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39

       나는 극장 안으로 정신없이 내달렸다.

       원더스타인의 몸으로 있을 때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위기감이 전신을 감쌌다. 저 아래 광장에서 비명과 괴성이 들려왔다. 나는 등을 돌리기 직전에 봤던 그곳의 풍경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사신이 극장 안에 침입했다면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비록 이곳에서 마귀들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한다지만, 사람 몇 명 해치우는 건 놈들에게 일도 아니었다.

         

       홀에 당도했을 때,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이미 그곳은 누군가의 습격을 받은 듯 객석이 무너져 있었다. 나는 반파된 무대 위에 주저앉아 있는 엘라를 발견했다.

         

       “엘피 양!”

         

       내 부름에도 그녀는 미동도 없었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나는 허겁지겁 무대 쪽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그녀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더니 나를 바라봤다.

         

       “어, 아, 아저씨……?”

       “어떻게 된 겁니까?”

         

       나는 엘라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때마침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다른 사람들도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으으, 방금 그건 뭐야.”

       “좋지 않은 기억들이…….”

         

       무대 곳곳에 새하얀 얼음이 거미줄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사람들이 입을 열 때마다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사신이 왔다 간 게 분명했다. 놈의 시선에는 대상을 얼어붙게 만드는 저주가 어려 있었다. 게다가 이 큰 무대를 반으로 쪼갤 정도로 예리하고 위력적인 물건은 사신의 낫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상태를 자세히 살폈다. 다행히 사신의 낫에 직접 찔린 사람은 없어 보였다.

         

       “사신은 어떻게 됐습니까?”

         

       내 질문에 엘라가 움찔 몸을 떨더니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 그게……모르겠는데? 그냥 도망쳤어.”

       “별다른 짓을 하지 않고요?”

       “으, 응.”

         

       나는 그녀에게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지만, 자세히 캐물을 경황이 없었다. 곧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뭐야, 여기는 또 왜 부서져 있어?”

       “우리 딸! 괜찮니?”

       “야! 너 혼자 달려가면 어떡해!”

         

       실신한 로드 판타스틱을 미노바와 홉스가 양옆에서 받치며 나타났고, 내가 달려왔던 길을 쫓아 루미와 호크가 뒤따라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베론이 가슴에 큰 상처를 입은 채 비틀거리며 지하에서 올라왔다.

         

       서로 안부를 묻고 각자가 겪은 이야기가 오고 가면서, 나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몇 마리의 사신이 사법 극장 내부에 침투했다.

       그중 한 마리는 이곳에 올라와서 무대와 악기들을 때려 부수고는 사라졌고, 다른 한 마리는 지하로 내려가던 오베론과 마주쳤다가 그의 최면과 환상에 당해 허우적대고 있었으며, 다른 한 마리는 사도 다이아몬드 퀸이 1대1로 붙잡아 두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설명했다. 수만 마리의 마귀들이 쳐들어왔다는 말에 그들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그러면 어서 달아나야죠!”

       “그래그래. 그 문인가 뭔가를 빨리 열어줘!”

       “하지만 곡을 다 연주하지 못했는데 괜찮을까?”

       “지금 곡이 중요하냐? 그리고 악기들도 거의 다 망가졌는데 뭘 어떻게 더…….”

         

       소란스러운 가운데 무너졌던 객석 잔해에서 누군가 몸을 일으켰다.

         

       “크으, 한 방 먹었군.”

       “사도 스트라우스! 괜찮으십니까?”

         

       호크가 달려가 그가 벽돌 파편을 치우고 일어서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는 우리를 둘러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키르쿠스의 눈이 다 감기지 않으면 마신들이 길을 열어주지 않을 거라네.”

       “상황이 다급한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편 마신들 아닙니까?”

         

       내 말에 스트라우스의 입에 조소가 스쳐 지나갔다.

         

       “마신들이 하찮은 인간들의 사정을 헤아려 줄 것 같은가? 그들이 우리를 돕는 것도 우리가 예뻐서가 아니라 혼돈을 잠재우기 위해 힘을 빌려준 것이라네. 처음 계약한 대로 혼돈의 눈이 모두 감기지 않으면 결계를 열어주지 않을 거야.”

         

       그 말에 미노바가 버럭 소리쳤다.

         

       “쳇, 그 잘난 결계가 뚫려서 저 마귀 놈들이 쳐들어온 거잖아! 어떻게 된 거야?”

       “혼돈이 눈을 뜨길 원하는 마신들이 힘을 빌려준 덕분이겠지. 아니라면 감히 우리 땅 한복판에 저렇게 깽판을 칠 수 있겠나?”

