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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9

     

    리셰가 얻어낸 마왕의 팔에서는 당연하게도 그의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즉시 플라스크에 받아내니 새로운 연성의 조합식이 주르륵 출력됐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건 이것.

     

     

    ―――――――――――

    · 시간 반동 포션

    · 사용 효과 : 시간 마법의 효과를 받지 않게 됩니다.

    ―――――――――――

     

     

    이게 있으면 마왕의 마법을 완전히 파훼할 수 있다. 파티원 전원이 그의 마법에서 자유로워진다.

     

    ‘활로가 보였어.’

     

    나는 바로 아이템박스에서 아트로핀을 꺼내 주문진을 그리고 [연성]에 들어갔다.

     

    단숨에 연한 노란 빛이 감도는 투명한 포션이 완성됐다. 남은 마왕의 피는 아이템박스에 던져넣고 타냐, 리셰, 앰브로시아에게 포션을 나눠주었다.

     

    “다들 쭉 들이켜. 시간 없으니 빨리.”

     

    “아, 알았소. 파우스트군, 말투가 변하지 않았소이까?”

     

    “지금 롤플레이 할 여유가 없어요, 여유가. 일단 저것 좀 어떻게 하고 생각합시다.”

     

    기묘한 맛의 액체가 목을 넘어가고 나니 메피스트가 시간을 멈추는 장면이 똑똑히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저도 싸울 수 있겠습니다.”

     

    타냐가 오러를 검으로 되돌리며 응축했다. 압축된 검기가 그녀의 눈빛과 함께 첨예하게 빛난다.

     

    “용사님, 일어설 수 있겠소?”

     

    “네. 얼마 안 남았으니까 버텨 봐야죠. 그렇죠? 선생님.”

     

    나는 리셰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준비는 길지 않았다.

     

    말도 맞추지 않았건만, 우리의 발이 동시에 지면에서 떨어졌다. 단숨에 메피스트에게 붙어 합에 들어간다.

     

    우측을 노리는 타냐. 방어하는 메피스트의 어깨 위로 리셰가 뛰어올라 뒤통수를 노린다. 시간을 정지하는 메피스트. 파악! 깔끔하게 일격이 들어가고 그의 목덜미에서 피가 흐른다.

     

    “으음.”

     

    우리에게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깨달은 메피스트가 더욱 방어에 집중해 속도를 올렸다.

     

    하지만 팔 하나로는 동선에 한계가 있다. 내 동체시력으로 피하며 파고들기에는 충분했다.

     

    우측 옆구리를 파고드는 훅. 췌장까지 떨릴 충격을 가해준다. 반 바퀴 회전하며 종아리 뒤를 가격하니 메피스트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타냐가 틈을 놓치지 않고 연계하여 검격을 먹여낸다.

     

    “패색이 드리우는군.”

     

    메피스트는 냉정한 남자였다.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는 몸을 숙여 팡! 손으로 땅을 짚고는 전신을 회전시켰다.

    우리를 동시에 제압하기는 힘드니 거리를 벌려 방어를 위한 재정비라도 할 셈이다.

     

    그의 공격을 피한 잠깐의 틈새. 아셀라가 그의 머리 위로 얼음창을 쏟아내며 외쳤다.

     

    “방심하지 마. 진을 그렸어!”

     

    그녀의 말대로 어느새 바닥에 짚었던 손끝에 자신의 피로 마법진을 구축했다. 전개도처럼 생긴 진은 한순간에 공중으로 솟아오르며 입체가 된다.

     

    파앙! 마기가 분출하며 시전되는 마법. 동시에 아셀라의 얼음창이 그의 등에 박혔다. 피해를 받아가면서까지 시전해야 할 중요한 마법이었단 뜻이다.

     

    “뭘 했지…?”

     

    메피스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너덜너덜한 조끼를 마저 벗으며 심호흡을 했다.

     

    “그대들이 짐의 시간에서 자유로워졌다면, 그에 어울리는 수단이 있지.”

     

    ―홰액!

     

    별안간 공기의 흐름이 빨라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명백히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와 반대로, 이번엔 그가 시간을 가속한 것이었다.

     

    “본래 짐 외의 세계를 가속하는 행위는 자살이나 다름없겠으나.”

     

    마왕은 시간을 늦추고 멈추는 것뿐만 아니라 빠르게 흐르게 하는 것도 할 수 있었다.

     

    지금껏 이 마법을 쓸 이유가 없었던 것도 당연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우리를 빠르게 만들어 줄 뿐이니 손해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도 시간 가속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마왕과 같이 빨라진 세상만을 상대적으로 관측하게 된다.

     

    “마왕의 노림수는 무엇이오? 설마 소녀를 노화시켜 쓰러트릴 셈인가? 헉, 배가 고파 못 싸우게 되면 어쩌오, 파우스트군!”

