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37

        

         옅게 물기가 남은 머리카락이 딱히 거추장스럽지도 않은 모양인지, 남자의 얼굴이 미묘하게 그릇을 향해 기울어졌다.

         

         그릇? 엄연히 플라스틱으로 분류되기는 해도 스티로폼(발포폴리스티렌)으로 만들어지고 일회용 뚜껑도 다 안 뜯겨진 그건 용기에 가까웠지만… 아무튼 안에 음식물이 담겨있기는 했으니까.

         

         …호로롭.

         

         “앗… 뜻, 뜨거!!”

         

         방금 막 끓어서 아직 꼬들꼬들한 면발조차 가득 흘러 넘치는 컵라면의 국물에 섣부르게 입을 댄 남자가 당연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 곳에 곧장 입을 처박으면 응당 치러야 할 대가로서 구강내 경도 화상-입천장이 마구 까짐-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뜨끈한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안을 풀어주는 시원한 감각에 어쨌거나 목적은 달성했다 여겼다.

         

         누군가가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하고 있냐 물어본다면 그는 한점 망설임없이 속이 답답해서 그랬다고 대꾸할 것이다. 정말 속이 뒤지게 답답해서.

         

         후르릅!

         

         “어으… 좋다.”

         

         이번에는 제대로. 나무젓가락으로 건져 올린 면을 식혀서 크게 한 입 먹은 남자가 마우스와 키보드를 연신 딸깍였다.

         

         인터넷 창이 향하는 목적지는 여느 때처럼 네오 헤이븐 프라임 커뮤니티.

         혹시나 자신이 기절하듯 잠들었던 사이, 컵라면 하나 끓이겠다고 물 올리러 간 사이에 보다 먼저 공략에 성공하거나 확실한 단초를 잡은 사람이 있을까 하여.

         

         [ 제발한번만물러주세요진짜이벤트도중엔세이브가안되는줄전혀몰랐어요제발 ]

         [ 핸드건스나 복합 트리 vs 돌격소총해킹 듀얼 트리 뭐가 더 낳냐??? ]

         [ Alt가 근접 강공격인거 까먹고 알탭하다가 아샤 뒤통수 때려서 자동으로 헬레나한테 배빵 맞고 넉백으로 난간에서 떨어져서 게임 오버된 썰 풀 거니까 누르지마라씨발. ]

         

         “허…….”

         

         …음, 아무래도 그런 하드코어 게이머들도 질린 모양이다.

         아니면 바쁜 와중에 글 같은 걸 쓸 여유도 없어졌던가, 지나치게 방대한 컨텐츠에 다들 비슷하게 정신이 나가버렸던가.

         

         솔직히 출시 이벤트로 업적 일정 퍼센트 이상 달성이나 완전 공략자에 한해 ‘엄청난 경품’ 증정을 약속한 건 나쁘지 않았다.

         

         딱히 그런 게 없어도 네오 헤이븐 프라임은 충분히 갓겜이었지만 분위기를 달구고, 이런 짬통스러운 오픈 월드 게임에 거부감을 가졌던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게 만들어 흥행 대박을 친 건 사실이었으니까.

         

         여러모로 불친절하기 그지없는 미친 시스템이나 몇 개월째 대가리를 박고 있음에도 ‘알만큼은 아는데 나머진 존나 모르겠음;;’ 같은 헛소리가 고인물들 입에서 나오게 만드는 게임 구조가 진입 장벽을 쳤어도 유입 자체가 워낙 많기도 했고.

         

         그래도 이제는 슬슬 다들 적응한만큼 건설적인 토론에 주력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매콤한 맛에 비명을 지르는 뉴비들이 많은 모습에… 그는 작게 웃었다.

         

         아니, 비웃은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귀여워서 그랬다.

         억까도 더럽게 많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나름 굴러가는 로직이 확실하게 있는 게 이 게임의 매력이니 대충 한 300? 500시간 정도만 더 홀린 듯이 박으면 정착하겠구나 싶어서.

         

         

         [ 이 썅 경찰 파밍이 개꿀이라고 추천한 새끼 대체 어딨냐?? ]

         : (인게임 스크린샷) 동료들 대사가 이상하게 바뀐 게 쎄해서 점집가서 열람하니까 이지랄났네?? 내 개씹창 난 카르마 수치 앞에 사죄해!! 지금 튀어나와서 사죄하라고 씹!!!

