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

       “…혼자 가려고?”

         

       창틀을 넘어가려던 순간 들려온 말소리. 뒤돌아보니 프란체가 손가락을 맞대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럼 혼자 가야죠.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는데 공녀님이랑 같이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프란체가 입술을 삐죽이며 시무룩해졌다.

         

       “오래 걸리니…?”

       “최대한 빠르게 올게요.”

       “그래…….”

         

       왠지 아쉬워 보이는 그녀를 뒤로 한 채, 나는 창틀에서 뛰어 철창을 넘었다. 기척을 숨긴 다음 재빠르게 이동했다.

         

       움직이면서 셀다스가 건넨 봉투를 뜯었다.

         

       「카자르 유플레인. 나이는 21세. 제국 남부 끝자락에 있는 세이렐 백작 영지의 지방 남작가 자손.」

         

       「현재는 세이렐 백작의 횡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에 몰두 중. 본가에서 나와 혼자 살고 있다. 자세한 위치는……」

         

       봉투에는 카자르 유플레인의 자세한 정보들이 들어있었다. 확실히 제국 최고의 정보상답게 깔끔하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것.

         

       “세이렐 백작의 횡포?”

         

       카자르 유플레인이 게임 중반부부터 나타난 이유는 세이렐 백작령에 붙잡혀 있었기 때문인가.

         

       이걸 내가 해결해주고 호감을 사면 쉽게 포섭할 수 있겠지. 계획은 대충 구상이 잡혔다.

         

       ‘그나저나 제국 남부 끝자락이라.’

         

       거리가 너무 멀다. 이러면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는데.

         

       “음…….”

         

       일단 마차를 빌리는 건 무리다. 돈이 없으니까. 그러면 온전히 내 다리로만 이 먼 거리를 가야 한다는 건데…….

         

       ‘오러를 사용해서 달려볼까?’

         

       진 바렌베르크는 전투력이 무려 S급이었다. 그 어떤 캐릭터들보다 강하며 세계관 최강의 수준. 오러를 사용해서 달린다면 마차보다 빠를 것이다.

         

       다만, 내가 지칠 수도 있다는 게 문제인데…….

         

       “흠.”

         

       뭐, 괜찮겠지. 세계관 최강의 소드 마스터니까 회복도 빠르지 않을까.

         

       우선 공작령을 빠져나가야 한다. 무턱대고 지면을 박살 내면서 달리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니까.

         

       하늘을 향해 높이 뛰어 건물 지붕으로 올라갔다. 지붕을 뛰어넘으며 직진으로 이동하니 훨씬 빠르게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많이 달렸을까. 해가 지고서야 공작령을 나올 수 있었다.

         

       “후.”

         

       오러를 활성화하면서 달린 덕에 다리가 아프거나 힘들진 않았다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너무나 아득히 먼 곳이라 한숨이 푹푹 나왔다.

         

       그래도 소드 마스터의 속도로 달리면 금방 가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품고 다리의 근육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근육이 팽창하며 오러로 인해 주변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콰앙! 지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기며 나의 몸이 화살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이 속도라면 금방 도착하겠네.’

         

       그렇게 나는 소드 마스터의 속도로 제국 남부 끝자락에 있는 세이렐 백작령으로 향했다.

         

         

       * * *

         

         

       “생각보다 늦었네.”

         

       쉴 거 다 쉬면서 이동했더니 데카르트 공작령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이틀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예상보다 느리게 도착했다. 금방 오겠다고 해놓고 이러면 프란체가 화낼 거 같은데.

         

       “…….”

         

       그래도 세이렐 백작령에는 도달했으니 된 거다. 프란체도 사정을 얘기하면 이해해주겠지. 나는 셀다스가 봉투에 같이 넣어준 지도를 펼쳤다.

         

       지도에는 카자르 유플레인이 살고 있는 집의 위치, 그가 평소에 자주 가는 곳, 활동 시간까지 전부 표시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소름이 돋는데.’

         

       괜히 암흑가의 최고 길드가 아니다. 이 정도 능력이 있으니 소미레의 역하렘 멤버였겠지. 재수는 많이 없지만 능력 하나는 출중한 놈이다.

         

       “뭐, 어찌 되었든.”

         

       카자르 유플레인을 찾으러 가볼까.

         

       나는 곧장 그가 살고 있는 저택으로 향했다. 지방 남작이라고 했으니 그래도 괜찮은 집에서 살고 있겠지.

         

       하지만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내가 도착한 이곳에는 오래되고 허름한 집 하나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으니.

         

       “정말 이런 곳에서 사는 게 맞아?”

       “무슨 일이세요?”

       “어우 씨, 깜짝이야.”

         

       고개를 돌려보니 한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예민한 감각으로도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보통 사람은 아닌 게 확실하다.

