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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7

       다음날 오전, 다섯 곡예사는 각자의 악기를 들고 사법 극장에 모였다.

         

       홀 안에는 사도 3명을 제외한 다른 사람은 없었다. 오늘 있을 합주는 어디까지나 키르쿠스를 잠재우기 위한 의식. 일반 관객은 불필요했다.

         

       “다들 잘들 잤나? 식사는 충분히 했고? 화장실 갔다 오는 걸 잊지 마. 그 3개가 좋은 소리를 내는 기본 요소야.”

         

       사도 스트라우스가 지휘봉을 들고 단상 위에 섰다. 그리고 잇따라 다섯 명이 차례차례 무대 위로 올랐다.

         

       보컬에 엘라.

       플루트에 카렌.

       베이스에 레이나.

       피아노에 마야.

       드럼에 루엘로.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우리 딸 파이팅!”

         

       미노바가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루엘로는 아빠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북채를 쥐었다.

         

       드럼 세트는 그녀의 몸에 비해 상당히 컸다. 6살짜리의 체격으로 여러 방향에 있는 드럼들을 치기에는 버거워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머리카락을 이용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양옆으로 뭉쳐 마치 문어 다리처럼 꿈틀대더니 그걸로 북채를 감아올렸다.

         

       “저 나이에 저 정도 ‘요가’라니. 아무리 봐도 믿기 힘들군.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홉스가 총 4개의 북채를 휘두르며 몸을 푸는 루엘로를 보고 혀를 찼다.

         

       요가는 주로 고행하는 수도사들에게 나타나는 힘이었다.

       묵언 수행을 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입을 열지 않고 말을 전달할 수 있게 되거나, 바늘로 몸을 찌르는 고통을 행하던 사람이 피부가 쇠처럼 단단해지거나, 한겨울에 맨몸으로 얼음 동굴에서 도를 닦던 사람이 몸에서 열을 내게 되거나 하는 것이 그 예였다.

       

       무대에 서는 사람이 ‘요가’를 터득하는 것은 드물지만 종종 있는 일이었다. 많은 재주가 훈련 과정에서 극기(克己)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잘 발달한 요가는 마법과도 같았기에 종종 자신이 터득한 요가를 인스피라로 착각하기도 했다.

         

       루엘로의 움직이는 머리카락을 요가로 하자는 것은 클라라의 아이디어였다. 그녀는 어제 오후에 한여름 밤의 서커스에서 돌아와서는 북채를 휘두르는 데 고생하고 있는 루엘로를 보고 그렇게 조언했다.

         

       불치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요가를 터득했다는 것은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덕분에 루엘로는 삼손에 대한 것을 드러내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머리카락을 휘두를 수 있었다.

         

       “최고다! 드럼 최고! 우리 루리 짱!”

       “아빠……그만 좀 해…….”

         

       미노바의 팔불출 짓거리에 루엘로는 곤혹스러워했다. 다른 사람들도 합숙하는 동안 본 게 있어서 그런지 이제는 그냥 혀를 찼다. 그러나 딱 한 명 둘 사이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레이나였다.

         

       그녀는 객석 쪽을 둘러봤다. 로드 판타스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절해 있던 그는 오늘 아침에 매의 둥지를 떠나기 직전에야 정신을 차렸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이곳까지 끌려왔다.

         

       “제자에겐 내가 사정을 설명해줄 테니, 너희들은 연주나 해라.”

         

       사도 다이아몬드 퀸은 그들이 이곳에 오자마자 그를 데리고 지하로 내려갔다. 잠든 혼돈에 대한 것이라면 그냥 말로 설명해줘도 되지 않나 싶었지만, 그녀는 제자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 녀석이 어디 남의 말을 그냥 믿는 놈이더냐? 제 눈으로 봐야 믿을 거다.”

         

       시간상 아버지가 지하에 도달했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레이나는 그가 알 진실이 자신이 알게 된 진실보다 더 충격적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마신이니 혼돈이니 하는 것은 어차피 그녀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녀가 알게 된 진실은 그녀의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현을 튕기는 것을 잊고 그것이 살을 파고들 때까지 꽉 쥐었다.

         

       “베이스, 딴생각하나!”

         

       스트라우스의 지적에 레이나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아무도 자신이 지금 짓고 있는 표정을 보지 못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녀는 우는 여자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엄마와 닮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부심을 느꼈던 이 얼굴은 이제 그녀에게 있어서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엉클어진 현을 정비하면서 가면을 한 번 쓰다듬었다.

         

       -얼굴을 보이는 게 부담스러우면 차라리 이것을 쓰고 가세요.

         

       이 가면을 선물해준 사람이 보고 싶었다. 그의 품에 안겨 그녀의 마음에 응어리진 것을 모두 토해내고 싶었다.

