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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8

        

       크-리-스-마-스!

       역겨운 크리스마스 조형물 같으니!

         

       언제 봐도 역겹고 끔찍한-실제로 토악질이 올라올 정도의 역겹고 끔찍한 모습이다.

         

       발로 그려도 잘 그렸을 것 같이 찌그러진 산타와 루돌프의 모습에, 썰매에 크게 실려있는 크리스마스라는 글자는 크기 조절을 잘못해서 잔뜩 찌그러져 있다. 게다가 저걸 만든 놈은 제대로 된 심미안도 갖추지 못한 것인지 그 글씨체는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들고, 그나마도 크기 조절을 잘못해서 산타와 루돌프의 몸뚱이를 반쯤은 가리며 매달려 있다.

         

       그래서 더 역겹다.

         

       그냥 봐도 역겹고 끔찍한 모습의 산타와 루돌프인데 저 간판 뒤에 숨어서 나를 돌아버린 초점 없는 눈깔로 노려보는 느낌이 드는데 저게 기분이 나쁘지 않으면 뭐가 기분이 나쁘겠어?

         

       그래서 저게 역겹다고, 끔찍하니까 당장 치우라고 난리를 피우면 역겨운 위선자 놈은 말하지.

         

        – 오, 윌리엄. 저 조형물은 아주 대단한 사람이 선물한 것이란다. 치매에 걸리고 있음에도 신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을 유지한 채 매주 교회에 오시는 투철한 신앙심을 가진 형제님이 주신 물건이란다. 하루에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으신 분께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노력으로 저것을 만들었는지 안다면 너는 저것을 끔찍하다고 여기지 못할 거란다.

         

       위-선-자.

         

       너는 위선자야.

       빌어먹을 기도쟁이야.

         

       저게 역겹지 않다고?

       저 괴물 같은 모습이 두렵지 않다고?

       어디 문명화되지 못한 아프리카의 미개한 부족 놈들이 사람을 바치면서 섬길 것 같은 저 모양새가 역겹지 않다고 말한다니, 이 역겨운 위선자 같으니.

         

       나는 너의 속셈을 다 알고 있어.

         

       저 조형물을 본 사람들은 말하겠지.

         

        – 오, 저 물건은 뭔가요?

         

       성당의 격에 걸맞지 않은 역겨운 물건에 호기심을 느낄 테니까.

       쓰레기더미의 가장 안쪽, 아니면 템스강의 가장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어야 마땅한 저 끔찍한 조형물이 왜 여기에 있는지 궁금해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리고 너는 위선 가득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는 거야.

         

        – 오, 저 물건은 치매에 걸리신 신자분께서 선물해주신 물건입니다. 그분의 숭고한 마음과 노력이 담긴 물건이지요. 신자분들이 귀한 물건을 자주 보내오곤 하지만 저에게는 저 물건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럼 위선자의 말을 들은 어른들이 그 위선에 전염된 것처럼 말하는 거야.

         

        – 아! 그런 사연이 있다니 아주 감동적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제가 헌금을 좀 하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야기를 팔아먹고 돈을 뜯어내려는 역겨운 위선자.

       성경의 말 대신에 간악한 술수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서 돈을 뜯어 가려는 기도쟁이놈.

         

       아, 내가 예언으로 이 교회가 불에 타들어 가는 꼴을 볼 수만 있다면!

       이 역겨운 위선자가 산채로 불에 타들어 가고 그 끝에 목이 잘리는 꼴을 볼 수만 있다면!

         

       그런 예언을 볼 수만 있다면 이 역겨운 위선자 놈에게서 받는 짜증이 절반은 줄어들 텐데!

         

       모든 게 싫다.

         

       저 위선자도.

       굳이 집에서 놀고 싶은 나를 끌고 와서 저 위선자 놈과 얼굴을 마주하게 한 꼰대 연놈도.

       그리고 저 역겨운 크리스마스, 오. 역겨운 크리스마스!

         

       저 매달린 끔찍한 우상이 나를 보고 있잖아.

       저 역겨운 형체가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놀고 있는 저 애새끼들을 보고 웃고 있잖아.

         

       저 뒤틀린 루돌프가 귀까지 찢어질 듯 웃고 이빨을 내밀고, 산타라는 놈이 음흉하게 웃으며 나를 보고 있어.

         

        – 얘, 너도 저거 궁금하니? 저 크리스마스 글자 뒤에 뭐가 있을지 궁금한 거지?

