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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9

    “다녀왔습니다!”

    “응, 어서오렴.”

     

    집에 들어온 루크는 어딘가 분주해보였다.

    무슨 일일까?

     

    루크는 현관에서 빠르게 신발을 벗어던지고, 가방을 내려놓고, 환복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컴퓨터부터 찾는다.

     

    “예르나, 내 컴퓨터는 지금 어디에 있지?”

    “응? 컴퓨터? 아마 파이리스가 지금 쓰고 있을 텐데.”

    “알겠네! 파이리스!”

    예르나는 빠르게 안방으로 향하는 루크의 모습에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루크가 저러는 건 드문 일인데.

    뭐가 저렇게 바쁠까?

    —-

    그 시각, 파이리스는 디아나에게 영업당한 만화, 정령소녀 메루루의 다시보기 영상을 꽤 집중해서 시청하는 중이었다.

     

    이미 디아나가 푹 빠진 상태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항상 메루루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고, 그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서 함께 몇번정도 같이 본 적이 있었는데, 파이리스가 보기에도 그건 정말로 재미있었다.

     

    자신이 아는 것과 정령의 모습과 형태는 달라도, 정령이라는 것이 만화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었던 데다가, 나쁜 사람을 마법의 힘으로 혼내준다는 영웅적인 서사는 기본적으로 즐거운 느낌이라서 꽤 좋았다.

     

    게다가, 딱히 복잡한 걸 생각하지 않고 그냥 화면만 보고 있어도 나름대로 즐거웠고 말이다.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고 할까?

     

    루크가 읽어주는 동화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물론 그게 더 이상 싫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지만.

     

    한 사람이 소리내어 읽어주는 동화 이야기와, 목소리배우, 연출, 시각효과가 어우러진 전문적인 인력과 자본이 투자된 컨텐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 법.

     

    “와아! 메루루, 변신!”

     

    파이리스는 항상 메루루가 변신하는 장면이 되면 스스로 그 모습을 따라하곤 했다.

    실제로 정령이니, 정령술을 사용하면 옷을 순식간에 갈아입는 것도 쉬웠다.

     

    잠깐 정령의 형체로 변환시킨 뒤 금세 다시 현신화하며 이제는 맞지 않게 되어버린 자신의 잠옷, 동물 잠옷을 입는다.

    그렇게 고양이 얼굴과 귀가 달린 후드를 푹 눌러 쓰고는 악인을 혼내주는 메루루의 모습을 바라보며 허공에 손을 휘젓는 파이리스.

    보아하니, 무슨 주먹질이랍시고 하는 것 같다.

    현신한 몸을 다루는게 익숙하지 않아서 보기에는 그냥 허우적거리는 것 같지만. 

     

    컴퓨터 안에서 펼쳐지는 메루루의 멋진 모습에 깊이 감화된 모습이다.

     

    “저기, 파이리스. 미안하지만, 내가 잠깐 컴퓨터를 좀 써야 하는데.”

     

    “응, 언니! 나 이거 좀 다 보고!”

     

    “조금 급하다. 그러니 그건 좀 나중에 보아도 되잖느냐? 검색하면 언제든 볼 수 있으니.”

     

    “그치만, 이제 재미있는 부분인데…….”

     

    파이리스가 조금 시무룩한 표정으로 루크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루크는 마음 한켠이 어딘가 얹힌 듯 불편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도 시간은 지나가고 있고, 연구를 다음주가 되기 전에 마쳐야만 별 탈 없이 시루드에게 월영석을 돌려줄 수도 있게 된다.

     

    “내 연구에 꼭 필요한 거다. 그러니 조금만 참아주면 안되겠느냐?”

     

    그 말에 예르나도 타이르듯 말한다.

     

    “언니가 공부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잖니, 얼른 비켜주렴.”

     

    예르나까지 그렇게 말하니 파이리스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더 보고 싶지만, 조금 참는 수 밖에.

     

    “……힝, 알겠어. 얼른 쓰고 돌려줘야 해?”

    “그래, 다 쓰면 돌려주겠다.”

     

    컴퓨터의 앞에서 물러난 파이리스의 모습은 어딘가 미련이 남은 듯 했다.

    그렇게 메루루가 좋았던 걸까?

     

    ‘예전에 보았을 때는 그렇게 재밌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물론 조금 신기하긴 했지만, 정령인 파이리스가 저렇게까지 푹 빠져들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정령에 대한 고증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 신경쓰여서 다른 부분은 주의깊게 보지 않았는데, 뭔가 색다른 매력이 있었던 것일까?

     

    ‘나중에 함께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지금은 일단 검색부터다.

