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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8

       프레이는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하악, 하악……!”

         

       머릿속이 세차운동을 하는 팽이처럼 핑글핑글 돌았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난 마수다. 처음부터 마왕군이었어. 너희와는 적대 관계, 알겠냐?’

         

       에테르는 그 말을 끝으로 나가라고 통보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적이 되어있었다.

         

       인간이라면 인간다웠던 그녀가 어느새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과거에는 평범하게 아카데미를 다니던 동급생이, 이제는 엘프국 멸망이라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일리야드에 잠입해 있는 나쁜 사람으로 탈바꿈했다.

         

       심지어 자신을 협박했다. 죽기 싫으면 당장이라도 자퇴하라고.

         

       눈물이 핑 돌았다.

         

       “학, 학, 학, 하악…!”

         

       탁, 탁, 타탁!

         

       프레이는 숨을 몰아쉬며 기숙사까지 단번에 뛰어왔다.

         

       공용 스터디룸이 위치한 1층은 과제를 하는 학생들로 즐비했다. 프레이는 여러 사람의 체향을 맡으며 친구 두 명의 위치를 찾았다. 그리 오래 걸리는 작업은 아니었다.

         

       프레이는 잰걸음으로 로테와 버멜이 있는 곳까지 걸어왔다.

         

       “왔어?”

         

       기척을 눈치챈 로테가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새물내 나는 비단옷처럼 산뜻한 미소였다. 보고만 있어도 심신이 안정되는 웃음. 그러나 프레이는 오늘따라 평정을 유지하지 못한 채 숨을 헐떡거렸다.

         

       로테가 걱정하며 물었다.

         

       “안색이 안 좋아. 혹시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니…. 아무것도…….”

         

       어물쩍 대답했지만 이미 들킨 것 같다.

         

       “너 얼굴에 다 티나. 고민 있으면 숨겨두지 말고 말해.”

       “아,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진짜루…….”

       “그러면 왜 그렇게 숨이 가쁜데?”

       “뛰, 뛰어와서 그래!”

         

       헐레벌떡 변명해 보았지만 로테의 예리한 눈초리는 자신의 심경을 정확히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번뜩였다.

         

       “정말로?”

       “저, 정말로.”

       “거짓말.”

       “히끅!”

         

       지레 겁먹은 프레이가 눈을 피했다. 그럴수록 로테는 천천히, 동시에 꾸준하게 쏘아붙였다.

         

       “너 예전에 포도 꿍쳐두었다가 동생들한테 들켜서 다 빼앗겼다며.”

       “그,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오는데…!”

       “포도 한 송이도 못 숨기면서 거짓말하는 걸 어떻게 숨기니?”

       “아.”

         

       뭔가 논리적으로 맞는 것 같아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알겠어. 뭔지는 안 물을 테니까 일단 여기 앉아.”

       “으, 응.”

         

       겨우 진정하고는 생수병에 담긴 물을 원샷했다.

         

       여전히 심장은 콩닥콩닥 뛰었고, 호흡은 근처에 들릴 정도로 쌕쌕거렸다.

         

       조금 전의 충격이 안 가신 것인지 손이 사시나무처럼 후들후들 떨렸다.

         

       그대로 가방을 내려놓고 교재와 공책을 꺼내서 공부하려는데,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된 탓에 활자에 집중하기가 유난히 어려웠다.

         

       “이, 이게 무슨 소리야.”

         

       심지어 과제도 어렵다. 당최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프레이는 자신의 꼬리를 앞으로 가져와서 천천히 쓰다듬었다.

         

       “후우.”

         

       솜사탕처럼 푹신하고 극세사처럼 보드랍다.

         

       그나마 제 꼬리를 만지고 있자니 조금 괜찮아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어떻게 해야 되지?”

       “여기 아래쪽에 방정식이 있잖아. 이걸 위쪽에 대입하고 쭉 전개하면 될 거야.”

         

       어느덧 세 사람은 수식을 전개하며 담임이 내준 에세이를 착실히 해 나가고 있었다.

         

       막히는 부분은 서로 토론하면서 해결하고, 막상 글을 적을 때는 실수하지 않도록 충분한 프리라이팅과 퇴고를 거쳤다.

         

       고된 작업이었지만 나름 재미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여기서 잠깐 쉴까?”

       “내가 마실 거 가져올게.”

       “거기 트레이 없지 않아? 같이 가자.”

         

       나머지 두 사람이 카페에서 음료를 가져오는 동안, 프레이는 샤프를 깔짝거리며 골머리를 썩였다. 과제 때문은 아니었다.

         

       ‘세계수를 불태울 것이다.’

         

       에테르가 한 말이 아까부터 거슬려서, 도저히 깊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제야 겨우 재회했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는 신록의 세계수를 불태울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게 가능한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에테르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는 것.

         

       다른 마수가 그랬더라면 적극적으로 제지할 생각이었으나, ‘증기의 비’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았던 프레이였기에 감히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에테르는 친구다. 친구를 신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자신이 에테르를 신고하게 된다면 정령들이 몰려들어서 그녀를 무참히 공격하게 될 것이다. 그런 장면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친구를 내버려 두자니 진짜 세계수가 불태워지면 어떡하나 싶었다.

         

       “우, 으…….”

         

       선택의 기로에 놓인 프레이.

         

       열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이마가 뜨뜻미지근했다.

         

       진짜, 어떻게 해야 하지?

         

       “후우….”

         

       끙끙거리며 한숨을 내쉬던 중.

         

       “얘들아.”