         

       안 궁금해, 빌어먹을 애새끼야.

         

       어디서 친한 척이야?

       

        – 처음에는 간판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저 뒤가 불룩 튀어나와 있더라. 그래서 많은 아이가 더 크리스마스의 뒤를 확인해보고 싶어 해. 하지만 너무 높이 매달려 있는 데다가 우리가 갈 수 없는 위치에 있어서 저걸 도저히 확인할 방법이 없어.

         

       안 물어봤어.

       입 좀 닥쳐.

         

        – 아, 저 크리스마스 뒤에는 뭐가 있을까? 애들의 말처럼 산타의 자루 부분에 선물이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교회에서 돈을 숨겨놓기 위해서 자리를 만든 걸까?

         

       빼돌린 헌금이 저기에 있을 수 있다고?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

       마음에 드는 생각이야.

         

        – 그런데 어떤 애들은 다른 애들을 겁주려고 하나 봐. 저 크리스마스 뒤에는 산타의 자루가 있고, 거기 말을 듣지 않는 못된 아이들을 차곡차곡 쌓아놓았을 거라고 그러더라.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듣고 싶지 않은 말 지껄이기는.

       뻔뻔한 년 같으니.

       나는 이제 너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 나는 정말 궁금해. 저 크리스마스 뒤에는 뭐가 있을지. 정말로 애들 말처럼 애들이 잡혀있거나 시체가 있지는 않을지 말이야. 너도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지 않아.

       나에게 말을 걸지 마.

         

       멋대로 뒈져버린 년이 어디서 나를 꾀려 들어?

         

        – 눈치챘어?

         

       내가 그걸 왜 모를까.

       너는 더 크리스마스가 궁금하다고 몰래 들어갔다가 실종되어버린 년이잖아.

         

       꺼져.

         

       나는 저 크리스마스의 뒤를 볼 생각이 없으니까.

       저 크리스마스 뒤에 있을 악몽이 궁금하지 않으니까.

         

        – 정말로?

         

       죽었으면 꺼져.

       내 꿈에서 썩 꺼지라고!

         

        – 나, 너랑 저거 보고 싶어.

         

       꺼지라는 말 안 들려?

         

        – 나. 네가 보고 싶었어.

         

       …빌어먹을.

       빌어먹을 년.

         

         

       

        * * *

         

         

         

       꿈이 끝이 났다.

         

       “트라우마로군.”

         

       윌리엄이 꿈에서 깨어남과 함께 다시 눈을 뜬 진성은 일어나자마자 중얼거렸다.

         

       트라우마(Trauma).

         

       라틴어로 ‘큰 상처’라는 뜻을 가진 말을 어원으로 가지고 있는 말이자, 현대인들에게는 꽤 친숙해진 의학 용어였다.

         

       물리적, 정신적 외상을 나타내는 말이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뜻하는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와 함께 쓰이곤 하는 용어였다.

         

       윌리엄이 꾼 꿈은 그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트라우마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배배 꼬여있던 윌리엄의 심리 상태.

       그가 위선적이라고 평가해오던 신부와의 만남으로 인해 겪은 스트레스.

       그 스트레스의 와중에 그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더 크리스마스’라는 조형물의 존재.

       그리고 그 조형물에 대한 끔찍한 공포를 만들어낸 사건에 대한 암시까지.

         

       ‘흠.’

         

       진성은 윌리엄의 꿈속에서 등장한 소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소녀는 아주 자그마한 키에 금발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역변을 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미인이 되었을 것이며, 귀엽고 깜찍한데다가 말투에도 애교가 묻어있어 또래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크게 사랑을 받았을 만한 아이였다.

         

       그래.

       잘 컸다면 말이다.

         

       소녀는 ‘사랑받기 충분한 조건’들이 가득했지만 사랑스럽지는 않았다.

         

       시체의 몰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이 똑 부러져서 덜렁거리고 있었고, 물에 담긴 채 부패하기라도 했던 것인지 푸르딩딩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가스가 배출되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몸 곳곳이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고,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비린내를 풍겼다.

       게다가 꺾인 목의 틈새 부분에서 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고, 비싸고 좋은 옷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동복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물건이 되어있었다.

         

       그 모습은 사람보다는 물귀신에 가까웠고, 살아있는 사람보다는 물에서 막 건져낸 시신에 가까운 것이었다.