         

         > ㅇ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디지기싫으면 쳐웃지말고 해결책 좀 꺼내봐 ㅅㅂ; 하나같이 세이브 돌려도 이미 답 없다는데 그게 무슨 또라이 같은 소리임?

         >>> 팩트 : 카르마(Karma; 선악의 소행, 업)는 세이브가 아니라 캐릭터 별 귀속 수치다. 옛날 저장으로 돌려도 클라우드 연동으로 현재 값이 덧씌워진다.

         

         > 야, 그래도 -300 정도면 선 성향 퀘 40개쯤 밀면 해결되겠네. DLC 지역까지 다 돌 생각하면 기부로도 충분히 돌릴 수 있고 ㅎㅎ.

         >> 미친 악귀 새끼들 아니야 이거

         

         > 파밍하고 싶으면 웬만하면 무조건 미션이나 퀘스트 걸린 장소에서 이벤트랑 이어서 하십쇼. 어쩔 수 없는 연속 전투랑 그냥 미쳐 가지고 길에서 총질하는 테러랑 같은 어떻게 같은 취급이길 바람;

         

         

         꿀꺽!

         불행히도 섣부른 선택을 해서 고생길이 열린 한 유저의 푸념에 성실한 ‘조언’을 남긴 그가 라면을 금방 완식했지만.

         

         새로고침 할 때마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수준의 게시판 활성화도를 자랑하는 커뮤니티를 얼추 훑어봐도 평소에 남자와 숨겨진 공략법이나 히든 루트에 관해 떠들던 상대방.

         

         로즈의 최근 작성 글이 보이지 않는 걸 깨닫고는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멀쩡한 소셜 채팅 어플을 놔두고 뭐하는 짓이냐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명색이 서로가 이벤트 상품을 노리는 경쟁 관계이며 커뮤니티 밖에서 따로 연락하는 건… 진짜 친목질 같아서 내심 자제하고 있었다.

         

         저쪽도 엇비슷하게 생각하는지 ‘모르는 척 서로의 글에 댓글 달기’ 소통법을 개선하자는 말을 꺼낸 적도 딱히 없었고.

         

         그러면 이제부터 뭘 해야 할까?

         간단하다. 어제 찾아낸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는 발견을 먼저 검증해야지.

         

         “좋아… 좋아.”

         

         인터넷 창 하나에, 미처 지문이나 대화를 다 읽고 듣기 전에 이벤트가 진행될 경우를 대비한 저품질 녹화 프로그램만 실행한 상태로 게임을 켰다.

         

         이 세상 코딩이 아니라며 최적화 부문에 있어선 다시없을 극찬을 받고 있는 게 네오 헤이븐 프라임이었지만, 원체 요구 사항이 높은 탓에 괜히 이것저것 열어 놨다가 중요한 순간에 렉이라도 걸리면… 어우 끔찍해라.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밉살스러운 카오스 포인트 개발사의 로고가 나오는 오프닝을 바로 스킵하고 불러오기(Load) 메뉴로 들어간 그는 따로 준비한 ‘카르마테스트023’ 세이브를 불러와서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저장한 시점은 블랙 마켓 관련 시나리오에 돌입하기 직전.

         확인하고자 하는 건 점집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한 스테이터스, 카르마와 호감도. 그리고 특정 캐릭터와의 상관 관계.

         

         투둥, 탕!! 드가가가갓—!!

         

         – Ceci est absurde! 이 정도를 모르는 애송이 따위가……!! –

         

         잠입 구간이나 쫄 처리 파트는 스피드런 테크닉을 이용해 빠르게 돌파.

         트리거를 이용해 스킵한 경우를 제외해도 벌써 백 번은 우습게 넘겼을 보스전을 치른다.

         

         주기적으로 스턴을 넣는 음파 패턴은 미리 꽂은 전투 증강제로 씹고, 사이버웨어 인터페이스가 마구 일그러지는 타이밍엔 칼같이 엄폐해서 회복을 기다린다.

         

         증원으로 들어오는 하운드로이드와 공습 드론, 암시장 경비원들은 딱 한 웨이브만 미리 스폰 위치에 설치한 지뢰로 정리하면 된다.

         이걸 하려고 만든 세이브인만큼 딜 계산과 필요한 무장은 아주 정확하게 맞춰 놔서 오차 따위는 없었으니까.

         

         ……지진 난 에임으로 인해 한 두 탄창쯤 바닥에 버리면 얘기가 전혀 달라지기는 하는데 아무튼.

