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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8

     

    ―화악!

     

    다시금 순간이동하는 메피스트. 그가 슈트 와이셔츠 소매의 단추를 풀며 말했다.

     

    “보아하니 그대들의 책사는 치유사인 모양이군. 흥미로운 일이야.”

     

    메피스트가 팔을 걷어 올렸다. 그의 위팔노근에서 마기가 뿜어지며 톱날처럼 진동했다.

     

    “관측한 미래에서도 책사는 치유사였지. 본래 치유사가 그런 역할인가? 혹은 짐이 탐구하지 못한 지식이 있는지.”

     

    “거 참 말 많네.”

     

    마지막 전투다. 여기서 모든 걸 쏟아부을 기세로 손에 든 포션을 쭈욱 들이켰다.

     

     

    ―――――――――――

    · 영웅의 포션

    · 15분간 근력이 최대치로 증가합니다.

    · 정말로 큰 힘에는 아무런 책임이 따르지 않는답니다!

    ―――――――――――

     

     

    [자이언트 포션]을 A랭크 [강화]와 함께 조금 남았던 [요정의 노래]와 합성해서 만든 유니크 포션이다.

     

    동시에 [천둥매의 포션]으로 안근을 강화, 반사신경을 최대한 올려냈다.

     

     

    ―――――――――――

    근력 : 100 (+70)

    체력 : 31 / 31

    마력 : 1

    마나 : 52

    신성력 : 82

    신앙심 : 100

    ―――――――――――

     

     

    한계까지 스탯을 펌핑했다. 이걸로도 상대할 수 없으면 그건 그때 생각하지 뭐.

     

    마법사인 메피스트를 상대로 근력을 올린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이 정도가 아니면 일격에 황천길을 건널 수도 있거든.

     

    쿠웅, 한계에 도달한 근력으로 지면을 박찬다. 바닥이 부서지며 충격파가 일었다.

    단숨에 메피스트의 코앞까지 접근한다. 반사신경의 한계를 뛰어넘는 0.08초. 나조차 내가 어디 있는지 인식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강화한 눈으로 간신히 시야를 잡아낸다.

     

    ―화아악!

     

    팔에 신성력을 휘감아 권사의 무기인 건틀릿의 형태로 정제한다. 망설이지 않고 메피스트의 붉은 몸체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앙!

     

    그가 수도로 내 주먹을 막아냈다. 발생하는 충격파의 반동. 주변에 깔려있던 타냐의 오러가 밀려나고 돌풍이 몰아쳤다.

     

    “좋은 눈썰미로군, 치유사여.”

     

    메피스트가 입꼬리를 올리며 팔에 힘을 준다. 불룩, 그의 근육이 수축하며 나를 밀쳐냈다.

     

    근력을 최대로 올려도 이 정도가 한계인가.

    하긴 어디서 권법을 배우지도 않았으니.

     

    그래도 시간은 벌었다.

     

    “하앗!”

     

    내 뒤에서 나타난 리셰가 마왕의 뇌간을 노린다. 그가 순간이동으로 회피한다. 하지만.

     

    ―파앗!

     

    메피스트의 귀가 찢어지며 피가 튀었다. 연계 덕분에 처음으로 넣은 대미지였다.

     

    “마법 시전보다 먼저 베면 돼!”

     

    이 무식한 방법이 메피스트의 시간 정지에 대한 1차 파훼법이다.

     

    시전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공격한다.

    심플하다.

     

    “빠르군. 하지만.”

     

    마왕의 팔에 힘이 들어간다.

     

    “얕다.”

     

    다시 리셰에게 접근한 마왕이 수도를 내질렀다. 쿠우웅! 공격을 정면에서 방어한 리셰가 바닥에 처박혔다. 흑요석이 부서지며 공중을 날아다닌다.

     

    “큭!”

     

    눈으로 좇을 수도 없는 합을 지켜본 앰브로시아가 입을 떡 벌렸다.

     

    “저 힘이 대체 어디서 나온 거요! 마왕은 마법사가 아니었소?!”

     

    “전위가 없는 마법사는 힘이 약하다. 지금처럼 근접전으로 들어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지.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투둑, 메피스트가 셔츠 단추를 모두 풀어냈다.

    그의 위압적인 근육이 드러났다.

     

    “자기단련은 필연적이지 않겠나.”

     

    이게 그의 무서운 점이다. 내가 근력을 강화한 이유이기도 했다.

    메피스트는 마법사이지만 단순히 근력 스탯만 봐도 달인급. 권법도 경지에 올라있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기에 언제든 마법과 권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문무를 모두 갖춘 까다로운 적이다.

     

    ‘뭐, 근력만 가지고 이길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화악!

