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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

       

       익숙한 전송감과 함께 의식이 점멸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천천히 눈을 뜨자 눈 앞에 낯익은 풍경이 펼쳐졌다. 목(木)의 마경, 에우란이었다.

       

       운영진들은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제국력 992년의 기억을 열람하는 중입니다.]

       – 제한 시간 : 10분

       

       심지어 제한 시간도 두 배로 늘었다. 설마 이런 안배까지 준비해두셨을 줄이야.

       

       올리비아의 입가에 반달 같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나?”

       

       올리비아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키엘이 나무 밑둥에 걸터앉아 장비를 수선하고 있다. 최근에 전투를 치르기라도 했는지 온 몸이 몬스터들의 체액으로 범벅이었다.

       

       잠시만, 전투?

       

       저번에는 야영 중이었는데?

       

       올리비아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사방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몬스터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개중에 몇몇은 깨진 얼음처럼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올리비아는 손을 뻗어 개구리처럼 생긴 시체 하나를 쿡쿡 찔러보더니 얼굴을 와락 구겼다.

       

       이거, 죽은지 얼마 안 됐다.

       

       이런 쓰레기 같은 악취를 저번에 놓쳤을리가 없다.

       

       ‘위치가 달라졌다.’

       

       애초에 이 개구리 새끼가 출몰하는 장소는 대수림 외곽이다. 저번 기억 속 야영지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외곽 지역은 아니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을 때 지금처럼 하늘이 보이면 외곽이고, 안 보이면 중심부다.

       

       “……젠장. 이건 또 뭐하자는 건데?”

       “아까부터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덥썩!

       

       올리비아는 다짜고짜 키엘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키엘!”

       “으, 으음?”

       

       키엘은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올리비아와 몇 달간 같이 지냈지만 오늘처럼 저돌적인 모습은 처음 보았다.

       

       “오늘 며칠이야?”

       “…….”

       “아니지. 이렇게 물어보면 안되지. 저번에도 내가 이렇게 이상했을 때 있었잖아. 그 때가 언제였어?”

       “……이상했을 때 말이냐?”

       

       키엘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이 제일 이상한데.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 것도 기이하기 짝이 없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하게 앉아있지 않았던가?

       

       “차분히, 천천히 말해 봐라. 들어줄 시간은 많으니까.”

       “아니, 시간 없어.”

       “괜찮다. 여기서는 들을 사람도…….”

       “없어!”

       “…….”

       

       키엘은 손을 뻗어 올리비아의 이마에 갖다 댔다. 풍토병에 걸려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이다.

       

       그러면 개구리 독에 당한 건가?

       

       올리비아는 손짓 발짓으로 무언가 설명하려는 듯 보였다.

       

       “내가, 그, 뭐냐, 막……!”

       

       아무리 봐도 제정신은 아닌데.

       

       하지만 동료에게 차마 이상하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던 키엘이었다.

       

       “딱히 네가 이상했던 적은 없다만?”

       “답답해 미치겠네! 저번에 내가 주변 좀 둘러본다고 나갔을 때 있잖아! 기억 안나?”

       

       [남은 시간 : 8분 54초]

       

       지금 이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알리가 없는 키엘은 그저 고개만 갸우뚱할 뿐이다.

       

       “주변을 둘러본다라……. 아, 기억이 나는 것 같다.”

       

       그제서야 키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날의 올리비아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갑자기 혼자 주변을 돌아보겠다고 한 것도 그렇고, 한숨을 푹푹 쉬어대던 것도 그렇고.

       

       뭐랄까, 살짝 다른 사람 같았다.

       

       물론 금세 ‘평소’의 올리비아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게 언제였냐면…….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가던 키엘이 입을 열었다.

       

       “사흘 전이다.”

       

       올리비아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사흘? 사흘이나 지났다고? 난 꼴랑 5분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해라.”

       

       진정? 지금 진정하게 생겼니?

       

       “젠장, 이건 뭐지? 도대체 무엇을 암시하는 거지? 빨리 생각해. 생각, 생각…….”

       

       올리비아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제한시간 5분짜리 기억을 엿보고 나니 사흘이 흘러있었다. 

       

       이번에 그 제한시간이 10분으로 늘었으니, 그 다음에 기억을 엿볼 때는 그 배인 엿새가 흘러가 있겠지.

       

       그 다음에는 12일, 그 다음은 24일, 그 다음은 48일…….

       

       지금은 992년. 그리고 키엘이 죽는 건 앞으로 6년 후다.

       

       올리비아의 머리가 미친 듯이 회전했다. 그러다 번개라도 맞은 듯 눈을 부릅뜨고 탄식을 뱉어냈다.

       

       ‘……앞으로 여덟 번 남았다.’

       

       알아낼 때까지 무한으로 기절시킨다는 계획은 기각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기억 속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난다는거다.

       

       물론 다 합쳐봤자 나흘도 안 되는 수준이지만, 아예 없는것보다야 낫겠지.

       

       하지만, 하지만…….

       

       ‘백 번이 뭐냐, 나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될 때까지 리트해서 어떻게든 답을 알아낼 생각이었는데!’

       

       지금 그 방법이 막혀버렸다.

       

       올리비아가 허망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내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왜 나만 꿀 못 빠는건데!

       

       운영진 이 씨잇팔 새끼들아!

       

       “후우, 후우우…….”

       

       올리비아가 바닥에 털푸덕 주저앉아 심호흡했다.

