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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7

       

       

       “허억, 허억.”

       

       사람들이 몰려있는 여자 기숙사에서 남학생 한 명이 숨을 헐떡이며 빠져나왔다. 

       

       ‘헉, 헉. 이게 이렇게 될 줄이야.’

       

       반항의 의미로 일부러 찌그러트린 교모와 개조된 교복을 걸친 불량학생, 다까시마 요시오(高島義雄)는 학생들이 없는 으슥한 담벼락 뒤에 쭈그려 앉아 숨을 돌렸다.

       

       ‘젠장, 혼수상태라니. 진짜냐고.’

       

       조금 병이나 걸리게 할 작정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뭐 어때.’

       

       다까시마는 담배를 꺼내물며 생각했다. 

       

       ‘큭큭…… 어쨌거나 잘 된 거야.’

       

       며칠 전부터 무라사끼를 백철연으로부터 떨어트리려고 작정한 다까시마였지만, 백철연과 직접 싸울 엄두가 나지는 않았다. 소문만 들어봐도 꽤 강한 녀석이 분명한데다, 조선인치고는 권력을 어지간히 얻은 녀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까시마는 백철연을 직접 치는 대신 그의 분대를 와해시키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마음먹은 다까시마가 백철연의 주위를 기웃거리며 염탐해보니, 백철연의 분대는 물론 백철연이 중심이었지만…… 

       

       ‘이야, 저 여자생도가 보통이 아니군.’

       

       자세히 보면 그들을 아교처럼 끈끈하게 합쳐주고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유지해주는 구심점은, 다름아닌 조선인 여학생 도미꼬—양복자였던 것이다.

       

       ‘옳지. 저 여자만 없어도……’

       

       그런 양복자가 힘을 쓰지 못한다면 백철연의 분대도 결속력이 서서히 떨어질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분대원들과 노는 것에 흥미를 잃은 무라사끼도 다시 불량학생으로 돌아오리라—다까시마는 머리를 굴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고, 그러다 양복자가 기숙사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일을 저지른 것이다.

       

       다만, 원래는 그저 병이나 걸리게 할 생각이었기에 예상보다 일이 커지기는 했지만…… 문제는 없었다. 뭐가 걱정이겠는가?

       

       ‘어차피 이건, 그야말로 ‘완전 범죄’라고!’

       

       다까시마는 생각했다. 사람들은 모두 선풍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고, 다까시마 자신이 관여한 것이래봐야 아주 사소한 것 밖에는 없었으니 결코 의심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크흐, 누구도 날 의심하지 못 할 걸……!’

       

       

       

       ***

       

       

       

       『나는 선풍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는 생각 안해. 분명히 누군가가, 사람이 한 짓이야.』

       

       지금 이 세상에서, 선풍기 바람 따위가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는 상식을 가진 것은 오로지 나밖에 없었다. 그래. 오직 나 혼자뿐이었지만……

       

       나는 우리 분대원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잘 들어. 복자가 이렇게 된 것은…… 나도 슬퍼. 우리들의 친구가 이대로 언제 깨어날지 기약도 없다는 것이.』

       『흑…… 도미꼬 쨩…….』

       

       아이까와가 참지 못하고 한번 훌쩍였고, 나는 말을 이었다.

       

       『물론, 너희들이 아는대로 선풍기가 해로울지도 모르지. 하지만 단순히 배탈이 나거나 피부가 건조해지는 것을 넘어서, 혼수상태까지 빠지는 것은 굉장히 희박한 확률일 거야. 그것도 복자처럼 건강하던 아이가 말야. 그렇지 않아?』

       『으음. 그것도 그렇네그려.』

       

       생각해보면, 혼자가 아닌 것이다. 내 분대원들은 나를 믿어줄 것이기에.

       

       『그리고 우리는, 다들 알다시피 언제 누구에게 공격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확실히, 이번에 복자가 이렇게 된 것은 누군가의 소행이라고 의심해볼 수밖에 없어.』

       『음……!』

       

       그제서야, 멀쩡하던 양복자가 선풍기 때문에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것에 위화감이 느껴졌는지 모두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기세를 몰아 검지손가락을 뻗으며 외쳤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

       『……!』

       

       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는 바람에 다들 깜짝 놀라는 가운데, 송병오 녀석이 안경을 올리며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그……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인가?』

       『그런 게 있어. 아무튼 이건 범인이 존재하는 사건이고, 우리는 그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는 거야. 복자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또는 복자를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을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복자를 이렇게 만든 범인을 찾아내야만 해.』

       『옳거니! 자네의 말이 맞네!』

       『젠장! 어느 놈이냐! 그런 놈은 박살을 내야 한다!』

       

       송병오와 무라사끼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 주먹을 들고 일어섰지만, 이유하가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허나, 방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했다고 들었소만……』

       『좋은 지적이야. 뭔가 트릭을 썼겠지. 범인이 대놓고 흔적을 남기지는 않을테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이까와가 손을 떨며 말했다.