     

    메피스트가 순간이동해 움직인 자리에는 타냐가 기다린다. 그녀의 검에서 뿜어진 오러가 메피스트의 마기와 충돌하며 공간을 갈라버릴 기세로 사방으로 튀었다.

     

    파티원은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퇴로를 막는다. 발도 검술도 빠른 리셰가 그를 집요하게 노리고 연격을 이어간다.

     

    부족한 스탯은 파티원으로 메꾼다. 파티플레이의 장점을 극한까지 끌어낸다.

     

    그 전략 덕에 조금씩 마왕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시간 정지 시전도 여의치 않고, 시전했다 한들 우리를 공격해오진 못한다.

     

    방어에 급급해하는 메피스트.

     

    ‘슬슬 나올 때가 됐어.’

     

    여태 메피스트와의 장기전도 많이 겪어봤다. 그의 대처수단은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을 터.

     

    그 틈새를 리셰가 찌를 수 있다.

     

    “하앗!”

     

    리셰의 다음 일격이 날카롭게 메피스트의 미간을 노리고 쏘아지는 찰나.

     

    ―스르릉!

     

    별안간 바닥을 뚫고 나타난 빛의 사슬이 리셰의 팔다리를 휘감았다. 마법으로 소환한 실체 없는 개념무장이다.

     

    붙잡힌 부분부터 슬로우비디오 마냥 그녀의 움직임이 느려진다.

     

    “7위계, 토름의 사슬…!”

     

    아셀라가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보았다. 대상의 시간을 느리게 흐르게 하는 구속구다.

     

    “이것까지 꺼내게 만들다니.”

     

    사슬을 마기로 휘감는 마왕. 그가 오른팔을 치켜올리고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쿠궁! 그의 등 뒤, 마왕성의 흑요석 외벽이 무너져내리며 거대한 파편이 되었다.

     

    마왕이 팔을 내리자 리셰를 향해 초고속으로 쏘아지는 파편. 직격당하면 일격에 납작해질 위협적인 위력이다.

     

    “리셰!”

     

    내가 신호를 주었다.

     

    바로 지금이다.

     

    메피스트는 시간을 멈춰서 그 사이에 리셰를 묻어버리려 할 터.

     

    마왕이 즉시시전에 들어간다.

     

    리셰도 늦지 않게 반응했다.

     

    성검이 빛을 발하고.

     

     

     

    ***

     

     

     

    공명에 들어간 리셰는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마왕의 시간 정지에 의해 멈춰버린 세상. 그 안에 개입해 들어왔다.

     

    결계석의 세상 안에 들어갔을 때처럼, 별안간 모든 풍경이 정지한다.

     

    방금까지 바쁘게 뛰어다니던 파티원들도, 사방에 흩뿌려진 오러와 연기도. 모든 물리법칙이 멈춰버렸다.

     

    뚜벅, 뚜벅. 그 안을 유유자적히 걸어다니는 유일한 존재, 마왕.

     

    그가 훌쩍 뛰어서는 거대한 흑요석 덩어리를 리셰 쪽으로 당겨온다.

     

    이러면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을 때 리셰는 손도 못 쓰고 적중당할 게 분명했다. 손발을 묶였으니 피할 수도 없다.

     

    ‘나를 직접 만질 수 없는 건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시간 정지라는 강력한 마법을 구사하면서 이렇게 번거롭게 싸울 필요가 없을 테니.

     

    리셰는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도록 주의했다.

     

    공명한 자신이 그의 영역에 침투했단 사실은 들키지 말아야 했다.

     

    조금, 조금만 더 가까이서 기회를 노린다.

     

    “후우.”

     

    마침내 마왕이 리셰의 코앞까지 광석 덩어리를 가져온 순간.

     

    ‘…윽.’

     

    눈이 마주쳤다.

     

    순간 시선이 흔들렸을지도 몰랐다. 리셰는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하고 발을 움직여 단숨에 튀어 올랐다.

     

    ―사악!!

     

    깔끔하게 그어지는 궤적.

     

    정지한 시간 속에서 선혈은 터지지 않는다.

     

    “과연, 노림수가 있었나.”

     

    마왕이 침착하게 한 걸음 후퇴했다. 그의 오른 어깻죽지에서 몽글몽글 핏방울이 맺혀 공중을 떠다닌다.

     

    한쪽 팔은 받아냈다.

     

    하지만 목숨은 끊지 못했다. 사슬 때문에 움직임이 느려진 탓이었다.

     

    마왕이 마기를 더욱 불어넣으니 리셰의 몸이 더욱 무거워졌다. 입술조차 열기 힘들 정도로 전신이 느려져, 그녀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훌륭한 한 수였다. 짐의 영역에 침범한 이는 처음이다. 용사, 세상의 신비인 그대가 짐이 계산하지 못한 변수인가?”

