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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8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아니, 그 이상으로 큰 문제가 터져버렸다.

         

       혈수마녀와 격돌할 때부터 백우진은 그녀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선기의 장막이 마기를 억누르고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평상시.

         

       진기의 흐름이 빨라지는 전투 상황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에.

         

       거센 진기의 흐름이 선기의 장막을 해치고 마기가 자유로워지는 것.

         

       거기까지가 백우진이 예상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예상을 한참이나 뛰어넘었다.

         

       매끄럽게 전개되는 초식, 표홀한 움직임, 한층 살아난 파괴력, 유연한 사고.

         

       오직 힘에만 의존하고,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제 몸에 스스로 제동을 걸었던 어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뛰어난 무위를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은 다급하고, 불만족스러워 보였다.

         

       대체 무엇이 그녀를 다급하게 만들었을까.

         

       백우진은 모른다.

         

       그러나 그 감정이 마기의 해방을 부추겼음은 확실했다.

         

       이를 확인하기가 무섭게 백우진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저갱처럼 변해 있던 그녀의 까만 동공에 빛이 스몄다.

         

       “우, 우진아….”

         

       거칠게 떨리는 음성.

         

       그것이 그녀의 현재 심정을 대변했다.

         

       긴장, 두려움, 공포.

         

       백우진은 그제야 자신이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눈에 어린 실망의 빛을 뒤늦게 지워냈지만, 이미 그녀는 비 맞은 강아지처럼 애처로운 모습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후우….”

         

       눈을 질끈 감으며 한숨을 내쉰다.

         

       다시 눈을 뜬 그는 움츠린 채 떨고 있는 신예화의 머리에 손을 얹어 말없이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맥문을 쥐었다.

         

       거칠고 불안정하게 뛰고 있는 맥박.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제 속도를 찾아간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구나 싶을 때, 천천히 그녀의 내부를 들여다봤다.

         

       예상한 대로였다.

         

       어렵사리 막아두었던 선기의 장막 일부분이 깨졌다.

         

       다행인 점은 서둘러 막은 덕분에 전부 깨지지는 않았다는 점일까.

         

       혹여 마기가 들끓기 시작했으면 어쩌나 하는 최악의 상황을 넘긴 뒤 눈을 뜨자, 신예화가 눈물을 글썽이며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쏟아냈다.

         

       “미, 미안해, 우진아. 정말 미안해….”

         

       그녀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는 모양.

         

       자신을 실망시켰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토록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 안타깝고, 애처로웠다.

         

       동시에 의아했다.

         

       이렇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었으면서 그녀는 왜 선기를 깨트릴 결심을 한 것일까.

         

       “…일단 좀 쉬자.”

         

       백우진은 조원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그녀를 데리고 연무장을 나섰다.

         

       한창 수업과 수련으로 바쁠 시간.

         

       백우진은 바람도 쐴 겸 학관 외곽에 자리한 연못가로 향했다.

         

       잔잔하게 부는 바람을 따라 부드럽게 일렁이는 연못.

         

       풍경 때문일까.

         

       아니면 백우진이 옆에 있다는 사실 때문일까.

         

       신예화는 두서없이 요동치던 마음이 점차 안정되어감을 느꼈다.

         

       제법 오랜 시간, 그녀의 마음이 안정되기를 기다리던 백우진이 마침내 입술을 뗐다.

         

       “말해줄래?”

         

       목적어조차 없었으나, 그녀는 백우진이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 알고 있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일 터.

         

       “마기가 내 몸속에 들어온 이후로…, 내 삶은 지옥이나 다름없었어.”

         

       그녀의 입에서 지금까지 겪어온 모든 고통이 낱낱이 풀려나왔다.

         

       그야말로 살아 있으나 살아 있는 게 고통이라고 느낄 법한 나날들.

         

       지금까지 숱한 고통을 겪고, 다른 이들의 비통한 삶을 봐온 백우진으로서도 듣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꽉 깨물게 될 정도였다.

