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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평양이 초토화되었다.

       

        = …….

       

        이렇게까지 하길 원했던 것은 아닌데 말이야.

        아무래도 계산이 조금 어긋난 것 같다.

       

        원래 모든 일들에는 약간의 오차가 발생하고는 한다.

        아무리 정교한 계산기로 계산하든, 아니면 고도로 진화한 머리로 계산하든 모든 일들에는 크고 작은 오차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번일 역시 나의 계산에서 발생한 작은 오차일 뿐.

       

        문제는 영향력의 범위가 너무 거대하다 보니, 그 작은 오차로도 약하디약한 인간들에게 이 정도의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마치 인간에게는 그저 물 몇 방울이 튈 뿐이지만, 그 물방울을 맞는 날파리에겐 익사의 위험이 다가오는 것과 같은 것이랄까?

       

        [적 무력화 완료입니다. 마스터.]

       

        = 그저 마음만 꺾을 셈이었거늘.

       

        그래도 죽은 이는 보이지 않는구나.

       

        본래는 로어(Roar)를 증폭시키는 것으로 방어막만을 깨부술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방어막이 내 예상보다 진동 대책이 안 되어 있던 것이 패착이었다.

        너무 충격 흡수 부분에만 신경을 쓴 것이 아닌지…….

       

        주섬주섬.

       

        벌떡!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폐허 속에서 하나둘씩 인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나도 다치지 않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팔 하나쯤 부러진 듯한 이들도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꺼지지 않을 두려움과, 그런데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어떤 각오가 보였다.

       

        그래. 저것이 바로 인간과 같은 지성체만이 가질 수 있는 각오겠지.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각오나, 무리의 안전을 위하는 우두머리의 각오는 일반적인 동물들도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우두머리가 아닌, 그저 일개 구성원으로서…….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난 개미와 같은 이들이 아닌, 두려움과 고통을 생각할 수 있는 지성체로서…….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서 저렇게 무리를 위해 죽음을 불사할 수 있는 각오.

        저것이 바로 지성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

       

        ‘그렇기에 아름다운 법이지.’

       

        철컥!

       

        [기간트 모드 해제]

       

        장난으로 취하고 있던 인간 형태를 해제한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후, 중날개를 사용해 정지 비행 상태로 허공에 뜬다.

        그 상태에서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 더 보여 줄 것이 남아 있느냐?

       

        “…….”

       

        “…….”

       

        “…….”

       

        내 말에 아무런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저들의 무기는 모두 박살이 났고, 저들을 지켜 주던 보호막조차 박살 난 상황이다.

        저들은 수백 수천이 모여 덤벼들었지만, 나는 오로지 혼자다.

        인간들은 이미 지쳤고, 나는 아직 쌩쌩하다.

       

        이제 저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일 터.

       

        = 무릎 꿇어라. 그렇다면 목숨은 살려주마.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라면, 저들의 우두머리 하나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저들의 우두머리에 더해서 저들 모두가 나에게 사죄해야만 한다.

        자, 어서 무릎 꿇어라. 나도 이젠 슬슬 돌아가서 마그마에 몸을 담그고 싶단 말이다.

       

        털썩!

       

        털썩!

       

        하나둘씩 내 앞에 무릎을 꿇기 시작하는 인간들.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며, 누군가는 분노를 감추며, 누군가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인간들은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 어찌하여 우두머리가 보이지 않는가.

       

        우두머리는 하나의 무리를 유지하고, 지키고, 이끌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무리의 적을 맞이했을 때 가장 앞에 서 있어야 하며, 무리의 가장 큰 결정을 내릴 때에도 참여해야 한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다.

        개미나 벌과 같은 군체 생물들은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여왕이 오히려 숨어 있어야 하고, 인간 역시 우두머리를 지키기 위해 깊숙이 숨겨두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까지 왔는데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어떤 사정이 있어서 나올 수 없거나.

        무리를 버려두고 도망치거나.