         

         – 분하군……. 아직, 지키지 못한 맹세가 남아있거늘. –

         

         고폭 유탄만 10발 언저리, DPS 위주의 5.56mm 납탄 찜질까지 받고 나서야 겨우 보스가 무릎 꿇는다. 서글프게 명멸하던 모니터의 전원이 끊어지고 이내 완전히 침묵한다.

         

         굉장히 떨떠름하고 당황스럽지만 주인공 캐릭터가 가져다줄 수 있는 이득을 고려해 불문에 붙이기로… 어쩌고저쩌고.

         

         “휴우…!”

         

         그는 뒤에 이어진 블랙 마켓과의 협상이나 면담은 대강 아무 선택지나 고르고 넘겨버렸다.

         어차피 세이브를 덧씌울 예정도 아니었을뿐더러, 중요한 건 이 시나리오가 끝난 다음 돌아가서 자유 대화를 했을 때 나오는 그녀의 반응이기에.

         

         – …죽였다고? 레오나르를?? –

         

         흔들리는 동공을 수습할 생각조차 못한 채로 어딘가 멍한 표정을 띤 소녀가 무심코 되묻는다.

         

         부동의 0티어 후위, 배드 엔딩 최후의 방지턱, 탄광 속 카나리아, 얘는왜적이되면백배는세지는것같냐미친시발… 등등 다양한 별명과 애칭으로 불리는 서브 히로인 캐릭터.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이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서 중얼거렸다.

         

         – 그… 그래, 응. 미안, 내 실수네. 그렇게 말도 없이 무작정 움직일 줄은 몰랐어. 미리 알려줬더라면… 아니, 일어나게 돼있던 문제는 결국엔…. –

         

         “…….”

         

         그늘진 얼굴로 횡설수설하는 대화에서 부서진 유리 가루처럼 조금씩 흘러나오는 단어의 향연을 그는 유심히 듣고, 운명이니 뭐니 하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낱말은 따로 메모까지 했다.

         

         이제는 커뮤니티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유명한 실수다.

         아예 동료 엔트리에 없었다면 모를까, 마켓 쪽이랑 협상하거나 싸울 일이 생기면 자기가 도와줄 수 있으니 꼭 알려달라던 그녀의 충고를 까먹고 그냥 진행하면 생기는 네거티브 이벤트.

         

         친절하게 화면에 표시되지는 않지만 아마 카르마와 호감도 모두 -50쯤 먹었었나? 하여간 장난 아니게 개박살 났을 거다.

         

         여태 느슨하게 선 타는 무법자 플레이했다면 자칫 동료 이탈도 발생했을 수준으로.

         

         “…오케이, 다음.”

         

         제일 아끼는, 흔히들 꼽는 애정캐로 치면 뇌내 순위권 다툼에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아나스타샤가 죽은 눈으로 모니터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건 기분 좋은 광경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심 이 지긋지긋한 미로 공략의 단초를 쥐고 있는 건 그녀라고. 남자는 거진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벌컥, 벌컥!

         냉장고에서 꺼내 온 생수를 호쾌하게 들이켠 후, 이번에는 ‘호감도작업042’ 세이브를 꺼낸 그가 심호흡을 내쉬었다.

         

         만약 이 조건으로, 이 보스전이 입장 가능하다면 ‘많이 빡친다.’ 소리를 듣는 레오나르 전투와도 체감 난이도가 현격하게 차이나는 꼴을 겪게 될 터이기에.

         

         자, 그가 이런 네오 헤이븐 프라임이라는 게임과 현실을 모두 지극히 고려한 결과 세운 가설은 다음과 같다.

         

         일부 찾아서 영입해야 하는 수준의 악 성향 동료가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초중반, 그리고 연애 가능한 캐릭터들은 플레이어가 좆 같은 짓을 하면 호감도가 떨어진다. 또한 보통 그런 건 카르마도 떨어지게 만들었고.

         

         하지만 엄연히 카르마와 호감도는 분리된 별개의 개념이다.

         그리고 모든 선택의 무게를 두게 하려는 것처럼 카르마는 어지간해선 한 쪽으로 완전히 치우치지 않는다.

         

         등장인물 모두가 복합적인 존재인 것처럼, 착해 빠진 주인공은 불가능하다는 듯이 카르마가 +300 언저리까지 가면 미션 도중에 적을 죽여도 떨어지도록 가중치가 붙어서 균형이 맞춰진다.

