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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신뢰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라의 전담 가정부가 된 후, 양혜인은 그 ‘신뢰’라는 단어에 대해서 몇 번이나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남을 믿는다. 상대방이 나를 속이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나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때리거나, 겁박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직접적인 폭력의 범위 안에서는, 양혜인과 사라간에 최소한의 신뢰 관계는 구축되어 있었다. 사라는 절대로 양혜인을 무섭게 생각하지 않았다. 옆에 있다는 것도 잊은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양혜인이 무슨 행동을 할 때마다 움찔거리는 일은 없었다. 실제로 양혜인은 사라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댄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감시하지 않는다. 이상 행동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고자질하지 않는다. 도망가지 못하게 다른 인력을 시켜 멀리서 따라붙게 하지 않는다. 사생활을 존중해주고 가끔 살갑게 대한다.

       

       양혜인은 그중에 어느 무엇도 해주지 않았다.

       

       그러니, 만약 ‘신뢰’라는 것이 ‘나에게 확실하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라고 한다면, 아마 양혜인은 사라의 신뢰를 얻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 양혜인은 자신이 일정 이상의 신뢰를 얻었다고…… 그러니까, ‘착각’하게 될 때가 종종 있었다.

       

       사라는 거의 항상 감시당하는 처지였지만, 그렇다고 개인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통신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사라는 자신의 방문을 닫아두고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 방도는 없다. 방 안에서 큰 소리가 난다면 밖에서도 들을 수 있겠지만, 방 안에 혼자 있는 사라는 웬만해서는 큰 소리를 내지 않았으니까.

       

       저택 전체가 사라의 이름으로 되어있다지만, 실제로 사라가 마음 놓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사라의 방 안뿐이었다. 이곳은, 무려 회장조차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지시를 내려놓은 성역이었다. 평소에 사방에서 그렇게 압박받는 사라가 아직도 완전히 망가지지 않은 이유는, 아마 그러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정도는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경 쓰이는 누구도 없는, 완전히 자신만이 있는 적막한 공간. 적어도 사라는 그 안에서 나름대로 안식을 취하고 있다고, 양혜인은 지금까지 생각했다.

       

       한동안 방 안에 있다가 나온 사라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진다. 아주 기분이 좋으면, 종종 메이드인 자신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물론 대단히 살가운 이야기는 거의 들을 수 없다. 대부분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짤막한 말 몇 마디가 다였다. 그나마도 스케쥴을 확인하는 정도. 말끝을 언제나 흐렸기에, 존댓말처럼 들릴 때도, 반말처럼 들릴 때도 있었다.

       

       거의 언제나 무기력한 인형 같은 상태인 사라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머리 한구석에 아주 잠깐씩, 그래도 나는 신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 사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쩌면 몇 년 동안 보아온 사라에게 나름대로 애정이 생겼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비정상적인 환경에 있는 아이였지만, 그래도 예쁘고 착한 아이였다. 말을 안 들어서 속을 썩인 적은 한 번도 없다. 고용인의 입장인데도 결코 무리한 지시를 하지도 않았다. 남을 헐뜯거나 욕을 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누군가에게 투덜거리는 것조차 본 적이 없다. 뭐, 평소에 말 자체를 안 하는 아이였으니 그건 어쩔 수 없겠지만.

       

       원래 사람은 눈앞에 가련한 존재가 있다면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법이니까. 사라라는 존재는 분명 그런 가련한 존재였다.

       

       ……그리고 양혜인은 그 가련한 존재를 이렇게 소름 끼치고 끔찍한 방법으로 괴롭히는 사람 중 하나이기도 했다.

       

       *

       

       ……아직 3월 초라 그런지, 밤공기가 차가웠다.

       

       메이드복 위에 걸친 코트는 꽤 따뜻한 물건이었지만, 코트 바깥으로 나와 있는 손과 얼굴은 차가워질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렇게 대문 앞에 나와 공손한 메이드 자세를 취하고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것은 지독하게 힘든 일이었다.

