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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마음같아선 당장이라도 방송 송출 시작 버튼을 누르고 사제 서넛 정도 썰어버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방송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준비할 거리가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기본 장비인 컴퓨터였다.

         

        나오나만 돌리면서도 중옵으로 게임을 구동해야 하는 컴퓨터. 이 컴퓨터로 방송 송출까지 하려면 하옵으로까지 낮춰야 할지도 모른다.

         

        일단 컴퓨터부터 새로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에, 관련 커뮤니티에서 나오나 그래픽 최상옵으로 방송 가능한 스펙을 검색하여 견적을 맞춰본 결과-

         

        정신이 어질어질해지는 숫자가 나를 반겨주었다.

         

        ……평행세계여서 그런가?

         

        단위부터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

         

        도적부흥운동이 이렇게 좌절될 순 없는데.

         

        이예나의 계좌에는 이런 컴퓨터 정도는 서너 대 정도 사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돈이 들어있었지만-

         

        차마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습관 탓일지도 모른다.

         

        이예나가 통장에 모아둔 돈을 사용할 때마다 왠지 남의 돈을 몰래 써버리는 듯한 죄악감이 느껴진 탓에, 나는 그동안 소비를 최소화하며 살아왔다.

         

        지난 6개월간의 내 소비내역 중,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해봐야 생리할 때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시킨 배달음식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돈을 안 쓰고 살 수는 없다.

         

        벌써 이 삶이 6개월이 되어가는 마당에, 이예나와 나를 관념적으로 분리한 채 사는 것도 한계가 있고.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이윽고 결단을 내렸다.

         

        ……조만간 돈을 벌어서 다시 계좌에 채워 넣어야겠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다.

         

        도적부흥운동에 잠시 돈을 빌려줬다고 생각해주길 바랄 뿐이다.

         

        .

        .

        .

        .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입술을 살짝 깨물며 인터넷 쇼핑을 시작한 나는, 어느 새 홀린 듯이 이것저것을 마구잡이로 장바구니에 넣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격을 비교하고 과연 이게 정말 필요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미 구매를 결정한 컴퓨터 가격에 비교하니 모두 푼돈이었던 탓에…….

         

        나름 다 구매할 이유는 있는 물품들이긴 했지만…….

         

        그저, 쇼핑의 맛이란 걸 느껴버린 탓일지도.

         

        핑계라면 핑계지만, 장바구니 버튼을 클릭할 때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묘한 쾌감이 몸 깊은 곳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쇼핑에 매진하고 있던 때.

         

        -띵동

         

        벨소리가 들려왔다.

         

        ……올 사람이 없는데.

         

        수도 검침도 밖에 잘 적어놨고.

         

        배달시킨 것도 없고.

         

        -띵동

         

        택배……는 문앞에 두고 갈 거고.

         

        경비실? 아니야, 핸드폰으로 전화할텐데.

         

        머릿속에서 하나하나 가능성이 지워질 때마다, 마음이 점점 더 초조해지며 심장박동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띵동

         

        이윽고, 내 머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던 결론과 마주했다.

         

        “자, 잠시만요!”

         

        다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가 몰골을 살폈다.

         

        머리 멀쩡하고.

        세수……도 조금 전에 했고.

        옷은…… 옷?!

         

        “그, 금방 나갈게요!”

         

        추레하게 늘어진 추리닝을 화급하게 벗어 빨래통에 집어 던지고, 비상용으로 옷장 한 켠에 넣어뒀던 옷을 꺼내 입었다.

         

        깔끔하고 핏이 좋은 청바지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풀거리는게 잔뜩 달린 검은색 블라우스다.

         

        ……내가 입을 각오를 굳힐 수 있었던 옷 중에서, 그나마 가장 멀쩡하고 예뻐보이는 옷을 조합한 세트였다.

         

        “지금 가요!”

         

        헉헉거리며 달려가 문을 벌컥 열자, 예상했던 얼굴이 눈 앞에 있었다.

         

        “아, 언, 언니였구나? 난 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톤으로 외워 둔 대사까지 읊으며, 파르르 떨리는 눈가에 힘을 주며 애써 웃어 보였다.

         

        어딘가 문제가 있었던 걸까.

         

        샐쭉하게 길어진 눈으로 나를 살피던 이예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었어? 우당탕 소리가 들리던데.”

         

        “어?! 아니야! 내가 잠깐, 그, 청소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이것저것 나와있었는데, 혹시 남이 보면 부끄러우니까.”

         

        “으음……. 알겠어. 그래서, 언니 들어가도 될까?”

         

        “응? 아, 응. 어서 들어와.”

         

        뒤로 물러서며 현관에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또각거리는 구두소리와 함께 나의 안온한 3평짜리 성채에 무혈입성한 이예리가 가벼운 어조로 물었다.

         

        “늦었는데, 밥은?”

         

        “아, 아까 아침 먹었어.”

         

        어색한 침묵. 그리고.

         

        “……아침?”

         

        아.

         

        나는 그제서야 지금 시간이 저녁 9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어나서 먹는 첫 끼니를 그냥 아침이라고 부르는 습관이, 언젠가 문제될 줄 알았는데.

         

        지금일 줄은 몰랐지.

         

        “아침 먹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은 거야?”

         

        “아.”

         

        결단의 시간이었다.

         

        과연,

         

        ‘언니 동생은 생활패턴이 망해서, 평소에 오후 1시쯤 자서 오후 7시에 일어나. 그 때 먹는 끼니(과자 1개)가 체감상 첫 끼니까 아침이라고 불러.’

         

        라고 하는 것과,

         

        ‘언니 동생은 밥을 제대로 안 챙겨 먹어서, 아침을 먹고나면 밤 9시까지 아무것도 안 먹은 채 집에서 굶주리곤 해.’

