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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7

    헬레나는 생각으로만 하려고 했던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에 굉장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도망치고 말았다.

    원래 헬레나가 그렇게 몸이 빨랐던가?

    당황스러울 정도다.

     

    그리고 루크는 헬레나가 남긴 이야기에 대해 생각하느라 머릿속도 꽉 찬 상태였다.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그 말을 내뱉은 직후 헬레나는 격해진 감정을 추스리지도 못하고 빠르게 도망치듯 카페를 나갔으니 말이다.

    거짓말을 하려고 했다면 조금 더 자세히 상황을 지어냈겠지.

    그렇게 말을 던지듯 꺼낸 뒤 도망칠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아이가 나에게 반했다고……?”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일이었다.

     

    물론 루크 역시 살면서 몇 번 정도 구애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따지고 보자면 많은 편이었다.

     

    정치적으로, 이루시 가문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혜택이었으며, 대마법사인 자신과 끊기 어려운 연줄을 댈 수 있는 가장 간편하고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루크는 그 모든 제안을 거부했다.

     

    그들이 제안하는 모든 것들에 그닥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은보화? 절세미녀? 모두 쓸모없다.

     

    자신에게도 돈 따위는 얼마든지 있었다.

    10서클에 달한 대마법사의 재보는 드래곤의 레어에 필적할 수준이니 말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재보를 더욱 늘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미녀 역시도 자신의 삶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법사인 루크는 어떤 미녀가 육체적인 유혹을 해오더라도 성욕에 휩싸여 넋을 놓는 일 따위는 없었다.

    어떤 미녀의 나신도 아름다운 조각상을 보는 것 이상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한, 루크는 자신의 후손을 남기는 것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후손을 낳는다면 필시 차대 가주로서 극진한 대접을 받거나, 왕족에 준하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일견 굉장한 일이다.

     

    하지만, 그 아이가 정말 자신보다 나을 거라 단언할 수 있을까?

     

    혹여 잘못된 생각을 품어, 레니에의 왕국에 쓸데없는 파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태어난 아이의 머릿속에 세뇌를 심어 반드시 훌륭한 인물이 되도록 만들 수도 있긴 하지만,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또 굳이 그렇게 해봤자, 그 아이를 주변에서 가만 둘리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계에서 자신의 후손은 불필요했다.

     

    현재 자신이 없는 이루시 가문만 하더라도 이미 국가에 너무나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게다가 거대한 마와 싸운 왕국의 정세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레니에가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케일이 목숨을 걸고 지킨 레니에의 과업을 허사로 만들 생각은 정말이지 요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루크는 결국 가문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작은 마을에 은거했다.

     

    자신의 모든 일거수일투족, 심지어는 작게 내뱉은 혼잣말 한마디조차 호사가들에게 어떤 식으로 가공되고 퍼져나가게 될 지 생각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으니까.

     

     

    그 뒤로는 당연히 이성적인 교류가 있을 틈이 없었다.

    그 때는 마법으로 모습도 바꾼 상태였다.

    다 늙어 빠진 노인에게 어떤 매력이 있었겠는가?

     

    때문에, 루크는 일반적인 남녀 간의 관계, 연애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었다.

     

    과거 레니에가 정말 재미있다며 호들갑을 떨던 연애소설 따위를 아무리 읽어봐도 그 감정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루크의 입장에선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활자 나열일 뿐이었다.

     

     

     

    그렇게 지금에 이른다.

     

     

    뭐, 10살이면 과거엔 어른이나 다름없는 나이이기는 했다.

    10살부터 정해진 짝과 혼약을 하는 경우도 그 때는 당연히 흔한 일이었고.

     

    자신의 현재 육신이 여성이라는 점 역시도 루크는 손쉽게 인정한다.

    비록 마음에는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 그렇지 않나.

     

    하지만, 자신이 ‘애정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어린아이의 몸이기에 별로 그런 점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을까?

     

    이 몸도 어린아이에게는 ‘이성’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었다.

     

    생물학적인 의미의 여성이 아닌, 사회문화적 의미의 여성으로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는 단 한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루크는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다.

     

    가끔 아이들이 귀여워 충동적으로 행하는 행동을 제외하면, 그동안 루크의 모든 행동은 이성적인, 감정이 철저히 배제된, 마법사적 관점에서 효율과 예의를 차린 행동이었을 뿐이다.

     

    시루드의 반응도 단순히 이 몸이 ‘생물학적인 의미의 여성’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웃지못할 해프닝 정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고, ‘사회문화적인 의미의 여성’이기 때문에 생긴 감정으로 벌어진 일이라면?

     

     

    그러고보니 이상하기는 했다.

     

    시루드는 최근 자신을 지나칠 정도로 잘해주지 않았던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생일파티의 준비를 도와주고, 월영석이라는 값비싼 선물을 건네 주고…….

     

    단지 자신과 친구사이이기에, 또한 동시에 사제관계이기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시루드는 자신에게 직접 ‘사랑한다’고 표현한 적도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러니 루크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만약 그랬다면 당연히 거절했을 것이다.

     

    자신은 시루드의 그러한 감정에 보답할 수가 없다.

    애초에 누군가와 그런 관계를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은 귀엽다.

