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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7

     바르셀로나 총독부, 구 후작성 골드캐슬로부터 마차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해야 하는 외진 숲 속 어딘가.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쉽게 들어오지 않는 2층짜리 별장이 하나 덩그러니 숲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별장은 겉으로 보면 벽돌로 지은 것처럼 보이는 평범한 저택으로 보였으나, 특이점이 있다면 외부에서 봤을 때 모든 유리창에 암막으로 된 커튼이 펼쳐져 있다는 점 정도.

     가까이 다가가서 본다면 그 유리창이 전부 위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애초에 유리창인지 아닌지도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걸 구분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오기 전, 그대로 주변을 순찰하는 이들에게 살해당해 그대로 그 자리에서 땅에 파묻힐 테니까.

     그리하여, 백골이 주변에 제법 널브러졌음에도 마차가 오간 흔적이 남아있는 어느 한 별장.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제법 많이 드나들었을 것 같은 별장에는 왕국 전통식 메이드복을 입은 백발의 여인들이 정갈한 차림으로 연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전에 이곳을 방문한 이들이 있다면, 아마 이 별장의 달라진 모습에 기함을 하리라.

     

     그도 그럴게, 일단 별장에서 일하는 인원 자체가 100명 가까이 되는 것도 있지만, 그들 모두가 제국에서 황제의 사생아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백발의 여인들이었으니까.

     거기에 그들 중 일부를 알아보는 이들은 그들이 바르셀로나 총독부에서 일하는 메이드들이라는 걸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그런 점을 바탕으로, 한 번 더 놀라겠지.

     아.

     예전에는 바르셀 후작과 황금여명 기사들이 방탕한 파티를 즐기던 별장이 총독에 의해 발각되었구나.

     별장을 미처 정리할 새도 없이 그레이 지브롤터 바르셀로나 총독에게 들켰고, 별장은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 하였구나.

     그리고 오늘, 과거에 황금여명의 불법적인 연회가 이루어진 장소에 여러 대의 마차가 하나둘 들어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드르르륵. 

     이미 별장 앞의 넓은 공터에는 몇몇 마차가 정차되어 있었다.

     마차는 고급스러운 재질로 만들어져 분명 어느 가문의 것이 틀림없었으나, 특정 가문을 나타내는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혹은 문장을 새겨놓는 부분에 덧칠을 하거나, 아예 그 부분을 도려내고 새로운 부품을 끼워넣은 것처럼 보였다.

     어디에서 왔는지를 가리고자 하는 바.

     마차의 출처를 가리는 만큼, 당연히 마차에서 내리는 이들도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낼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음.”

     “아, 아버지….”

     부자로 보이는 두 남자가 입고 있는 것은 오직 검은색 정장 뿐.

     목에 착용하고 있는 넥타이 또한 검은색에 셔츠까지 검은색이라, 목 위로 드러난 하얀 피부를 제외하면 도통 검은색 말고는 그 어떤 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얼굴에 쓴 검은색 짐승의 가면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머리카락과 눈동자마저도.

     “익숙해져라. 너도 언젠가 높은 자리에 오른다면, 이러한 자리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하, 하지만….”

     “언제까지 네 대역에게 모든 걸 맡긴 채로 살아갈 수는 없지 않느냐. 쯧.”

     “…….”

     아들로 보이는 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숙이고, 중년의 남자는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메이드를 향해 허리에 찬 검을 검집 째로 건넸다.

     “이거면 충분한가?”

     “확인하겠습니다.”

     백발 메이드가 검을 검집에서 뽑아냈다.

     보통의 철검이었지만 검신에는 홈이 파여져있었다.

     한 쪽에는 ‘면죄’라는 단어를.

     다른 한 쪽에는 ‘초대’라는 단어가 적힌 검.

     “입장 권한, 확인 완료되었습니다. ‘체스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체스판이라…. 컨셉 한 번 기괴하게 잡았군.”

     중년 남자의 빈정거림에도 메이드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무기에 대한 확인이라거나 하는 몸수색은 일절 없었다.

     그저 이곳에 초대를 받은 것만으로도, 허리에 찬 검 그 자체가 이미 신원이 확인되었다는 것처럼.

     “이거, 이거, 북부에서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중년 남자를 향해, 머리가 반쯤 벗겨진 또다른 중년인이 다가왔다.

     “마법으로 머리카락도 눈동자도 검게 물들여도, 역시 그 차가움은 숨길 수 없는 모양입니다. 하하.”

     중년인 또한 전신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유일한 색이 있다면, 가면 위로 드러난 피부 뿐이겠지.