     

    “그 정도 속도는 아닙니다. 기껏해야 한 시간 지났어요. 그리고 저희는 영향을 안 받아서 그럴 일은 없…”

     

    주변이 환해진다. 나는 그가 이 마법을 쓴 이유를 깨달았다.

     

    하늘에 뜬 커다란 달. 그것이 점점 파랗게 물들며 태양만큼이나 세차게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순수한 마기 그 자체다.

     

    “블루문.”

     

    이거였나.

     

    마계에서만 관측할 수 있는, 몇 년에 한 번 대량의 마기를 뿜어내 마족과 마물을 진화시키는 저주받은 파란 달.

     

    처음부터 메피스트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의 노림수는 이것이었다.

     

    “리셰!”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외치며 마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리셰와 타냐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색채 아닌가.”

     

    시퍼런 마기를 받은 메피스트의 상체가 순식간에 거대해졌다. 등뼈가 솟아오르며 험악해지는 얼굴. 보다 인간보다 마수에 가까운 형태로 변화한다.

     

    “달은 짐의 편이로군.”

     

    그가 주먹을 내질렀다. 우리가 아니라 전장의 지면을 향해서였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마왕의 공방이 단숨에 산산조각이 나며 붕괴한다. 옥좌마저 부서지고 사방에 튄 흑요석에 의해 시야가 가려졌다.

     

    나는 급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찾았다.

     

    아셀라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태에 균형을 잃고 등부터 추락하고 있었다.

     

    “큭.”

     

    그녀에게 보호주문을 거는 찰나, 시야가 완전히 가려지고.

     

    ―쿠르르릉!

     

    우리는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다.

     

     

     

    ***

     

     

     

    “젠장.”

     

    사방이 깜깜했다. 낙하한 시간을 생각했을 때 적어도 50미터 이상은 떨어졌다.

    통증이 꽤 있었다. 다리 골절, 찰과상 다수.

     

    “푸하.”

     

    숨이 갑갑했기에 마스크는 잠깐 벗어서 아이템 박스에 넣어놓았다.

     

    대충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만 응급처치를 하고 일어섰다. 긴급한 상황이다. 파티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메피스트도 보이지 않았다.

     

    “미궁이야.”

     

    흑요석 파편 때문에 막힌 곳이 많았지만 상당히 복잡한 구조로 보였다.

     

    무너진 천장 틈새로 희미하게 달빛이 들어온다. 그에 의존해 벽을 짚고 서둘러서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파티원들도 꽤 부상을 입었겠지. 내가 찾아서 치료해줘야만 한다.

     

    누구보다도.

     

    ‘아셀라.’

     

    가장 걱정되는 건 그녀였다.

     

    타냐나 리셰, 발렌은 그렇다 쳐도 얼마 전까지 실전과 거리가 멀었던 그녀다. 이런 예상 밖의 사태에 제대로 대응했을 가능성은 낮았다.

     

    “거기 누구요!”

     

    앞에 인기척이 있었다. 반가움에 뛰어가니 조그마한 백발이 깡총거리며 나타났다. 앰브로시아였다.

     

    “다행히오, 무사하셨군! …고트베르크 선생.”

     

    앰브로시아가 나를 보고는 입을 헤 벌렸다. 그제야 얼굴을 만져보니 위장 물약의 효과가 풀려 있었다.

     

    메피스트에게 마법을 맞은 기색이 있었는데, 혹시 디스펠이라도 당했나.

     

    “고트베르크군, 별안간 어디서 나타나셨소? 파우스트군은 어디 있소? 서로 위치를 바꾸는 마법이라도 쓰신 것이오이까?”

     

    “처음부터 저였습니다. 나중에 설명하지요.”

     

    “뭐뭣, 여태 거짓말을 했단 말이오! 소녀가 그대를 못 알아볼 리가…”

     

    그녀의 말을 끊으며 콰앙! 코앞의 벽이 붕괴했기에 앰브로시아를 번쩍 들어 올렸다. 마땅히 내려놓을 곳도 없었기에 일단 무등을 태웠다.

     

    “이건 안 좋은데.”

     

    눈앞에 메피스트가 나타나 있었다. 여전히 마기가 증폭되어 신체가 강화된 채였다.

     

    둘이서는 승산이 없다. 일단 리셰나 타냐와 합류해야 한다.

     

    “자매님.”

     

    “부르셨소이까.”

     

    “좌우는 파편으로 막혔습니다. 아무래도 탈출구가 마왕의 가랑이 사이밖에 없어 보이는군요. 제가 틈을 만들 테니 쏙 빠져나가서 파티원들을 찾아와 주세요.”

     

    “그동안 버틸 수 있겠소?”

     

    “버텨야죠.”

     

    아이템 박스에서 포션을 꺼내 있는대로 도핑에 들어간다.