       

       『그, 그럼 그…… 대동아공영회의 교수들일까……?』 

       『흥! 그 화족 계집일수도 있지. 애초에 그 계집의 방이잖냐!』

       『허어, 그것도 그렇구만. 그리고 방을 선뜻 빌려준 것도 퍽 이상하네 그려.』

       

       무라사끼는 렌까를 지목했고, 송병오도 렌까를 의심했다. 갑자기 의심의 화살이 렌까를 향했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았기에

       

       『글쎄, 렌까가 이런 짓을 하리라고는……』

       

       하고 내가 말하려는데, 

       

       『시라바야시 상!』 

       

       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다름아닌 렌까였다. 

       

       『양반은 못되는구나.』

       『예?』 

       『네가 빌려준 방에서 도미꼬가 혼수상태에 빠졌어.』

       『저도 오는 길에 간략히 전해 들었습니다! 료오 상이 선풍기 때문에 의식불명이 되었다고……! 그런데……』

       

       렌까는 병실을 둘러보며 말을 하다가 멈췄다. 렌까가 병실에 들어오자 우리 분대원들은 다들 차가운 눈초리로 렌까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저어, 여러분……?』

       『나가서 얘기하자. 얘들아, 잠깐 렌까랑 얘기하고 올게.

       

       나는 왠지모를 싸늘한 분위기에 당황한 렌까를 복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간 다음, 벽으로 몰아붙이고 작게 물었다.

       

       『렌까.』

       『예, 예?』

       『우선, 나는 선풍기 때문에 복자가 저렇게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분명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복자를 해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런……! 그, 그래서 저를 의심하는 건가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지는 않아. 하지만 너의 방이었으니까 수상한 것도 사실이야. 방 주인인 너에게 묻는데, 그 방에 뭔가 위험한 장치라도 숨겨져 있는 것 아니야?』

       『이, 있을 수 없어요! 정직하게, 저나 오스에가 머물기 위한 방이었으니 아무런 위험한 장치도 되어있지 않은 보통의 방입니다. 아니, 장치라고 한다면 외부인의 침입을 막는 결계가 있을 뿐이니, 오히려 교내에서는 어디보다도 안전한 곳이라고 해야겠죠. 믿어주세요, 시라바야시 상. 저는—』

       『그래. 너는 믿어.』

       『…… 정말인가요, 시라바야시 상!』

       

       렌까가 감격한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여전히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하지만, 대동아공영회 소속의 교수 놈들은 못 믿지. 놈들이 몰래 손을 썼을 가능성은?』

       『그런……! 흐음.』 

       

       렌까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조금 생각해보면 그건 당치도 않아요. 제가 료오 상을 저의 방에 들였으니 료오 상은 저의 손님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런 료오 상을 해한다는 것은 저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니까요.』

       

       하긴. 대동아공영회 소속의 교수 놈들이 나에게라면 모를까 렌까에게 대들 리는 없었다. 

       

       『알겠어. 얘기해줘서 고마워. 그러면 범인은 제3의 인물이라는 얘기인가.』

       

       어쨌든 렌까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도 다행이었고, 대동아공영회 놈들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내가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니 렌까가 말했다.

       

       『후우…… 그럼, 저는 먼저 학교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벌써?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좀 더 있다가 가지.』

       『시라바야시 상의 분대원들이 불편해할 걸요.』

       『아……』 

       『시라바야시 상의 분대원들에게도 호감을 얻기 위해 료오 상에게 저의 방을 빌려준 것이었지만…… 일이 이렇게 되니 오히려 의심을 받게 되었네요. 아무래도 저는 환영받지 못하는 운명이 아닐까, 라고 생각되네요.』

       

       렌까는 씁쓸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렌까도 렌까 나름대로 내 분대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한 행동이 이런 비극을 불러올 줄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안쓰러운 것이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네 잘못 아닌 거 알아.』 

       『후훗. 상냥한 말은 고맙지만, 제 잘못이 전연 없다고는 할 수 없지요. 료오 상이 이렇게 된 것에는, 기숙사 방의 안전을 기하지 못한 저의 책임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러니 저도, 범인을 찾기 위해 움직여 보겠습니다.』

       『그래주면 고맙지.』

       『그럼, 또.』

       

       렌까는 몸을 돌려 복도 너머로 사라졌고, 나는 다시 병실로 돌아와서 말했다.

       

       『렌까가 한 짓은 아니야. 이건 확실해.』

       『흥! 무슨 근거냐! 저 화족 계집이야말로 제일 수상한데!』

       

       무라사끼는 그렇게 외쳤지만, 

       

       『나 역시 시마즈 공녀의 짓은 아니라고 생각하오. 시마즈 공녀는 여태껏 우리를 도와준 적이 많았으니.』

       『하긴. 시마즈 렌까 저 애가 이제와서 우리한테 엄한 짓을 하진 않을것같네 그려.』

       

       이유하는 나에게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고, 송병오도 거기에 맞춰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이래저래 해도 렌까하고는 오래 봐온 사이이니만큼 신뢰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그래. 그리고 대동아공영회의 교수들이 한 짓도 아니야. 렌까의 손님이 된 복자를 공격한다는 것은 렌까와 척을 지자는 것이나 마찬가지거든.』

       『그것도 그렇구려.』 

       

       다들 동의한 듯 했기에, 나는 분대원들에게 이어서 말했다.