         

        라고 하는 것 중 무엇이, 그나마 걱정을 덜 끼칠까?

         

        다시 말해, 어떻게 얘기해야……더 자주 찾아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힌트를 현금으로 살 수 있다면 사고 싶다.

         

        원래 이런 고난이도 추리 스릴러 게임은 우측 상단 눌러서 광고 보고 결제하면 힌트 주는 거잖아…….

         

        현실도피에 가까운 망상에 빠지기 직전, 침묵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말을 이었다.

         

        “아, 그. 아침이 아닌데. 말이 헛 나왔네. 아까 저녁 먹었어.”

         

        나는 뛰어난 순발력으로 제3의 길을 택했다.

         

        설마 동생이 잠깐 말 실수했다는데, 그걸 굳이 추궁할 언니가 있겠어?

         

        “뭐 먹었는데? 어디서?”

         

        있었다.

         

        “어……파스타. 여기 앞에 식당에서.”

         

        집에서 먹었다고 하면, 흔적이 없다는 사실이 꼬투리잡힐 수도 있겠지. 방으로 들어오는 길에 싱크대를 흘긋 확인하는 모습은 확실히 기억해두고 있다.

         

        하지만 식당에서 먹고 온 자에게 흔적은 없다.

         

        잘했다, 나야.

         

        “무슨 식당?”

         

        그러나 순간적인 상황판단을 해낸 스스로를 제대로 칭찬할 틈도 없이,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 응! 여기 근처에, 그. 양식? 잘 하는 데가 있더라고. 나름 비싼, 그, 파스타. 응. 잘 챙겨 먹었어. 언니도 다음에 같이 가자.”

         

        예상대로, 같이 가자는 말에 순간적으로 입매가 풀리며 흐뭇하게 웃는 이예리.

         

        그러나 채 안도하기도 전에 눈빛이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예나야.”

         

        뭔가 꼬이고 있는 건 알겠는데.

         

        “으, 응?”

         

        대체 어디에서 지뢰를 밟은 건지를 모르겠다.

         

        “언니가 준 카드 안 써?”

         

        어? 뭘 안 써?

         

        “어?”

         

        “최근에 결제를 안 하던데. 밥 먹을 땐 카드 쓰라고 했잖아. 결제 내역은 언니가 안 보지만, 아예 청구액이 0원이던데.”

         

        아.

         

        그런……것도 있었구나.

         

        나는 애써 웃어보이며, 임기응변에 온 몸을 맡겼다.

         

        이젠 정말 모르겠다.

         

        “아! 그 카드? 아……그, 현금!만 받는다고 해서.”

         

        말을 하면서도 실시간으로 후회가 됐다.

         

        ……현금만 받는 파스타 레스토랑이 어딘가에는 있을까?

         

        지금부터라도 찾아봐야 하나.

         

        집 앞에 저렴한 김밥전문점에서 먹었다고 하면 또 뭔가 걱정과 잔소리가 이어질까봐, 대충 비싼 메뉴를 말한게 패착이었다.

         

        “뭐? 그래서 카드 쓰려 했는데, 거절했다고? 거기 어디야?”

         

        역시나, 드러난 허점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이예리.

         

        아무리 봐도 변호사가 아니라 검사가 천직인 것 같다.

         

        내가 범죄자였으면 다 자백했을 거야.

         

        아니, 지금도 생활패턴 망했고, 아침도 저녁도 안 먹었고, 저기 굴러다니고 있는 초코파이 봉지가 오늘 첫 끼니의 잔해라고 얘기할 것만 같아…….

         

        “그, 그게 있잖아? 자, 들어봐.”

         

        말을 더듬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진실을 꿰뚫어본 걸까. 아니면, 허겁지겁 거짓말을 주워삼키는 내가 어딘가 안쓰러웠던 걸까.

         

        한숨을 푹 내쉰 이예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을 뻗어 내 어깨를 토닥여주기 시작했다.

         

        “미안. 너무 추궁했다, 그치? 언니가 직업병이야. 미안해.”

         

        “아, 응. 아니, 내가 미안……하지.”

         

        왠지는 모르겠지만, 사과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조차 역효과였을까?

         

        씁쓸한 미소를 띈 이예리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읊조렸다.

         

        “아니야. 예나도 다 커서, 언니가 결제 내역 볼지도 모르는 카드는 불편할 텐데. 언니가 생각을 못했네. 미안해.”

         

        -우우웅

         

        저 멀리 놓인 내 핸드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계좌로 넣어 놨으니까, 앞으로는 편하게 써. 다른 거 몰라도 밥은 꼭 잘 챙겨 먹고.”

         

        따스하게 웃어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난 이예리는, 마지막으로 내 머리를 한 번 헝클어트리며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네, 이예리입니다. 네, 변호사님. 네. 아! 네……그 건은……제가……오늘 새벽까지…….

         

        방음 성능이 한없이 부족한 현관문 틈새로 점점 멀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바쁘구나.

         

        ……죄책감, 장난 아니네.

         

        정신력이 모두 소모되어버린 기분에, 침대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일어난지 3시간 밖에 안 됐는데도 너무 피곤했다. 오전 11시 정도 느낌.

         

        혹시 지금 잠들면, 생활 패턴을 다시 맞출 수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실없는 고민을 하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오나를 할 기운조차 없었다.

         

        볼 만한 방송이라도 없으려나.

         

        즐겨찾기 목록을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집어 들자-

         

        알림창 상단에는, 이예리가 조금 전 계좌로 송금한 내역이 남아있었다.

         

        어.

         

        “일, 십, 백, 천, 만……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익명의 독자님, 8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공지드린 바와 같이, 이번주부터 수요일이 연재일에서 휴재일로 변경됨에 따라 오늘은 연참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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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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