         

       나는 다시 분통을 터트리려는 미노바를 제지했다. 여기서 불평하고 있어봤자 뾰족한 수가 나오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눈은 얼마 정도 남았습니까?”

       “잠시 기다려 보게.”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던 스트라우스는 잠시 후 혀를 차며 눈을 떴다.

         

       “눈 반 개, 아니 반의반 개 분량 정도? 아쉽군. 몇 소절만 더 불렀으면 됐는데.”

       “어떻게……방법이 없겠습니까?”

       “있긴 하지만……. 샌드맨의 조력이 필요하네. 그의 잠 모래가…….”

       “여기 있소!”

         

       구석에서 루미의 응급처치를 받고 있던 오베론이 소리쳤다. 스트라우스는 그제야 그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그는 오베론의 손에 든 포대 자루를 보고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베론! 자네 왔었나? 그래! 잠 모래가 있군! 됐어! 됐어! 그럼 그걸 가지고…….”

         

       신나서 떠들던 스트라우스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오베론의 상태를 살피며 탄식을 토했다.

         

       “그 몸으로 공동에 내려가는 건……힘들겠군…….”

       “할 수 있소.”

         

       오베론은 만류하는 루미의 손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무리하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신 한 명을 억류한 대가는 컸다. 그의 몸은 다리가 부러지고, 팔이 꺾이고, 가슴의 상처에서는 피가 한 바가지나 흐르는 등, 성한 곳이 없어 보였다.

         

       잠 모래를 뿌리기 위해서는 키르쿠스의 눈에 바로 옆에 접근해야 했다. 하지만 이 원더랜드 전체를 통틀어 그럴 수 있는 사람은 환상과 최면 둘 다에 능한 오베론뿐이었다. 어제 설명에 따르면 사도들조차 그렇게 가까이 접근하면 키르쿠스의 정신 공격에 잡아먹힌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그 오베론은 사신에게 당해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그 몸으로는 무리일세. 만전일 때도 5분 이상 버티기 힘들어했지 않은가.”

       “그래. 차라리 내가 하면…….”

       “큭, 누, 누님은 못 버텨! 내가 가야 해!”

         

       오베론은 자신이 내려가겠다고 계속 고집을 부렸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마땅한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제가 하겠습니다.”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뭐?”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자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네! 인스피라도 없는 하층 거주자가 뭘 하겠다는 건가!”

         

       나는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자신감 있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할 수 있습니다.”

         

       어제 지하 공동에서 올라오면서 다들 알 수 없는 메스꺼움과 구역질을 느꼈다고 했다. 키르쿠스에게 수백 미터 가까이 근접했던 후유증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물론 거대한 존재를 본 압박감과 우주적 규모의 공포 앞에 정신이 아찔해지기는 했으나, 그건 말 그대로 놀라서 그런 것이지, 어떤 힘이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키르쿠스의 정신 공격은 어째서인지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오베론이 하던 일은 내가 대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사코 나를 만류하려 들었다. 특히 이곳에 와서 나와 가장 오랫동안 붙어 다녔던 루미와 엘라가 펄펄 뛰었다.

         

       “야! 네가 뭘 하겠다는 거야! 이 등신 놈도 그렇고, 남자 놈들은 왜 목숨 걸린 데서 허세를 피우려고 그래!”

       “그래! 아저씨,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그냥 저 마귀 놈들이 물러갈 때까지 기다렸다가……악기를 복원해서 다시 연주하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됩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알고요. 방금도 자칫 잘못했으면 다 죽을 뻔했지 않나요?”

         

       내 지적에 엘라는 대꾸할 말이 없는지 입을 우물거렸다.

         

       “사신 놈들은 키르쿠스가 깨기를 원하는 마신들의 후원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방금은 놈들이 악기만 부수는 걸로 끝났지만, 당신들이 뭘 더 하려 들면 연주자를 직접 죽이려 들지 몰라요. 빨리 여기를 탈출해야 합니다.”

       “하지만……하지만…….”

         

       엘라의 표정에는 나를 향한 걱정이 가득했다. 내가 죽으러라도 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엘피 양, 약속했잖습니까. 몇십 년 뒤에 오더라도 저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다고요. 제가 약속을 어길 것 같습니까?”

         

       내 말에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며 바닥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후, 체념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기다릴게.”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문이 열리고도 아저씨가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아까 말했잖아. 묻고 싶은 게 있다고. 그거 물을 때까지 안 갈 테니까. 꼭 와야 해. 알았지?”

