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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7

       그 이후로 쭉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분명히 나는 제대로 했는데.

        

       완벽하게 계획을 세워서, 내 처음 사랑과 같은 사람으로 거의 다 만들었는데.

        

       나만을 보게 만들었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바뀌어버린 걸까.

        

       어두침침한 방에서, 그녀는 계속 생각했다.

        

       어쩌면, 어쩌면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지를 만들어버렸는지도. 사라가 완벽하게 그 사람이 될 때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중간에, 사라가 충분히 비슷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만둬야 했는지도.

        

       저 암막 커튼 너머로는 낮에도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불 꺼진 방 안은 마치 해가 진 뒤처럼 어두웠다.

        

       오늘도 그녀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의 얼굴을 아무리 사진으로 남겨도, 아무리 영상으로 남겨도,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 사람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는 법이다. 어떤 생생한 기록이라도 직접 보는 것만큼 사실적일 수는 없다.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그녀가 있다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지난 만큼 나이를 먹어가는 그녀가 눈앞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데.

        

       아, 생각이 너무 깊은 곳까지 가라앉았다.

        

       그런데,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은 또 들지 않는다.

        

       어째서, 어째서 사라는 나를 선택하지 않았지? 어째서 도망가려고 했고, 어째서 나는 거절당한 거지?

        

       어두운 방 안에 있으니, 오히려 기억 속의 사라가, 그녀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녀가 무릎 위에 앉았을 때의 따뜻한 체온이, 웨딩드레스를 입었을 때 드러난 새하얀 어깨가, 부드러운 볼과 윤기 나고 매끄러운 머리카락이.

        

       분명, 그녀도 그랬어야 했다.

        

       어두운 방 안에서, 다른 모든 것과 차단된 곳에서, 그녀는 오로지 최나경만을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최나경을 볼 때마다 오로지 갈구하기만 해야 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모든 것이 틀어졌다.

        

       어째서? 누구 때문에?

        

       처음 떠오른 얼굴은 양혜인이었다. 분명 기계적으로 일만 하는 메이드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자길 배신한.

        

       ……아니, 아니다. 그 메이드가 사라를 꼬드겼을 리는 없다. 상대가 먼저 반응을 보이기 전에는 반응하지 못하는 성격인 그녀가 능동적으로 사라의 생각을 바꿔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누구지? 그녀 곁에 있던 그 아이들인가? 사라 입으로 직접 친구라고 했던 그 애들 때문인가?

        

       어떻게?

        

       소문은 분명 효과적이었다. 단순히 방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고 생각한다. 학교의 선생들을 매수하고, 일부 학부모까지 매수해가면서 소문을 부풀리고 사실로 만들어냈다.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그 학교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이상 그 ‘얻어낸 것’을 망칠 생각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만약 그 학교를 쉽게 들어간 학생들이라면 이미 잃을 것이 너무 많은 아이들이었다. 당연히 함부로 새로운 것을 시도할 리가 없다.

        

       셋 중 하나는 상속녀였지. 더더욱 이상하다.

        

       ……그렇다면, 그 변화가 시작된 곳은, 자연스럽게 그녀일 수밖에 없었다. 사라일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어떻게?

        

       사라가 대체 어떻게 변했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그녀가 어떻게 해서 변한 거지?

        

       딱딱딱.

        

       이가 부딪힌다.

        

       공포. 공포다. 지금 최나경이 느끼고 있는 감정은 공포였다. 사라가 영원히 바뀌어버렸을 거라는, 그래서 다시 한번 그녀가 자기 곁을 영영 떠나버릴 거라는.

        

       아마도, 새로운 기회 따윈 없다.

        

       사라야말로 그녀의 마지막 기회였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역시, 원인을 찾아서 제거해야 한다. 원인을 없애버려야, 그녀를 되찾아올 수 있었다.

        

       어떻게 얻어낸 기회인데, 어떻게 얻어낸 행운인데, 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아직 수가 남아있었다. 아직 사라의 친권은 그녀에게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원인이 뭐지?

        

       원인이 뭘까. 빨리 찾아내. 찾아내야 했다. 그래야, 그걸 제거할 수 있었으니까.

        

       사라가 그녀를 봤을 때 했던 행동들을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그녀에게 했던 말들을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그리고, 한가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당신이 죽였어!

        

       그래.

        

       사라를 죽였다고!

        

       그렇게 외쳤었다.

        

       그게 무슨 말이었을까?

        

       사라가 그렇게 괴로워했는데.

        

       사라는 괴로워했다. 그랬을 거다. 그렇기에 그녀만이 오롯이 사라의 희망이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왜?

        

       그렇게 외로워했는데!

        

       외로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만이 오롯이 사라의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왜?

        

       너를 그렇게나 사랑했는데!

        

       최나경은 그 말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랬다. 사라는 나를 사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렇게 만들려고 그토록 노력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왜?

        

       …….

        

       아.