         

         마찬가지로 아까 그 불쌍한 친구처럼 -400… 수준의 민간 대학살을 저지르면 길가에 있는 쓰레기만 주워도 기립박수를 받으며 찔끔이나마 회복되고.

         

         한편 최후로,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은. 한 마디로 특이한 캐릭터라 정의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서구권 유저들이 부르는 별명 중엔 마스터 마인드(Master Mind)라던가.

         일본에선 제4의 벽을 툭툭 건드리는 네타(ネタ) 캐릭터라며 무성의한 질문 글에 무표정한 그녀의 아스키 아트를 달아 놓고 ‘전부… 제가 힌트를 준 내용이잖아요?’ 같은 꼬릿말을 첨부하는 게 유행이라나 뭐라나.

         

         하여간 편의주의적 존재이자 거의 유일한 인게임 가이드로서 우수한 성능, 여러모로 미워하는 게 더 힘든 발렌타인 자매의 동생일진대.

         

         그러면 이런 복잡괴기한 게임 기반 구조와 현재 진행형인 공략 이벤트를 합쳐보자.

         

         한국은커녕 전세계 기준으로 봐도 유저 수가 천장을 뚫은 상태인데 정말 우연히라도 단서가 발견되지 않는다? 위키 페이지에 상주하며 아이템 목록이나 퀘스트 분기점 업데이트만 하는 변태들이 한 트럭인데?

         

         “말이 안 되지!”

         

         일반적으로 접근해선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조건이 걸려있다는 뜻이다.

         가이드라인에서 한참 벗어난 기발한 짓을 시도해야 하는 게 틀림없다. 가령… 모두가 기본으로 깔고 가는 동료를 배제하고 시나리오를 민다든가.

         

         혹은 기존에 상식이라 알려진 게임 데이터에 반하는 정보를 남들보다 추가로 얻는다든가.

         

         원래 아나스타샤를 적대하는 조건은 연락처를 보유하거나 동료 엔트리에 그녀가 있던 상태에서 카르마 -200 이하를 유지한 채로 일주일 보내기…라고 알려져 있었다.

         

         사망 시에 시야가 완전히 암전 된 상태에서 사이버웨어가 출력하는 그녀의 마무리 대사도 ‘다행이네. 너 같은 놈을 정리할 때 느낄 죄책감 같은 건 없어서.’ 였으니까 여태 틀림없다고 믿었다.

         

         지독할 정도로 캐릭터 대사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읽어가며 네오 헤이븐 프라임에 몰입한 어느 바보를 제외하고는.

         

         어라? 동료 엔트리 이탈 트리거는 카르마랑 별개로 호감도가 바닥 찍는 거 아니었나?

         그럼 카르마는 최대한 선하게, 양수로 유지하고 아나스타샤의 호감도만 어떻게든 바닥을 찍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답은 여기 있었다.

         

         “와, 미친. 와 씨발. 아 제발 아나스타샤야 억까 패턴 한 번만 덜 해줄래 제발!?”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들고, 웬만한 위치 사수 임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그녀의 사병(Soldier)들이 몰려나온다.

         

         이게 리듬 게임인지 그래도 오픈월드 FPS 장르를 표방하는 RPG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붉은 원이 그려진다.

         

         어디에? 바닥에.

         그게 뭘 의미하는데? 뭐긴 뭐야 포격 예상 위치니까 뒤지기 싫으면 피하라는 거지!

         

         “으어어어어억!!”

         

         농담이 아니라 눈이 뒤집어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반응 속도 한계 테스트를 그는 극복했다.

         단련된 반복 학습과 집념 하나로 돌파하고야 말았다.

         

         1페이즈… 2페이즈… 기어이 3페이즈까지.

         정말 악명 높은 이벤트 보스전인만큼 충분히 대비해도 모자랐지만, 다른 전제 조건을 맞추고 이 전투의 특이성을 고려하느라 미흡했던 점이 많아서 깔끔하게 첫 도전에 성공한 건 아니다.

         

         오히려 수도 없이 시도한 걸로도 모자라, 도중엔 추잡하게 모니터를 잡고 빌면서 요행에 기대기도 했고.

         

         하지만 보람은 있었다. 사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차고 넘쳤다 해야 맞겠지.

         기억을 물론 헤이븐 위키와 비교해봐도 전혀 다른 독립 대사와 전용 씬이 재생된 것과 더불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아이템까지 그녀가 친히 건네주었으니까.