         

       어느덧 음료수를 들고 돌아온 버멜이 입을 열었다.

         

       “갑작스럽겠지만 너희와 논의할 일이 있어.”

         

       그 말을 들은 프레이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뭔데?”

       “에테르가 이 학교에 있어.”

         

       맞다, 그랬지.

         

       버멜은 에테르와 생각보다 친했다.

         

       어느 날을 기점으로 서로 쪽지를 주고받더니, 한때는 열애설까지 돌 정도였다.

         

       실제 연인인가 뭔가 하는 관계는 아닐지라도 옛적에 친분이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에테르가 몸을 던져서 반타 토터스의 물대포를 대신 맞아주었던 거겠지.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아.”

       “알아.”

         

       그리고 옆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로테도 놀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너도 알고 있었어?”

       “그러면 너도?”

         

       자매처럼 딱 붙어 다니더니, 로테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잠시 놀랐지만, 생각해 보면 별로 이상할 것 없는 이야기였다.

         

       로테와 에테르, 두 사람은 룸메이트로 반 년 넘게 함께했으니까.

         

       “역시, 두 명 다 알고 있었구나.”

         

       버멜은 두 사람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 에테르가 지금 어떤 신분으로 있는지 알아?”

       “우리 반 담임.”

       “우리 반 담임.”

         

       로테와 프레이는 동시에 대답했다.

         

       “솔직히 다 티가 났어. 글씨 쓰는 습관이라든지, 수식 몇 개 날려버리는 거라든지 말이야.”

       “와…. 인간은 그런 것도 관찰할 줄 알아?”

         

       내심 감탄하고 있자니 버멜이 고개를 필사적으로 내저었다.

         

       한편 로테도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난 걔한테 따로 과외를 받았거든. 어느 순간 글씨체가 외워지더라고.”

       “아하….”

       “프레이, 너는?”

       “냄새로 알았어.”

       “맞다. 프레이는 요호족이었지?”

         

       프레이는 쫑긋거리던 귀를 살짝 접으며 긍정의 표시를 건넸다. 수인족만이 할 수 있는 유명한 제스쳐였다.

         

       “반 년 전까지만 해도 동급생이었는데 올해는 교수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로테는 프레이와 버멜에게 물었다. 그녀는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눈초리였다.

         

       버멜이 물었다.

         

       “신문 안 봤어?”

       “신문?”

       “뉴스에 떴잖아.”

         

       그제야 로테의 입에서 아,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두 사람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프레이가 목소리를 살짝 낮추어 말했다.

         

       “그, 그게 말이야…. 아까 하고 싶었던 말이 그거였는데…….”

         

       에테르가 실제론 영락없는 마수라는 것.

         

       본래 말을 꺼낼 생각은 없었지만, 에테르의 단짝인 로테에게는 귀띔이라도 해 주어야 후환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프레이는 굳게 결심하며 사실을 전달했다.

         

       “거, 거짓말.”

         

       로테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안색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증기의 비’ 당사자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소식이다.

         

       “미안하지만 내가 봤어. 피가 검은색이었어. 그래서, 그래서…….”

         

       막상 얘기하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니야. 잘못 본 걸 거야.”

         

       로테는 그리 중얼거렸다. 고저 없이 덤덤한 목소리였다.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오히려 침착하게 대응한다던데,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내가 봤어, 로테. 에테르는 마수가 맞아. 마왕군 소속도 맞고.”

         

       비칠거리며 간신히 중심을 잡던 로테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버린 건 다름 아닌 버멜이었다.

         

       “에테르는 여기서 세계수를 불태울 계획을 세우고 있어. 원자폭탄이라는 마법으로 말이야.”

       “원자, 폭탄…….”

       “에테르에게 들었어. 너랑 프레이랑, 그 마법을 개발하고 있었다고.”

       “맞아….”

         

       프레이는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설마 괜히 얘기했나?

         

       로테는 아무것도 몰랐을 텐데…. 아니, 알고는 있었어도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을 텐데.

         

       받아들일 시간도 주지 않고 너무 빨리 말해버린 건 아닐까?

         

       그런 마음에 괜히 가슴이 시큰거렸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중간하게 끝내지 말아야 한다.

         

       프레이는 심호흡했다.

         

       혼자 이야기하는 게 아니잖아, 지금.

         

       버멜 호르데라는 그림자에 묻혀 가더라도, 할 말은 하고 해결책을 내놓는 것까지가 친구로서의 도리 아니겠는가.

         

       “세계수를 불태운다니…. 설령 마수라고는 해도 에테르가 그럴 리가 없어.”

         

       최후의 보루를 세워놓고 담담하게 부정하는 로테를 향해, 프레이는 마지막 한 발을 사격했다.

         

       “사실, 아까 에테르에게 가서 그 얘기를 듣고 왔어.”

       “뭐, 뭐라고?”

       “세계수를 불태우겠다는 거 말이야.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아….”

         

       그 말에 로테는 침묵했다.

         

       로테도 알고 있을 것이다. 프레이는 거짓말하면 얼굴에 표가 난다는 것을.

         

       “…….”

         

       로테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지금 여기는 공용 시설. 서럽게 울거나 버멜에게 큰소리를 내지르지도 못한다. 붉은 단발머리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침묵하는 것뿐이었다.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로테는 물론이고, 프레이도 이 다음에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해결책이라고 떠올린 건 ‘다 같이 찾아가서 에테르를 설득한다’가 전부.

         

       방향성도 애매하고, 성공 가능성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을 때, 버멜이 입을 열었다.

         

       “내게 방법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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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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