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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7

        

         

       잠을 자는 듯한 숨소리.

       그리고 그 숨소리에 맞춰 이완되는 근육.

         

       “스으—으–”

         

       어린아이가 꿈에서 본 것을 그린 것 같은 문양의 위에서 진성은 편안하게 힘을 빼고 누웠다.

         

       그는 팔다리를 늘어뜨리고, 약초를 태운 연기로 향을 입힌 떡갈나무 토막에 머리를 얹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딱딱한 베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잠이 들기는 무리였을 것이나, 수면을 도와주는 효과가 있는 약초의 향이 은은하게 코에 스며들고 몸에 퍼지며 그의 정신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잠이 들었을 때와 흡사한 호흡과 이완되는 근육 역시 그가 잠으로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한 도움을 주었다.

         

       진성은 엄습하는 수마를 이기려 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맡겼고, 천천히 감기는 눈꺼풀을 거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눈을 꼬옥 감았다. 그리고 얇은 한 겹의 눈꺼풀이 눈을 덮자 야트막하게 흘러들어오는 빛의 강약만이 눈에 들어왔고, 그 빛 역시 진성의 의식과 함께 서서히 검게 변했다.

         

       검게.

       서서히 검게.

         

       “스으—으—”

         

       검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진성의 정신은 무거워졌다.

       어둠은 진흙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정신에 덕지덕지 들러붙었고, 추를 매단 제물처럼 한없이 깊은 정신의 심해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빠진다.

       내려간다.

       끊임없이.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속도는 점차 시간이 갈수록 가속화되고, 진성이 외우는 잠이 든 사람의 호흡을 닮은 주언은 정말 잠에 빠진 사람의 그것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근육은 한없이 풀어져 무방비하게 변하고, 정신은 깊게 아래로 가라앉아 목적지에 도달하였다.

         

       정신이 떨어지는 것이 멈춘 것은 어중간한 곳.

       정신의 깊은 곳도, 얕은 곳도 아닌 그 중간에 있는 어딘가.

         

       그 중앙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작게 빛나는 불똥이었다.

         

       검은 도화지에 반짝이 펜으로 점이라도 찍은 것처럼 작게 빛나는 그것은 진성에게 이것을 보라는 듯 한껏 빛을 뿜어내었고, 진성의 정신은 그 빛을 이정표로 삼아 그곳으로 천천히 헤엄쳐갔다. 그리고 그렇게 가까운 듯 먼 듯 애매한 거리에 있는 점은 진성의 시야에 들어왔고, 마침내 그 형상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자그마한 불꽃.

       불똥조차 되지 못할 티끌.

         

       하지만 분명히 타오르고 있으며, 화기(火氣)를 품은 채 진성과 연결되어 있었다.

         

       화기를 품고 있으되 멀쩡히 생명을 유지하는 것.

       진성의 몸에 함께 살다가 진성의 명에 따라 다른 사람의 몸속으로 파고든 것.

         

       이것의 이름은 바로 흡충(吸蟲)이라고 불리는 기생충이었다.

         

       과거에는 디스토마(distoma)라고 불리며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았던 기생충이며, 애벌레 상태일 때 피부에 파고들어 사람의 몸에 감염될 수 있는 위험한 녀석이기도 했다.

         

       이 흡충은 애벌레일 때 세르카리아(cercaria)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물속을 헤엄쳐 다니다가 물에 들어오는 사람의 피부에 파고든다. 그리고 꼬리를 떼어버린 뒤 자신이 머무르는 곳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거기서 성체로 성숙하여 번식하기 시작한다.

         

       악수를 할 적 진성의 손에서 떠나 윌리엄의 손바닥 피부 안쪽으로 파고든 세르카리아는 순식간에 뇌 신경에 자리를 잡았고, 훌륭하게도 화기를 그대로 머금은 채 성체로 성숙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리를 잡은 성충은 진성의 몸에서 나왔던 것.

         

       ‘보아라. 어미의 품을 떠나 훌륭히 자리를 잡아낸 자식아. 본디 머나먼 길을 떠나 일가를 세웠으되 그 뿌리는 변치 않으니! 한 열매에서 나온 씨앗이 집을 잊지 못하고, 하늘로 올라간 흙먼지가 땅을 잊지 못하여 땅에 떨어져 내리듯 너 역시 제 어미의 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

         

       진성은 불씨를 피워올리는 성충을 보며 정신으로 외쳤다.

       방울이 없음에도 방울이 있는 것처럼 흔들어 방울 소리를 내었고, 적막에 감싸인 정신의 어둠을 매질로 삼아 자신의 의지를 녹여내어 정신 속에 방울 소리를 내었다.

         

       그는 입이 없음에도 소리를 쳤고, 눈이 없음에도 성충을 보았다.

       성충의 몸과 진성의 육신은 저 먼 곳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는 거리를 초월해 성충과 마주하였고, 오직 자기 몸에서 나왔다는 이유 하나로 성충과 교감하여 실낱같은 끈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실은 모든 것을 초월했다.

         

       시간.

       공간.

       육신.

         

       진성의 정신은 그 모든 것을 무시해버렸다.

         

       그의 정신은 정신에 가라앉아 있으되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가벼웠고, 어둠에 둘러싸여 있으되 그 무엇도 속박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로웠고, 무겁고 끈적거리는 어둠을 진흙처럼 덕지덕지 매달았음에도 수은 속에서 느긋하게 물장구를 치는 괴물처럼 유영할 수 있었다.

         

       그는 정신의 바닷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다른 생명과 연결한 뒤 투사하였고, 미미하기 짝이 없는 데다가 본래부터 진성에게 종속되어 있던 흡충은 제대로 의지도 내보이지 않은 채 그대로 진성에게 굴복하고 본능의 밑바닥까지 끌어모아 모든 것을 진성의 손아귀에 쥐여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육체가 다르되 정신만은 어미의 품으로 돌아온 흡충을 손아귀에 쥐었으니 이는 그 육신의 통제권마저 손에 들어왔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바.