         

       ‘꿈이라는 것은 의외로 정보에 많이 의존하는 법.’

         

       윌리엄은 저 소녀의 모습을 실제로 목격했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 분명히 저 모습을 보았으리라.

         

       시각이야 그렇다고 쳐도 냄새까지 생생하게 느꼈다는 것은 실제 보지 않고는 겪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흠. 어릴 적에 저 소녀를 구하지 못했고 그때부터 비뚤어지기 시작한 것인가? 퉁명스럽고 포악스럽기는 하였지만, 그 말투에는 분명히 관심과 친밀감이 묻어있기는 하였다.’

         

       진성은 자신이 엿본 윌리엄의 꿈을 토대로 그의 과거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교회를 역겨워하고 신부도 역겨워했고. 그렇다고 저 성격을 가지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을 터이니 교회에 가 있는 시간은 아주 고역이었을 터. 그 와중에 저 소녀가 접근하고 친하게 지냈다….’

         

       꿈에서 나온 소리는 하나같이 퉁명스럽고 예의가 없는 말투였다.

       그러니 말로 된 칼을 휘두르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거침없이 상처를 입혔을 것이고, 당연히 아이들은 윌리엄과 친해지려 하기는커녕 거리만 벌렸겠지. 그렇다고 괴롭히기에는 성격이 드센데다가 배경도 만만치 않아 보이고, 심지어는 부잣집 아이로 보이기까지 하니…. 그러니 투명 인간처럼 교회에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리고 그때 천사 같은 소녀가 그에게 접근했으리라.

       혼자서 외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남자아이를 딱하게 여기는 천사 같은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소녀가 말이다.

         

       그리고 그 소녀는 윌리엄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그와 공통된 대화거리를 찾기 시작했으리라.

         

       그것이 바로….

         

       ‘더 크리스마스.’

         

       꿈속의 윌리엄이 ‘역겹고 끔찍한 조형물’이라고 불렀던 그것 말이다.

         

       그녀는 윌리엄과 어떻게든 대화를 나누기 위해 더 크리스마스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으리라. 다른 아이들이 저 조형물을 보며 으레 느꼈을 감정들과 감상, 그리고 저 조형물을 두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만들어낸 ‘이야기’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윌리엄에게 접근했을 것이고, 윌리엄 역시 외로운 와중에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그 소녀가 싫지만은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러한 소녀의 방문은 뚝 끊겨버리게 되었으리라.

         

       ‘크리스마스의 뒤를 보고 오겠다는 말과 함께 사라져버린 소녀라….’

         

       자신에게 유일하게 관심을 보이던 소녀가 사라져버렸다.

       그것도 크리스마스의 뒤를 보고 오겠다는 도전적인 말을 남긴 채 말이다.

         

       하지만 윌리엄은 어릴 적부터 예언의 능력을 타고난 아이였고, 소녀의 죽음이 예언으로 보이지 않았으니 그녀가 무사할 것이라고 애써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겠지.

         

       그리고 그 끝에….

         

       ‘딱 보아도 실족사 혹은 익사.’

         

       한밤중인데다가 몰래 조형물을 보기 위해 잠입하려는 아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환한 길을 이용하기보다는 어두운 길을 이용했으리라.

       아마도 강어귀의 길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컸다.

         

       소녀는 그렇게 잠입을 위해 걷다가 발을 헛디디게 되었을 것이고, 어린아이에게는 너무 높은 높이에서 잘못된 자세로 떨어진 것 때문에 즉시 목이 부러져버렸으리라. 그리고 강 속에 처박히게 되었고, 며칠 후에나 발견이 되었으리라.

         

       게다가 아주 비극적이게도 윌리엄은 그 소녀의 시체를 눈앞에서 목격했을 테고 말이다.

         

       아니, 어쩌면 윌리엄이 발견했을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트라우마.

         

       소녀의 죽음과 ‘더 크리스마스’ 조형물이 그의 마음에 깊숙한 상처와 함께 자리를 잡게 되었다.

         

       참 불행한 일이었다.

       윌리엄이 예언자였기에 더더욱 말이다.

         

       진성은 어쩌면 윌리엄이 지금과 같은 망나니로 자라나게 된 것이 그 소녀의 죽음이 커다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했던 소녀의 죽음.

       그리고 소녀의 죽음조차 예언하지 못한 채 무능력하게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지냈던 예언자.

         

       충분히 가치관을 뒤바꿀만한 커다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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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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