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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9

       “유세하님을 한 명의 남자로 보고 있잖아요. 당신.”

       “……”

         

       수옥빈의 급작스러운 말에 돌처럼 굳는 팽진아.

         

       한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째깍째깍.

         

       시계가 돌아가며 알리는 작은 소음만이 지금 세상이 멈춘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팽진아는 망부석처럼 가만히 있었다.

       정신을 차리기까지 무려 15초가 걸렸다.

       ‘어, 음…’거리며 작은 당황.

       우선 들고 있는 맥주잔이 깨지지 않도록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뱉는 말은 부정이었다.

         

       “…아, 아니다. 그렇지 않다.”

         

       얼버무림.

       이는 그녀가 화를 내지도 못할 만큼 크게 당혹했다는 의미이며…

       조금 전 수옥빈이 내뱉은 말이 진실이라는 소리였다.

         

       그 모습에 수옥빈은 쓰게 미소 지었다.

         

       “…괴롭지 않아요? 본인 마음 숨기는 거.”

       “…헛소리하지 마라!”

       “제가 보기엔 우스워요.”

       “…뭐?”

       “아, 오해하지 마요. 당신을 비웃는 게 아니니까. 아닌가, 맞을지도.”

       “…네년!”

         

       수옥빈은 옆에 달린 달력을 바라봤다.

         

       “<패천검> 제 나이가 몇 살인지 아시나요?”

       “흥, 자주 말했잖는가. 290살이라고…하지만 그건-”

       “-네, 엘프치고는 젊은 편이지요. 보통 엘프들은 시간관념이 다르기에 인간 나이로는 20대다 뭐 이런 말이 많지만…저는 좀 예외입니다.”

         

       엘프와 뱀파이어의 혼혈.

       여기에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시점부터.

       이유도 모르고 쫓기며 살아온 세월.

       눈칫밥을 먹으며 아부하고 아첨하며,

       제 몸에 흐르는 힘을 쥐잡듯 연구해 강해져야 했던 세월.

         

       “저에게 1분 1초는 삶을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시간관념이 당신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요. 그렇게 290살이라는 세월을 살아왔고…꽤 많은 이들을 보았습니다. 그중 당신처럼 모순된 감정에 괴로워하며 발버둥을 치는 이들도 보았지요.”

         

       “……”

       

        “그때도 느꼈지만, 지금 제가 보기엔 당신은 안쓰러워요.”

         

       “…안쓰럽다고?”

         

       “당신은 과연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요? 각성자라는 걸 고려해도 아마 200살이 한계겠지요.”

         

       수옥빈은 불그스름한 얼굴로 턱을 괴었다.

       눈앞의 패천검.

       이제 겨우 30살 먹은 여자아이의 경계심에 쿡쿡하고 웃었다.

         

       “뭘 그리 웃는 거냐!”

       “웃기잖아요. 나이 차이라 해봤자 10살 조금 넘어가는 거면서. 어차피 오래 살지도 못하는 단명종이면서. 왜 자기감정 하나에 솔직해지지 못하는 걸까. 볼 때마다 우습고 가여워요. 나 같으면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억지로라도 쟁취할 텐데.”

         

       사회의 시선?

       주변의 질타?

       나이 차이?

       스승과 사제 관계?

         

       “그게 뭐가 의미가 있는데요?”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나는 유세하를 그런 눈-”

       “-이미 다 까발려졌다고요. 바보 멍청아.”

       “…!? 너, 너…”

       “답답해 죽겠네. 하아, 그리 대놓고 핑크빛 눈동자로 바라보는데 모르는게 더 이상하죠.”

         

       맨날, 유세하에게는 아직 이르다.

       위험하다.

       이제 겨우 생도다.

       B급 헌터다, 뭐다 하는 거 전부다.

         

       “다, 자기 남자가 조금이라도 다칠까 봐 걱정하는 여자의 마음 아니에요?”

       “……”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팽진아.

       수옥빈은 마저 말했다.

         

       “…아마 유세하님도 얼추 눈치는 챘을 겁니다. 다만 그쪽은, 그쪽 나름대로 사연이 있는지 직시하지 않는 것 같지만요. 이건 뭐,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해결되겠죠.”

         

       수옥빈은 이마를 넘겼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이리 말할 생각은 없었다.

         

       좀 더 연장자답게 찬찬히 알려주며.

       스스로 마음을 정리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 하였다.

         

       수옥빈에게 있어 팽진아는 그저 몸뚱이만 컸지, 제 감정 하나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는 어린 여자아이였으니까.

         

       그러나 여러모로 성가셨고.

       이 벽창호는 아예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으면 모를 것 같기에 돌직구를 던졌다.

         

       “<패천검>. 저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무슨…”

       “그리고 유세하님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유세하님의 미래에 있을 한 사람은 당신이에요.

         

       수옥빈은 그 말을 끝으로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홀짝거리며, 안주만 주워 먹을 뿐.