     

    ——-

     

    “좋아, 이 프로그램인가…….”

     

    루크는 마르코에게 전해들은 프로그램들을 검색해보았다.

     

    그러다가, ‘정품’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사이트를 발견했다.

     

    정품이라, 물론 사용하는 것은 정품이 좋겠지.

    불법적인 방식보다는 당연히 정식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가치가 더 높지 않겠는가.

    루크는 곧바로 다른 페이지들은 닫아버리고 창에 해당 사이트를 띄웠다.

     

     

    프로그램의 다운로드 페이지를 보니, 이것도 회원가입을 해야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듯 하다.

     

    과거라면 스스로는 도저히 할 수 없어서 도움을 받아야만 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회원가입은 이제 쉽지.”

     

    이제 어떤 칸에 무슨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작성을 해야 하는지 충분히 알았다.

    과거 시루드가 회원가입을 대신 해주던 그 때, 어깨 너머로 보면서 한번 학습했기 때문이다.

     

    비밀번호 확인에는 ‘해당 비밀번호가 맞음’이라는 글자 말고 같은 비밀번호를 다시 입력하는 거라던지, 주소칸 옆 숫자칸에는 좌표정보를 적는 것이 아니라 우편번호를 쓰는 거라던지하는 자잘한 실수는 이제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능숙하게 모든 빈칸을 채우고, 약관도 꼼꼼히 읽은 뒤 휴대폰을 이용해 본인 확인까지 거친다.

     

    물 흐르듯 회원가입을 완료한 루크는 곧 만들어진 아이디를 입력했다.

    그리고, 다운로드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눈앞에 뜬 창에 경악했다.

     

    “잠깐만, 일년에 2,000,000길이라니?”

     

    말도 안되는 가격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컴퓨터의 기능 하나가 어찌 컴퓨터 가격보다 비싸다는 말인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고작해야 회로도를 어떤 식으로 작동시킬지에 대한 청사진이나 다름없는 그런 무형의 물건이 말이다.

     

    어떻게 현실에 존재하는 컴퓨터의 가격보다 비쌀 수 있는 것인지, ‘지적재산’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오랜 과거를 살던 루크의 감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게임이나 검색 등의 기능은 공짜로 잘만 이용할 수 있지 않았던가?

    컴퓨터 안에서 무언가를 결제한다는 개념이 생소한 루크는 그 가격을 더욱 더 이해할 수 없었다.

    마법서나, 저장 아티팩트로 접근방식을 따로 떼어낸 것도 아니고, 공개된 인터넷 어딘가에 그대로 연결되어 있을 정보를 받아 내기 위해서 돈을 내야 한다니?

    마치, 이미 입장료를 낸 공연에서 이 다음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또 돈을 내야 한다고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 혹시 이것도 사기가 아닌가?”

     

    의심스러워졌다.

    여기엔 정품이라고 적어 놓고 사실은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 비싸지 않은가.

     

    실제로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일년 사용하는데 200만 길이라니?

    실제로 자신이 쓸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것에 그만한 가격을 지불할 생각은 없었다.

     

    루크는 조금 더 알아보기로 했다.

     

     

    검색을 다시 돌리자, 이번에는 무료로 다운로드 하는 방법이 안내된 것도 있었다.

    하지만, 무슨 자신이 알아보고 있던 프로그램과는 관련도 없는 광고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아무리 봐도 제대로 된 느낌은 아니었다.

     

    비교를 해 보자면, 처음 들어간 사이트는 확실히 전문적으로 그 상품만 취급하는 정식 상점의 느낌이라면, 이 사이트는 이것저것 아무거나 마구잡이로 팔릴 만한 물건을 출처도 모를 곳에서 조악한 품질로 제작한 길거리 상점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래도 무료라는 말에 다운로드 버튼에 손이가려던 찰나…….

     

    “그리고 이건 또 무슨…….”

     

    이 프로그램에는 바이러스가 있어서, 컴퓨터를 완전히 망가트린다는 식으로 써놓은 댓글이 눈에 띄었다.

     

    “…….”

     

    루크는 곧바로 다운로드를 취소하고는 사이트를 꺼버렸다.

     

    그것이 정말일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지만, 루크는 굳이 도박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컴퓨터가 고장나 그 값을 잃으나, 사기를 당해 돈을 잃으나, 똑같이 손해가 아닌가.

     

    검색을 해 보니, 실제로 컴퓨터도 질병에 걸리는 모양이다.

    정확히는, 타인에게 세뇌를 당한다는 느낌에 가깝지만.