       

       “저, 양혜인 님, 밤공기가 찹니다. 차라리 저택 안에서 기다리시다가, 저희가 호출하면 나오시는 것이 어떠시겠습니까?”

       

       대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 중 하나가, 양혜인에게 그렇게 말을 걸었다.

       

       경호원을 포함한, 이 저택의 모든 사용인은 사라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게 규칙이었다. 오로지 사라의 개인적인 보좌를 하는 메이드만이 사라에게 직접 말을 걸거나 뭔가를 권할 권리가 있었다. 사실 이건 계약서에는 쓰여있지 않은 내용이긴 했다. 원래는 ‘쓸데없이 말을 걸지 말 것’이라는 내용이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먼저 말을 건다’라는 행위를 모르는 것 같은 사라를 어떻게든 돕기 위해서는, 사용인이 지속해서 말을 걸 필요가 있었다. 필요한 것, 필요하지 않은 것, 지금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지 않은 것. 이런 것을 몇 번씩 물어봐야, 사라는 겨우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

       

       “양혜인 님?”

       

       경호원이 한 번 더 양혜인의 이름을 불렀다.

       

       “괜찮습니다.”

       

       양혜인이 그렇게 대답하자, 결국 경호원은 입을 닫고 다시 권유하진 않았다.

       

       사라와 거의 대화를 나누어 본 적 없는 다른 사용인들과 다르게, 사라가 그나마 의사표시를 하는 양혜인은 대체할 수 없는 인력이다. 그렇기에 별다른 상하관계가 정해지지 않은 사용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다른 사용인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게다가 양혜인은 주기적으로 회장에게 상황을 보고하는 일도 맡고 있었으니까.

       

       다시 한번, 쌀쌀한 바람이 양혜인의 볼을 훑고 지나갔다.

       

       어제는 저택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보고를 받고서야 밖으로 나왔었다. 사라가 사라지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사실, 이미 소재는 다 파악하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직원이 뒤를 졸졸 따라다녔으니까.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사라가 눈치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회장님께 보고했나요?’

       

       그건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한 말일까? 만약 그렇다면, 오늘도 담을 넘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차피 누군가 따라붙을 것을 알고 있다면, 그렇게 몰래 도망가는 것 같은 행동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을 텐데. 혹시 일종의 시위행위인 걸까?

       

       사라는 오늘도, 그 ‘친구들’과 함께 거리를 걷고 있다고 했다.

       

       소재 파악이 끝났으니, 사실 어제처럼 저택 안에 있다가 사라가 돌아왔다는 보고를 듣고 나가도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양혜인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사라가 어째서 오늘도 그곳을 넘어가야 했는지, 어쩌면 그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돌아오는 사라의 얼굴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

       

       “안녕, 내일 보자.”

       

       그렇게 말하는 사라의 표정은, 양혜인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아, 물론 다른 이들에게선 종종 봤다.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늘은 아쉽게 헤어지면서도 다음에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표정. 최소한의 희망이라도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그저 사라의 얼굴에서 그 표정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을 뿐.

       

       웃는 표정은 어제도 봤지만, 이렇게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것은 놀라웠다.

       

       사라가 친구를 사귀는 것을 전혀 상상해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상상 속의 사라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웃지는 않았지만.

       

       뭐랄까, 조금 더 집착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평생 소원했지만 가져보지 못한 것을 드디어 가진 자는, 그것이 손아귀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어떻게든 붙잡고 있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법이다. 

       

       하지만 예사라는 마치 그 새로 생긴 친구들을, 그저 보통 아이들처럼 대하고 있었다.

       

       ……분명히,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을 텐데도.

       

       “오래 기다렸나요?”

       

       저택 앞에 거의 다 와서, 사라가 그렇게 불쑥 물었다.

       

       “……예?”

       

       “얼마나 기다렸어요?”