        

       사라가 죽었다는데, 어떻게 살아있을까? 사람이 숨이 멎고 심장이 멎으면, 혈액이 굳어서 딱딱해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 몸이 차갑게 식고 관절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사람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그녀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사라는 살아있다.

        

       살아있는데, 죽었다?

        

       그게 무슨 뜻일까.

        

       생각해.

        

       생각해.

        

       생각해야만 해.

        

       무슨 뜻일까, 그게?

        

       “……아하.”

        

       순간 터무니없는 망상이 하나 떠올랐다.

        

       터무니없지만…… 없으리란 법도 없는 일이.

        

       몸이 죽지 않았다면, 죽은 것은 정신이다. 사라의 정신이 죽는 것을 본 이가, 사라 안에 있었다. 아마도 사라를 사랑했을 이가.

        

       누구일까.

        

       누구긴 누구겠어. 사라다. 사라 본인일 수밖에 없었다.

        

       사라가 죽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라가 탄생했다. 사라의 정신 속에서.

        

       “그렇구나. 그래. 그런 거였어.”

        

       아무런 근거는 없다. 어쩌면 그날 사라가 외쳤던 그 소리는, 반쯤 정신이 나가고 광란에 빠진 사라가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최나경은 그 보통에서 엇나간 사람이었다.

        

       “너의 안에, 다른 새끼가 있구나.”

        

       그렇다면, 원인은 그 존재다. 사라의 안에서 태어난 그 존재.

        

       그 존재만 없애면, 사라는 다시 사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돌아오지 못해도 상관없다. 텅 비어버린 존재가 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원하는 것은 그녀였으니까.

        

       얼마든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고 얼마나 돈이 들더라도, 그녀는 반드시 그녀를 빚어낼 것이다.

        

       그렇게 정했으니까.

        

       아주 오래전, 그녀를 잃었을 때부터 쭉, 해오던 일이었으니까.

        

       최나경은 무릎을 끌어안고 있던 손을 풀었다. 손을 내려 더듬거렸다. 손에 매끈한 뭔가가 집혔다.

        

       매끈하고 딱딱하고 네모난 것. 전화였다.

        

       그녀를 돕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준 것이다. 이걸로 통화를 한다고 위치가 걸릴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생활은 이제 끝내야 했다.

        

       사라를 돌려놓아야 했으니까. 그러려면 그녀가 직접 몸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다시 만나겠구나.”

        

       한동안 식음을 전폐하면서 쩍쩍 갈라진 목소리. 만약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이 있으면, 분명 소름 끼친다는 반응을 보였을 거다.

        

       물론 그녀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다.

        

       화면을 켰다. 쏟아지는 밝은 빛에 눈을 감았다.

        

       눈을 몇 번이고 감았다 떴다 한 뒤에야, 그녀는 간신히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인터넷 브라우저를 켰다.

        

       그리고, 그녀는 ‘친권’과 ‘가족’과 ‘심신미약’과 ‘해리성 정체감 장애’, ‘정신병원’ 등의 단어를 차례대로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

        

       “저, 사라야.”

        

       지난번의 그 사건 이후로,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애가 한 명 늘었다.

        

       어째서인지 나와 양혜인만 따로 두었던 그 이후로 나에게 달라붙는 것을 그만둔 세 사람 덕분에 아름이가 추가로 따라온다고 하더라도 말을 걸 틈 정도는 있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 추가되었다는 건 좀 버겁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게다가 아름이와 함께 다니게 된 이후로 하늘이, 수아, 소희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마치 나에게 뭔가 말할 것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혹시 내가 아름이도 함께 다니는 것이 신경 쓰이는 걸까.

        

       ……신경 쓰이겠지. 결국 아름이도, 본인은 실수라곤 하지만 나에게 입맞춤해버렸으니까.

        

       이게 다 너의 원죄지.

        

       너가 예쁘게 생긴 게 원인일 테니 너도 공범이지.

        

       …….

        

       이제 슬슬 사라를 다루는 법을 알 것 같다.

        

       사라의 언짢은 기분을 뒤로하고, 나는 나에게 말을 건 아름이에게 대답했다.

        

       “응?”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도 될까?”

        

       “어, 상관없는데.”

        

       물어본다고 해도 별로 대단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대답했는데,

        

       “지난번에 너희들 대화하는 와중에 ‘인격’같은 말이 나왔었잖아. 혹시 그게 어떤 뜻이었는지, 물어봐도 될까?”

        

       “……어?”

        

       나 뿐만이 아니라, 하늘이, 수아, 소희도 모두 놀란 표정으로 걸음을 멈췄다.

        

       “어, 그…….”

        

       그리고 그런 격한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아름이는 엄청나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물어보면 안 되는 거였을까……?”

        

       그리고 자신 없는 표정으로 다시 물어본다.

        

       “…….”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모였다. 심지어 사라까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의사에 따르겠다는 거겠지.

        

       “……하아.”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쉰 뒤,

        

       “알았어, 알려줄게.”

        

       내가 한숨 쉬는 것을 보고 한층 더 쪼그라든 아름이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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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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