     “그러는 그대는 이번 기회에 머리 위에 투구라도 좀 쓰고 오지 그랬나.”

     “…하, 하하. 칼로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 돈으로 전쟁을 하러 온 건데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안 그러느냐, 딸아.”

     “……예.”

     머리가 반쯤 벗겨진 남자의 뒤에 서 있던 검은 드레스의 여인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여인은 아주 예전부터 전신을 검은 색으로 물들여온 것처럼, 흡사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미망인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후작. 어디 살지 결정했습니까?”

     “…….”

     “이크. 이런. 주최자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살 기회조차 얻지 못하겠죠. 흐흐. 그나저나, 이런 쪽으로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내 나라의 땅이 이적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지.”

     “흐흐. 정말로요? 땅을 그대로 놔둘 겁니까? 안 파고?”

     “…그대나 마음대로 하시게. 나는 저들을 막기 위해 온 것 뿐이니.”

     중년 남자가 반대편 광장에 정차된 마차들을 가리켰다.

     그들이 타고 온 마차와는 조금 다른, 나무가 아닌 강철로 된 판에 좌우로 달린 네 개의 바퀴가 제법 큰 마차로서-

     “말이 안 보이는군요? 말 보고 딱 알아차렸는데.”

     “말이 아니라, 마도엔진으로 자동으로 바퀴가 돌아가는 물건이라고 하더군.”

     “그렇습니까? 이야, 오로솔 아카데미에서 배워 온 학생은 역시. 흐흐. 그러면 마도자동차입니까?”

     “그냥 자동차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후작이라고 불린 중년인은 자동차에서 내린 또다른 검은색의 무리를 가리켰다.

     “아무리 의상을 통일했다고 해도, 그 특유의 냄새는 지울 수 없지.”

     “제국이군요.”

     전방.

     마도자동차에서 내린 중년의 남자는 머리가 완전히 벗겨져 있었고, 그 옆에는 안경을 낀 청년이 붙어있었다.

     마찬가지로 가면도 쓰고 있어 얼굴을 그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함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었다.

     구구구구.

     마차 한 대가 또 도착했다.

     검은색 준마가 이끄는 마차는 처음부터 검정색이었다는 듯 자연스러웠고, 마차에서는 두 명의 남녀가 차례대로 마차에서 내렸다.

     건장한 체격을 가진 노인, 그리고 그 어떤 사교계의 꽃과도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드레스의 여인.

     비록 어깨 아래로 굴곡이 도드라지지는 않았으며, 그걸 감추기 위함인지 프릴을 달고 있었으나, 미리 도착해있던 이들은 두 사람을 보자마자 바로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모처럼 숨기려고 했더니.”

     “숨길 수 있겠습니까, 이런 가면 한 장으로.”

     “하긴, 뭐. 서로 정체를 모르고 오는 게 아니라, 서로 본심을 숨기자는 차원에서 이렇게 하는 거니까.”

      

     여인은 자신의 검은색 여우 가면을 만지작거렸다.

     “어울려주도록 하죠. 어차피 다들 흑심을 가지고 여기에 온 거니까.”

     여인의 뒤로, 또다른 마차가 도착했다.

     “체스판의 주인이 온 모양이네요.”

     온통 검은색으로 물든 마차들의 가운데, 유일하게 회색으로 칠해진 마차가 멈췄다.

     그리고 마차에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은 회색의 지팡이.

     “파티의 주최자, 그리고….”

     “저 친구는 가면 안 쓰나?”

     “…그러게요.”

     지팡이를 짚고 나온 그레이 지브롤터 바르셀로나 총독의 뒤,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나이 좀 든 청년 하나.

     “고생이 많군, 저 친구.”

     헥스 로마나 자작.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쭉 훑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레이 지브롤터의 뒤를 따라갔다.

     * * *

     채광권을 팔겠다고 선언한 뒤로 약 1주.

     바르셀로나 총독부는 옛 황금여명의 별장 하나를 확보하여 연회장으로 만들었다.

     이런저런 문란하고 불결한 파티가 펼쳐지고 그랬던 곳이지만, 마법의 힘과 대량의 인력을 동원하면 하루 아침에 결혼식장으로도 만들 수 있을만큼 깨끗하게 바꿀 수 있다.

     연회를 위하여.

     어떤 연회?

     “사업설명회, 잘 부탁드립니다. 헥스 자작.”

     바르셀로나 땅의 황금 채광권-정확히는 그 채광권 구역 판매를 위한 1차 연회.

     ‘대륙’ 전체에서 황금 채광권에 한 발 담그겠다는 이들이 모조리 모인, 가면과 염색마법으로 서로의 모습을 숨긴 황금의 대결이다. 

