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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9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제국은 왜 계속 500년 동안 노스트럼을 정복하려고 했을까?

     자존심 때문에?

     한 인간의 분노와 자존심 때문이라면, 그 다음 대에는 희석되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한 가문이 증오와 복수심에 가득 차 있다면, 다른 가문은 노스트럼과 협상할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단지 지브롤터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자존심 때문에?

     아니다.

     이건 인간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문제다.

     “제국은 마도공학을 통해 발전해왔죠. 점령지에 공장을 지어 효율만을 뽑아내고, 부족한 자원을 어떻게든 쥐어짜며 살아왔습니다. 교통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났죠.”

     “도시화로 인한 다양한 문제, 라고 제국 사회학자들은 말하고 있네.”

     나는 가볍게 와인잔에 코를 대고 크게 숨을 들이켰고, 황제 또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숨을 쉬어야 살아갈 수 있는 생물이지. 제국에 왔을 때 느꼈겠지만, 제국은 좀 그런 부분이 있어.”

     “오염되는 게 공기만 그러겠습니까? 공기 뿐만 아니라, 물 또한 오염되겠죠.”

     “제국은 왕국보다 정화 시설이 잘 갖춰져있고, 왕국 시민들보다 의식 수준이 더 높은데?”

     “절대적인 오염 수치가 왕국보다 훨씬 더 심하지 않습니까. 특히, 기존 쓰레기 문제만 하더라도 좀처럼 건드리기 쉽지 않은 부분이 많죠.”

     “쓰읍….”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같은 쓰레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정말로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만들어낸 온갖 폐기물, 대지의 오염을 일으키는 요소들을 말하는 것.

     “왕국은 기술력이 부족해서 빵을 담아갈 때 직접 제작한 천보자기를 이용해 몇 번이고 재활용하지만, 제국은 빵을 하나하나 포장한 종이봉투를 사용하죠. 그게 어디 제대로 버려진답니까?”

     “분리수거라는 개념을 내가 10살 때부터 주장했는데, 그게 정착한 게 내가 즉위하기 몇 년 전의 일이었지.”

     황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법과 규칙은 예방이 아니라, 문제가 일어나고 난 뒤에 그 문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 내 입장에서 보면 제국인들은 노스트럼보다 좀 더 일찍 문제를 당면했을 뿐이야.”

     “안그래도 척박했던 땅인데 도시화로 인한 오염까지 겹치니, 편리한 건 편리한데 살기가 너무 힘들고 건강에 안 좋다. 그러던 찰나에 노스트럼이라는 땅이 열린다?”

     “신선한 공기. 자연이 풍요로움. 마나에 축복받은 땅. 제국인들은 500년 전부터 협곡 너머, 황금의 대지를 원해왔지.”

     “설령 마도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문화를 누릴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전철에 치여 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이들이 생기기 마련이야. 마도공학적 인프라야 시간과 돈만 있으면 갖춰나가면 그만이니까.”

     제국이 노스트럼 땅을 바라는 이유.

     다른 거 없다.

     “이미 오염된 땅은 버리고, 노스트럼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거죠.”

     “후후후….”

     “통일제국 합스베르크. 황도를 새로운 곳에 지으려고 하신 거 아닙니까? 노스트럼의 중심에.”

     “장소는 어디든 새로 정하면 그만이지. 통일제국의 천년도읍을 정하는데 어디 아무 곳이나 정할 수 있겠는가?”

     “아예 평지에서부터 새롭게 수도를 세울 생각이십니까?”

     “필요하다면 못할 것도 없지. 제국의 마도공학만 있는 게 아니라, 노스트럼의 마법이 함께한다면 최소 10년이면 황도보다 더 굉장한 대도시도 만들어낼 수 있을걸?”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만큼 일할 사람들이 얼마나 갈려나갈지는 모르겠지만.

     “좋네. 그레이 지브롤터. 그러면 얼마나 지을 예정인가?”

     “그건 나중을 위한 즐거움으로 두고, 폐하께서는 어서 가서 꼬드겨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바깥을 가리켰다.

     “페넬로페 히스토리아 백작영애 말입니다만, 만일 오로솔 아카데미에 들어왔다면 제가 ‘협곡 장학생’으로 선발했을 겁니다.”

     “……역시, 질은 엄청 뛰어난 여자인 것 같군.”

     “인간의 품질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확실히 뛰어난 편이죠. 발목에 사서 눈썹에 파는 여자거든요.”

     “미친. 무릎도 아니고?”

     “필요하다면 제국으로 데려가십시오. 여러모로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황제의 후궁으로 데려가겠다고 한다면 욕심 좀 내지 않겠습니까?”

     “그레이 지브롤터를 두고 괜히 다른 여자 들였다가 무슨 추문을 일으키려고.”

     “거 말을 해도.”