       

       『렌까가 한 짓도 아니고, 대동아공영회 교수들의 짓도 아니라면, 그 외의 인물이라는 것인데……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범죄일지도 모르지. 혹시, 복자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에에…… 믿을 수 없어. 아마 없지 않을까? 도미꼬 쨩은 성격 좋으니까……』

       

       내가 묻자마자 아이까와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나는 이유하에게 물었다.

       

       『유하. 네가 보기엔 어때? 네 생각은 조금 다를  것 같은데.』 

       『양가라는 인물은 나와는 종종 마찰이 있었지만, 본디 천성이 해맑은 사람이오. 적을 만드는 인물은 아니라고 보오.』

       

       흐음. 학기 초에는 양복자랑 싸웠던 이유하도 꽤나 고평가를 하네. 나는 송병오와 무라사끼 녀석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희들은?』

       『내 생각도 그렇네. 어쨌든 워낙 붙임성이 좋은 계집애잖나.』

       『흥! 저런 똥바보같은 여자의 원한관계 따위 알 게 뭐냐!』

       

       역시 양복자에게 직접적으로 원한을 가진 사람은 없으려나.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혹시 나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나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나 대신 양복자에게 해코지했을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는데.』

       

       송병오가 조선어로 투덜거렸다.

       

       “글쎄, 부르주아지 계급인 자네라면 적도 많지 않겠나.”

       “뭐라고, 이 빨갱—아니, 돈이 많은건 내가 아니라 내 아빠라니까.”

       “제기랄! 자네의 그 얄미운 태도부터가 몹시 가증스러운 것이네그려.”

       

       억울한데. 세상에 나만 부자냐고! 그리고 누가 부자 아들놈으로 빙의되고 싶어서 빙의된 거냐고! 고개를 돌려 이유하를 바라보자 이유하는 대뜸,

       

       “후우…… 말해도 되겠소?”

       

       하고 한숨부터 쉬고는 조선어로 되묻는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것일까.

       

       “아니, 왜 한숨부터 쉬는데. 말해 봐.”

       “좋소. 나는 어디까지나 그대를 믿소만, 겉으로만 보자면 그대라는 사람은 왜인 권력자들에게 빌붙어 영달을 도모하는, 천하에 둘도 없는 부일배란 말이오.” 

       

       마음의 준비도 못한 채로 팩트폭행을 당해버렸다. 아앗, 뼈가 아플 정도인데……! 그런데 사실은 사실이었으니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건 그렇지.”

       “부일배, 부왜인, 매국노, 변절자, 앞잡이, 민족반역자, 순왜, 한간, 편복, 역적—”

       “아, 알았으니까 그만……! 말하고 싶은게 뭐야?”

       “그러니 우국충정이 가득한 조선인이라면, 부일배 역적과 다름없어보이는 그대에게 원한을 가짐도 이상한 일이 아니란 말이오.”

       

       과연.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한 점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하필 조선인 멤버인 복자를 공격하진 않았겠지. 아무리 복자가 친일파라지만 남한테 원한을 살 정도는 아니잖아. 차라리 무라사끼를 공격했다면 모를까.”

       “그것도 그렇구려.”

       『똥! 조선어 말고 국어로 해라! 중간에 내 이름이 왜 나오는 거냐!』

       

       이유하와 조선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무라사끼 녀석이 끼어들었다. 나는 녀석이 끼어든 김에 물었다.

       

       『그래, 무라사끼 네 생각에는 어때. 나를 싫어할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흥! 네 놈을 싫어하는 놈이 누가 있을지 내가 어떻게 알겠…… 으음?』

       『으음?이라니. 생각나는 사람이라도 있냐.』

       

       녀석이 말을 하다말고 뭔가를 떠올리듯 멍청한 표정을 짓기에 내가 물으니, 

       

       『큿, 뭐냐! 아무것도 아니다! 너같은 건방진 조선인을 싫어하는 놈이야 세상에 한가득 있겠지! 우선 나부터 네 놈이 아니꼬워서 견딜 수가 없다!』

       

       하고 오히려 역정을 내는 것이 아닌가. 항상 그렇지만, 나로서는 이 녀석이 왜 이러는지 당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추?리? @_@;;

    어째 인물이 많다보니 다들 한 마디씩만 얹어도 대사량이 많아져서 진행이 느려지는 것 같네요. 다음화부터는 바로 행동에 들어가는 것으로……!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저는 다음주 월요일에 돌아오겠습니당!!!!! 빠빠이!!!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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