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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9

   천상사강

   천황

   달피론 쥬논

     

   제국 내에서 그에 관해 논하자면 극찬이 끊이지를 않는다.

     

   오래전부터 황실을 수호해온 검이자 전 천상사강 검황의 후손.

     

   크라슈는 그런 이와의 자리를 4황녀 시즐리 에파니아를 통해 주선 받았다.

     

   달피론은 현재 세계 침식자 집단 익시온과 손을 잡고 있다.

   그 이유는 황가에 내려오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황제의 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황가와 익시온이 잡은 손만큼은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달피론과 만나야만 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그 장소다.

     

   ‘제국인가.’

     

   크라슈는 제국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러나저러나 크라슈는 현재 스타론 소속이다.

   하물며 크라슈는 익시온의 목표 중 하나다.

     

   ‘황가 입장으로서는 가장 꺼림칙한 존재가 나란 말이지.’

     

   달피론과의 거래는 함정일 가능성도 존재했다.

   달피론은 크라슈를 익시온에게 납치해 건네주는 대가로 황가의 병을 치료받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뭐든 아는 녀석이 더 믿음직한 법이니까.’

     

   무엇보다 크라슈는 황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을 아는 만큼 황가가 익시온을 마냥 적대하지 않을 거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벨라라는 변수가 걸려.’

     

   크라슈에게 가장 마음에 걸리는 인물은 다름 아닌 아벨라였다.

     

   크라슈가 추정하기로 아벨라는 익시온과 손을 잡았을 확률이 높다.

   저쪽에서 무슨 수작질을 해올지 몰랐다.

     

   ‘분명히 이번 거래도 알고 있을 거다.’

     

   그러니 기회는 한 번.

   만나는 자리에서 달피론을 설득하고, 블랙 후드의 힘을 증명해야만 한다.

     

   “머리를 그 정도로 복잡하게 쓰고 있으면 열이 나지 않느냐?”

     

   그러는 순간 크라슈는 들려온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이번에 크라슈와 동승을 하게 된 바다 빛 머리카락의 소녀가 있었다.

     

   만두 모양으로 머리를 땋은 그녀는 동그란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제국의 4황녀 시즐리 에파니아.

     

   이번 달피론과의 자리를 주선해준 인물이자 익시온과 황가 내부의 사정을 알려준 이.

   더불어 어쩌면 가장 제국을 사랑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녀는 제국이 앞으로도 무너질 일 없이 나아가기를 바라던 이였으니까.

     

   “머리를 안 쓸 수 없는 상황이니까.”

   “하긴, 그럴 만도 하겠지.”

     

   시즐리도 크라슈의 상황을 아는 만큼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덜컹-

     

   울리는 마차 소리를 들으며 크라슈는 시즐리를 가만히 보았다.

     

   세계 최고의 두뇌라고 평가받는 그녀다.

   더불어 이번 일의 가장 중요한 달피론과도 미리 만나본 상황.

     

   “넌 어떻게 생각하냐.”

     

   시즐리의 의견을 참고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크라슈의 질문을 들은 시즐리는 가만히 침묵했다.

     

   “이번 일에 변수가 많은 건 너도 알 게다.”

     

   그리고 그녀가 내뱉은 말은 크라슈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벌어질 상황 자체가 너무 많다. 변수들을 포함해 결과를 도출하면 못해도 20가지 이상은 있으니 말이다.”

     

   시즐리가 섣불리 의견을 내뱉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그녀의 말대로 이번 일은 변수가 많았다.

     

   특히, 사람의 감정이라는 변수가 가장 컸다.

     

   아벨라가 아서를 위하는 마음.

   황제의 병을 치료하고 싶은 마음.

   달피론의 황가를 위하는 마음.

   익시온의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하고자 하는 마음.

     

   그러한 부분들이 한데 뒤섞인 끝에 수많은 변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도 가장 가능성 큰 결과라 하면.”

     

   시즐리는 샛노란 빛의 눈동자를 휘며 크라슈를 직시했다.

     

   “크라슈, 네가 달피론과의 거래에 성공하고, 폐하의 병을 치료하는 거겠지.”

   “나를 너무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 같은데.”

   “걱정 말거라. 내가 평가하는 것보다도 항상 더한 걸 해준 게 너니까.”

     

   그 말을 들은 크라슈는 한차례 피식 웃었다.

     

   “그래, 결국 내가 하는 거에 달렸겠지.”

     

   세상의 결과는 늘 정해져 있지 않다.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몫.

     

   이제는 존재치 않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크라슈에게 있어 그건 가장 자신 있는 일이기도 했다.

     

   세계는 이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로였으니까.

     

   ‘헤쳐 나가면 그만이겠지.’

     

   크라슈는 이동하는 마차의 창문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제국의 수도 시리안과 저 멀리 성벽이 둘러진 황궁이 비추었다.

