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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7

   EP.237

     

   탑의 주인.

     

   한때는 ‘시간의 길을 거니는 자’라는 이명으로 살아왔던 그는 조금 전에 들었던 김시인의 답변 때문에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늘 사람을 놀라게 할 줄 아는 성좌네.」

     

   지금까지 그를 쭉 지켜봐 왔기에 그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어느 정도는 예상을 하던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당연히 ‘그 답변’을 그의 입을 통해 듣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지구 좌표의 인간이자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라 불린 그 성좌는 그가 생각하는 답변을 완전히 빗나가는 의외의 결론을 내려놓았다.

     

   「모르겠군… 정말 모르겠어……」

     

   탑의 주인은 지금쯤 동료들에게 돌아가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있을 김시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간들, 성좌들, 인간과 외형은 비슷하지만 다른 목표를 향해 길을 걷던 모든 존재들도.

     

   하지만 그의 상상 속의 김시인은 지금까지 그가 보였던 모습과는 달리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김시인은 결코 후회를 남기지 않는 존재였다. 그랬기에 자신의 길을 관철하고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뒤돌아가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아 자신의 길을 개척해 왔다.

     

   지금까지 그랬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후후,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 그대의 길에 행운이 함께 하길 바라겠소.」

     

   그는 어딘가에 있을 김시인을 떠올리며 그저 고고한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

     

   그로부터 한 달 후,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가 다스리는 좌표 아우트라나는 여느 때보다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김시인이 16층을 클리어한 직후, 그 전투에 동원된 모든 인원을 포함해 아우트라나는 새롭게 받아들인 16층의 격에 적응하기 위해 힘쓰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김시인의 화신이 된 동료들.

     

   그들 중, 가장 김시인과 가깝게 지냈던 네 사람은 진 하트와 로그 브리트만의 안내를 받아 아르테나 왕국의 별채에서 지내던 중이었다.

     

   “아저씨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요?”

     

   별채의 휴식 공간에서 조용히 쉬고 있던 와중에 나온 한가민의 말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시인 씨는 곧장 다음 층으로 갔으니 17층을 공략하고 있지 않을까?”

   “음… 제 주제에 그럴 능력이 없다는 건 알지만 괜히 걱정되는 기분인데 쓸데없는 걱정이겠죠?”

   “응 맞아… 아, 농담이야. 그냥 심각해 보여서 크흠.”

     

   그녀의 걱정 어린 말에 남궁천호가 그녀를 다독였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검술 수련을 하고 있던 박조철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한마디를 거들었다.

     

   “후우… 뭐, 시인 씨가 우리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16층에서처럼 우리를 부르겠지. 눈치도 빠르고 똑똑한 분이니까 화신들을 까먹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정 걱정되면 다른 성좌들께 한 번 여쭤봐. 탈람바르나 화영 소저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든 연락이 닿을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박조철의 대답에 한가민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찌푸려졌다.

   그녀의 바로 옆에 있던 남궁천호도 눈치채지 못할 속도의 변화.

   하지만 한가민과 친자매처럼 지내 왔던 서세영 만큼은 한가민의 변화를 알아봤다.

     

   “으음. 저는 그 성좌가 여기에 자꾸 찾아오는 것도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그…으래?”

     

   한가민은 ‘그 성좌’라 말했지만 그녀가 말한 성좌가 ‘화영’이라는 사실을 서세영이 모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김시인과 누구보다 깊은 연을 맺은 성좌였다.

     

   스승과 제자.

     

   격의 차이도 그렇고 평균적인 전투력이나 심지어 목소리와 외모에서까지 꿀릴 것이 없는 그녀는 한가민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경계 대상 1호였다.

     

   ‘연적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동료가 아닌 여자의 눈으로 봐도 김시인의 행동이나 모습에는 화영을 ‘여자’로 보는 느낌은 담겨 있지 않았다.

   그가 가지고 있던 화영을 향한 눈빛은 애정이나 사랑이 아닌 존경과 의리 같은 신뢰의 종류였으니까.

     

   “그래도 모를 일이긴 해……”

   “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 아니야. 그냥 성좌들이 자주 오는 게 신기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솔직히 말해 그 세 사람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굳이 얻을 게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서세영의 말에 옆에 있던 두 남자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김시인이 홀로 탑을 등반한지 어언 한 달이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그들은 주기적으로 아우트라나를 찾아와 그들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안 그래도 마법으로 무장된 기사들인데 무공까지 익히니 하나하나가 압도적으로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죠.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특히 남궁명은 은혜를 갚겠노라며 김시인의 초창기 동료인 네 사람을 집중적으로 케어했다.

     

   물론 그도 천재에 가까운 실력이 뒷받침되어 설명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신체 자체가 사기인 탈람바르와 현경의 경지를 아늑히 초월한 화영에 비하자면 남궁명은 아주 ‘인간적으로’ 그들을 가르치는 편이었다.

     

   덕분에 그들 또한 강한 힘을 얻었다.

   격이 높은 성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렇고 김시인이 탑의 고층을 클리어한 덕분에 떨어지는 콩고물도 있겠지만 그들의 노력이 무시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봤는데 또 그렇게 헤어지다니…… 아저씨는 언제쯤 돌아올까요?”

