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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뿌우우 ㅡㅡㅡ.

     연회장 홀의 벽마다 설치된 마석이 붉은빛을 뿌리며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적을 발견한 병사가 나팔을 부는 것처럼, 붉은 마석들은 시끄러운 나팔 소리를 크게 울리며 저택 전체의 경종을 울렸다.

     “이, 이게 무슨 일이오!?”

     “이건…설마 적습?! 저, 전쟁인가?”

     “적습경보! 적습경보!! 으아악!”

     귀족들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자신들이 있는 이 자리에 누가 있는지조차 잊은 채, 귀족이라면 긴급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건지도 잊은 채.

     ‘정정.’

     그저 목숨이 위험하다는 상황 하나에 겁을 먹고 제 목숨 건사하려고 입구 쪽 정문을 바라보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쯧.”

     아버지는 그런 귀족들을 보며 혀를 찼다.

     평소에도 저택 전체를 시끄럽게 울리는 이 경종을 싫어하는 편인데, 거기에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더해지니 더 듣기 싫겠지.

     “어, 어머니. 이건…!”

     “제, 제국이…!”

     누아르와 레타르가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움켜쥐며 와락 안긴다.

     “안심하렴. 괜찮아. 그래도, 1년 만인가….”

     지브롤터의 아이들인 만큼, 오크가 나타났을 때도 울리지 않던 이 ‘붉은 경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백작님.”

     “음.”

     딱.

     아버지가 손가락을 튕기자, 벽에 걸려있던 붉은 마석들이 일제히 잠잠해졌다.

     “배, 백작! 지금 건 무엇이오?!”

     “파, 파티의 끝이라더니, 이런 식으로 끝내는 게 어디 있소?!”

     일부.

     몰지각한 이들은 이게 실제 상황인지도 모른다.

     그저 파티의 흥을 돋우기 위한, 혹은 백작이 준비한 깜짝쇼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제국군이 협곡을 향해 오고 있소.”

     “!!”

     아버지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귀족들이 모두 숨을 삼켰다.

     “본 백작은 지금부터 제국군의 요격에 나설 것이며, 축하연은 여기에서 끝내도록 하지.”

     갑작스럽게 연회가 끝났지만, 그 누구도 이 연회의 끝을 두고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지금은 실제 상황이니까.

     그런데.

     “하, 하하! 드디어 볼 수 있는 겁니까?! 변경백의 활약을?!”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고 즉각 움직이거나 할 인간들이었으면, 왕국은 제국에게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았다.

     “백작! 보고 싶습니다!”

     “…뭘?”

     “백작님의 활약을! 제국군과의 전투를!”

     미친놈인가.

     아버지가 눈빛으로 욕설을 퍼부었지만, 그걸 눈치챌 인간이었으면 저런 소리도 지껄이지 않았겠지.

     “그, 그러고 보니 백작 저택에는 협곡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영사석이 있다고 들었소!”

     “그럼 우리는 여기에서 그걸 지켜볼 수 있는 건가? 호오…!”

     “소드 마스터와 제국군의 전투…! 가히, 장관이로다…!”

     저들은 아버지가 아직 마음 깊은 곳에서는 노스트럼의 사람인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만일 지금부터 막 나가기로 했으면, 저 뚫린 입에 검부터 박아넣었을 거니까.

     

     “돌아가시오.”

     아버지는 소매 단추를 풀며 경고했다.

     “즉시 마차를 타고 지브롤터를 떠나시오. 전쟁은 구경거리가 아니고, 적들의 규모도 지금 파악하지 못한 상황. 함께 싸우고자 하는 자가 아니라면, 얌전히 이곳을 떠나시오.”

     아버지치고는 엄청 길게 말했다.

     “두 번 말하지 않겠소.”

     아버지가 으름장을 놓자, 귀족들이 눈치를 보며 하나둘 잔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여전히 발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가만히 버텨서 어떻게 설득이라도 하면, 구경이라도 할 수 있을 줄 아는 걸까.

     “자, 자! 모두, 축하연이 이번만 있는 게 아니잖나!”

     짝.

     손뼉과 함께, 헥스 자작이 앞으로 나섰다.

     “변경백은 지금부터 전투에 집중해야 하니, 그에 훼방을 놓는 이들은 전부 반역자가 되는 걸세. 이는 왕성에서도, 그리고 모르가니아에서도 바라는 일이 아니지.”

     “!!”

     헥스 자작의 말에 귀족들이 하나둘 슬금슬금 몸을 돌린다.

     “벼, 변경백. 내가 이들을 이끌고 이곳을 떠나겠네. 안심하고 전투에 임하도록. 응?”

     “하….”

     지브롤터의 가운데에서 모르가니아로 압박을 한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잘 부탁하오. 외무대신.”

     뒤통수를 간질이는 벌레들을 데리고 사라져준다는데, 그 정도는 살짝 눈감아 줄 수 있다.

     오히려 이 한순간의 대담으로 모르가니아와의 관계에 있어 은근한 떡밥을 깔 수도 있고.

     “아쉽군…. 백작의 검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백작이 나서는데 무엇이 걱정이라고. 하아.”

     떠나가면서도 구시렁거리는 이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들의 면면을 하나둘 눈으로 기억하며 아버지에게 눈을 돌렸다.

     “아버지.”

     “그래.”

     헥스 자작에 의해 귀족들이 연회장을 빠져나간 뒤.

     “저택에 남을 기사단원들에 대한 권한을 위임해주셨으면 합니다.”

