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

       트레이너와 작가 두 사람은 카메라맨과 함께 노랫소리가 들리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쪽으로 더 안쪽으로 걸음을 옮길수록 트레이너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침을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연습실은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높은 클래스가 나오는 구조였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과 카메라맨이 A 클래스 연습실 앞에 다다른 순간….

         

       “그래, 거기서 조금 더 고음을 올리는 거야.”

         

       “아하….”

         

       “설아, 나 동작 여기도 봐줄래.”

         

       “네, 언니.”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광경은 어두운 건물 안 유일하게 불이 밝은 곳에서 연습을 이어가고 있던 A 클래스 세 사람의 모습이었다.

         

       “아….”

         

       그 모습을 보자마자 트레이너 김예솔은 그 자리에 굳었다.

         

       동시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제일 뛰어난 실력을 가진 아이들이 최종 등급 평가 전날에 밤을 세워 연습을 하고 있다.

         

       저 뛰어난 아이들이 컨디션 조절의 중요성을 모르지도 않을 텐데 미련하게 전날까지 연습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뻔했다.

         

       아까 그녀가 모질게 했던 독설들 때문에.

         

       그 독설들에서 언급된 자신들의 단점을 보완하고 더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저렇게 시간 늦은 줄도 모르고 열심히 하는 것이리라.

         

       김예솔은 그런 제자들이 대견하면서도….

         

       “…흡.”

         

       왠지 뜨거운 감정이 북받쳐 올라 재빨리 자신의 입을 막았다.

         

       자신의 말에 얼마나 상처 받았으면 저렇게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는 걸까.

         

       …미안했다.

         

       저렇게 빛나는 아이들의 상처를 들쑤신 자신이 혐오스러웠고 아이들에게 아픈 말을 한 것이 너무나도 미안했다.

         

       이에 그녀는 연습실 안으로 들어갈 생각도 못 하고 밖에서 제자들을 지켜보았다.

         

       “…크흡, 큽.”

         

       터지려는 울음을 간신히 틀어막은 채로.

         

       안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하는 제자들.

         

       밖에서는 그런 제자들을 감동받은 눈으로 보는 스승.

         

       그야말로 아름답지 않은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지잉-.

         

       …카메라가 놓칠 리 없었다.

         

         

         

         

       **

       

         

         

         

       연습이 한창 열중이던 A 클래스 연습실 안.

         

       각자 몇 시간 남지 않은 최종 등급 평가 준비에 여념이 없던 그때.

         

       스윽-.

         

       연습에 전념하는 대신 연습실 밖을 곁눈질로 주시하는 이가 한 명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유 설.

         

       ‘제대로 됐군,’

         

       그녀는 연습실 밖에 제작진과 트레이너가 같이 서 있는걸 확인하고 속으로 안심했다.

         

       다행히 일은 그녀가 계획한 대로 되었다.

         

       그녀는 이러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먼저 제작진에게 A 클래스가 오늘 밤늦게까지 남아 연습한다는 사실을 흘렸다.

         

       ‘작가님! 저희 셋이서 오늘 밤에 연습 좀 하려 했는데 늦게까지 연습실을 써도 되겠죠?’

         

       ‘네? 내일이 최종 등급 평가인데 왜 오늘 밤 연습을…, 아, 아니지. 하하! 당연히 자유롭게 연습하셔도 됩니다!’

         

       제작진들은 지금껏 트레이너들을 뒤에서 조종하며 A 클래스 연습생들을 괴롭혀왔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에 악의는 없었다. 단지 그들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극단적인 모습을 연출하려 했을 뿐.

         

       이를 다르게 말하면 제작진은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참가자들의 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종 등급 평가 전날 밤까지 미련하게 연습하는 참가자들.

         

       꿈을 향해 피와 땀을 흘리는 소녀들의 모습을 시청자들이 싫어할 리 없었고 이를 제작진이 놓칠 리는 더더욱 없었다.

         

       거기에 유 설은 트레이너까지 끌어들였다.