     

   어느덧 12월.

     

   차디찬 겨울이 드리운 제국에 때아닌 폭풍이 몰아닥칠지도 몰랐다.

     

     

   * * *

     

     

   그렇게 제국의 수도 시라안을 한참 지났을까.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한다.”

     

   시장 입구에 마차가 멈추자 시즐리가 마차에서 내리며 말하였다.

     

   그녀가 머리 위에 로브를 뒤집어쓰자 얼굴과 몸이 동시에 뒤바뀌었다.

     

   키는 그대로이긴 하나 체형이 통통해지고, 얼굴이 바뀌었으며 머리색도 검은색으로 물들었기 때문이었다.

     

   마도구 제작자인 로나 임블라이즈가 만들었던 모습 변환 로브였다.

   사전에 대비해 로나에게 부탁하자 흔쾌히 제작해 주었다.

     

   크라슈도 그런 그녀를 따라 로브를 뒤집어쓰자 그의 모습이 바뀌었다.

   그러자 시즐리는 희한한 것을 다 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흐음, 이번 로브 제작은 네게 자주 약을 만들어주던 달링 단펠리온이 아니라 로나 임블라이즈 아니더냐? 왜 로브를 쓰니 크라드 모습이 있는 게냐?”

   “나도 모르겠다.”

     

   지금 크라슈의 모습은 그가 자주 약을 통해 변하고는 했던 크라드의 모습이었다.

     

   감긴 눈에 짧은 검은색의 머리.

   키와 체구는 예전 크라드의 모습에서 영락없이 성장한 모습이었다.

     

   ‘달링이 개입했을 거 같긴 한데.’

     

   로나나 달링이나 둘 다 같은 1기생이자 특수학과 소속이다.

   크라슈라는 접점이 있는 만큼 로나의 제작 소식을 어디서 주워듣고 이런 짓을 벌인 거겠지.

     

   달링답다면 달링다웠다.

     

   “다시 봐도 수상쩍은 얼굴이구나.”

     

   그사이, 시즐리는 크라슈를 이리저리 뜯어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무언가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이라 크라슈가 의문을 보이자 시즐리가 양 입꼬리를 올렸다.

     

   “내게는 이 모습이 가장 익숙하지 않더냐. 화살처럼 날아와서 구해주던 모습 말이다.”

     

   시즐리가 옛날을 회상하며 작게 키득거렸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크라드의 모습이었으니 그런 모양이었다.

     

   “그때 느꼈지. 크라슈, 너와 함께하면 참 재밌는 일이 많을 거 같다고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골치 아픈 일만 잔뜩 있는 것 같은데.”

   “흐흐, 골치 아픈 것만큼 재미가 있는 법인 게지. 네 덕분에 나도 많이 변한 거야. 예전이었다면 라헬른 아카데미는커녕 제국을 벗어날 일이 없었을 테니까.”

     

   그녀는 그리 말하며 크라슈에게 다가와 쓰느라 흐트러진 로브를 정리해주기 시작했다.

   그녀가 다가오자 후욱하고 시트러스 향이 옅게 느껴졌다.

     

   시즐리가 애용하는 향수였다.

     

   “다 네 덕인 게다. 지금 내가 여기 있을 수 있는 것도, 제국의 일을 나 몰라라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시즐리는 짓궂은 호박색의 동그란 눈동자로 크라슈를 올려다본 채 빙그레 웃었다.

   그 웃음은 그녀의 겉모습과는 다른 묘한 색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때, 도와준 빚을 갚는 중이라 이거냐.”

   “흐음, 빚이야 이미 충분히 갚지 않았느냐? 내가 도와준 일이 몇인데.”

     

   부정은 못 하겠다.

   지금까지 시즐리의 도움을 받은 게 꽤 많았으니까 말이다.

   

    “이건 그냥 내 뜻인 게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 누군가에게 빚을 져서 갚으려는 게 아니라. 순순히 내가 돕고 싶어서 돕는 게다.”

     

   눈치 좀 채라며 시즐리는 크라슈의 가슴팍을 자그마한 검지로 콕콕콕 찔렀다.

     

   “다른 쪽에서는 탁월한 눈치를 가진 애가 유달리 이런 부분에서는 약하구나. 주변 여자들이 다 대쉬를 하니 눈치를 기를 필요 없다 이거냐?”

   “장난기가 또 도졌군.”

     

   크라슈는 시즐리에게 그쯤 하라며 그녀의 손가락을 손으로 잡았다.

   그러자 시즐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크라슈를 올려다보곤 크라슈의 손에 잡힌 검지를 이리저리 굴렸다.

     

   “내 매력 포인트를 포기할 이유는 없지 않으냐.”

   “슬슬 어른스러워질 때도 된 거 같은데.”

