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38

    “이런 곳에서 볼 줄은 생각도 못했구나.”

    “나도 마찬가지야.”

     

    또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아무래도, 꽤 인연인 모양이다.

    원래 더 따끔하게 한소리를 하려고 했지만, 익숙한 얼굴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미 충분히 반성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니, 루크는 감정을 추스리며 말했다.

     

    “대체 뭐 때문에 그리 급하게 길을 뛰어다닌 것이냐, 위험하잖나.”

    “미안……. 그, 많이 아팠어?”

     

    수인들에게 꼬리는 급소중에 하나라고 들었는데.

    그렇게 꼬리를 성대하게 깔고 앉을 정도였으면,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앉아서 허리를 문지르고 있는 걸 보니 굉장히 아팠던 모양.

     

    마르코는 미안한 기색으로 루크의 가방에서 쏟아진 내용물들을 빠르게 루크의 가방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 처음엔 전혀 못 알아 봤어.”

    “그런가.”

     

    과거에 보았을 때보다 키도 훨씬 컸고, 뿔도 어디론가 사라진 데다가, 머리모양도 바뀌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그때와 지금은 루크의 분위기가 너무나 달랐다.

     

    ‘성장기라서 그런가?’

     

    역시 아이들은 조금만 눈을 떼도 쑥쑥 자라는 모양이다.

     

    어른인 척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조금 더 자연스러워 진 것 같은 느낌?

    옛날에는 어울리지 않게 어른인 척 하는 모습이 웃겨서 귀여웠다면, 지금은 조금 더 아이로서 귀여워졌다는 느낌이랄까?

     

    참 이상한 일이다.

    말투는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의 억양이나 행동의 차이인가?

     

    마르코는 쏟아진 가방의 내용물의 정리를 마친 뒤, 루크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예전에 비해서 목소리에 조금 더 감정이 풍부해진 것 같달까?”

    “음, 그럴 수도 있겠구나.”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마르코가 정리한 가방을 받아들었다.

    루크가 가방을 어깨에 다시 걸치는 모습을 확인한 마르코는 차도에 있는 버스 하나를 발견하고는 조금 급하게 말했다.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나 저거 지금 타야 하거든! 다음에 또 보자!”

    “그래, 다음부턴 조심하거라. 다음에 또 만나면 이야기하…….”

     

    그 순간, 루크의 가방에서 미처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종이 한장이 바람에 빠져나와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루크는 빠르게 손을 뻗어 그 종이를 낚아채려 했지만, 아직 꼬리의 충격이 가시질 않아 다리가 아직 제 말을 듣지 않았기에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아, 나의 연구가!”

    “어?”

     

    마르코는 자신이 타야 할 버스와 루크의 가방에서 빠져나와 날아가고 있는 번갈아 보았다.

    루크는 아까 엉덩방아를 찧은 것에 대한 영향으로 아직 다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라면 충분히 잡아다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버스는 지금 타지 않으면 분명 지각일텐데…….

     

    ‘어떡하지……?’

     

    ————–

     

    버스 정류장에 앉은 마르코와 루크.

     

    버스정류장이라, 그러고보니 항상 마르코와는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게 되는 것 같다.

    루크는 어쩐지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대는 그렇게 정신이 팔려 있었던게냐.”

    “그래……. 결국 지각을 해버렸네.”

     

    마르코는 멋쩍게 웃으며 뒷통수를 긁었다.

     

    오늘이 알바 면접이었고, 하필이면 오늘 늦잠을 자는 바람에 이렇게 되고 말았다.

    문자로 면접시간을 아주 조금 늦춰줄 수 없겠느냐고 연락하며 달리고 있었으며, 결국 지금에 이른다.

     

    “미안하군, 나도 앞을 잘 보았으면 그대가 일자리를 잃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아니, 이건 뭐……. 처음부터 늦잠을 잔 내 탓이지. 그리고, 앞을 제대로 안 본건 나도 마찬가지고…….”

