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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7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익숙한 향취가 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곳에 온 건 오늘이 처음일 텐데, 아는 사람의 냄새가 난 것이니까.

       

       프레이는 저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리며 주위 냄새를 추적했다.

       

       여우에 기반을 둔 요호족은 예민한 후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미묘하게 비슷한 냄새도 분간해낼 수 있었다. 그러니 이런 좁디좁은 교실에서 익숙한 체향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어….”

       

       냄새는 정확히 두 곳에서 났다.

       

       하나는 교탁 앞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앉은 자리의 앞쪽 대각선 자리에서였다.

       

       교탁에는 하이젠버그 교수가 있었고, 대각선 자리에서 이름 모를 백발 소녀가 앉아있었다.

       

       “저 하얀 머리 여자애랑 교수님,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어?”

       

       누군가가 내뱉은 말에,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백발 소녀의 얼굴은 차마 보지 못했지만, 냄새로 미루어 보았을 때 어떻게 생겼을지는 대강 알 수 있었다.

       

       “앗.”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 지나갔다.

       

       수인족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일족을 홍수로부터 막아 준 고마운 친구라고.

       

       동시에 그날, 옆자리에 앉은 버멜을 지켜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수로 몰려 아카데미를 떠난 가엾은 친구라고.

       

       울컥, 하고 속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최악의 형태로 이별했던 친구가 눈앞에 있었다.

       

       프레이는 벌게진 눈시울을 옷소매로 찍찍 문질렀다. 그러고는 뺨을 살짝 쳐내며 정신을 다잡았다.

       

       이곳에서 에테르가 마수라는 걸 확실하게 아는 건 자신과 버멜 뿐이다. 나머지는 뉴스로만 접한 탓에 진위여부를 모르는 상황. 그러니 당장은 에테르에게 아는 체를 하면 안 된다.

       

       물론 마수라고 해도 모든 존재가 나쁘진 않다는 걸 프레이는 안다. 그렇기에 그날 이후로 떠나간 친구를 다시 붙잡고 싶었다.

       

       그런데 이걸 누구랑 의논해야 하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어느덧 세 시간이 지났다. 에테르는 속사포처럼 강의하더니 하얀 머리 소녀와 함께 그대로 교실을 나가버렸다.

       

       프레이는 눈에 힘을 주어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키며, 체형이며, 전부 똑같았다.

       

       “에, 에테르가 두 명….”

       

       설마 둘 중 하나는 가짜인 걸까?

       

       프레이는 순간 도플갱어 설화가 떠올랐다.

       

       어린 소녀가 늦은 밤까지 숲에서 놀다가 친구의 도플갱어를 만났다는 이야기인데, 정작 도플갱어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사이에 진짜 친구는 병에 걸려 죽어버렸다는 섬뜩한 이야기였다. 

       

       험준한 산지가 많은 제국 서부에선 유명한 잔혹동화였다.

       

       “어, 아, 아으…….”

       

       어깨가 호달달 떨렸다.

       

       도플갱어 설화가 말 그대로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만, 어린 시절 엄마한테 들었을 때 느꼈던 결말부의 충격이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불 켜고 자야 할 것 같다.

       

       “프레이, 로테. 오늘 에세이 쓰는 과제 말인데, 같이 할래?”

       

       가시 돋친 공포감에서 프레이를 꺼낸 건 다름 아닌 버멜의 목소리였다.

       

       “난 좋아.”

       “어, 응? 그래, 하자!”

       

       프레이는 얼떨결에 제안을 수락했다.

       

       오히려 대환영이었다. 늦은 밤에 혼자 공부했다간 쓸쓸할 테니까.

       

       “좋아, 그러면 오후 6시에 만나는 걸로 하자.”

       

       그렇게 세 사람은 학교 강의가 전부 끝날 때까지 연강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과연 일리야드. 틸레트에 비견가는 명문 아카데미였다. 학생들을 쉬게 두질 않았다.

       

       첫날부터 녹초가 된 세 사람. 프레이는 졸린 눈을 위아래로 비비며 고양이처럼 마른세수를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하교하는 중이었다.

       

       “앗.”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머지 두 사람과 과제를 하기 전에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생긴 까닭이다.

       

       “나 잠깐 어디 좀 들렀다 갈게. 너희 둘이 먼저 숙소로 가 있어!”

       

       프레이는 그리 말하고는 도보를 따라 언덕길을 올랐다.

       

       경사가 심하게 진 오르막길이었다. 오른쪽에는 먼 산과 함께 널따란 호수가 있었는데, 물비늘 위로 오리들이 줄지어 물장구를 치는 중이었다. 프레이는 군침을 흘리다가도 정신을 차리고는 언덕을 올라갔다.

       

       “도착했다….”

       

       언덕길 위로는 용적률을 꽤 먹을 것 같은 건물이 자리했다.

       

       에테르가 OT에서 알려준 개인 교수실이 이 건물 안에 있을 것이다.