     상당히 듣기 불쾌한 방식의 표현이지만, 문제는 황제는 그럴 의도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

     ‘후계자’ 그레이 지브롤터를 두고 괜히 다른 ‘후계자를 낳을 수 있는’ 여자 들였다가 무슨 ‘그레이 지브롤터를 팽하고 본인이 직접 노스트럼 왕국과 긴밀한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 추문을 일으키려고.

     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나는 그걸 이해하고 있고, 이 남자도 내가 그걸 이해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연회장으로 돌아가시죠. 중간 점검은 끝났으니, 나머지는 파티를 끝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레이 지브롤터.”

     황제가 진지한 목소리로 묻는다.

     질문을 하지 않았지만, 저렇게 나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내게 뭔가를 묻겠다는 자세.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 거지?”

     “별 거 없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아스타시아가 지내기 편한 곳을 만들려고 하는 게 목적이죠.”

     언제나 진심이다.

     “시골에서 오두막을 짓고 살기를 바란다면 그렇게 할 것이며, 황금으로 만든 금자탑의 꼭대기에서 살고 싶다면 그리 할 것입니다.”

     “……황금, 이라.”

     황제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거 알고 있나? 나는 말이야,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 또한 알고 있나? 내가 원하는 것을 미녀가 가지고 있을 때는….”

     “거래 대상이 남자라면 그에게는 ‘인정’을, 여자라면 ‘사랑’을 줘라.”

     “……그것도 통일대제께서 말씀하시던가?”

     합스베르크 황제가 대놓고 입꼬리를 아래로 삐죽였다.

     “이게 첫사랑의 처녀를 빼앗긴 청년의 심정인 건가.”

     “무슨 미친 소리를 대놓고 하시는 건지.”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것이야. 쯧. 뭐, 상관없네.”

     합스베르크 황제가 가면을 벗더니, 곧 정장 안에서 검은색 무언가를 꺼냈다.

     “여자에게는 사랑을 주라고 했다지? 좋네. 그렇다면 내가 보여주지. 사랑을 속삭이는 걸로 땅을 홀라당 먹어치우는 걸.”

     “땅만 먹을 거 아니잖습니까?”

     “그게, 땅따먹기의 묘미지.”

     “…….”

     페넬로페의 잘못이 있다면, 너무나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는 것.

     ‘금방 끝나겠네.’

     쉬운 여자였다.

     해봐서 안다.

     “아 참. 아직 남아있는 구역 중에 말입니다, D7은 그냥 바라도 보지 마세요.”

     “그건 왜? 무슨 역병이라도 터지나?”

     “백골 터집니다. 파면 팔수록 사람 뼈만 나오겠죠.”

     “하하, 나의 처음을 빼앗아간 그 망할 놈이 그렇게 당했나?”

     “설마요.”

     “그런가.”

     스르륵.

     “그럼, 나중에 또 보지.”

     “예.”

     좌우로 갈라지며 조용히 각자의 출입구로 연회장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한 순간.

     “아아. D7은….”

     “좋았어! 으하하!”

     “…….”

     나는 세이레네 백작에게 훗날, 심심한 위로를 전하기로 결정했다.

     * * *

     연회가 끝났다.

     64개 구역 중 총 57개 구역에 대한 금광 채광권이 팔렸고, 그 누구도 사들이지 않은 나머지 7개 구역은 바르셀로나 총독부에서 자체적으로 조사 및 개발하기로 했다.

     경매를 통해 제각기 구역을 할당받은 이들은 돌아가는 길에 저마다 사들인 구역 갯수만큼의 검을 새롭게 받았다.

     검게 물든 검집과 하얀색 장식으로 된 검.

     그리고 당연하게도, 검신에는 소드마스터가 오러를 통해 직접 베어넣은 것 같은 문구가 적혀있었다.

     A1이라거나, H8이라거나.

     누군가는 단 한 개도 사지 못해 씩씩거리지만, 누군가는 무려 10개나 되는 검을 마차에 싣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경매가 끝났다고 해서, 연회가 온전히 끝난 건 아니다.

     “이보게,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하지.”

     “내가 따낸 구역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아, 잠깐이면 돼. 잠깐!”

     가면을 벗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도 있고.

     “호호호. 저랑 잠깐 이야기를 하지 않을래요?”

     “서로 다른데, 괜찮은 겁니까?”

     “골드와 탈러만 다르지, 장사하는 건 다 똑같잖아요?”

     “상인 대 상인으로서 이야기를 하자? …좋습니다.”

     마침 이 기회를 통해 새로운 이와의 만남과 교류를 넓혀나가는 이들도 있는 가운데.

     “…폐하.”

     흑발에 검은 제복을 입은 청년, 프란츠가 어느 한 검은 마차의 안으로 들어왔다.

     “음, 그래.”

