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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9

        

       물론 이 모든 것은 진성의 추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주 단편적인 것만을 보고 추측해낸, 창작물에 가까운 추리.

         

       하지만 단순 망상에 불과한 것이라도 경지를 넘은 주술사의 감이 섞이게 되면 그것은 한없이 진실에 가까운 무언가가 된다.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형언할 수 없는 어떠한 것이 끼어들어서 만들어진 예지에 가까운 무언가가 말이다.

         

       진성의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하듯 매일매일 윌리엄은 꿈을 꾸었다.

         

       낡아빠진 교회 이곳저곳을 소녀와 돌아다니는 꿈을 보았고, 맛대가리 없는 피시 앤 칩스를 사서 불평을 터뜨리는 소년 시절의 윌리엄의 모습과 새에게 주는 것이 어떠냐며 제안하는 소녀의 모습이 나오는 꿈이 있었다.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몽롱한 눈으로 좋겠다며 중얼거리는 소녀의 모습을 꿈에서 보았고,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저런 결혼식보다 훨씬 호화로운 결혼식을 열 수도 있다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윌리엄의 모습이 나오는 꿈도 있었다.

         

       꿈.

       추억.

         

       윌리엄이 꾸는 꿈은 미화된 과거였으며, 소녀와 함께 지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다.

         

       하지만 그 풋풋한 추억의 끝에는 반드시 악몽의 형상이 나타난다.

       귀여웠던 소녀의 모습은 물에 퉁퉁 불은 시체가 되었고, 그 끔찍한 몰골로 윌리엄에게 달콤한 말을 속삭였다. 그리고 윌리엄은 그 시점에서 죄악감과 무력감을 느끼며 욕설을 내뱉었고, 그렇게 소녀와 소년의 꿈속에서의 만남은 최악의 형태로 마무리되기를 반복했다.

         

       반복된다.

         

       추억은 후회가 된다.

       꿈은 악몽이 되어버린다.

         

       윌리엄은 후회를 잔뜩 품은 과거에 매인 채 꿈속에서 항상 고통받았고, 소녀에게는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이 그저 꺼지라는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반쪽짜리 예언 능력 덕분에 예언자들이 겪는 파멸의 미래도, 단편적인 시간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예언자의 집착도 피할 수 있었건만.

       수많은 예언자가 가지고 싶어도 가지지 못한 축복과도 같은 삶 속에서도 윌리엄은 다른 예언자와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었다.

         

       자기 능력에 대한 무력감과 반쪽짜리 예언 능력 때문에 구해내지 못한 ‘소녀’의 존재에 매인 채, 악몽으로 나타나는 꿈속의 추억 속에 묶여 되풀이되는 후회를 반복하고 있었다.

         

       진성은 이 아이러니함을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쯧쯧. 성숙하지 못하구나.’

         

       윌리엄의 망나니 같은 성격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윌리엄이 왜 그렇게 여자를 헌신짝처럼 갈아치우며 살아가는지 알 것 같았기에.

         

       ‘벗어나고 싶어 할지라도 정작 벗어나려고 하면 망설여지는 것이 바로 쇠사슬이라. 결국 여타 다른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노예나 다름없는 신세로다.’

         

       벗어나고 싶다.

       그렇기에 귀여우면서도 착했던 소녀와는 다른 모습의 여자를 만나 그것을 잊고자 한다.

         

       하지만 벗어나고 싶지 않다.

       사랑이라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시기에 찾아온 풋사랑은 무의식에 깊숙하게 자리를 잡았을 것이고, 충격적인 사건과 함께 그것은 상흔으로 남아 그의 인생을 지배하는 거대한 사건이 되었다.

       그 때문에 윌리엄은 소녀의 존재에게서 벗어나기를 원하면서도 무의식중에 다른 여자에게서도 ‘소녀’의 모습을 투영하게 되고, 소녀와 비슷한 면모를 찾게 되었으리라. 그리고 그 비슷한 면모를 보면서 소녀를 떠올리고, 다른 면모를 보면서도 소녀를 떠올리게 되었으리라.

         

       코끼리를 떠올리려고 하지 않으면 코끼리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의 뇌.

         

       윌리엄이 소녀에게서 벗어나고 소녀를 잊고 싶어 할수록 그 족쇄는 더더욱 강하게 그를 옥죄었을 것이고, 마음에 더더욱 깊숙하고 단단하게 낙인이 찍히게 되었으리라.

         

       그렇기에 그는 오직 여자의 육체만을 탐할 수밖에 없다.

         

       감정의 교류까지 가게 된다면 반드시 소녀의 모습을 투영하게 될 테니까.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소녀의 존재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 순간, 들불처럼 일었던 성욕과 사랑은 식어버리고 그에게 꺼림칙함을 주었을 테니까.

         

       ‘게다가 그것뿐만이 아니다.’

         

       사람은 결핍된 것을 채우려 하는 본능이 존재한다.

         

       윌리엄의 여자에 대한 취향은 소녀의 존재가 가장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윌리엄은 옛날부터 사람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고, 자신을 귀하게 대접하기는 하되 다른 아이들처럼 대해주지 않는 부모에게 꽤 불만이 있는 듯 보였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커도 부모에 대한 불만은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예절과 허례허식을 중요시하는 귀족 가문의 아이, 게다가 심지어 보물처럼 다뤄야 하는 예언 능력을 갖추고 있는 아이였다.

         

       당연히 그 취급이 다른 아이들과 다를 수밖에.

         

       ‘어린아이들은 사람들의 생각보다도 훨씬 예민하다. 아마 쉬이 자신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깨달았으리라.’