       

       프레이는 기억을 더듬어 2층으로 올라갔다. ‘아스테야 하이젠버그’. 그런 이름이 적힌 팻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친구를 만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앙글앙글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프레이는 머리를 숙여서 철문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뭐, 세계수는 당장 불태우지 않아도 좋아.]

       

       이게 무슨 소리야.

       

       [여차하면 잠깐 후퇴했다가 나중에 본대와 함께 올 수도 있어. 어차피 원폭 수량을 맞추는 덴 2개월이 족히 걸릴 테니까.]

       [뭐 그러면 어떡하라고. 빨리 철수하자고?]

       [큰 그림을 보기 위해선 작은 스케치를 버릴 줄 알아야 하는 법이지. 지금쯤 그 요호족 꼬맹이도 눈치채지 않았겠어?]

       

       “와, 와, 와아아…….”

       

       석화 빔을 맞은 것처럼 자리에서 굳어버린 프레이.

       

       “안 그래?”

       

       덜컥.

       

       정신을 차려보니 개인실 문이 활짝 열린 뒤였다.

       

       오전에 봤던 백발의 소녀가 철문에 팔을 기대고는 큭큭거리며 프레이를 쳐다보았다. 예기가 잔뜩 실린 눈길이었다.

       

       “이것 봐. 내가 올 거라고 말했지?”

       “히끅.”

       

       급기야 딸꾹질까지 시작하고 말았다.

       

       “요호족은 호기심이 많아서 탈이라니까. 꼭 제 명에 안 살고 싶어서 티를 내요.”

       

       소녀가 조심스레 프레이의 등을 쓸어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소녀, 에테르와 똑같이 생겨먹었다.

       

       머리털이 배게 심은 벼 이삭처럼 뻣뻣하게 세워진다.

       

       도플갱어 설화가 머릿속에서 플래시백되며 어린 시절의 깜찍하고도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다.

       

       “자, 이리로 와.”

       

       프레이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의자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뒤쪽에는 하양이, 앞쪽에는 검정이.

       

       흑돌과 백돌에 쌍으로 포위당한 모양새였다.

       

       “들었지?”

       “뭐, 뭘요?”

       

       어느덧 입에선 존댓말이 나오고 있었다.

       

       진한 공포의 탁류에 휩쓸려버린 것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잘 벼려진 칼날처럼 앞뒤로 찔러오는 시선이 프레이를 슬며시 압박해온다.

       

       살려 줘.

       

       “우리가 대화하는 거 말이야.”

       “저, 저는 하나도 못 들었어요.”

       “거짓말.”

       

       아카샤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였다.

       

       텅, 텅, 텅!

       

       무슨 연유에서인지 연구실 불이 전부 꺼지더니, 코앞에 은은한 조명 하나만 남기고 모든 광원이 사라졌다.

       

       호롱불처럼 빛나는 금색 눈동자가 앞에 한 쌍, 그리고 뒤에도 두 쌍.

       

       잠깐만.

       

       두 쌍?

       

       [그르르르….]

       

       뭔가 심장 떨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쿵, 쿵 하고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방 전체가 떨려왔다. 프레이는 잔뜩 긴장한 채로 귀를 쫑긋 세우며 진동의 근원지를 찾았다. 

       

       녀석은, 점점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터엉!

       

       이윽고 가까운 조명 하나가 켜지며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눈앞에 들어온 것은 그 체구가 족히 3미터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괴물이었다.

       

       하악은 앞으로 뻗어 나와 있었으며, 강철로 된 귀는 둥글뾰족했고 얼굴은 비명횡사할 정도로 험악하게 생겼다.

       

       검푸른 강철 늑대.

       

       펜릴이었다.

        

       “바른대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이 펜릴이 널 잡아먹을지도 모르거든.”

       

       작년 1학기 때 ‘마수의 이해’ 과목에서 배웠다.

       

       펜릴은 재앙급 마수, 어지간한 최상급 마도나 플레어 정도가 아닌 이상 한 번에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앞뒤로 에테르와 에테르 도플갱어까지 있었으니, 프레이가 이 간극을 뚫고 탈출하여 총장에게 보고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3초 줄게. 들었어, 안 들었어?”

       “아, 으, 아…….”

       

       까딱하면 지릴 것 같다.

       

       당장이라도 ‘들었어요’ 라며 자백하고 싶었으나 펜릴의 저 날카로운 이빨을 보니 입이 생각대로 떨어지질 않았다.

       

       “삼.”

       

       망했다.

       

       “이.”

       

       조졌다.

       

       “일!”

       

       먹힌다…!

       

       “다, 다 들었어요…!”

       “그래, 순순히는 안 말하겠다 이거지. 그러면… 응?”

       “미안해! 엄마 미안해…! 나 먼저 간다아…!! 불효녀라서 미안해에……!”