         

       “그런데…, 하나만큼은 내게 도움이 됐어.”

       “도움?”

         

       백우진이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되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무를 할 때마다 불쑥 찾아오는 충동은 날 힘들게 만들었지만…, 그걸 억누를 때마다 난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어.”

       “…….”

         

       좀처럼 믿기 힘든 말이었다.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이 빠른 성장의 원동력이었다는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그녀는 자신의 빠른 성장이 오로지 그것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백우진은 알고 있다.

         

       신예화의 성장 속도가 남다른 것은 고작 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이 세계의 주연 중 한 사람이다.

         

       닥쳐올 거대한 혼란을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하는 막중한 사명감을 등에 짊어진 주연.

         

       성장력은 이에 대한 아주 작고 작은 보상이다.

         

       더러운 마기 따위가 전해주는 유일한 이점 따위가 아니라.

         

       “나는…, 우진이 네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무력밖에 없어. 그런데 그것마저 다른 조원들에게 뒤처지면 나는…, 난…!”

         

       백우진은 그녀의 말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도록 그녀의 팔을 붙잡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진정해. 차분하게 숨 쉬어.”

       “하아, 하아….”

       “…….”

         

       숨이 더 거칠어지는 듯한 건 착각이겠지.

         

       그녀가 어째서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을 했는지, 백우진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또 나 때문이구나.’

         

       결국 자신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그녀를 밀어내려고 애썼다.

         

       그러다 결국에는 어떤 식으로든 가까이 있을 수밖에 없는 신룡조에 포함시켰고.

         

       이미 한 번의 전적이 있었기에, 그녀는 불안했을 것이다.

         

       언제 다시 그에게서 멀어질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이를 막아내기 위해선 어떻게든 제 쓸모를 증명해내야만 한다고.

         

       ‘그렇게 찾아낸 게 무력이었던 거겠지.’

         

       창설 당시 신룡조의 무력은 처참했다.

         

       조장인 백우진과 그나마 당시 중상위권 성적을 자랑하던 구왕수를 제외하면 그야말로 밑바닥에서 놀던 이들.

         

       그들과는 달리, 신예화의 무위는 상위권 그 이상이었다.

         

       이를 갈고닦는 것만이 제 쓸모를 증명하는 길이라 여겨왔던 것이리라.

         

       ‘어설픈 마음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거다.’

         

       한 가지 노선을 정했다면 확실하게 밀고 나가야만 했다.

         

       누가 뭐라든, 악착같이 달라붙어도 매몰차게 떼어내야만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병신 같은 놈.’

         

       그딴 결단력으로 세상을 잘도 구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 혼자였다면 이세계에서 용사가 아니라, 세계를 말아먹은 놈으로 취급받았을지도.

         

       제 품에서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는 그녀를 느끼며, 백우진은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가 저로 인해 고통받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자신 하나만을 바라보며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

         

       이제 와 그녀를 내치기에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럴 거였으면 신룡조로 받아들이지도 말았어야지.

         

       반대로 품을 수는 있나?

         

       그 또한 불가능했다.

         

       자신은 그녀가 사랑하는 ‘백우진’이 아니기에.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응….”

       “난 너를 받아들일 수 없어.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어.”

         

       그녀의 얼굴이 백우진의 품에서 꼼지락거렸다.

         

       “알아. 우진이 네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아니, 내가 널 좋아하고, 말고 이전의 이유야.”

         

       깊게 파묻혀 있던 그녀의 얼굴이 위로 솟아올랐다.

         

       어느새 퉁퉁 부은 두 눈이 그를 향했다.

         

       “그게 뭔데…?”

       “…지금 당장은 말할 수 없어.”

       “그럼 언제 말할 수 있는데?”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그 빌어먹을 영술서라는 것을 되찾고, 장삼의 반쪽짜리 능력을 온전하게 만들었을 때.