     

    마왕이 턱을 쓰다듬으며 리셰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를 한참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대가 아니군. 짐의 틈새를 찌른 것도 그대가 아니야. 그럼 누구지?”

     

    주변을 둘러보는 마왕. 그가 걸음을 옮겨 한 인물 앞에 섰다.

     

    용사파티의 치유사였다.

     

    “기묘하군. 모두 다른 인물로 바뀌었다고 여겼건만, 어째서 이 자만 신성력의 진동수가 같은가?”

     

    마왕이 치유사를 향해 디스펠을 시전했다.

     

    “후환을 생각하자면 이 자를 우선하여 제거하는 편이 옳겠군. 물론 순서의 차이일 뿐.”

     

    그가 마기를 불어넣으며 말했다.

     

    “대륙에 인족을 남겨둘 생각은 없다.”

     

    “…왜?”

     

    리셰가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어째서 미래를 보는 강한 힘을 가지고, 성공의 길만을 밟아 정점에 올라왔으면서, 굳이 전쟁을 벌여 인족을 멸망시키려 악행을 저지르냐는 의문이 함축된 질문이었다.

     

    궁극의 마법이 목적이라면 서로 협력하고 화합하는 길도 있을 터인데.

     

    마왕은 그 의도를 명확하게 알아들었다.

     

    그리고 그가 보인 반응은, 오히려 리셰의 질문이 의문스럽다는 태도였다.

     

    “짐은 마족이잖나.”

     

    그 짧은 대답 덕분에 리셰도 이해했다.

     

    말이 통하고 팔다리가 달린 건 비슷할지 몰라도, 눈앞의 존재가 인간과는 근본부터 다르다는걸.

     

    대화나 협상의 여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대답 잘 했다, 새빨간 녀석아.”

     

    ―쐐액!

     

    그런 마왕을 향해 날카로운 얼음창이 쏘아졌다. 남은 왼팔로 방어하는 마왕.

     

    리셰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분명 아직 세상은 멈춰있었다.

     

    또각, 또각. 연기 속을 걸어 그녀가 마법진과 함께 나타났다.

     

    “잠시나마 너를 마법사로 오해했던 내가 바보였구나.”

     

    가차 없이 공격마법을 연발하는 아셀라. 미처 모두 막아내지 못하고 몸통을 관통당한 마왕이 인상을 찡그렸다.

     

    “하, 고통은 느끼는 모양이지.”

     

    “이 역시 흥미롭군.”

     

    딱, 마왕이 손가락을 튕기고.

     

    ―콰아앙!!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떨어지던 흑요석이 지면에 성대하게 충돌했다.

     

     

     

    ***

     

     

     

    내게는 갑자기 폭발이 일어난 걸로 보였다. 하지만 충분히 상황은 이해가 됐다.

     

    ‘숨통을 끊진 못했나.’

     

    리셰가 끝장을 내진 못했다. 그래도 한쪽 팔은 받아냈다. 나는 곧장 앞으로 굴러 마왕의 신체를 손에 넣었다.

     

    아셀라의 공격을 막아내는 마왕. 둘의 위치가 계속 변하는 걸 보면.

     

    ‘아셀라도 시간 정지 속에서 움직이고 있어.’

     

    7위계 마법을 단숨에 해석하다니, 경이로운 실력이었다.

     

    일단 흑요석에 파묻힌 리셰 구출이 먼저였다. 타냐와 함께 바닥을 파내 그녀를 꺼냈다.

     

    “리셰, 괜찮아?”

     

    “죄송해요, 못 이겼어요.”

     

    “부상이 심하오. 황녀님이 시간을 끄는 동안 치유하겠소이다.”

     

    진단으로 살펴보니 골절이 세 군데. 좋지는 않다. 일단 진통제부터 먹이고 나도 치유주문을 시전했다.

     

    쿠구궁! 정면에서는 마법이 충돌하며 충격이 계속 발생한다.

     

    ‘발렌이 보조해도 아셀라 혼자서는 힘들어.’

     

    어서 리셰를 치료하고 합류해야 하는데.

     

    하지만 리셰가 시간 정지 속에서도 움직일 수 있다고 들킨 이상 같은 수는 안 먹힐 테고.

     

    팔을 한쪽 받아내서 전투력은 꽤 떨어트렸지만 메피스트는 역시 만만치가 않다.

     

     

    그의 위협적인 팔을 집어든 순간.

     

     

    ―――――――――――

    · [마왕의 피]를 습득했습니다.

    · 새로운 [연성]의 조합식을 발견했습니다.

    · 시간 반동 포션 = 마왕의 피 + 아트로핀

    ―――――――――――

     

     

    역전의 수가 상태창에 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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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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