       

       화를 다스리던 그녀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지나갔다.

       

       ‘잠깐만.’

       

       장소가 바뀌었다고?

       

       만약 단서가 물건이었다면, 그리고 그 숨겨진 물건을 찾는 방식이라면, 지금처럼 장소가 바뀌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계속 첫번째 야영지에서 시작했어야 돼.’

       

       장소가 바뀌었으므로 물건은 아니다.

       

       무려 메인 퀘스트의 단서다. 그런 것을 그렇게 허술하게 만들어 뒀을리가 없다.

       

       바뀌지 않은 것. 거기에 초점을 두면 단서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장소? 다르다. 

       

       시간? 다르다. 

       

       상황도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저번과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이 단 하나 있었다.

       

       ‘……키엘.’

       

       키엘만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키엘 로트실드]

       – 레벨 : 88

       – 직업 : 검성

       – 호감도 : 52

       – 칭호 : 공작, 방랑 검사, 검의 구도자, 드래곤 슬레이어, 유적 탐험가…….

       

       굳이 저번과 달라진 점을 꼽자면 호감도. 저번보다 2가 높아져 있었다.

       

       이때의 올리비아는 소위 호감작을 하던 중이었다.

       

       목표는 호감도 90. 그건 유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수치였다.

       

       그렇게 한 이유는 별다를 게 없었다. 그저 몰살 엔딩을 조금 더 쉽게 보기 위함이었다.

       

       ‘어떤 유저가 알아낸 방법이었지. 호감도를 쌓은 상태에서 뒤통수를 치면, 대응이 평소보다 훨씬 느리다고.’

       

       호감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다. 생판 남이 무기를 들고 다가오면 무기를 꺼내 맞대응하지만, 친한 친구가 무기를 들고 오면 장난이라고부터 생각하니까.

       

       제국력 998년. 올리비아가 몰살 회차의 첫 살인을 저질렀던 날도 그러했다.

       

       황궁 한복판에서 마법을 전개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 마법이 황제를 향해 쏘아졌을 때도 말이다.

       

       황제가 절명할 때까지, 키엘과 멜리나, 그리고 아리아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부정하지 않는다. 

       

       진짜 그건 사람새끼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그건 진짜 다시 하라 그러면 못해.’

       

       오죽했으면 몰살엔딩을 보고 난 뒤 후유증이 쎄게 와서 몇 달 동안 게임을 접었을까.

       

       아무튼.

       

       ‘답은 키엘에게서 찾으라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맞는 추론같다. 결국 여기는 키엘의 기억 속이니까.

       

       ‘하지만 뭐를?’

       

       저번에 키엘에게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뭐 숨기고 있는게 있냐고.

       

       키엘은 이렇게 답했다.

       

       -숨기는 것? 잘 모르겠군. 

       

       키엘은 애초에 연기를 잘 하는 성격이 아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으면 얼굴에 곧장 드러난다.

       

       그렇다는 즉슨 단서는 비밀 같은게 아니라는 건데…….

       

       [남은 시간 : 5분 23초]

       

       결국 돌고 돌아 원점이다.

       

       올리비아가 손톱을 아그작 깨물었다. 아무렇게나 뜯긴 손톱 끝에서 핏방울이 맺혔다.

       

       “올리비아. 진정해라.”

       

       키엘이 올리비아의 양 어깨를 꽉 부여잡았다. 갑작스런 무게감에 올리비아가 고개를 위로 들어올렸다.

       

       키엘이 더없이 진중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신 차리고 일어나라. 너답지 않다.”

       “아파 임마.”

       “……미안하다.”

       

       키엘이 어깨를 움켜잡았던 손을 떼어냈다. 그는 머쓱했는지 몇 번 헛기침을 뱉어내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인지 내게 말해다오. 분명 저번에도 이랬었지. 그때는 내가 아무 말 없이 넘어갔지만, 이번에도 넘어가진 않을거다.”

       “…….”

       

       올리비아는 타이머를 확인했다.

       

       [남은 시간 : 3분 42초]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3분이면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다.

       

       지금 네 기억속으로 들어왔는데,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메인 퀘스트를 알아내기 위한 단서 중 하나가 너와 연관이 있다고?

       

       헛소리로 치부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신뢰의 문제인가?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거라면 더 캐묻지 않겠다.”

       “…….”

       

       키엘의 결연한 얼굴을 마주한 올리비아가 될대로 되라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과거의 기억일뿐이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한들, 얼음 속에 갇혀있는 현재의 키엘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키엘은 저번에 내가 했던 헛짓거리를 기억하고 있었어.’

       

       사흘 전에 있었던 그 일들을 말이다.

       

       ‘잠깐만.’

       

       막 서두를 떼려던 올리비아가 멈춰섰다.

       

       기억을 한다고?

       

       사흘 전에 일을?

       

       그 말대로라면 기존의 기억에 덮어쓰기가 됐다는 뜻 아닌가?

       

       지금 한 말을 6일 뒤에도, 12일 뒤에도, 24일, 48일 그리고 몇 년 뒤에도 기억한다고?

       

       올리비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말은즉슨.

       

       ‘……몰살 회차의 기억을 바꿀 수 있다?’

       

       [남은 시간 : 13초]

       

       ‘만약 여기서 있던 일을, 현재의 키엘도 기억한다면?’

       

       이건 실험해봐야 한다.

       

       “키엘.”

       “음?”

       “엿새 뒤에 만나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Ilham Senjaya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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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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