         

         [ 차원 균열 간섭기 설계도 ]

         

         “돼… 됐나? 이건가!? …무슨 미친 소리야! 무조건 이거 밖에 없지!!”

         

         그는 미친듯이 기뻐했다.

         

         꼭 개발사에서 주최한 행사에서 앞서 나갔기 때문만이 아니라 모두가 갈피조차 못 잡고 헤매던 비밀에 한 걸음 다가간 것 같아서.

         

         무엇보다도 자신만큼 네오 헤이븐 프라임에 열중해서 몰입한 사람이 없다는 불변의 증명서를 손에 쥔 것 같았기에.

         

         해서 남자는 있는 시간 없는 시간을 더 쪼개서, 잠도 줄여가며 진심으로 공략에 매달렸다.

         성의 없이 만들어 놓은 여타 세이브 대신 오랜만에 프리셋을 사용하지 않고 손수 커스터마이징 한 캐릭터를 주인공 삼아 거의 이 주가 다 되도록.

         

         그 결과……….

         

         

         

         “으어? 으아각!?”

         

         쿠당탕!!

         

         대로의 조명도 닿지 않는 뒷골목.

         난데없이 허공에서 솟아난 남자가 지면 근처에 떨어졌다.

         

         정확히는… 질긴 재질의 봉투가 가득 들어찬 대형 녹색 쓰레기통에 낙하해서 안착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자유 낙하를 시작한 위치가 꽤 높았던 만큼, 조금 더럽더라도 푹신한 쿠션이 있는 쓰레기더미에 파묻힌 건 다행이었지만 그는 그런 거에 감사할 겨를이 없었다.

         

         낙법도 제대로 취하지 못한 채 부딪힌 충격도 현대인이 겪기엔 드문 타격이었던 건 물론이거니와 집 근처에 이런 음산한 골목길이 있었는지조차 의문이었으니까.

         

         “으웁. 켁, 콜록콜록!”

         

         옷에 달라붙는 온갖 정체모를 찌거기들을 무시하고, 폐부에 들어찬 고통을 내뱉으며 그는 간신히 밖으로 기어 나왔다.

         

         기억이 혼란스럽다. 전신이 더럽게 아프다. 코가 찌르르 울리고 공기가 매캐하다.

         

         도움,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아무리 요즘 세상이 타인에게 각박해졌다 한들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사람이 서울 한복판…은 아닐 수 있어도, 치안 좋은 대한민국에서 길바닥을 기고 있는데 설마 누구도 관심이 없으려고.

         

         하지만 가까스로 빛이 보이는 쪽으로 기어 골목을 빠져나왔음에도 주변에 느껴지는 인기척들은 모두 그를 내버려두고 무심하게 멀어져갔다.

         

         역으로 달라붙는 시선들은… 끈적하고 위험했다.

         

         아니, 한국이 이렇게 20대 남자에게 자비가 없었나? 생각보다도 너무하네. 세금은 얼마 안 냈어도 국방의 의무도 성실히 수행하고 공부도 나름… 음.

         

         억울한 마음을 감추고 그는 소매에 눈가를 파묻고 마구 문질렀다.

         

         처음엔 다들 뭐 얼마나 바쁘길래 구조의 손길은커녕 안부도 안 물어봐 주나 싶어서 시야를 확보하려 했던 거지만, 막상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니 장난이나 치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는 걸 강제로 깨닫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 거대한 중앙 발전소에서 나오는 녹색광이 여러 건물과 구조물에 난반사 된 결과 희미한 연두색을 띠는 하늘, 목에 턱턱 걸리는 공기, 시력을 앗아갈 듯한 네온 사인의 향연.

         

         “엥…… 어라?”

         

         네오 헤이븐에 밀입국자가 한 명 추가된 날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뭣.

    어떻게 최종 루트 해금 조건이 ‘사실은 착하지만 너에게만 차가운 주인공’이라는 말입니까!

    조금 늦었지만 약속드린 외전형 본편을 가져왔습니다. 이제 빨간딱지 외전을 쓰고 쉬느냐, 아니면 그냥 바로 휴재하면서 다음 에피소드나 착실히 준비하냐인데요….
    그, 흐름 상 끼워 넣을 타이밍을 이미 놓친 것 같기도 하고…? 네, 일부 연재분의 가독성 수정을 하면서 재밌는 내용으로 준비해서 돌아오겠습니다.

    (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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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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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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