         

       침묵하던 팽진아.

       천천히 일어섰다.

         

       “…머리가 아프군. 그만 돌아가겠다.”

         

       팽진아는 그 말만을 내뱉으며,

       어두운 안색으로 조용히 빠져나갔다.

         

       이런 뒷모습을 바라보는 수옥빈.

       쓰게 웃으며 맥주를 단번에 마셨다.

         

       쾅.

         

       “…하아, 어렵네요. 어려워. 역시 오지랖이었으려나…”

         

       그래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패천검>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점점 커져가는 마음이 뿌리 깊게 내려 심상을 뒤흔들고 있었으니까.

         

       이게 계속 묵히게 된다면…

       마음이 죽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였다.

         

       ‘…불쌍한 사람.’

         

       팽진아는 어른이다.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는 강인하고 아름다운 적령기의 여성이다.

         

       그러나 수옥빈은 매화검후에게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자기가 직접 보고 확신했다.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은 아직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다고.

         

       아마,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그 죽음을 두 눈으로 본 것이 영향이 있을 터.

         

       이게 뭐가 문제냐 하겠지만.

       다르게 말하면 주변에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주는 연장자가 없다는 말이었다.

         

       말 그대로 유세하와는 정반대의 상황.

         

       그 역할을 자신이.

       그리고 검후가 해줘야 했다.

         

       아무튼,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

       이 이상은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수옥빈은 의자 뒤로 몸을 기댔다.

         

       이제는…

         

       “당신의 차례입니다. 위가령.”

         

         

       * * *

         

         

       “……”

         

       팽진아는 혼란스러웠다.

       갑작스러운 말.

       급작스러운 조언.

         

       왜, 수옥빈이 그런 말을 하였을까 하는 의문.

       동시에 자신이 정말로 유세하를 그런 눈으로 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

         

       고개를 저었다.

       의심이 아니다.

       이미 알고 있다.

       본인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저, 부정하고 눈을 돌릴 뿐.

         

       ……근데,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랑 유세하는……’

         

       생도와 교수의 사이인데.

       제자와 스승의 관계인데.

       그렇고 그런…

       추한 감정을 드러내라고?

       순수하게 자신을 보며 미소 짓는 그에게?

         

       ‘…안돼.’

         

       저벅저벅.

       두 눈을 꾹 감는 팽진아.

       어느새 도착한 장소.

       자각 없이 그저 걷기만 하니 도착한 곳은 훈련장이었다.

         

       순간,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힐끗 안을 바라봤다.

       이내, 파르르 눈동자가 떨려왔다.

         

       유세하 그리고 매화검후.

       두 사람은 즐겁다는 듯,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따금 유세하가 뭐라 말하면, 그의 손을 잡는 매화검후.

       파지법이라던가 검을 쥐는 것을 알려주었다.

       틀림없는 교육의 목적.

       동시에 틀림없는 스킨쉽.

         

       둘의 모습에 팽진아의 마음이 다시금 울렁이기 시작했다.

       급히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리고 이 모습을……

         

       “……”

         

       매화검후 위가령.

       그녀가 힐끗 바라보고 있었다.

         

         

       * * *

         

         

       붕-!

         

       힘차게 내려 베는 일합.

       물 흐르듯 이어지는 이합.

       그대로 휘몰아치는 연격.

       다시 한번 일합.

       무한반복.

         

       옆 건너 훈련장.

       팽진아는 마치 춤을 추듯 검을 휘둘렸다.

       구슬진 땀이 비 오듯 흐르지만, 팽진아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멈추는 순간 전신이 타버릴 것 같으니까.

         

       ‘헉, 헉…’

         

       뜨거웠다.

       팽진아는 제 가슴이 타오르는 감각에 어안이 벙벙하였다.

       천불이 난 것 같은 기분.

         

       조금 전 보았던 유세하와 사저의 대화 장면이 다시금 상기됐다.

       바로 도주하듯 도망쳐 이곳에 도착.

       어느 순간 무작정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팽진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왜 도주했을까?

       왜 둘의 대화 장면을 보기 싫어했을까?

         

       차오르는 추악한 감정에 몸을 떨었다.

       팽진아도 어른이다.

       나이를 허투루 먹지는 않았다.

       이게 뭔지 얼추 알았다.

         

       ‘…나, 지금 사저에게 질투하는 건가?’

         

       어째서?

       겨우 대화하는 장면이지 않은가.

       그런데 왜…

         

       ‘……’

         

       곧, 원인을 알아냈다.

       매화검후가.

       사저가.

       위가령이.

         

       ‘…빼앗아 갈까 봐…’

         

       유세하를 가져가 버릴까 봐

       그게 두려웠다.

         

       조금 더 파고든다.

       의문을 떠올렸다.

         

       유세하는 자신의 수제자이며 천재이다.