     

    마르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 상황에서 아이를 어떻게 그렇게 매정하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그나저나, 대체 뭘 그렇게 가방에 많이 넣고 다니는 거야? 아까 보니까, 무슨 공부를 한 것 같던데.”

    “음, 그건 나의 연구이자 과업이다. 공간에 대한 법칙을 연구하고 있던 것이지.”

    “과업? 연구? 혹시 과제를 말하는 거야?”

     

    마르코의 물음에 루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은 결국 상통하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군.”

    “그래?”

     

    마르코는 혀를 내둘렀다.

     

    공간에 대한 법칙이라, 꽤 앞서나가는 구나.

    역시 티그 아카데미인가?

    그건 4클래스의 기초, 6학년에 들어서야 겨우 개념을 가르치는, 아주 어려운 공부였다.

    여러모로 저학년에 배울 수준은 아닌 것이다.

     

    ‘대단한데, 요즘엔 벌써 진도가 거기까지 나가나?’

     

    하지만 마르코는 알 턱이 없다.

    루크가 연구하는 것은 자신이 배우고 있는 ‘기초수준’의 공간 계산 따위와는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수준의 연구라는 것을.

    그저, 그걸 예습하는 것이 티그 아카데미의 과제인가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

     

    “하여튼, 나의 과제를 잡아주어서 고맙네. 꽤 중요한 부분이었거든. 이걸 잃어버렸다면 다시 그 정도로 정리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을 빼앗겼을 거야.”

     

    루크는 다시금 감사를 표했다.

    예르나가 대신 가방 정리를 하며 섞여든 연구자료였다.

    그리고 진작에 구기지 않고 책상위에 두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상당히 중요한 자료라는 의미.

     

    물론 대략적인 내용은 확실히 외우고 있기는 해도, 발상을 떠올리기 쉽도록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정리해 놓은 표지판과 같은 것이라 잃어버린다면 다시 작성을 하는 수고를 들여야만 했다.

     

    특히나, 마력 스케치는 직접 황금매의 깃펜으로 일일이 수기로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잃어버렸다면 큰일이었겠지.

    학교에 가기 전에 이 연구를 끝마쳐야만이 월영석을 미련없이 시루드에게 돌려줄 수가 있었으니까.

     

    “기간이 언제까지 해야 하는 과제인데?”

    “이번 주말 안에.”

    “아하.”

     

    남은 시간이 주말뿐이라면 다시 하기에는 좀 빠듯하겠네.

    잃어버렸다면 큰일이었겠지.

     

    “그럼 과제는 얼마나 끝냈어?”

    “모르겠다, 한 절반 정도는 한 것 같은데…….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구나.”

    “음, 그래? 뭐가 어려운데? 나한테 보여줘봐.”

     

    마르코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비록 티그 아카데미에 수준에 미치진 않지만, 테네간 아카데미에서 중상위권 성적을 갖추는 자신이다.

    어린아이가 하는 수업내용 정도야 별로 문제될 것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시간도 남고 있으니, 심심하기도 하고.

     

    게다가, 루크는 반응이 좋아서 가르치는 맛이 있는 아이였기에.

     

    “음……. 글쎄, 내 연구는 그대가 이해하지 못할텐데.”

     

    하지만 루크의 반응은 조금 시큰둥했다.

    마르코는 고작 아카데미 학생이고,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것은 그 수준을 한참 벗어난 단계.

    상식적으로 유의미한 조언이 나올리 없지 않은가.

    마르코가 정말로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면 또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그런 천재라면 아카데미에 저 나이가 되도록 다니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진작에 조기졸업을 하던가, 자퇴를 하고 제 꿈의 날개를 펼치며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었겠지.

     

    하지만 마르코는 그 모습에 그저 ‘에? 오빠가 이걸 할 줄 안다고? 엄청 어려운데, 괜찮겠어?’라며 자신의 기준으로 엄청 어려운 아카데미 숙제를 보여주는 귀여운 사촌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미소를 띈 얼굴로 말했다.

     

    “에이, 그러지 말고 한번 보여달라니까? 손해 볼 것도 없잖아?”