   “여자는 어른이 되어도 소녀의 마음을 품는 게다.”

     

   똑똑-

     

   그러는 순간 마차 문 쪽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즐리는 이쯤 장난쳤으면 됐다는 듯 자기 손가락을 회수하곤 마차 문을 열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서 있었다.

   겉모습은 남성이나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시즐리의 호위 광검, 세라 베텔라였다.

     

   그녀는 크라슈와 마주치자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시즐리가 편히 나오도록 부축해 주었다.

   시즐리가 작은 키로 껑충 뛰어 마차에서 내려가자 크라슈도 뒤따라 나왔다.

     

   사람들은 두 사람의 등장에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마차 자체가 겉보기에는 그리 고급진 게 아니었던 만큼 그냥 어디 지방 어린 귀족들이 놀러 왔나 하는 반응 정도였다.

     

   제국 특성상 사람이 많고, 귀족도 많으니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가자꾸나.”

     

   시즐리는 이미 길을 꿰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는 유유히 시장 길거리를 지나기 시작했다.

     

   무려 황가의 황녀가 길을 걷고 있음에도 그녀를 신경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그의 옆에는 무려 스타론의 발하임 직계가 있는데도 말이다.

     

   만약 한 명이라도 눈치를 챘다면 난리가 났겠지만.

   셋의 분장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이는 이곳에 없었다.

     

   “시장길이 익숙한 모습인데.”

   “자주 나왔으니 말이다.”

     

   황녀가 황궁 밖을 자주 나오는 건 어떨까 싶지만.

   시즐리는 정말로 시장길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지금 옆을 지나가는 꼬마 아이들처럼 매일같이 시장길을 달리며 놀았을 정도였다.

     

   “제가 고생을 좀 했죠.”

     

   그러자 옆에 호위로 서 있던 세라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시즐리가 태어났을 시절부터 그녀의 호위를 맡았던 세라이니 그녀의 천방지축인 성격에 어울리느라 꽤나 고생했다.

     

   “똑똑한 분이셔서 그런지 조금만 눈 돌리면 제 눈을 속여 버리실 정도이니. 최근에는 많이 얌전해져서 다행입니다.”

   “세라, 나는 늘 얌전 하지 않았냐.”

     

   시즐리가 볼을 부풀리며 세라의 말에 반박했지만, 믿어 주는 이는 없었다.

     

   아무리 황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격을 과장하여 말괄량이처럼 행동했다 해도 그녀의 본래 성격은 어디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참, 둘 다 너무 하는구나.”

     

   시즐리는 장난스레 울상을 지으며 마저 길을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세 사람의 앞에 건물 하나가 보였다.

     

   시장길 구석에 있는 건물은 빈 건물로 보였다.

   옆에 몇 건물이 더 비어 있는 걸 보아하니 이쪽은 썩 장사가 잘되는 장소가 아닌 모양이었다.

     

   시즐리는 건물을 보러온 이인처럼 빈 건물의 자물쇠를 열었다.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서자 텅 빈 건물 내부가 보였다.

     

   먼지가 살짝 앉은 건물은 오래도록 쓰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문을 닫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선 시즐리의 말을 따라 마지막으로 들어온 크라슈가 문을 닫았다.

   그러자 시즐리는 들고 왔던 열쇠 중 다른 것을 하나 꺼내었다.

     

   그러고는 방금전에 들어온 문에 다가서더니 안쪽에도 존재하는 열쇠 구멍에 다른 열쇠를 끼워 넣었다.

     

   찰칵- 찰카닥-

     

   방금 열었던 문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다시금 열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시즐리가 문을 밀어 넣은 순간 거기에는 어느 방 하나가 비추었다.

     

   집무실과 같이 보이는 방에는 책상과 의자 같은 가구들이 놓여 있었다.

   잘 정돈된 분위기의 방을 보고 있으니 안쪽에서 인기척이 하나 느껴졌다.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황금색 머리카락의 긴 머리를 한 남자가 쇼파에 앉아 있었다.

   그를 본 순간 크라슈는 몸속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오싹함을 느꼈다.

     

   본능이 그와의 격차를 짐작한 것이었다.

     

   느긋이 감고 있던 사내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그리고 곧 마주한 흑갈색의 눈동자와 함께 사내는 입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사내의 이름은 달피론 쥬논.

   쥬논 가의 가주이자 천황이라 불리는 이.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수준으로는 천상사강에는 미치지도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 여기서 무엇을 하던 달피론의 뜻과 맞지 않는다면 무사히 돌아갈 수 없을 것이었다.

     

   ‘호랑이 굴에 저 스스로 들어간다 이 소리인가.’

     

   그러나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도 잡을 수 있는 법이다.

     

   문제는 호랑이 굴에 호랑이 한 마리만이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지만.

     

   결국 다 잡아 버리면 그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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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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