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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8

       “다중인격?”

        

       아름이는 나의 설명을 듣고 그렇게 되물었다.

        

       어…… 따지자면 비슷하긴 한데.

        

       물론 나의 진짜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사라뿐이었고, 아름이에게도 그렇게까지 자세하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사라의 정신 속에 사는 또 다른 인격이라고만 했을 뿐.

        

       그러니, 묘사만 보면 ‘이세계에서 넘어온 자’가 아니라 그저 정신병을 앓는 환자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만나고 있던 인격은 원래의 ‘사라’가 아니라 올해 들어서 생겨난 너라는 말이지?”

        

       “응, 뭐, 그렇지.”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커피를 쭉 빨았다. 씁쓸하고 차가운 액체가 입 안을 적신다. 별로 갈증이 가신 것 같지는 않았다.

        

       “…….”

        

       입을 다물고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생각에 잠긴 아름이는, 예상외로 엄청나게 크게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평소에 꽤 다양한 표정을 짓던 아름이였으니 만약 경악했다면 엄청나게 티가 났을 텐데.

        

       “……그렇구나.”

        

       그리고 그렇게 아주 간단하게 납득해버렸다.

        

       “……그게 끝?”

        

       “응?”

        

       생각보다 맥 빠지는 반응에 내가 되물어보자, 아름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그러니까, 나는 더 크게 놀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아.”

        

       그 말을 듣고서야 아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놀라긴 했어.”

        

       별로 안 놀란 표정인데.

        

       “그런데, 하나하나 생각해보니까 왠지 이해가 가더라. 생각해보면 중간에 성격이 좀 바뀌었던 것 같기도 하고.”

        

       “…….”

        

       그런 거로 납득이 가는 건가? 뭐랄까, 아름이라면 ‘뭐어어어?’하고 엄청 만화 캐릭터처럼 놀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다는 생각 안 해?”

        

       “이상한가?”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아름이에게,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털어놓듯 말했다.

        

       “그, 뭐냐, 인격을 고쳐야 한다던가, 병원에 가보라던가…… 그런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거든.”

        

       이런 걱정들을 지금 털어버리지 않으면 나중에 아름이와 대화하다가, 혹은 학교생활을 하다가 나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확 터져 나올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뭐, 아름이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버린 이상은 이걸 내 약점으로 삼을 일은 없겠지만.

        

       아름이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냥 너가 처한 상황이 조금 특수할 뿐이잖아. 인격이 여러 개라고 사람들한테 폐 끼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서로 사이도 좋다면서?”

        

       아름이가 이런 상식적인 의견을 제시하니 내가 할 말이 없었다.

        

       ……뭔가 분하다.

        

       나는 분명히 ‘아, 결국 들켰다!’ 하는 심정으로 말한 건데 상대 반응이 이렇게 미적지근하다니.

        

       게다가 뭔가 나쁜 반응도 아니고 미적지근하게 좋은 반응이라서 긴장했던 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진다.

        

       “게다가……”

        

       아름이는 갑자기 얼굴을 확 붉히더니 말했다.

        

       “내가 좋아하게 된 쪽은 나중에 생겨난 쪽이잖아?”

        

       “…….”

        

       음, 이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주 잘나셨어.

        

       아니, 여고생한테 고백받은 유부남한테 한마디 하는 아내 같은 말을 해봐야……

        

       “너희 둘 사귀냐?”

        

       옆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소희가 불쑥 말했다.

        

       “어…….”

        

       아니, 라고 말하기에는 아름이가 좀 불쌍하다.

        

       게다가 이런 질문은 아름이뿐만이 아니라 매일 부대끼면서 사는 하늘이, 소희, 사라한테도 다 통하는 말이니까.

        

       “에이, 아직 사귀는 건 아니지.”

        

       아름이가 얼굴을 붉힌 채 손을 흔들었다.

        

       “아지익?”

        

       소희가 말끝을 늘리며 물었다.

        

       그, 아름아. 안 그래도 소희는 어제부터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였거든? 건드리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안 그랬다가는 나의 밤이 고달파질 것 같다.

        

       ……진짜 성인이 되면 어떻게 견뎌야 하지? 지금부터라도 어디 도망갈 곳을 미리 만들어 둬야 하나?

        

       아니, 아마 그것도 소용없을 것이다. 이제는 밤에 세 사람이 없으면 잠도 못 자니까. 게다가 나는 포옹하는 것도 키스 받는 것도 좋아한다. 이런 말을 했다가는 정말 기가 죄다 빨려서 남아나질 않을 테니 일부러 말로 하지 않을 뿐이지.

        

       진짜? 진짜 좋단 말이지?

        

       …….

        

       음, 망했다.

        

       “맞아, 아름아.”

        

       역시 소희처럼 옆에서 우리가 대화하는 것을 바라보던 하늘이도 입을 열었다.

        

       마치 기도하듯 손을 모은 채 평화로운 표정으로,

        

       “지금 사라는 우리 모두의 것이니까. 어느 한쪽이 독차지하는 건 안 될 일이야. 사라가 직접 사귀자고 할 때까지는.”

        

       내가 사귀자고 하면 괜찮은 건가?

        

       ……하긴,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도 내가 누구 하나를 선택하지 못해서 그런 것도 있지.

        

       선택하고 싶은 것도 아니잖아, 이 난봉꾼.