     

    문제는 근력 강화의 제한시간은 얼마 안 남았다는 것. 앞으로 3분 정도일까.

     

    “갑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막는 쪽의 동선은 제한되기 마련.

     

    아직 메피스트가 자세를 잡지 못했을 때 먼저 유리한 자리를 잡아 파고든다. 물론 앰브로시아를 탈출시키기 가장 좋은 위치다.

     

    투웅! 앰브로시아가 시전한 보호막이 메피스트에게 부딪치며 깨져나간다. 그가 균형을 잃은 틈에 나는 볼링을 치듯 그녀를 쏘옥 집어넣어 반대편으로 밀어 보냈다.

     

    “가랑이 사이라는 게 비유가 아니라 진짜였소?! 거기서 조금만 기다리시오!”

     

    앰브로시아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걸 확인할 틈새도 없이 공격이 들어왔다. 주먹으로 맞부딪치니 뼛속까지 지잉 울린다.

     

    장난이 아닌데.

     

    “이제 이해했다. 그대였군.”

     

    메피스트가 어느 때보다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육탄전을 걸어왔다.

     

    “역사가 지금 이 장소로 짐을 이끌 가능성은 희박했다. 너무나도 희박하지. 그야말로 기적이나 마찬가지.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의지라면 차라리 납득하였겠으나, 역시 이 세상에 신은 없었다. 용사파티의 치유사여.”

     

    콱, 메피스트가 하나 남은 팔로 내 멱살을 붙잡았다.

     

    진화형인지 뭔지 세긴 드럽게 셌다.

    애초에 나는 몸으로 싸우는 타입도 아니고, 버프를 둘둘 감아봤자 마왕 눈에는 어린애 장난으로 보였겠지.

     

    1대 1이 되니까 이렇게 쉽게 제압당하네.

     

    메피스트가 손을 조이니 숨이 조금씩 막혀왔다. 간신히 버텨내고 있으니 그가 눈을 마주쳐왔다.

     

    “시간을 다룬 이는 그 마법사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자네였군.”

     

    “노코멘트 하면 안 될까? 너희 마법사들 얘기를 듣고 있으면 솔직히 머리가 지끈거려서.”

     

    “그대였는가? 마왕군의 간부들을 쓰러트린 것도, 용사 파티를 여기까지 이끈 것도, 짐의 마법을 돌파한 것도.”

     

    “과대평가가 심한데. 난 평범한 시골 의사야. 동네 감기 걸린 어린애들 사탕이나 몇 개 쥐어주는 소일거리 하며 지내거든.”

     

    “하하하.”

     

    메피스트가 웃는 건 처음 봤다.

     

    “그대의 집요함에는 경의를 표하지. 짐이 본 수많은 선택지에서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렇게나 짐을 방해하고, 짐의 미래를 위협하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아쉬워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대가 인간족이라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군. 마족이었다면 짐의 간부로서 큰 위업을 이루었을 것을.”

     

    꽈악, 메피스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인간이여, 이름이 무엇인가.”

     

    나는 피식 웃었다.

     

    “이미 토벌한 상대한테 이름을 알려줘서 뭐 해. 기억이나 하겠어?”

     

    내 대답을 들은 메피스트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곰곰이 문장에서 의미를 찾는다.

     

    “무슨 마법을 썼지?”

     

    “뭔 마법. 파이어볼도 못 쓰는데.”

     

    “…그대는 마법사가 아닌가?”

     

    “주문은 쓸 줄 알지. 마법이라, 아이템 박스도 쳐주나?”

     

    “장난은―”

     

    ―콰앙!!

     

    미궁 벽이 뚫리고 오러가 메피스트의 머리통을 강타했다. 반대쪽 벽을 뚫고 날아가는 마왕.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타냐였다. 나는 그녀와 주먹을 부딪쳤다.

     

    “타이밍 좋았어. 리셰는?”

     

    “성녀님이 찾고 계십니다.”

     

    그때였다.

     

     

    찌르르, 왼손에서 전기가 오르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동시에 머릿속에 저절로 지도가 그려졌다. 우리가 있는 바로 이 미궁의 도식도였다.

     

    그 가운데의 한 장소.

     

    특정한 한 위치에 신경이 쏠린다.

     

    생소한 감각이었지만 어디서 오는 느낌인지는 확실했다.

     

    장갑을 벗으니 반지가 반짝이며 진동하고 있었다.

     

    “아셀라.”

     

    그녀가 나를 찾고 있었다.

     

    무려 3년 만에.

     

    “단장, 잠깐 저거 좀 상대하고 있어 줘.”

     

    타냐는 내 무리한 부탁에도 즉시 검을 고쳐 잡으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다녀오시죠.”

     

    나는 가면을 꺼내 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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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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