       그가 검후에게 많은 걸 배워 더 강해지면 좋은 일이다.

         

       그래 그건 맞다.

       하지만 싫었다.

       그가 자신의 옆을 벗어나지 않았으면…

         

       “아.”

         

       작은 탄식.

       땡그랑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지는 검.

         

       팽진아는 목석처럼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섰다.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쿵, 쿵, 쿵.

         

       붉게 달아오른 얼굴.

       고개를 저었다.

       부정을 표하고 또 표현.

       하지만 그럴수록 그 백여시같은 여자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이미 다 까발려졌다고요. 바보 멍청아.

       -유세하님을 한 명의 남자로 보고 있잖아요. 당신.

       -다, 자기 남자가 조금이라도 다칠까 봐. 걱정하는 여자의 마음 아니에요?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내가, 그에게 그런 담아서는 안 되는 마음을 담을 리가 없다.

         

       나는, 나는…!

         

       “나는 그의 스승이다!”

       “맞아, 스승이지.”

       “…?!”

         

       팽진아는 귓가로 들려오는 말에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매화검후, 위가령.

       팽진아에게 있어 사저이자, 친언니와 같은 인물.

         

       어느새 그녀가 다가오고 있었다.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 건 둘째 치고,

       꼴사나운 모습을 보인 것 같아 절로 부끄러웠다.

         

       그런 모습을 직시하던 매화검후는 넌지시 한마디를 건넸다.

         

       “진아?”

         

       스르릉.

       검후는 허리춤의 애병을 꺼내 겨누었다.

       이내, 빙긋 웃는다.

         

       “오랜만에…”

         

       대련 한판 할까?

         

         

       * * *

         

         

       캉, 챙-!

       카가강-!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검기의 향연.

       둘 모두 헌터들 중에서도 정점의 강함을 가진 이들이다.

         

       부딪치는 일격은 산을 가를 정도였고.

       물러서는 발걸음은 뒤늦게 소리가 쫓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한편의 그림 같은 전투.

       검의 부딪침을 반복, 반복, 반복.

         

       약 5분.

       합으로 따지자면 45합.

       서서히 승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밀리는 건 <패천검> 팽진아였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검후의 검을 전력으로 막아내는 데 집중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검후.

       천천히 말을 꺼냈다.

         

       “유세하.”

       “……!”

       “그 아이 정말 터무니없더라.”

       “…그렇습니까?”

       “응, 역대급 재능이었어.”

         

       팽진아는 잠시 놀랐다.

         

       검후는 칭찬에 인색한 것 아니지만,

       일정 이상 높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칭찬은 팽진아로서도 처음 들어보는 극찬이었다.

         

       “솔직히 진아. 처음 너에게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어. 네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지만 도저히 믿기 어려웠지.”

       “……”

         

       그 뒤로도 이어지는 무한 칭찬.

         

       유세하가 하나하나 사용하는 스킬과 완전히 체화하는 천재성에 대한 언급.

         

       여기에 검에 대한 묘리 또한 수준급이라는 말.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던 팽진아였지만, 소중한 애제자에 대한 찬사에 점점 입꼬리를 헤실거렸다.

         

       ‘음, 음…’

         

       천불이 날 것 같던 감정은 싹 사라진 지 오래였다.

         

       유세하에 관한 생각이 꽉차며 왠지 모르게 힘이 났다.

         

       그렇게 휘두르는 일격.

         

       분명 팽진아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허술하고 가벼웠지만…

         

       카앙-!

         

       “……!”

         

       받아낸 검후는 일순 움찔할 만큼 강력했다.

       그 모습에 검후는 뒤로 물러서며 확신했다.

         

       ‘역시…’

         

       그런 검후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팽진아는 어깨를 자랑스럽게 폈다.

         

       “물론입니다. 그는 분명 더 높이 올라갈 겁니다.”

       “그래, 그리고 내가 보기엔 이제 더는 너 밑에 있을 필요는 없겠더라.”

       “…네?”

       “다 배웠잖아. 그 아이. 패천검법은 물론이고 패천멸섬까지.”

         

       더는 스승을 자처할 필요는 없지 않아?

         

       갑작스럽게 훅 들어오는 공격적인 말이었다.

       눈매를 좁힌 팽진아는 입을 달싹거리며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요. 사저.”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스르릉.

         

       매화검후는 검을 내렸다.

       그 궤적에 맞추어 피어오르는 매화잎이 흉흉하게 빛나며 주변을 맴돌았다.

       마지막으로 흔들리지 않은 칼끝은 정확하게 팽진아를 향했다.

         

       “유세하.”

         

       그 아이…

         

       “나한테 넘겨.”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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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사기급 먼치킨 5★ 캐릭터가 되었다
Score 6.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onis Archive Life》 ‘GAL’ for short. I found myself possessed into the world of this game. Not only that, but I became a 5★ character from the very start, The only male character with ridiculously OP a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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