

       

       우드득!

       

       “끄끅…!?”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청년의 어깨를 움켜잡고 있던 황보척의 팔이 뒤틀린다.

       

       내기를 끌어올려 몸에 둘렀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마치 찰흙이라도 만지듯 돌려버린 것이다.

       

       “이…!”

       

       뒤틀린 팔을 보며 황보척이 곧바로 으르렁거리지만.

       

       콰득-!

       

       쿵!

       

       순식간에 무릎이 꿇리며 황보척의 거대한 육신이 무너져 청년을 올려다 보는 위치로 바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황보척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하나도 인지하지 못했다.

       고작 찰나의 순간.

       

       황보척이 눈치를 챘을 땐 이미 두 무릎이 꿇린 상태였다.

       

       동공이 잔뜩 흔들리는 황보척을 마주한 청년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는다.

       

       “이래서 짐승 같은 새끼들이랑은 말을 섞으면 안 돼. 대화라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 힘부터 쓰고 보잖아. 사람 좆 같게.”

       

       덤덤하듯 살기가 진득하게 서린 목소리는, 주변을 압누르는 존재감이 가득했다.

       

       더불어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황보철위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진, 진룡.’

       

       청년의 정체에 대해 떠올리며 말이다.

       

       진룡.

       

       육룡삼봉중 한 명이자.

       

       패존의 제자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는.

       

       하물며 자신을 일격으로 쓰러트리고 비무제의 우승을 거머쥐었던 괴물이 그곳에 서 있었다.

       

       대체 왜 그가 이곳에 있는 거지?

       

       하지만 그보다 의문인 점이 하나 있었다.

       

       ‘어, 어째서…?’

       

       자신의 형이 두 무릎을 꿇었다는 것보다.

       구가의 진룡이 이곳에 있다는 것보다 의문인 부분이 말이다.

       

       ‘…다섯이라고 해놓고 셋 밖에 안 센 거지?’

       

       황보철위는 와중에 그 부분이 가장 궁금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_ _ )

    휴재날에 병원을 좀 다녀왔습니다.

    요즘 머리카락이 좀 자주 빠지는 것 같아 고민이 많았는데.

    다행히 탈모는 아니라고 하네요.

    코피는…스트레스성 고혈압인가 뭔가 라고 하시던데.

    잘 조절하면 문제 없다고 하시니.

    적당히 참고 글 쓰면 된다는 말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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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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