         

       ‘쌤, 제가 이따가 부모님한테 전화할 일이 있는데 혹시 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그래? 자, 여기.’

         

       ‘네, 감사해요. 제가 이따가 부모님께 전화 드리고 여기 연습실 탁자 위에 올려 놓을게요.’

         

       밤늦게까지 연습하는 참가자들, 이를 지켜보고 감동받은 트레이너, 거기에 카메라.

         

       이 셋이 혹여 겹친다면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바라는 대로 잭팟은 터졌다.

         

       이제 남은 것은 잭팟으로 나온 결과물을 독식하는 것뿐.

         

       유 설이 그림 같은 미소와 함께 연습에 열중인 하예린과 이혜정을 향해 말했다.

         

       “자, 이제 두 사람 동시에 한번 맞춰서 해 보시겠어요? 제가 동시에 봐 드릴게요.”

         

       지이잉-.

         

       지금도 구석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그들의 음성은 오디오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이는 고스란히 방송에 나갈 터.

         

       그리하면 두 사람의 연습을 이끌어 주는 모습을 통해 그녀는 자연스럽게 A 클래스 리더 포지션을 가질 수 있다.

         

       A 클래스의 리더는 곧 나아아 참가자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자라는 걸 은연중에 어필한다.

         

       거기에 더해 다른 참가자들을 도와주는 모습에서 친절한 이미지도 얻을 수 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

         

       최종 등급 평가 전날에 컨디션 조절을 못 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았다.

         

       그렇게 유 설은 카메라가 물러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여 하예린과 이혜정의 연습을 봐주었다.

         

       카메라가 물러나서도 혹시 몰라 30분 정도 더 봐주었다.

         

       “자, 오늘은 이걸로 끝내죠. 내일 최종 등급 평가도 있으니까.”

         

       연습을 마치니 시간은 새벽 1시 반을 가리키기 있었다.

         

       내일 집합이 6시이니 지금 당장 돌아가도 잘 준비를 해도 4시간을 자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오늘 유 설에게 연습을 지도받은 두 사람은 그녀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하아…, 하아…, 그래. 이제 돌아가자. 오늘 고마웠어, 설아.”

         

       “……오늘 감사했어요.”

         

       “…….”

         

       그녀에게 이용당한 줄도 모르고 고마워하는 둘을 보고 유 설은 오묘한 감정을 느꼈다.

         

       애초에 하예린과 이혜정 두 사람은 각자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트레이너가 겁을 주긴 했어도 문제없이 A 등급에 남을 수 있었을 터.

         

       그런 것도 모르고 고마워하는 꼴이 참으로….

         

       ‘바보같네.’

         

       그래, 바보.

         

       그들이 참으로 바보 같다고 유 설은 생각했다.

         

       특히 하예린.

         

       처음 그녀를 봤을 때…, 그녀가 자신과 같은 곡을 선곡하고 춤을 추던 그때는….

         

       천하의 유 설도 아찔할 만큼 매혹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런데도 연습 기간이 한 달밖에 안 된다고 들었을 땐 위협적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다음에는 저도 더 좋은 모습 보일 거에요.’

         

       하예린이 그리 말할 때는 무언가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거리를 뒀다.

         

       그녀는 나아아에 단순히 친목 도모나 라이벌 놀이를 하려고 나온 것이 아니니까.

         

       언젠가 피 흘리며 경쟁해야 할 상대와 친하게 지내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었으니까.

         

       그녀에게는 나아아를 우승할 뿐만 아니라 이후 데뷔할 아이돌로도 성공해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거리를 두고 지켜보니 하예린은 그녀의 예상과는 조금 다른 인물이었다.

         

       유 설은 하예린이 자신과 동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하예린은 누구보다 차갑고 이성적인 외모를 가졌음에도 마음은 은근히 순진했다.

         

       ‘가끔은 아저씨 같기도하고 말이야.’

         

       여우의 탈을 쓴 곰이랄까.

         

       지금도 봐라.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쭈뼛쭈뼛 다가와 고개를 숙이는 꼴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언니 덕분에 많이 배운 것 같아요.”