     

   한가민의 말에 박조철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평화롭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이 꿈인 것처럼 앞으로도 이 평화가 영영 지속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차오른다.

     

   그리고 휴게 공간의 모두가 그런 생각을 가질 때쯤.

     

   방의 끝자락에서 화려한 금빛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휴게실의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목청을 높였다.

     

   “하하핫! 다들 뭐하고 계세요?! 박조철 씨는 또 검술 수련하고 계셨남?”

     

   아우트라나에 도착한 이후, 가장 유유자적한 생활을 이어가던 녀석.

   그런 토끼의 등장에 남궁천호가 슬쩍 손들 흔들며 그녀를 맞이했다.

     

   “어어, 왔어? 그 옷은 또 어디에서 난 거야?”

   “이런 화려한 옷이 어디에서 났겠어요?! 훔쳤지!”

   “……설마?”

   “예! 진 하트 그 친구 방에서 가져왔지요!!”

     

   이제 보니 왕실의 문장이 아랫단에 떡하니 새겨진 드레스.

   대놓고 여왕의 옷을 훔쳐 입었다는 토끼의 말에 기가 찬 남궁천호가 기함을 토하며 눈을 부릅떴다.

     

   “너 진짜 미친 거니? 아니, 우리가 아무리 시인 씨 손님이라도 그렇지 왕실의 물건을 훔치는 건 진짜 중죄야 이 금수야!!!”

   “어머 어머, 탑 오르기 전에는 눈만 마주쳐도 벌벌 떨던 분이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남궁천호의 말에 토끼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그에게 대꾸했다.

   그 모습에 한숨을 쉬는 일행들. 하지만 이어진 토끼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어휴…… 빨리 가서 사과하고 돌려주고 와.”

   “왜 사과를 해요? 진 하트 그 친구가 선물로 준 건데.”

   “줬다고? 뭔 소리야 아까는……”

   “제가 언제 훔쳤다고 했나요? 그 친구 방에서 가져왔다고 했잖아요. 선물로 줘서 가져왔지요-! 헤헷?”

     

   그녀의 웃음에 남궁천호가 뒷목을 살짝 쓸어내린다. 괜히 시비가 걸리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짜증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허나 남궁천호는 참기로 했다. 지금 이 녀석과 실랑이를 해 봐야 이 요망한 짐승이 어떤 참신한 방식으로 자신을 골릴지 알 수 없었으니까.

     

   스릉.

     

   하지만 그것은 남궁천호의 생각일 뿐, 박조철이 들고 있던 검을 슬그머니 집어 들자 토끼가 기겁을 하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어어…? 농담이에요. 농담! 갑자기 왜 이렇게 과민하게 반응을 하실까?”

   “아니, 그거 말고 저거.”

   “……예?”

     

   자세히 보니 박조철의 시선이 토끼에게 머물러 있지 않았다.

   녀석의 어깨너머. 휴게 공간의 밖에서부터 느껴지는 마력을 초감각을 가진 박조철이 가장 빨리 감지한 것이었다.

     

   파지지직!!!

     

   허공에 금빛 불꽃이 타오르며 그 주변으로 마력이 휘몰아친다.

   성좌가 이동을 할 때면 생겨나는 포탈과 유사한 느낌. 하지만 그 격의 차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성좌들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거대한 힘을 내뿜고 있었다.

     

   “적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가능하면 이번만큼은 아니었으면 하는군요.”

     

   지금까지 아우트라나를 찾아온 다양한 성좌들이 있었다.

   탑의 시험을 받기 위해 아우트라나를 거쳐간 성좌, 김시인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이곳을 찾아온 성좌.

     

   그 외에도 다양한 존재들이 있었으나, 그렇게 까지 강한 자는 없었기에 남궁명의 선에서 모든 적들이 정리가 가능했었다.

     

   하지만 최근에 계속해서 이곳에 머물던 남궁명이 자신의 세상을 돌봐야 할 것 같다며 잠시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탈람바르와 화영은 해당 층의 어딘가에서 각자의 수련을 하고 있을 테지만 그들의 안위에 크게 신경을 안 쓰는 편.

   전투를 하는 것 자체가 수련의 일환이라 여기는 광인들이다 보니 도움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시점이었다.

     

   “결국 우리끼리 해결을 봐야 할 것 같기는 한데……”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이미 한참 전에 넘어간 것 같군요.”

     

   포탈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어쩌면 탈람바르와 화영이 둘 다 오더라도 감당이 가능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 느낌. 하지만 그들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와중에도 얼굴에 화색이 도는 여인이 있었다.

     

   “아저씨다!”

     

   한가민의 외침에 네 사람의 고개가 돌아간다.

   지난 한 달간 만나지 못했던 그 남자. 김시인이 갑자기 돌아올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전개였기 때문이었다.

     

   츠츠츳.

     

   “후우…”

     

   포탈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남자가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든다.

   눈에 띄는 큰 상처는 없었지만 다소 지쳐 보이는 얼굴.

     

   이전보다 머리가 길어진 감은 있었지만 그 사람은 분명히 그들과 함께 탑을 올랐었던 김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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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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