         

       그 취급은 자신의 아이, 핏줄을 대하는 것보다는 보물을 대하는 것에 가까웠으리라.

         

       보물이라는 것은 물건이다.

         

       아무리 귀하고 비싸고 소중히 다뤄야 하는 물건이라고 한들, 물건이라는 본질이 변하지는 않는다.

         

       물론 윌리엄의 부모가 그것을 자각하지는 않았으리라.

       아무리 귀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자기 핏줄이요, 자신의 배로 낳은 아이가 아니던가.

         

       하지만 사람을 값을 매길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값을 매기고 이해타산의 대상으로 놓는 순간 윌리엄은 물건이 되었다.

         

       가문의 아주 귀한 물건이.

         

       ‘풍만하고 몸매가 뛰어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자.’

         

       그렇기에 윌리엄의 취향엔 어린 시절 느꼈던 결핍을 치유하기 위한 무의식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자랐던 모성을 느끼기 위해서 몸매가 뛰어난 여자를 탐하였을 것이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라왔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하여 성숙해 보이는 얼굴을 원하게 되었겠지.

         

       게다가 성숙해 보이는 외형은 그의 트라우마가 되었던 ‘소녀’의 존재와 완전 정반대였으니, 소녀에서 벗어나고픈 그의 무의식이 도달하기에는 걸맞은 목적지였다.

         

       ‘쯧. 그러니 아그네스에게 매달리는 것일 테지.’

         

       진성은 윌리엄이 왜 그렇게 아그네스에게 매달리는지, 왜 망나니짓을 일삼고 주변에 피해를 주면서도 어려 보이는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친절을 베푸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에게서 자신과 소녀의 어린 시절을 투영했을 테니 도저히 모질게 나설 수 없었을 테지.

         

       ‘그리고 아그네스는 몸매도 좋고 성숙해 보이는 외형에 자애로워 보이는 성격. 거기에 실제로 나이가 적은 편이 아니기도 하지. 그런데도 실질적인 외모는 20대 초중반 수준인데다가…. 마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노화도 없겠지.’

         

       아그네스는 윌리엄의 이상형에 걸맞은 존재였다.

         

       소녀에게서 벗어나는 외형을 볼 수 있으면서도 소녀를 투영할 수 있고, 모성의 결핍에서 오는 성적 취향을 완벽하게 채워줄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연상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연상이라고 외모가 늙어 보이는 것도 아니니 당연히 윌리엄의 눈이 회까닥 돌아버릴 수밖에.

         

       ‘흠. 이것을 이용한다면….’

         

       진성은 윌리엄의 이러한 성향을 이용해 그에게 접근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떠올렸다.

         

       그가 원하는 ‘이상형의 성격’을 가진 여자를 옆에 붙여놓고 차근차근 마음을 열게 만드는 방법, 트랜스 상태에 빠뜨린 뒤 심리치료를 병행해서 트라우마를 치료시키는 방법, 어린아이들을 접근시켜 자연스럽게 어린아이에게 자신의 과거를 투영하게 만들고 ‘어떠한 사건’을 극복하게 하여 과거를 극복시키는 방법.

         

       약물을 이용해서 소녀의 환각을 보게 만든 뒤 그것을 토대로 감정과 감각을 날뛰게 만들어 소녀에게서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 소녀와 비슷한 귀신을 찾아서 악령으로 타락시킨 뒤 빙의시켜 꼭두각시처럼 만드는 방법, 윌리엄이 겪었던 비극을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사건을 눈앞에 끌고 와 트라우마를 강화하는 방법.

         

       그의 머릿속에는 윌리엄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방법과 그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그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떠올랐다가 사라졌고, 개중에는 꽤 적은 노력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을법한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진성은 이 수많은 방법이 떠올랐음에도 그 무엇도 선택하지 않았다.

         

       ‘결자해지 기시자 당임기종(結者解之 其始者 當任其終)이라. 마땅히 매듭은 맺은 자가 풀고, 일은 시작한 자가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법.’

         

       이미 윌리엄은 선약이 되어있는 몸이었다.

       그에게 원한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주술사가 일방적으로 맺은 선약이 말이다.

         

       운기를 뒤틀고 점괘를 보지 못하도록 앞날을 안개처럼 흐릿하게 만들어버리는 강력한 흑주술을 걸어버릴 정도의 인연이다.

       그런 강렬한 인연이 어찌 가벼울 수 있겠는가.

         

       매듭이라면 그것은 꽉 묶여 쉬이 풀어버릴 수 없는 것 일터이고, 무게라면 단단한 돌바닥도 깨부수며 바닥에 콱 틀어박힐 정도로 무거운 것이리라.

         

       그렇기에 진성은 커다란 리스크를 가진 흑주술을 사용하면서까지 윌리엄에게 손을 뻗은 그 주술사를 존중했다.

         

       다만 이 일이 진성에게 닿지 않았으면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나, 안타깝게도 그 끈은 진성에게까지 미약하게나마 닿아 있었다.

         

       윌리엄의 예언에 아나스타시아의 성숙한 모습이 나왔다는 것은 필시 꿈을 매개로 저주가 진행된다는 이야기요, 아나스타시아가 그 꿈을 매개로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며 윌리엄을 적대하는 주술사와 적대 관계에 놓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윌리엄만 대가를 치른다면 모르되 아나스타시아 역시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말.

         

       그렇기에 진성은 이 일에서 완전히 발을 빼지 않고 그저 한 발 정도만 뒤로 물러나 있었다.

         

       혹시 모를 일이 일어난다면 언제든 개입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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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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