         

       그때, 마야가 피아노 건반을 쾅 하고 내리쳤다. 그녀는 싸늘한 눈으로 루엘로를 흘겨봤다.

         

       루엘로가 아빠의 민망한 응원을 제지하기 위해 북채를 휘두르다가 그만 놓쳐버린 것이 마야의 뒤통수를 때린 것이었다.

         

       고작 어린애의 실수였지만, 그녀의 손에 담긴 힘은 어린애의 것이 아니었다. 북채는 화살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날아가 마야의 뒤통수에 두개골이 금이라도 간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미, 미안해, 마야 언니…….”

         

       루엘로가 사과했지만, 마야는 무시하고 다시 손을 푸는 데 집중했다. 레이나도 그렇고 분위기가 험악하게 굴러가자 신나게 잘 치던 카렌마저 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그만 손이 꼬여 버렸다.

         

       “무슨 짓들이야, 왜들 그래?”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한 엘라가 방방 뛰는 스트라우스를 제지하고 나섰다.

         

       “우리 조금만 쉬었다가 시작할까? 아직 아침 먹은 게 소화가 덜된 거 같네. 나 화장실도 다녀오고 싶고.”

         

       그녀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악기에서 손을 뗐다. 엘라는 네 사람의 기분이 모두 좋지 않은 것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다들 저기압이군요.”

       “그러게. 이 장소가 문제인 거 같아. 이상하게 나도 신경이 곤두선단 말이야.”

         

       그녀는 형벌이 집행되었던 무대와 이 아래에 있는 존재를 떠올리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연주에는 문제가 없을까요?”

       “물론이지. 별로 어려운 곡도 아니고. 스트라우스 사도님이 우리가 연습하는 걸 듣고 계산해봤는데 이 위치에서 우리 실력 정도의 산 자들이 연주하면 1분 연주에 눈 하나 정도 감길 거 같대.”

       “1분에 하나라……. 그럼 대략 20분 정도면 끝나겠군요.”

         

       허수아비는 어제 지하에서 봤던 눈의 개수를 대강 헤아리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지.”

       “그리울 겁니다, 엘피 양.”

         

       허수아비가 솔직한 심정을 담아 말했다.

         

       지상으로 돌아가고 얼마 있지 않으면 그녀는 다시 기억을 되찾을 것이다. 그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 그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어쩌면 저주 역병 사건이 있기 전보다 호감도가 더 떨어질지 몰랐다.

       그러기 전에 원더스타인이라는 껍질을 벗고 그녀와 진심을 나눈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좀 더 있고 싶지만 어쩔 수 없지……. 하아, 그래서 말인데……음……있잖아, 아저씨…….”

         

       그녀는 상당히 말을 꺼내길 주저했다. 항상 당당하게 할 말 하는 그녀가 이렇게 머뭇거리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말하세요. 괜찮습니다.”

       “그러니까……음, 연주 끝나고, 돌아가기 전에 한 가지 질문할 게 있는데, 솔직하게 답해줄래?”

         

       이렇게까지 주저하면서까지 궁금한 게 무엇일까.

       허수아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해도 되는데요.”

       “아니, 괜히 들었다가 합주에 집중 못 할 것 같아서. 어제처럼 까먹었다는 말로 얼버무리면 안 돼. 솔직하게 답해줬으면 해. 부탁이야. 알았지?”

         

       그녀의 절박해 보이기까지 한 요청에 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허수아비는 그녀가 어쩌면 자신이 원더스타인이 아니냐고 물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퀘스트는 정체가 들켰을 때 실패하는 거지, 의심받을 때 실패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물어온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허수아비는 고민할 것도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그는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꼭 퀘스트 때문만은 아니었다.

         

       얼마 안 있어 몸풀이가 끝나고 합동 연주가 시작되었다.

       키르쿠스의 자장가.

       트릴 트릴로 시리즈의 메인 OST.

         

       허수아비는 콧노래로 그것을 흥얼거리며 홀에서 나왔다.

       극장 입구에는 어느새 구해온 술로 미노바와 홉스가 한잔 씩 걸치고 있었다. 집에 돌아간다고 생각하니까 그들도 신난 것 같았다.

         

       허수아비는 첸 호크에게 다가갔다. 그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곳을 호위하는 경비병력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무대에 설 때 입었던 매 가면에 깃털 달린 날개옷 복장을 하고 있었다.

         

       “경비대로 일할 때는 나비 가면에 제복을 입는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하하, 나이가 드니까 페르소나를 전환하는 데 하루가 가까이 걸리더군. 자네들이랑 함께 있으면서 미처 페르소나 전환 의식을 치르지 못했네. 규정은 그렇지만 뭐, 어떤가. 이제 나도 오늘이면 소멸할 텐데.”

         

       허수아비는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오늘이었습니까?”

       “그렇다네.”