         

       “카자르 유플레인이라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 알고 있나?”

         

       카자르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싸늘해지는 여자의 얼굴. 뭐야, 왜 저래?

         

       “그 사람은 왜 찾으시는데요?”

       “꼭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어서.”

       “저한테 말씀해주시면 대신 전해드릴게요.”

       “미안하지만 당사자한테만 말할 수 있는 거라.”

         

       그 여자는 흐응, 거리면서 검지로 자신의 볼을 톡톡 건드렸다.

         

       “그럼 저와 대화 좀 해요.”

       “무슨 대화?”

       “그분께 소개해드리기 전에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고요.”

       “그럴 시간은 없는데.”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알려드릴 수 없어요.”

         

       뭐지 이 여자.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네가 알려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이미 나에게는 모든 정보가 있으니까.”

       “정보요?”

       “자세한 건 말해줄 수 없다.”

         

       내가 발걸음을 돌린 그때였다.

         

       “제 도움 없이는 절대 찾으실 수 없을걸요?”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단순히 정보로만은 찾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

         

       나는 눈을 얕게 뜨고 저 여자를 노려봤다. 저 헛소리를 믿어도 되는 건가? 그래도 카자르의 집 근처에 있던 사람이니 그와 관계된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

         

       “좋아, 어울려주지.”

         

       카자르가 자주 가는 곳이나 활동하는 시간까지 확인하며 그를 찾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거 같기에 승낙했다. 아는 사람에게 소개받는 게 빠를 거라 판단했다.

         

       “저는 음… 메데이아라고 해요!”

       “그래, 메데이아. 무슨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 거지?”

       “일단 집으로 들어오세요.”

       “카자르 유플레인과 같이 사는 사람이었나?”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시종인가? 나는 눈을 얕게 뜨고 메데이아를 노려봤다.

         

       “그렇게 의심하셔도 나오는 건 없어요.”

       “…….”

       “그냥 들어오세요~ 잡아먹지 않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그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섰다.

         

       “…….”

         

       집안은 개판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어질러져 있었다. 무수히 많은 책들이 바닥에 나뒹굴며 펼쳐져 있으며 마법에 관련된 자료들, 실험에 필요한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청소를 싫어하나 보군.”

       “어차피 나중에 다시 꺼내서 쓸 텐데 굳이 치울 필요가 있나 싶어서요.”

         

       나는 메데이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네가 누군지는 듣지 못했는데. 카자르 유플레인의 가족이나 시종이라도 되는 건가?”

       “시종은 아니고요. 같이 살고 있는 가족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같이 살고 있다고? 의심스럽다. 셀다스는 그가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이런 세세한 정보를 놓칠 리가 없는데. 메데이아는 내게 뭔갈 숨기고 있다.

         

       “그래서, 내게 묻고 싶은 건 뭐지? 내가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빨리 카자르 유플레인과 대화했으면 좋겠는데.”

         

       메데이아는 찻잔에 차를 따라주면서 말했다.

         

       “성격도 급하셔라. 제가 묻는 거에만 대답해주시면 바로 소개해드릴게요.”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오만상을 구기며 표출하자 메데이아는 싱긋 웃었다. 뭐가 저리 즐거운 건지.

         

       “그런데 여기가 정말 카자르 유플레인이 살고 있는 곳이 맞나? 지방 남작의 집이라곤 볼 수 없는데.”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눈살을 찌푸리자 메데이아는 대답했다.

         

       “세이렐 백작령이 횡포가 심해서요. 백작님 제외하면 여기 사람들은 다 못 살아요. 그게 귀족이 되었든, 평민이 되었든 간에.”

         

       호로록, 메데이아는 평온을 유지하며 차를 마시곤 말을 이었다.

         

       “일단 첫 번째 질문이에요. 카자르 유플레인을 찾아오신 이유가 뭔가요?”

       “그건 그와 직접 말하면서 알려주고 싶은데.”

       “제가 카자르 유플레인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뭇 진지해진 그녀의 얼굴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뭔가 이상한데.’

         

       내가 눈썹을 구기자 그녀는 말을 이었다.

         

       “너무 의심하지 마세요. 저는 누구보다 카자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니까.”

         

       쓰읍, 다소 의심스럽지만 다른 방법이 없지. 나는 제복에 새겨진 데카르트 공작가의 문양을 보여주며 말했다.

         

       “나는 데카르트 공작령에서 온 기사다.”

       “어머, 귀하신 분이셨네. 그런 분이 왜 여기까지?”

       “카자르 유플레인이 마법에 능통하다고 해서 찾아왔다.”

       “그가 마법에 능통하다는 건 어떻게 아셨는데요?”

       “공작령에는 뛰어난 정보상이 있거든. 카자르 유플레인에 대한 정보는 다 있다.”