       

       끝까지 명확하게 들리는, 의심할 여지 없는 의문문.

       

       “……오래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양혜인이 그렇게 대답하자, 사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양혜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앞으로 제가 늦게 올 때는 밖에서 기다릴 필요 없어요.”

       

       “……명심하겠습니다.”

       

       양혜인은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말했다.

       

       저택 문이 열렸다. 안에 가득 차 있던 온기가 바깥으로 화악 쏟아졌다.

       

       “겉옷을 받아드리겠습니다.”

       

       로비에서 양혜인은 그렇게 말하고, 자연스럽게 사라의 코트를 벗겨 들었다.

       

       “회장님께는 보고했나요?”

       

       코트를 건넨 사라가, 오늘도 어김없이 몸을 돌려 양혜인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

       

       양혜인은 조금 주저했다. 이걸 과연 말을 해야 할까?

       

       사라는 그런 양혜인의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어깨를 으쓱해 보인 뒤 몸을 돌렸다.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몸짓. 어차피 보고했겠지, 라는 별다른 기대도 없는 가벼움 몸짓이었다.

       

       “보고드리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에, 양혜인은 순간적으로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몸을 돌리던 사라의 발길이 딱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마치 되감기를 하듯 다시 몸이 양혜인 쪽으로 돌아온다.

       

       사라의 얼굴에 떠 있는 표정은, 명백하게 ‘놀라움’이었다. 사실, 그 표정을 다른 사용인이 본다면 사라 본인보다도 더 큰 놀라움을 표현할지도 모른다. 사라는 그만큼 표정이 없는 아이였으니까.

       

       “보고하지 않았다고요?”

       

       다시 확인하듯 물어보는 사라에게, 양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고드리지 않았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사라의 눈이 한 층 더 커졌다.

       

       “어째서……?”

       

       사라가 진심으로 의문이라는 듯 물었다.

       

       글쎄, 어째서였을까.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그야말로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갑자기 사라가 바뀌었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던 교우관계라는 것이 생겼다는 것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보고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째서였을까.

       

       아마도.

       

       아마도, 처음으로 본, 꾸며내지 않은 사라의 그 웃는 얼굴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주 잠시간이라도, 그 표정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몇 년 동안 사라 옆을 지키면서 처음으로 보는 사라의 동그랗게 변한 눈을 보면서, 양혜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헤엄치는새님, 이렇게 연속으로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작을 썼을 때도 제 소설을 끝까지 읽어주시고 몇 번이나 후원을 해 주셨는데, 이렇게 새로 쓰는 소설에도 이렇게 지속적으로 응원과 후원을 남겨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소설을 새로 쓰면서 독자 여러분의 반응이 좋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었는데, 이렇게 응원을 받으니 그 걱정이 확 날아갑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올 초부터 갑자기 수술을 받고, 직장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주변 분위기도 뒤숭숭해지고 할 일도 많아져서 조금 우울했었는데, 언제나 제 소설을 읽어주시고 좋아해주시는 독자 여러분이 있어서 오늘도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소설 쓰는 사람으로써, 글 쓰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갑자기 막히거나 잘 안 써지는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을 넘어 한 편 한 편, 나아가서 소설 전체를 조금씩 완성해나가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죠. 하지만 그런 감정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동기부여가 필요합니다. 제게 있어서 그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독자 여러분의 응원이구요.

    사실, 독자 여러분의 응원은 그저 글 쓰는 데만 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요즘 살아가면서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이 독자님들의 응원이에요. 매일 업로드 예약 시간이 될 때마다 독자 여러분의 댓글을 읽으며 큰 힘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같이 여러 사건이 마구 터질 때면 그게 훨씬 크게 체감이 됩니다. 부디 독자 여러분도, 제가 쓴 글을 읽고 제가 독자님들의 응원을 받고 얻는 즐거움을 똑같이 받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의 소설을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께서 저에게 투자해주신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도록 언제나 정진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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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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