        

       나는 억울하다!

        

       나는 진짜 아무것도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엮이게 되었을 뿐인데!

        

       무자각 난봉꾼.

        

       그러니까 억울하다고!

        

       “그리고 야한 짓은 안 돼. 우리 성인 될 때까지는. 그렇지?”

        

       수아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 그럼 성인이 된 다음엔……?”

        

       아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늘이, 수아, 소희가 전부 나를 바라본다. 셋 다 눈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 가련한 초식동물을 바라보는 맹수들, 혹은 작은 설치류를 바라보는 맹금류들을 보는 기분이다.

        

       거기에 아름이마저 입을 가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내가 다시 성년을 맞는 날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 두렵다.

        

       *

        

       “너희들, 여기 앉아봐.”

        

       학교 끝나고 돌아와서, 나는 하늘이, 수아, 소희를 불러 모았다.

        

       내가 침대 위로 올라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손으로 앞을 탁탁 두드리며 세 사람을 부르자, 하늘이, 수아, 소희는 별다른 반항 없이 내 앞으로 와서 줄지어 앉았다.

        

       세 사람 다 교복 차림이다.

        

       입고 있는 스타일도 전부 다르다. 하늘이와 수아는 하복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는 정석적인 옷차림이었지만, 하늘이는 안에 브래지어만 차고 있어서 살색이 조금 더 보였고, 수아는 안에 티셔츠를 하나 더 입고 있었다. 소희는 말할 것도 없이 단추를 더 풀어서 그 풍만한 가슴이 확 드러나 보였다. 지나가는 남자애들이 자신도 모르게 거길 바라보는 이유가 있었다.

        

       치마도 수아, 하늘이, 소희 순으로 짧……아니, 지금 내가 교복 감상하려고 애들을 불러 모은 게 아니지, 참.

        

       내 시선을 느끼고 능글맞게 웃고 있는 소희를 보고 조금 성질이 뻗치긴 했지만, 일단은 꾹 참았다.

        

       그런 것으로 싸우려고 부른 건 아니었으니까.

        

       “너희들,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없어?”

        

       “숨기는 거라니?”

        

       하늘이가 되물었다.

        

       표정에 별다른 변화는 없다. 평소처럼 살짝 미소 띤 얼굴.

        

       그랬기에, 나는 오히려 하늘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평소의 하늘이는 오히려 표정이 다양했으니까. 나에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아이였다.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 정말로 아무 일이 없었다면, 저런 표정이 아니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을 것이다.

        

       “너희들이 뭘 숨기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나를 위한 거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아니라는 말부터 하고 싶어. 너희들도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나설 거 아니야. 나도 나서서 돕고 싶거든?”

        

       “…….”

        

       세 사람의 시선이 전부 나에게로 모였다. 조금은 감동한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적어도 뭉클한 표정이긴 했다.

        

       “내가 도울 수 없는 것도 아니잖아. 웬만큼 어려운 일은 내 선에서 다 처리해 줄 수 있는데.”

        

       내 말에, 하늘이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조금 고민하는 눈치였다.

        

       “어제, 내가 아름이랑 있을 때 너희들 다 어디로 사라졌잖아. 평소에는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내 옆에 있으니까, 진짜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었다면 그 타이밍에 전화 받겠다고 어디 가지도 않았겠지.”

        

       “…….”

        

       “하늘이뿐만이 아니야. 너희 둘 다, 한번 말해봐. 문제가 뭐야? 혹시 나한테 관련된 문제라서 대답하지 못하는 거야?”

        

       “…….”

        

       세 사람 다 고개를 푹 숙였다.

        

       “말 안 해주면…….”

        

       말 안 해주면, 뭐.

        

       내가 이 애들을 어떻게 할 권리는 없다. 권리가 있어도 힘도 없고. 덤벼봐야 제압될 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볼 정도로,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나에 대한 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알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본인들 이야기는 필요할 땐 꼭 숨겨버리니까.

        

       딸꾹.

        

       그래, 너도 마찬가지고.

        

       “말 안 해줘도 내가 뭘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 비밀을 이야기하고 하지 않고는 전부 너희들의 선택이니까. 좋아, 협박 같은 건 하지 않을게.”

        

       나는 숨을 살짝 들이마시고, 짧게 내쉰 다음 말했다.

        

       “하지만 친구로서, 그리고 너희들이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꼭 알고 싶어서 그래.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곳까지 돕고 싶어. 너희들은 모두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나는?

        

       너는 말할 것도 없지.

        

       사라가 내 안에서 쑥스럽게 웃었다.

        

       “…….”

        

       세 아이들은 전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양손을 기도하듯이 맞잡고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제발…… 가르쳐줄 수 있을까?”

        

       하늘이, 수아, 소희는 서로 잠깐 마주 본 뒤, 다시 나를 보았다.

        

       “저, 사라야.”

        

       제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하늘이였다.

        

       드디어 비밀을 말하려나 보다 하고 조금 긴장하고 있는데, 하늘이는 전혀 엉뚱한 소리를 했다.

        

       “일단 한번 꼭 끌어안아 봐도 될까?”

        

       “…….”

        

       나는 꼭 쥐고 있던 양손에서 힘을 조금 풀었다.

        

       그리고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일단은 비밀부터 말한 이후에.”

        

       그렇게, 조건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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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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