       

        ‘사정이 있다고 해도, 우두머리와 간부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

       

        우두머리가 죽었거나 쓰러졌다면, 적어도 그 아래에 있는 간부가 나오기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이들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나는 천룡안을 떴다.

       

        = ……그런 것인가?

       

        지하 깊숙한 곳에서, 어떤 통로를 따라 이동하는 인간들의 무리가 보였다.

       

        그래.

        아니길 바랐는데, 결국, 내 예상이 맞아버렸다.

        이 나라의 우두머리와 간부들은, 상황이 어렵게 되자 무리를 버리고 도주하기를 택한 것이다.

       

        = 하! 추하구나.

       

        내가 굳이 이들을 살살 대해준 것은, 어디까지나 쓸데없는 희생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민간인들이 가여웠고, 인간들이 나에게 시비를 건 것도 내 힘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렁설렁 해주면서 나의 힘을 충분히 보여 준다면, 이들도 나와 자신들의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고개를 숙일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뭐, 조금 과하기는 했지만…….

       

        하지만 이들의 우두머리가 한 짓은 선을 넘는 짓이다.

        이 북한이라는 나라의 인간들은 목숨을 걸고 나와 맞섰다.

        그런데 그들을 대표하고, 그들을 이끌어야 할 우두머리라는 인간이 도망치다니?

        그것은 여기 있는 인간들을 버리는 행동이고, 동시에 적인 나를 모욕하는 행위다.

       

        = 끝까지 나를 모욕하다니……!

       

        이쯤 되니 슬슬 화가 난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하찮다거나, 혹은 우스울 뿐이었다.

        어차피 나에겐 한주먹 거리도 되지 않는 것들이, 쫄랑쫄랑 다가와 나를 툭툭 건드리고 있으니 얼마나 우습지 않겠는가.

        내가 이들과 전쟁을 벌인 이유는 어디까지나 나와 드래곤들의 체면이 있기 때문이다. 화가 나서는 아니다.

       

        심지어 이것도 살살 해준 것이다.

        만약 내 아이들이 이런 모욕당했다? 그 순간, 이 평양이라는 도시는 물론이고 이 땅 자체가 그대로 소멸했을지도 모른다.

        내 아이들에게 인간이라는 것은 그냥 밟아 죽여도 되는 개미와 같은 것들이니까.

       

        그런데 그런 나를 진짜로 화나게 만들다니…….

        아무래도 내가 이 나라의 우두머리를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 나를 분노하게 한 대가를 치르어라.

       

        나는 기세를 드러냈다.

       

        “컥!”

       

        “허억!”

       

        “커거걱!”

       

        나에게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격의 차이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기세가 아닌, 내가 의도하고 드러내는 강렬한 포식자의 기세.

        ‘드래곤 피어’라고 부르는 그것에 노출된 인간들이 거품을 물며 쓰러져 경련하기 시작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지배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 범위는…… 이 평양이라는 도시 전체!

       

        드드드드드드드드드……!!

       

        내 지배력에 닿은 지하의 금속 물체들이 지상 위로 딸려 올라오기 시작한다.

        지하수 파이프, 철골, 벙커, 금속 통로까지…….

       

        “으아아아아악!!”

       

        “살려주시라요!!”

       

        “도, 동무!”

       

        지하에 있는 벙커나 통로에 숨어 있던 모든 인간이 비상으로 끌려 올라온다.

        전부 인간들을 이끄는 우두머리, 지도자, 혹은 간부의 역할에 있는 인간들.

        그리고 자기 의무를 망각한 채 숨거나 도망치려 한 이들이다.

       

        그리고 그들 한가운데.

        창백한 얼굴을 한 통통한 인간을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 너구나. 이 나라의 우두머리가.

       

        “히, 히익!”

       

        털썩 주저앉은 채 덜덜 떠는 북한이라는 나라의 우두머리.

        나는 그가 있는 금속 구조물을 천천히 내 앞으로 당겨 왔다.

        그리고 금속 구조물이 충분히 내 앞으로 다가온 순간…….

       

        “죽으라우!”