         

       진성은 흡충의 정신을 더듬어 육체에 도달하였고, 그 육신의 위치를 알아내었으며, 그 육신이 자리 잡은 뇌 신경에 개입하는 힘마저 얻게 되었다.

         

       화기(火氣).

       불은 여러 개를 머금고 있으며, 불을 머금은 것 역시 여러 개인 바.

         

       ‘땅에서 타오르는 불이 하늘을 그리워하듯 하늘에서 피어나는 불은 땅을 그리워하여 내리꽂히니. 오, 불의 뱀이여. 빛을 머금은 불의 뱀이여. 화산의 거대함을 머금고 대지의 파편과 함께 하늘로 치솟고, 빛을 머금고 땅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불꽃이여.’

         

       진성은 강력한 의지로 흡충이 몸에 품고 있는 기운을 변질시켰다.

         

       타오르는 불꽃은 번쩍이는 빛이 되었고, 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뇌기(雷氣)를 머금은 흡충은 뇌 신경에 자리 잡은 채 칩(Chip)이 되었다.

         

       물론 칩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해서 진성이 그것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래의 과학자들이 매진해서 만들어낸 뇌에 삽입하는 칩(Chip)과 단순히 뇌기를 품은 자그마한 벌레 하나가 어찌 같은 선상에 놓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진성이 원하는 것은 아주 최소한의 것.

       칩(Chip)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생충을 자그마한 구멍으로 만들어 그곳을 엿보려고 하는 수준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리고….

         

       치직.

       치지직.

         

       진성의 시도는 성공했다.

         

       흡충이 만들어낸 자그마한 틈새가 진성과 연결되었고, 정신의 어둠을 노이즈로 물들이며 서서히 윌리엄의 꿈을 눈앞에 드러내기 시작했다.

         

       치직.

       치—직.

         

       꿈틀대는 노이즈는 하얀색과 검은색으로 이리저리 움직이기를 반복하며 번져나갔고, 그것이 어느 정도 움직이자 하나의 형태가 되었다.

         

       그것은 알파벳이었다.

         

       『 크—-란 —다 』

         

       알파벳은 표류라도 하는 것처럼 노이즈와 함께 떠다녔다.

       하지만 그렇게 떠다니다가도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에 도달하면 그 자리에 붙은 것처럼 딱 붙었고, 뒤집히거나 비뚤어지는 것에 상관없이 그 자리에 틀어박혔다.

         

       그 모습은 마치 신문 활자를 오려서 만들어낸 편지 같은 느낌이었다.

         

       『 크리스마스라는 것은 아주 엿 같은 녀석이다. 』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글자는 흩어지며 영상이 되었다.

       소리와 글자를 머금은 영상이.

         

         

         

         

         

        * * *

         

         

         

         

       크리스마스라는 것은 아주 엿 같은 녀석이다.

         

       영국의 빌어먹을 날씨만큼이나 말이다.

         

       옛날 런던에서는 스모그가 땅에 자욱하게 껴서 안개처럼 변했다고 했던가?

       한 모금을 마시면 기침이 나오고, 계속해서 들이마시면 폐가 아작이 나서 죽어버리는 죽음의 안개라고 했었지.

         

       그 빌어먹을 스모그는 먹구름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기분을 잡쳐놓은 물건이 되었고, 독은 없지만 엿 같은 물방울을 떨어뜨리며 비싼 옷을 적시고 다른 사람들의 멋진 모습을 박살을 내놓는 끔찍한 마물이 되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저 끔찍한 마물만큼이나 더럽고 역겨운-

       생각하기도 싫은 물건이다.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오, 엿 같은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만 되면 집의 꼰대 새끼들은 나를 교회에 끌고 가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그러면 거기서 머리 벗겨진 까만 옷 입은 놈이 튀어나와서 나에게 말하지.

         

        – 오, 크리스마스에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그러면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비와 어미라는 작자들은 말한다.

         

        –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그리고는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한다.

       기부가 어떠니, 대주술 의식이 어떠니, 좋은 주술 재료를 기부해줘서 고맙다느니 하는 그런 수많은 이야기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열을 받게 되고, 꼭 붙잡고 있는 손을 뿌리치고 다른 곳으로 도망을 치고 싶게 만든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지루함에 짜증을 낼 수밖에 없고, 이리저리 난동을 부릴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신부가 나에게 말한다.

         

        – 심심한가 보구나. 네 또래의 아이들이 노는 곳으로 데려다주마.

         

       나름 자애로운 척, 아이에게 친절한 척을 하는 그 꼬락서니 하고는.

       저 신부복을 입고 있는 작자들은 허구한 날 나만 한 남자아이들을 추행해서 신문에 실리곤 하지.

         

       역-겨-운 위선자 같으니.

         

       위-선-자-!

         

       그렇게 그 끔찍한 위선자의 손을 뿌리치고 그 뒤를 따라가자면 구석진 곳에 있는 자그마한 방이 보인다. 그 방에서는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는 내 기분을 아주 엿같이 만들어주지.

         

       나는 이렇게 짜증이 나는데 너희는 왜 행복한지.

       하, 짜증 나는 애새끼들 같으니.

         

        – 여기서 잘 놀고 있으려무나.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역-겨-운 크리스마스!

       엿이나 먹으라지!

         

       그리고 그 방의 문을 열면 그것이 있다.

         

       크-리-스-마-스.

         

       아이들이 ‘더 크리스마스(The Christmas)’라고 부른 역겨운 조형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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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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