         

       나는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음, 좀 기분 나쁜 사람이네요. 남의 뒷조사를 하다니.”

       “너와는 관계없는 이야기 아닌가?”

       “그것도 그렇네요.”

         

       메데이아가 키득거렸다. 뭐가 저리 즐거운 거야?

         

       “그래서, 카자르 유플레인을 공작령에 데려가기라도 하시려고요?”

       “그래. 거주할 곳과 생활비 같은 건 이쪽에서 전부 부담할 거다.”

       “그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뭔데요?”

       “이것까지 말해야 하나?”

         

       눈썹을 좁히며 그녀를 노려봤다. 메데이아는 그저 키득거릴 뿐이었다.

         

       “목적을 말해주세요. 카자르를 무턱대고 아무것도 모르는 공작령에 보낼 수는 없거든요.”

         

       쯧, 나는 혀를 차며 말했다.

         

       “마법을 가르쳐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게 누군데요?”

       “외부인에게 알려줄 정보는 아니다.”

         

       메데이아는 흥미롭다는 듯 흐응, 하면서 싱긋 웃었다.

         

       “근데 카자르는 여기서 떠나지 않을 거예요.”

       “어째서지? 공작령에 가면 훨씬 좋은 곳에서 살 수 있고 모든 걸 지원받을 텐데.”

       “아직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남아있거든요.”

       “세이렐 백작과 관련이 있나?”

       “눈치가 빠르시네요.”

         

       카자르의 목적은 단순히 이 백작령에서 나가는 게 아니라, 횡포를 부리는 세이렐 백작가를 상대로 뭔갈 하려는 건가? 게임에서 카자르의 과거가 나왔어야 알지.

         

       그는 게임에서 존재감이 그다지 크지 않은 캐릭터였다. 왜, 그런 것 있잖나. 하렘이라는 틀에서 비중이 없어 공기화 된 캐릭터들. 카자르 유플레인이 딱 그거였다.

         

       메데이아가 말을 이었다.

         

       “어떻게든 카자르를 데려가고 싶으시다면 조건이 하나 있어요.”

       “뭐지?”

       “세이렐 백작가의 횡포를 막는 걸 도와주세요.”

       “내가 뭐 하는 사람인 줄 알고?”

       “기운에서 느껴지거든요. 당신은 상당히, 아니. 누군가와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는 게.”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알아보는 건가? 역시 이 여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리 경계하지 마세요. 그냥 남들보다 눈이 좀 특출날 뿐이니까.”

       “그래. 그래서, 세이렐 백작가의 횡포를 막으려면 어떡해야 하는데?”

       “세이렐 백작을 암살하는 거예요.”

       “…뭐?”

         

       이건 또 뭔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백작을 암살하라니?

         

       “세이렐 백작가의 후계자는 자신의 아버지와는 다르게 유능한 사람이면서 상식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면서 자비로운 사람이에요. 좋은 영주가 될 수 있겠죠.”

         

       메데이아는 비워진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을 이었다.

         

       “세이렐 백작만 죽는다면 그 후계자가 백작위를 이어받겠죠? 그러면 세이렐 백작의 횡포가 멈출 거예요.”

         

       후계자만 바라보고 백작을 암살하려는 건가. 쉽지 않은 문제다. 백작이라 하면 한 영지의 주인. 갑자기 살해된다면 제국에서 분명 조사를 나올 터.

         

       “나는 카자르가 이해 가지 않는군. 혼자 알아서 잘 살 수 있을 텐데, 굳이 백작을 암살하겠다니.”

       “그는 정이 많은 사람이라, 혼자 잘 살겠다고 여기 사람들을 두고 갈 사람이 아니거든요.”

         

       이거 참 까다롭게 됐다. 횡포를 막는 방법이 백작을 암살하는 거라니.

         

       불가능한 건 아니다. 문제는 그 이후지.

         

       “제국에서 조사라도 나오면 어쩌려고 그러지? 그리고, 내가 이걸 세이렐 백작에게 고발하면 어쩌려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정보를 알려줘?”

         

       메데이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세이렐 백작은 제국에서 눈 밖에 난 사람이라 제대로 된 조사는 하지 않을 거예요. 그냥 형식상으로만 조사를 마치고 알아서 후계를 이어가라고 하겠죠.”

         

       그녀는 그리고, 하면서 말을 이었다.

         

       “데카르트 공작령에서 카자르를 데려가기 위해 오신 분이 헛걸음을 밟을 거 같진 않아서요.”

         

       생각보다 나를 잘 읽고 있었군. 어차피 호감을 사기 위해 카자르를 도와주려고 하긴 했으니 승낙할까.

         

       “좋아. 승낙하도록 하지. 이제 카자르를 만나게 해줘라.”

         

       메데이아는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만났잖아요?”

       “뭐?”

       “제가 카자르 유플레인이에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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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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