         

       나는 밀짚모자를 벗어서 가슴에 대고 맹세하듯 허리를 숙여 보였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가지요.”

         

       그렇게 일행들은 나를 향해 작별 인사를 하고는 하나둘 홀을 나섰다.

       동정 어린 그들의 시선을 받고 있으니 진짜 내가 죽으러 가는 것 같았다.

       기분이 묘하네.

         

       마지막으로 루미가 내 앞에 섰다. 팔짱을 끼고 나를 꼬나보는 그녀의 시선은 당연히 곱지 않았다.

         

       “루미 씨는 저들을 안내해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나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너……정말 자신 있는 거지?”

       “물론이죠. 하지만…….”

       “하지만?”

       “음, 보험이라고 해야 하나.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뭔데?”

       “문이 열리면……저를 기다리지 말고 일행들을 모두 밀어 넣으세요.”

         

       내 말은 방금 엘라와 했던 약속과는 상충하는 것이었다. 루미가 눈썹을 크게 치켜뜨고 나를 노려봤다.

         

       “너 이 자식! 자신 있다며!”

       “100%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부탁입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미친……. 그런 식으로 희생하면 네 주변 사람들이 기뻐할 거 같아? 나중에 네가 단장이라는 걸 알면 저 애들이 얼마나 자책감에 빠질지…….”

       “하하, 저는 딱히 희생하려는 거 아닌데요?”

       “능글맞은 자식! 넌 항상 그런 식으로…….”

         

       나는 정말로 나를 희생하려고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기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서브 퀘스트-가면극

       : 원더랜드에서의 당신은 토치 댄서입니다.

         

       달성 조건

       : 아르노를 제외한 일행들이 원더랜드에서 모두 나갈 때까지 그들에게 당신의 정체를 들키지 마십시오.

         

       성공 시 보상

       : 페르소나 1기를 원더랜드 밖으로 데려갈 수 있습니다.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이번 서브 퀘스트는 일행들이 모두 원더랜드에서 나가는 것이 종료 시점이었다. 그래야 보상을 사용할 수 있었다.

         

       페르소나 1기를 원더랜드 밖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것에는 내 페르소나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일지도 몰랐다. 만약 키르쿠스를 재우고도 미처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퀘스트 보상을 이용해서 원더랜드를 탈출하는 것도 노려볼 만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일행들이 모두 원더랜드를 나가야 했다. 괜히 나를 걱정한답시고 나가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오히려 나를 죽이는 일이 될 수 있었다.

         

       예전에 했던 연쇄살인마를 피해 탈출하는 게임이 떠올랐다. 거기서 비상탈출구는 생존자가 1명 남았을 때만 열리는데, 괜히 다른 생존자가 마지막 남은 생존자와 함께 탈출하겠다고 얼쩡거리다가 둘 다 살인마에게 잡히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내가 루미에게 한 부탁은 그것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너 진짜 죽기라도 한다면……나에게 죽는다.”

       “고맙습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일행들은 모두 떠났다.

       홀에 남은 것은 나와 사도 스트라우스뿐이었다.

       그는 나를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자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걸세.”

         

       나는 더는 믿어달라는 말을 할 의욕도 들지 않아 손을 내저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 없을 텐데요? 서두르자고요.”

       “그래. 내려가세나.”

         

       그러나 우리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하려는 순간, 반대편 통로에서 커다란 덩치의 무언가가 걸어 나왔다.

         

       “으응, 뭐야 너희들은? 혹시 털복숭이 요정 못 봤니? 감히 나한테 그런 장난질 따위를 걸고 도망치다니.”

         

       이 사신은 저번에 만났던 놈과 달리 후덕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를 냈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오베론이 환상과 최면으로 묶어 놓았다는 사신이 그녀인 것 같았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우리를 쏘아봤다.

         

       “뭐야, 여기는 캇피 군이 맡기로 한 구역인데! 캇피 군은 어디 갔지? 설마 네놈들이……?”

         

       그녀의 전신에서 흉악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사도 스트라우스는 지휘봉을 들며 내 앞을 막아섰다.

         

       “내가 막고 있겠네! 어서 가게!”

       “알겠습니다.”

       “가긴 어딜 가! 캇피 군이 어디 갔는지 실토하지 못해!”

         

       뒤에서 커다란 충격파가 내 등을 때렸다. 사도 스트라우스가 비명을 질렀으나 어찌어찌 공격을 막은 모양이었다.

       나는 잠 모래가 든 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지하를 향해 달렸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