       

        번쩍!

       

        그들 사이에 끼어 있었던 한 인간이 검에 빛을 두른 채 내 눈을 찔러왔다.

        아마 용금으로 보호되는 내 몸보다는, 눈과 같이 용금으로 보호할 수 없는 부분을 노리려던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 아직 항복도 안 했으니, 아직 우리는 전쟁 중인 것이 맞지.

       

        철퍽!

       

        “엇?!”

       

        = 허나 조잡하다.

       

        나를 기습하려던 인간의 손에 들려 있던 단검이 순식간에 액체가 되어 아래로 흘러내린다.

        화가 나기 이전의 나였다면…… 그래. 한 번쯤은 맞아주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화가 난 상태다. 더 이상 이들을 봐줄 생각이 없다.

       

        = 나는 모든 금속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 그런 나에게, 금속으로 덤벼들다니…….

       

        애초에 인간들과 나의 싸움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인간들의 문명은 불과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들의 송곳니라고 할 수 있는 무기도 금속으로 만들고, 몸을 지킬 수 있는 갑옷도 금속으로 만들고, 자동차나 배와 같은 탈 것도, 포크라는 식기도…… 지금 보니까 집도 금속으로 만들더라.

        즉, 인간들은 금속이 없다면 무엇 하나 할 수 없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금속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나에게 덤빈다?

        솔직히 내 처지에서는 그냥 이들에게서 금속을 죄다 뺏어 버리면 쉽게 끝날 싸움이었다.

        그렇지 않았던 것은 그저 이들에게 마지막 기회라도 주고 싶어서였던 것이고.

       

        = 하지만 너희들은 그런 나에게서 마지막 자비심조차 뺏어가는구나.

       

        “히이익!”

       

        “사, 살려…….”

       

        내가 아무리 자비로워도, 이 이상은 싫다.

        나는 이미 충분한 기회를 주었고, 그것을 걷어찬 것은 이들의 선택이다.

       

        = 내 이름은 멸천룡 그랑 라그나. 하늘에 속한 존재의 종말이자, 모든 금속을 지배하는 존재. 황금의 부를 부여하는 자.

       

        나의 지배력이 평양 전체와 그 위에 존재하는 인간들을 휘감기 시작한다.

       

        = 나를 분노케 한 이들에게 저주와 축복을 내리노라.

       

        주르르륵!

       

        “엇?!”

       

        “후, 훈장이?!”

       

        간부라는 인간들의 옷에 달려 있던 훈장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아니, 훈장만이 아니다.

       

        철퍽!

       

        쿠구궁!

       

        “태, 탱크가 녹았으이?!”

       

        “건물이?!”

       

        칼, 총, 자동차 같은 것들은 물론이고, 건물의 뼈대를 이루던 철골을 비롯하여, 인간의 옷에 사용된 금속 핀이나 버클까지.

        인간 문명을 이루는 모든 것에서부터 ‘금속’이라는 것들이 녹아내리며 사라지기 시작한다.

       

        = 이제부터 북한이라는 나라에 속한 인간들은 그 어떤 금속조차 다룰 수 없게 되리라.

       

        북한이라는 나라에 속한 이들이 금속을 잡는다면, 그 금속은 녹아내릴 것이다.

        이제부터 북한에 속한 인간들은 그 어떤 금속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며, 동시에 그 어떤 금속으로도 피해를 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것은 내가 내리는 저주이자 축복.

       

        이들이 금속을 사용하기 이전의 석기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것은 이들에겐 축복이 되리라.

        하지만 그렇지 않겠다면…… 이것은 그 무엇보다 강렬한 저주가 될 것이다.

       

        = 이것이 너희의 선택이 불러온 결과이니라.

       

        모든 금속이 사라진 평양의 시내를 내려다보며 콧김을 내뿜은 나는 몸을 돌렸다.

        돌아가서 다음 방송이나 준비해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결과가 시원찮아서 화가 나신 드래곤님.

    다음화부터는 다시 방송입니다.

    다음화 보기


           


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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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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