     “…내가 진행을 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노른자땅을 개평 드리기로 했잖습니까.”

     “그거, 정말 지하에 황금 많은 거 맞지?”

     “황금광맥이 터질 수도 있고 안 터질 수도 있습니다. 자세한 건 시간이 알려줄 것입니다.”

     “하아. 나중에 안 나오기만 해봐. 아주 그냥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헥스 자작께서 어떻게 저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로.”

     “그건…꽤 두려운 협박이군요.”

     일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헥스 자작?

     결코 가만히 놔둘 수 없다.

     애초에 헥스 자작은 왕국의 모든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축제만 잘 진행해주신다면, 제 몫으로 받는 수수료의 일부도 떼어드리겠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건 휴가인데?”

     “어떤 시간은 금으로 살 수 있습니다, 헥스 자작.”

     “시간은 금으로 살 수 없다, 그게 맞는 말 아니야?”

     “그렇죠.”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그 어떤 마법이나 기적을 가진 이도 금으로 시간을 살 수는 없다.

     단지 더 많은 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뿐.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 온 사람들은 전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온 이들입니다. 전투가 일어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헥스 자작과 함께 연회장 안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보십시오. 다들 새롭게 꾸민 ‘쿠앤크 홀’의 모습을 보고 디자인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지 않습니까.”

     총독부에서 일하는 메이드들 전원이 한 명씩 테이블마다 붙어 고가의 술이나 다과, 음식 등을 대접하며 마련한 연회장은 대륙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함의 극치.

     당대 왕국과 제국, 그 어떤 연회장과 비교해도 최소 10년은 더 미래에 있을 것 같은 디자인의 세련된 연회장에 다들 은근하게 연회장 내부의 디자인을 눈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안심하세요. 어차피 다 아는 얼굴들이잖습니까?”

     “그래, 그래. 다 아는 얼굴이지. 돈 좀 가지고 있는 이들은 왕국 뿐만 아니라 제국에서도 다 데리고 왔잖냐.”

     헥스 자작이 연회장 한쪽을 가리켰다.

     드레스가 아닌 검은색 가죽 자켓에 바지를 입은 흑발의 가면 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활짝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저분, 저거 변장이지?”

     “취향이십니다.”

     “…….”

     “여기에 제대로 작정하고 변장하고 와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서로 위아래로 한 번 훑기만 하면 바로 누군지 다 아는데.”

     “그래. 그러면….”

     헥스 자작이 연회장의 구석에 있는 이를 가리켰다.

     “저기 네가 여기 들어올 때부터 너만 계속 바라보고 계신 저 중년의 남자분은 네가 아는 사람이냐?”

     “……모른다고 하고 싶지만, 한 사람밖에 없으니 조심하세요.”

     저 멀리, 가면 아래 드러난 얼굴도 체형도 전부 다르지만, 스스로를 제국에서 온 크베르스라고 하는 작자가 아마 있겠지.

     “헥스 자작. 안심하세요. 이 자리에서 최고 권력자는 당신입니다. 여기, 마이크 잡으시면 말이죠.”

     “이 연회가 끝나면 나는 모든 이들의 원망을 받지 않을까?”

     “원망이요? 어리석은 소리죠. 말씀드렸지만, 투자는 본인의 선택이니까.”

     나는 헥스 자작을 향해 가볍게 주먹을 들며 응원하며, 그가 편하게 행사를 진행할 수 있게 제국에서 들여온 마이크를 붙잡고 앞으로 나섰다.

     “아아. 모두, 이렇게 와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굳이 소개하고 그럴 필요 없으니,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도록 하죠.”

     내가 뒤를 향해 손가락을 튕기자, 지브롤터 바르셀로나 지구의 지도가 마도스크린에 나타났다.

     “바르셀로나 총독부의 기존 구역을 제외하고, 나머지 탄광 지역을 포함한 ‘개발가능구역’을 전부 64개의 구역으로 나누었습니다.”

     촤르륵.

     바르셀로나의 땅이 격자무니로 쪼개지며, 64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가볍게, A1구역부터 분양…이크, 땅을 파는 게 아닌데, 저도 모르게 그만.”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가장 먼저 떠오른 구역을 가리켰다.

     “노스트럼에서 가장 오래된 광산이 있으며, 지금도 채광이 이루어지고 있는 금광입니다. 자…이 땅에 대한 개발권, 사실 분?”

     서로 눈치를 보던 이들이, 하나둘 자신이 든 피켓을 들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7일 자정 연재 지금 미리 올립니다.

    다음 편은 27일 정오에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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