       “그럼 안에 들어가서 연주라도 들으시죠?”

       “괜찮네. 나는 어제 저들이 연습하는 걸 많이 들었어.”

         

       허수아비는 그에게 무언가 위로의 말을 전하려다가 말았다. 이곳은 원더랜드. 죽음이 농담처럼 쓰이는 곳이었다. 감상적인 이별 따위 어울리지 않는다.

         

       “덕분에 잘 머물렀다 갑니다. 재밌었습니다.”

       “나도 즐거웠네. 마지막 가는 길에 좋은 추억 하나 쌓고 가는군.”

         

       그때, 두 사람 사이로 닭대가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꼬끼오! 어이, 우리도 당신들에게도 고마웠어! 우리 딸, 아니지, 우리 딸들!”

       “우리 동생들!”

         

       뒤에서 홉스가 큰소리로 외쳤다.

         

       “돌봐줘서 고마웠네! 자자, 한 잔씩 받으라고!”

         

       미노바와 홉스는 얼굴이 잔뜩 달아올라 있었다. 그들이 앉았던 자리를 보니 마신 지 얼마 됐다고 술병이 십여 개나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어제 둘이서 저승의 술을 이때 아니면 언제 마셔보겠냐며 시시덕거리던 것을 실천에 옮긴 모양이었다.

         

       허수아비는 두 사람이 내미는 술을 받아마셨다. 호크는 근무 중이긴 했지만, 그 역시 이제 오늘이면 이곳을 떠나는 사람이라 그런지 흔쾌히 잔을 받아들었다.

         

       원더랜드에서 파는 술이라 그런지 취기가 혼에도 작용했다. 허수아비는 금방 기분 좋은 알딸딸함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네 사람은 미노바의 제안에 힘입어 다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어제 휘파람만 있는 보컬 분량에 충격을 받은 엘라가 스트라우스의 자장가에 붙인 가사였다.

         

       그렇게 한 곡 부르고, 한잔 또 걸치고, 두 곡째 부르고, 또 한잔 걸치고, 세 곡째 부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커다란 음성이 메아리쳤다.

         

       -손님, 여기는 들어오는 곳이 아닙니다!

       -손님, 여기는 들어오는 곳이 아닙니다!

       -손님, 여기는 들어오는 곳이 아닙니다!

       -손님, 여기는 들어오는 곳이 아닙니다!

         

       우렁찬 목소리의 기계음.

       그것은 분명 카드순의 외곽을 경계하는 정령인 바운서의 것이었다.

         

       그것의 목소리가 카드순 전역에 울릴 만큼 크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들도 지난 며칠 동안 이곳에 지내면서 간간이 울리는 그것을 듣고는 했다.

       그런데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들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때, 대계단 아래에서 경비대원 한 명이 뛰어 올라왔다.

       그 역시 호크와 같은 조장이었다. 일전에 엘라를 붙잡았다가 놓친 적 있는 그 말 대가리였다.

         

       “조장! 매 조장! 침입자다!”

         

       침입자라는 말에 호크는 잔을 내려두고 벌떡 일어났다.

         

       “설마 또 산 사람이?”

       “아니야. 어비스 쪽에서 쳐들어왔어!”

       “다른 마신의 군대입니까?”

         

       허수아비의 질문에 말 대가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마신 놈들이 고용한 마귀 용병들이오!”

       “마귀? 어떤 놈들입니까?”

       “그건…….”

         

       그때, 엄청난 폭음이 원더랜드의 지반을 뒤흔들었다.

       쿵.

         

       경비대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술에 취해 있던 세 사람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비행 곡예로 단련한 덕에 이 정도 흔들림에 익숙한 호크는 잠시 비틀거리고 말았다.

         

       “적은 어디에 있나?”

       “사방에서야! 원더랜드 외곽 곳곳에서 나타나더니 입구 쪽으로 몰려왔네! 나는 입장권의 빠른 이동으로 앞질러서…….”

         

       그때, 또다시 폭음이 울렸다.

       쿵.

       동시에 카드순으로 들어오는 아치문의 장막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저적. 쩌적.

         

       균열이 번져가는 반투명한 유리막 너머로 셀 수도 없는 수많은 그림자가 몸을 날려 문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누군가 사도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입을 떼는 순간, 아치문의 장막이 무너져 내렸다.

       눈부신 유리 파편이 산산이 흩어졌다.

       그리고 귀를 찌르는 것 같은 괴성이 쏟아졌다.

         

       -끼에엑

       -끽끽끽

         

       토끼 머리에 엘크의 뿔.

       날카로운 발톱에 산양의 것과 닮은 뒷다리, 거기다 채찍 같은 꼬리까지.

         

       허수아비는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도 이 세계에 와서 만난 적이 있는 놈들이었다.

         

       수만 마리의 자카누바가 카드순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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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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