    단지 그뿐, 연애의 대상으로는 당연히 생각조차 품을 수 없다.

     

    자신의 몸은 이리 어리더라도, 그 속에 담긴 생각과 기억은 분명 5000년 전의 대마법사였던 그였으니까.

    그러니 11살짜리 남자아이에게 받는 연심은 곤란할 뿐이다.

     

    “하아…….”

     

    루크는 한숨을 쉬었다.

     

    ‘더욱 마음이 깊어지기 이전에 알아차린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나마 다행인 점은, 시루드는 아직 어린아이라는 점이었다.

    아이들의 감정은 상황에 따라 급변한다.

    어제 크게 혼내더라도, 바로 다음날 사탕을 준다면 배시시 웃어버리는 것이 바로 어린아이들의 귀여운 점이 아닌가.

     

    시루드에겐 되도록 빠르게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루크는 다짐했다.

     

    “그래, 다음주에 아카데미에 가게 되면 바로 시루드와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거절을 해야 한단 말인가?

    루크는 타인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배려하며 거절하는 법을 몰랐다.

     

    과거엔 그런 마음을 거절할 때에 굳이 타인의 감정을 배려할 필요가 없는 위치에 있기도 했고, 타인의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도 없었다.

    시루드의 면전에 대고 다 필요 없으니 사라지라고 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따라서 옛 기억은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연심을 거절한다고 해서 시루드와 연을 끊을 생각은 없으니까.

     

     

    ‘어쩐다, 시루드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거절하고 싶지는 않은데…….’

     

     

    누군가의 마음이 이토록 어려운 것이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하는 방법이 제일 괜찮을지 모르겠다.

     

    이럴 바엔 차라리 좋아하는 척이라도 해줘야하나 싶다.

     

    또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용하면 시루드의 경지를 비약적인 속도로 끌어올리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다이튼과 예르나를 보아오건대, 그 감정은 강한 동기가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의지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지.’

     

     

    거짓된 관계는 오래갈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자신은 ‘날 사랑해?’라는 질문에 대답조차 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그건 더욱 큰 상처로 남을 뿐이다.

     

    “끄응…….”

     

    그 어떤 난제보다 어려운 문제였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으니, 문득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눈에 띄었다.

     

    “이것도 그저 생일 선물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만약 이런 가치가 큰 선물을 건넨 이유가 자신을 향한 마음에 기반한 것이라면 돌려주는 것이 맞겠지…….

    그 정도로 염치없는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건 간단히 포기할 수 있을 정도의 물건도 아니다.

     

    무려 월영석이 아닌가?

    어쩌면 공간을 벼릴 수 있는, 과거 자신이 남긴 아공간의 문을 열어젖힐수 있을지도 모르는 열쇠다.

     

    적어도 연구가 끝날 때 까지는 말을 하는 것을 미뤄야 하나, 하고 이기적인 생각까지 들 정도로…….

     

     

    하지만, 그런 불경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퍽!

     

    앞이 아닌 목걸이를 보며 걷던 루크는, 마찬가지로 앞이 아닌 휴대폰을 보며 뛰어오던 남성을 피하지 못했다.

     

    “윽?”

     

    그리고, 남성에 비해 훨씬 가벼운 루크는 그 힘에 밀려 중심을 잃었다.

     

    -콰당!

     

    중심을 잃은 몸은 그대로 뒤로 쓰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대충 어깨에 걸쳐 두었던 가방이 떨어져 내용물이 바닥에 마구 쏟아진다.

     

    “아극!?”

     

    엉덩방아에 이어진 것은 척추뼈를 타고 올라오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 할 정도의 강렬한 고통.

    숨이 가빠지고, 식은땀이 흐르고, 눈물마저 찔끔 나온다.

     

    강한 고통 탓에 상념에서 강제로 빠져나오게 된 루크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외쳤다.

     

    “대체 누군가? 거리에서 앞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이렇게 뛰어다니는 사람이!”

     

    자신 역시 앞을 보지 않은 것이기에 일정의 책임은 있다고 보지만, 적어도 거리에서 달리기를 할 거라면 그는 앞을 제대로 보았어야 하지 않은가?

    자신은 안 그래도 생각해야 할 것이 투성인데 말이다.

    그러니 자신의 분노는 정당했다.

     

    “으아, 미안! 미안!”

     

    가방에서 쏟아져나온 내용물 사이에서 눈가에 눈물을 달고 원망이 가득한 눈초리로 올려다보는 아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량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주변의 시선은 너무나 싸늘했다.

    남성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을 담은 목소리로 허둥지둥 말했다.

     

    “저기, 그, 괜찮아? 일어날 수 있어? 그, 미안해!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다가 그만…….”

    “문자는 걸으면서 보면 되지, 대체 왜…….”

    루크는 그제서야 자신을 들이받은 남성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얼굴이 꽤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마르코? 마르코 맞느냐?”

    “응? 루크……? 너, 루크였어?”

     

    마르코 알비.

     

    그는 과거 자신에게 이어폰을 비롯해 이 세계의 마법체계, 그리고 조기졸업제도에 대해 알려준 소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시만난 마르코!

    아, 참고로 당연히 판치라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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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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