     합스베르크 황제의 품에는 한 여인이 몽롱한 얼굴을 한 채 누워있었다.

     안에서는 그 어떤 약품이나 마법의 잔향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여인은 청년이 들어왔음에도 상관없다는 듯 합스베르크의 가슴에 안긴 채 간헐적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이더냐.”

     “…….”

     “쯧.”

     합스베르크 황제는 여인의 목덜미를 손으로 쓸었다.

     손 끝에서 ‘파앗’하는 푸른색의 오러가 반짝였고, 곧 여인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은 채 쓰러졌다.

     “협상을 통해 총 7개의 구역을 더 확보했습니다. 오늘만 24개 구역의 채광권을 따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제국 마도연구소에서 사람을 불러온 다음, 땅을 조사하는 것 뿐입니다.”

     “…….”

     합스베르크 황제는 그 어떤 표정 변화도 없는 상태로 가만히 앞만-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바토리 에르제베트에게 경쟁심을 품은 이들이 올 겁니다. 그들을 이용해서 지질탐사를 시작하면 최소 반 년 안에는 저희 구역 내의 금광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또.”

     합스베르크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또, 계속 말해보아라. 나의 아들, 프란츠.”

     “……! 예.”

     청년, 프란츠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기존에 노스트럼 금화를 구리로 바꿔치기하여 보내던 작업을 지속하면서, 동시에 저희 쪽에서 채광한 황금은 일부를 세이네레 쪽으로 빼내려고 합니다. 금을 최대한….”

     “또.”

     “…채광을 위한 장비를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여 판매할-”

     “또.”

     “황금으로-”

     “또.”

     프란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눈은 아래를 향하고 있지만, 눈동자는 좌우로 빠르게 굴러갔다.

     

     “황금을….”

     “나와 그레이는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데, 너는 허상을 좇으며 황금만을 바라보고 있구나.”

     “…….”

     “그것이 네가 나의 아들이면서, 그저 아들로 끝날 뿐인 이유다.”

     “…….”

     “황금이 무엇이 중요하더냐. 황금으로 금자탑을 쌓는다고해서, 황금으로 월계관을 만든다고 해서 네가 그 관을 물려받을 수 있을 것 같으냐.”

     “폐하….”

     “나는 말이다. 노스트럼의 기적을 좋아하지 않는다.”

     합스베르크 황제가 한탄하듯 입을 열었다.

     “그 기적 때문에 처음을 내가 가지는 짜릿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에 불쾌하기 짝이 없으니.”

     “…….”

     “그러한 불쾌감 다음으로 짜증나는 것이 너희들이다. 나의 피를 이어받고도 그 정도밖에 하지 못하는 반푼이들. 다른 남자의 씨를 받아 태어났으면 이곳에 있기는 커녕 마도공장에서 윤전기 레버를 돌리고 있었을 것을. 아니지, 아니야.”

     합스베르크 황제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까지 밖에 능력을 끌어내지 못한 이 테르시안의 핏줄이 잘못된 것인가.”

     “…….”

     “나가보거라.”

     “…예.”

     끼이익.

     문이 닫혔다.

     마차 안에는 고요함 만이 가득한 가운데, 합스베르크 황제가 아래로 고개를 내렸다.

     “히스토리아 백작가에도 영웅의 피가 섞여있다고 하더니.”

     “들어도 되니까 말씀하신 것 아니셨습니까?”

     흐트러진 옷차림을 바르게 여미며, 페넬로페 히스토리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것참. 위험한 분에게 가장 가치있는 걸 팔아버렸네요.”

     “가장 가치있는 것?”

     “여자가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는 게 뭐겠어요?”

     페넬로페는 자신의 흐트러진 머리를 정돈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싸게 해드렸으니까, 땅값은 비싸게 쳐주세요. 그리고 조금 전 저 남자한테서 살아남을 수 있게 신경 좀 써주시고.”

     “이미 땅값은 치룬 거 아닌가?”

     “뭐라고요?”

     “이걸로.”

     합스베르크 황제가 페넬로페의 복부를 향해 가볍게 손을 쓸자, 페넬로페는 잠시 어처구니 없다는듯 헛웃음을 흘렸다.

     “……미친 거 아니예요?”

     “싫다면 말고.”

     “하.”

     페넬로페가 눈을 질끈 감더니.

     “제대로 물렸다….”

     한숨을 푹 내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 * *

     “아.”

     생각해보니, 그 말을 하는 거 까먹었다.

     “황금, 그 땅에 제일 많이 묻혀있는데.”

     황제가 선택한 그 땅이 바로 내 기억상, 가장 많은 양의 황금이 묻혀있던 곳이었다.

     광맥은 아니고, 수백 년 전에 묻혔을 황금상.

     “…….”

     거래가 어떻게 되든, 이득 보는 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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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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