       

       프레이는 참았던 눈물보를 터뜨리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질질 짜는 모습에 펜릴이 쩍 벌렸던 아가리를 닫아버렸고, 뒤이어 아카샤가 멀뚱거리는 눈으로 꼬맹이와 제 언니를 번갈아 보았다.

       

       “하아, 이 무지렁이들.”

       

       에테르는 심연보다도 깊은 한숨과 함께 꺼졌던 조명을 켰다.

       

       

       **

       

       

       아카샤와 에테르는 처음부터 예측하고 있었다.

       

       탐구욕이 강하고 체향에 민감한 요호족은 방과 후 반드시 이곳을 찾아올 것이라고.

       

       그러니 이 자리에서 프레이를 입막음해 두려는 심산으로 이런 이벤트를 준비했었다.

       

       그랬었는데.

       

       [끼잉, 낑.]

       

       양심에 가책을 느낀 것인지 펜릴은 구석에 처박혀서 납 뼈다귀나 핥고 있었다.

       

       거구에 맞지 않는 짓처럼 보였지만 뭐 어쩌겠는가.

       

       1군단에서 빌린 육식동물형 마수는 한 개체도 빠짐없이 수인족을 직접 해할 수 없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있다.

       

       이게 다 요르문간드 때문이다.

       

       “뭐, 뭐야. 너희 둘이 쌍둥이였어?”

       

       프레이는 눈물을 닦아내며 에테르의 설명을 차근차근 들었다.

       

       사실 적당히 겁만 주면서 엿들은 걸 숨기나 안 숨기나 파악해 볼 생각이었는데, 예측한 것과 다른 대답이 나와서 난처해졌다.

       

       “죽을 뻔했는데도 구라를 안 풀었군.”

       “그러게.”

       

       프레이는 에테르가 마수라는 걸 확실하게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펜릴을 앞세워 협박을 시행했을 때 어떻게든 살기 위해 아무것도 못 들었다고 거짓말을 할 것이리라 판단했다.

       

       그런데 순순히 자백하며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다니.

       

       울음보를 터뜨린 건 유아다운 반응이었지만, 선택 자체는 의젓하다고 칭찬해도 될 만큼 어른스러웠다.

       

       어느덧 진정한 프레이가 말문을 열었다.

       

       “에테르, 우리한테 다시 안 오는 거야…?”

       “뭐?”

       “틸레트로 돌아와…. 하스펠트 공작님이 네 신원을 보증해 주시겠대. 그러니까….”

       “참 나.”

       

       그 말을 믿으라고?

       

       이미 비슷한 레파토리로 1천 번이나 당했는데?

       

       “그때 알려줬던 걸 까먹기라도 한 거냐? 난 마수다. 처음부터 마왕군이었어. 너희와는 적대 관계, 알겠나?”

       “그치만….”

       “앞으로 몇 개월 내에 저기 보이는 세계수는 우리 손에 불태워진다. 너도 들어서 알겠지. 그러니까 살고 싶으면 얼른 자퇴하거나 해.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기라도 했다간…. 알지?”

       

       할 말은 이게 전부였다.

       

       에테르는 프레이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나가.”

       “아….”

       

       프레이는 주춤주춤 일어나서 뒤로 물러났다. 귀와 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로 슬그머니 백 스텝을 밟았다.

       

       새벽이슬처럼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에는 회한과 슬픔이 그들먹하게 담겨 있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에테르가 나가라고 하니 차마 하지 못하고 나가려는 것만 같았다.

       

       “…내일 봐.”

       

       결국 프레이는 문 앞에서 우물쭈물하다가 그런 말 한마디만 남기고 떠났다.

       

       타타탓, 하고 계단을 재빠르게 내려가는 소리가 멀어져갔다.

       

       에테르는 의자에 걸터앉은 채로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빌어먹을.”

       

       분명히 다 털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심장에 대못을 꽝꽝 박아버린 것처럼 저릿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어떡할 거야?”

       

       아카샤가 다음 계획을 물었다. 이에 에테르는 확신을 담아 답했다.

       

       “저 계집은 분명히 오늘 일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렇겠지.”

       “그렇게 해서 누구라도 날 신고하려 한다면…….”

       

       그렇다면 후련하게 모든 걸 정리할 수 있겠다.

       

       프레이 일행과 에테르 자신은 적대관계인 것이 확실시되겠지. 하여 자신이 정령에게 죽든, 자신이 정령들을 통째로 구워버리든, 한쪽은 멸망하겠지. 세계수가 불태워지든, 마왕군이 먼저 불태워지든 하겠지….

       

       “어디 어떻게 되나 보자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도박수를 던지기로 했다.

       

       비록 첫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아직 실험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난 신고한다는 것에 한 표 걸지. 아카샤, 미리 짐 쌀 준비해라.”

       

       에테르의 비릿한 웃음에도, 아카샤는 ‘글쎄’ 하며 넘겨짚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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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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