         

       그리하여 자신이 아닌, ‘백우진’의 영혼을 이곳으로 불러들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가 되면 모든 걸 말할 거야. 내가 숨기고 있는 것들 전부.”

         

       모든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그때도 정말 네가 나를 좋아한다면.”

         

       그때는 어쩔 도리가 없을 터다.

         

       “나 또한 너를 받아들일게.”

       “정말…?”

       “그래.”

         

       잠시 말랐던 그녀의 두 눈에 다시금 눈물이 차올랐다.

         

       “나 좀만 더 울어도 돼…?”

       “…그래.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

       “응….”

       “아니, 일단 듣고 하라니까.”

       “뭐든 좋아….”

         

       눈물을 글썽이면서 해맑게 웃는 얼굴이 어찌나 아픈지.

         

       “그때가 올 때까지 네 삶을 가꿔 나가.”

       “내 삶…?”

       “그래.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행복하게.”

       “우진이 너랑 있는 게 제일 행복한걸….”

       “그건…, 나중에. 모든 걸 알고 나서 그때도 네 생각이 그렇다면 뭐든 다 해줄게.”

         

       그러니까.

         

       “지금은 그거 말고 다른 행복한 것들을 전부 하는 거야.”

         

       신예화는 웃음꽃이 만개한 얼굴로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응, 알았어!”

         

       그녀는 행복하다는 듯 웃었고, 백우진은 이를 보며 처연하게 웃었다.

         

         

       * * *

         

         

       백우진은 모든 일정을 앞당기기로 했다.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체내에 잠들어 있는 마기를 다시 선기로 막아두긴 했지만, 또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으니.

         

       심지어 그때 그녀의 생각에 마기가 개입하지 않았을 거라 확신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최대한 빨리 마기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

         

       백우진은 조원들에게 떠날 채비를 마치라고 일러두었다.

         

       그리고 떠나기 이틀 전의 저녁.

         

       회식이라는 명목으로 조원들을 전부 객잔에 불러모았다.

         

       ‘이제는 때가 됐다.’

         

       떠나기에 앞서, 해야만 하는 일이 한 가지 남아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금여울을 조원들에게 소개하는 것.

         

       “잘 외웠지?”

       “응.”

       “읊어봐.”

       “너랑 나는 마교에서 만났고, 나는 마교의 포로 신세였어. 그러다가 네가 나를 구해줬고…, 집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여정에 포함시키려고 한다?”

       “아주 좋아.”

         

       백우진은 흡족하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똑똑!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공자님! 조원분들께서 전부 객실에 모이셨습니다요.”

         

       조원들이 모두 모이면 기별하라 미리 일러둔 점소이의 목소리.

         

       “그래, 알았다.”

         

       백우진은 금여울을 데리고 객실을 나섰다.

         

       그리고 조원들이 모인 객실을 향해 삐걱거리며 나아갔다.

         

       “후우….”

         

       짧게 숨을 내쉰 뒤, 가볍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조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백우진에게 쏟아졌다.

         

       그는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등 뒤에 가려져 있던 금여울의 모습이 처음으로 조원들에게 비추어졌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그들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저는 금여울이라고 합니다.”

         

       인사와 동시에 당선영과 제갈연지의 두 눈에서 폭사된 안광이 백우진을 꿰뚫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를 위해 에피소드는 여기에서 끝이 납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 에피소드는 신예화의 세탁이니, 뭐니 하는 에피소드는 아닙니다.

    다만 그녀의 마음을 일시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한 거였다고 봐야겠지요.

    진짜 혼란은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절정에 달할 테니 말입니다.

    다음 에피소드는 하루 쉬어서 갈지, 아니면 곧장 이어서 갈지 내일 결정을 해야 할 듯합니다.

    내일 병원 진료를 받아보고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면 하루 쉬어갈 예정이고요.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다면 곧장 이어서 연재할 예정입니다.

    내일 공지 또는 연재편으로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으실 즈음이면 아침일 테니, 다들 좋은 하루 되십시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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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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