    “뭐, 그렇긴 하군. 알겠네.”

     

    루크는 하는 수 없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자신의 연구들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약간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문자로 표기해놔서 알아보기 어려울 수도 있네.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내게 물어보게.”

    “어, 알겠ㅇ…….”

     

    루크의 ‘과제’를 받아든 마르코는 순간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로 그것을 쳐다보았다.

     

    수많은 숫자, 그리고 문자의 향연.

    도저히 알아볼 수 조차 없는 설명의 나열.

    그럼에도 너무나 깔끔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수식들…….

     

    마르코에게 마치 마주해선 안될 지식을 보고 만 듯한 압도적인 혼란이 몰아닥친다.

     

    이해는 뒷전이고, 눈이 핑핑 돌 정도다.

     

    “이, 게 대체……?”

     

    아니, 수준이 이상하잖아?

     

    요즘 애들은 정말 이런 걸 공부한다고?

     

    “역시 무리인가보군.”

     

    루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마르코의 손에서 과제를 다시 받아들었다.

    애초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딱히 실망감도 들지 않았다.

     

    루크가 가방에 과제를 정리하고 있을 무렵, 그제서야 다시 정신을 차린 마르코는 루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너, 정말 그런게 과제라고?!”

     

    “그래, 이 연구를 이번 주말 안에 끝내야 한다.”

     

    마르코는 기가 막히다는 듯 이마를 탁 짚었다.

     

     

    대체 티그 아카데미는 어떤 곳이란 말인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아무래도, 티그 아카데미로 진학을 할 생각을 하지 않은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 애초에 들어갈 수 있는 형편도 안되었지만…….

     

    “아, 잠깐만.”

     

    혹시 그런건가?

    뭐, 무슨 수식을 검색해서 찾아오는?

     

    “혹시 그거 인터넷에서 찾아서 보고 베끼고 뭐 그런 과제야?”

    “음……. 그래, 사실은 검색해서 나온 정보를 토대로 다시 작성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

     

    루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검색으로 많은 정보를 찾아 베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4클래스 너머의 지식은 허락되지 않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4클래스 이하의 지식은 얼마든지 허가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남이 작성해둔 자료를 베끼거나 참고하는 것도 분명 행해진 일.

     

     

    그런 루크의 말을 들은 마르코는 그제서야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역시 그런 거겠지.

     

    어디서 베낀 게 아니라면 10살짜리 꼬마가 그런 수식을 썼을 리가 없지!

    아마도 루크가 받은 과제는 ‘인터넷에서 흥미있는 수식을 베껴오기, 그래프와 회로도 분석하기’ 뭐 그런 종류의 과제였을 것이다.

    그러면 충분히 말이 된다.

     

    그래도, 그렇게 깔끔하게 종이 위에 정보를 정리할 수 있다는 건 부러운 능력이었다.

     

    마침내 충격에서 벗어난 마르코는 문득 떠오른 듯이 물었다.

     

    “그런데 왜 일일이 손으로 쓰고 있는 거야? 컴퓨터는 쓰지 말래?”

    “컴퓨터? 검색용으로는 이미 잘 쓰고 있다.”

    “너, 혹시 컴퓨터로 검색이랑 게임 밖에 안하는 건 아니지?”

     

    -뜨끔.

     

    마치 자신을 관통하는 듯 한 물음에 루크는 한차례 몸을 떨었다.

     

    “……최근에는 메일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만…….”

    “하하하! 그래?”

     

    시선을 피하며 자신의 말을 정정하는 루크의 모습에 마르코는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뭐가 그리 웃기지.”

     

    루크가 조금 퉁명스럽게 중얼거리자, 마르코는 웃음을 잦아들이며 말했다.

     

    “아, 미안, 미안. 그럼 혹시, 컴퓨터로 계산이나 회로도 시뮬레이션 같은 건 전혀 안해?”

    “뭐라고? 컴퓨터로 그런 것도 할 수 있단 말이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컴퓨터로 검색이랑 게임, 메일보내기 말고는 할줄 모르는 컴맹 틀딱 루크….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