         

       “…….”

         

       유 설은 그 순간 보았다.

         

       하예린의 차가운 무표정 속에서 작게나마 느껴지는 따스함을.

         

       그녀가 진심으로…, 자신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순진한 바보.’

         

       연예계는 단순히 실력만 좋다고 성공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애초에 그 사실을 그녀 스스로 뼈저리게 알지 않던가.

         

       그런 의미에서 하예린은 유 설 그녀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예린은 그녀를 끝끝내 넘어설 수 없을 터.

         

       그렇다면….

         

       ‘어차피 내 상대가 안 되는 애라면 거리를 조금은 좁혀도 되지 않을까.’

         

       유 설은 순간 그리 생각했다.

         

       그래서….

         

       “아니야, 예린아. 오늘 수고했어.”

         

       그날 처음으로 하예린에게 말을 낮췄다.

         

       “…!”

         

       그게 그리도 놀라운 일이었을까?

         

       하예린은 그녀의 그 완벽한 외모의 얼굴로 바보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풋.”

         

       그 모습이 뭔가 허당같아서 유 설은 그만 작게 웃고 말았다.

         

       그때의 유 설은 알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우는 자기가 여우인지도 모르는 여우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유 설은 이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면서도 가장 잘한 선택으로 기억하게 된다.

         

         

         

         

         

       **

       

         

         

         

         

       다음날, 세트장.

         

       “…….”

         

       “…….”

         

       백 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는데도 공기가 차가울만큼 고요하다.

         

       새벽 6시.

         

       이른 시간임에도 피곤해하는 기색을 보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늘은 나아아 최종 등급 평가니까.

         

       최종 등급 평가를 통해 나아아의 시작을 연다고 볼 수 있는 단체 테마곡 무대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참가자들은 본 경연 전 마지막 힘을 다한다는 자세로 최종 등급 평가에 임했고 심사위원들도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최종 등급 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최종 등급 평가는 F등급부터 A등급까지 역순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역시 F등급부터 시작을 하나.

         

       하긴 방송을 예쁘게 하려면 제작진들 입장에서 먼저 깔아주는 애들이 나오는 게 낫겠지.

         

       “먼저 첫 번째로 F등급 고다현 연습생 나와주세요.”

         

       “…예.”

         

       호명되자마자 F등급 연습생 한 명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무대에 나섰다.

         

       그녀의 굳은 얼굴에는 이번 무대에서 반드시 잘해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아….”

         

       처음 도입부부터 춤이 꼬이고 음정이 흔들리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아, 안 돼…!”

         

       “더 해 봐, 더!”

         

       결국 1절 중반부터 노래를 절고는 무대를 말아 먹어 버렸다.

         

       원래 일주일 안에 춤과 노래 완벽하게 숙지하고 퍼포먼스를 보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아마 대부분의 참가자들에게는 안무 전체를 외우는 것도 힘든 일이었으리라.

         

       “아…….”

         

       스테이지 밖 참가자들이 무대를 절은 참가자를 향해 안타깝다는 듯 탄식을 흘렸다.

         

       하지만….

         

       “…….”

         

       “…….”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는 참가자들과 달리 심사진은 망해 버린 연습생의 무대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대표로 마이크를 잡은 한시우가 정색을 한 채로….

         

       “예, 수고하셨습니다. 고다현 연습생의 등급은 F로 유지하겠습니다.”

         

       “…가, 감사합….”

         

       “네, 이제 그만 들어가 주세요.”

         

       담담하게 평가를 내릴 뿐이었다.

         

       그럴 때가 있다.

         

       차라리 뭐라고 소리 지르고 혼낼 때가 더 마음이 편한 그런 순간이.

         

       더 이상 볼 가치도 없다는 듯 아무 반응도 없는 것이 더 무서운 순간이.

         

       그런 의미에서 이번 최종 등급 평가는….

         

       “수고하셨습니다. F등급 유지하겠습니다. 다음.”

         

       …이전 등급 평가와는 또 다른 느낌의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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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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