    어쩌면 일종의 사령술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루크는 다시 ‘정품’이라고 적혀있던 사이트로 눈길을 돌렸다.

    확실히, 이제는 홈페이지의 만듦새부터 신뢰가 간다.

     

    정말 그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만이 나열되어있어 정식으로 광고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만약 둘중 한 곳에서 사기를 치는 거라고 한다면, 그건 일단 이 사이트는 아닐거란 생각이다.

     

    홈페이지를 뒤적거려보니, 연이 아니라 달 단위로 구매하는 방법도 있었다.

    한달을 기준으로 구매하게 되면 30만 길 정도이지만, 그 가격도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루크에겐 큰 부담이 되었다.

     

    페이지를 조금 더 찾아보니, 학생 할인을 받는 방법도 발견했다.

     

    학생할인으로는 50% 할인된 가격으로 구할 수 있다는 모양.

    하지만, 그래도 15만 길이다.

    구매하는 것에 문제는 없어도, 실제로 사용할 수 없다면 그저 돈의 낭비가 된다.

     

    “최소한 어떤 것인지 알게는 해 주어야지.”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을 할 수 있는 물질과는 다르지 않나.

    순수하게 광고하는 사람의 말만을 믿고 구매를 해야 한다니.

    마치, 경매장에서 경매품목을 보지 않고 경매에 참여하라는 소리와 다름이 없지 않은가.

    대체 이 시대의 사람들은 뭘 믿고 이런 무형의 물건에 그리도 큰 돈을 퍼붓는 다는 말인가?

     

    “잠깐, 여기에 무료 체험판이 있군.”

     

    계속 찾아보던 루크는, 마침내 7일 정도의 사용이 가능한 무료 체험판을 발견했다.

     

    ‘무료 체험판이라.’

     

    과연, 이 시대의 사람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일에 대한 대비도 하는 법이었다.

    처음부터 이 글자를 보았다면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루크는 그제서야 인상을 풀며 다운로드의 버튼을 눌렀다.

     

    게임을 설치하면서 다운로드의 방법 정도는 이미 숙지하고 있었으니, 지금은 주어진 정보가 컴퓨터에 모두 전달되기를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잠깐 사용 방법에 대한 매뉴얼이라도 읽고 있으면 되리라.

     

    ——————

     

    그렇게 처음으로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을 하게 된 루크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컴퓨터로 간단한 계산이 가능하다는 것은 루크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만한 계산기능이 있는 아티팩트라는 사실은 처음 이 마도기기를 보자마자 알아낼 수 있었던 사실이니 말이다.

    실제로 루크는 과거 게임의 회로 계산과정을 최적화시키다가 계정정지를 당한 적도 있으니, 그러한 것을 모를리는 없다.

     

    하지만, 이토록 복잡한 회로도와 수식마저도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대체 컴퓨터에 어떤 식으로 입력해야 하는 것인지를 몰랐으니까.

     

    게다가, 웬만한 계산은 직접 암산을 거치는 것이 더 빠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복잡한 수식과 회로도의 작성은 좀 다른 이야기다.

     

    기존에 루크는 손으로 모든 작업을 거쳤는데, 본래는 엄청난 크기의 마력회로가 필요한 작업도 종이 한장에 그려내려다보니 어쩔 수 없는 오차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루크가 손재주가 있다고는 해도 미세함의 조정이 드워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고, 때문에 작성한 회로도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 과연 자신의 손의 실수인지, 아니면 설계상의 문제인지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몇번 더 같은 회로도를 직접 손으로 작성해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가상공간에 작성된 회로에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시뮬레이션.

     

    완벽한 이론의 세계를 손에 넣은 루크는 기존에 암산과 수기만으로 작업을 하던 루크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이건 정말로 놀라워!”

     

    루크는 금방 가상세계의 대단함에 빠져들고 말았다.

     

     

     

     

    “언니이~~언제까지 할거야아~~ 나도 이제 메루루 보고 싶어~~”

    “잠깐만 더 있어보거라, 지금 중요한 작업 중이니까. 나중에 시켜줄테니, 저기서 예르나한테 책이라도 읽어달라고 해보는 것이 어떤가.”

    “싫어! 메루루 보고싶단 말이야! 치사해! 언니만 계속 컴퓨터 하고! 나는 언제 시켜줄건데!”

    “지금 결과가 나오려고 하잖느냐, 있어보라니까.”

    “그 말만 벌써 몇번째야! 시계도 2시간이나 지났단 말이야!”

     

     

     

    하지만, 컴퓨터 한 대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루크와 파이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예르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컴퓨터를 한 대 더 사야하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과연 컴퓨터 활용능력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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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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