     내 말에 마지막으로 저택 정문을 나서던 헥스 자작이 움찔거린 게 살짝 보였다.

     싱긋.

     나는 그에게 미소로 밖을 가리켰고, 헥스 자작은 냅다 몸을 돌려 귀족들의 등을 떠밀었다.

     “자, 자! 빨리 가세! 괜히 여기 있다가는 백작에게 밉보일 수 있어!”

     “하지만 여기가 뭐 위험한 것도 아니고-”

     “어서! 어허. 외무대신이 그대에게 긴급명령이라도 해야겠는가?!”

     “하, 정말. 뭘 이렇게 진지하게 난리를…. 알겠소, 알았어. 내가 더러워서, 원.”

     그 앞에 가는 이들은 그제야 부리나케 자기네들 마차로 떠나갔다.

     가는 중에도 사람 신경을 긁는 소리를 남겼지만, 그들의 얼굴과 이름 또한 내 가슴 속 명단에 조용히 남았다.

     “기사들은 왜.”

     “저들은 위험하지 않겠지만, 저희가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

     “아버지가 저들을 내쫓은 것도 다 그런 이유지 않습니까.”

     옆에 어머니와 동생들이 있지만-

     “저택에 외인(外人)이 많이 들어왔으니, 그사이에 어떤 벌레가 들어왔을지 모르는 일.”

     그렇기에 더 확실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전시 상황인 이상, 갑자기 누가 저희를 암살할지도 모르는 일이죠.”

     “아, 암살…?!”

     누아르가 비명을 지르며 놀란다.

     “그레이.”

     “예, 아버지.”

     “내가 저택을 비운 사이, 현 상황에서의 백작 대행은…네 어머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부인. 그대가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데리고 세이프 룸으로 가주시오.”

     아쉽다.

     역시 10살의 나이로는, 권한을 빌려오는 것도 무리인 걸까.

     “대신 저택 내 전력의 운용에 있어, 그레이의 말을 귀담아들어 주시오. 그레이의 판단이 내 판단이라고 생각하고.”

     “예, 백작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레이. 지브롤터는….”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행동으로.”

     권력이란 말만 번지르르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비로소 생기는 법.

     “다녀오십시오. 아버지.”

     * * *

     

     귀족들이 떠났다.

     

     어머니는 즉시 시종들에게 연회장의 뒷정리를 지시한 뒤, 나와 동생들을 먼저 저택 내 세이프 룸-아버지의 서재로 보냈다.

     “도련님들, 그리고 아가씨. 꼭 여기에 계셔야 합니다.”

     “걱정하지 말게. 로버트 경.”

     로버트 경을 비롯한 일부 기사와 하녀들이 서재로 들어왔다.

     우리를 지키기 위함도 있지만, 이곳이 전장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상황실이 될 예정이기 때문.

     “그런데 의외로군, 로버트 경. 전공을 세우기 좋은 상황 아닌가?”

     “예?”

     “제국군이 온다고 한들 무력시위만 할 텐데, 지금 아버지랑 같이 가면 그게 전공이 될 텐데.”

     아버지는 가문의 기사 일부와 병사들을 이끌고 성벽으로 떠났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같이 가는 건 어때?”

     혼자서 전력으로 달리면 금방 도착하겠지만, 부대를 꾸려 달리는 만큼 아직 협곡에 도착하지는 않았다.

     “도련님과 가족분들을 지켜야죠!”

     “경의 실적은?”

     “저택을 지키는 것 또한 기사로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까 승진을 못 하고 연봉이 안 늘어나지.”

     “으윽….”

     로버트는 참으로 사람이 착하다.

     착한 충신이기에, 제 잇속을 챙기질 못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줄을 잘 잡았단 말이지.’

     활약하기에 따라서, 로버트는 그 누구보다 더 큰 전공을 세울 수 있겠지.

     “경.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거든, 0순위는 어머니, 그다음은 레타르, 다음은 누아르를 지키게.”

     “…예?”

     “명령이야.”

     권한은 정식으로는 없지만, 로버트 경은 복잡한 얼굴로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 말씀이라면…알겠습니다.”

     어머니를, 동생들을 먼저 지켜라.

     순박하지만 내 말뜻을 모를 정도로 어수룩한 이는 아니다.

     “그럼 어머니께서 돌아올 때까지 잠깐 기다리기로 할까.”

     나는 소파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맞은 편에 있는 두 동생이 잔뜩 겁을 먹었지만, 그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기에는 눈앞의 상황이 영 좋지 못하다.

     집사장 말콤이 설치해두고 떠난 영사석의 빛은 하얀 벽을 비추고, 곧 협곡 너머의 전장이 투영된다.

     

     이전에 내가 오크 3천을 맞이한 장면이 이곳에서 펼쳐졌겠지.

     지금은 제 1관문 위에 아무도 없고, 성벽에 설치된 방어마법이 반짝이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보고 싶긴 하겠지.’

     홀에도 영사석을 비추면 전황이 보이는 시설이 있다.

     활약을 좋아하는 조상님 한 분이 설비를 만들어둔 건데, 당시에는 귀족들을 초대하여 홀에 전투를 구경시켜주고는 했다고 하더라.

     귀족들도 그걸 기대했겠지만, 아버지는 그런 성향은 아니다.

     ‘머스킷도 개발되지 않았던 냉병기 시대랑은 다르다고.’

     유흥거리로서 즐기기에는 위험한 시대가 도래했다.

     왜 홀에서의 실시간 중계가 멈췄는가?

     왜 저택 내부에 별도의 세이프 룸이 마련되었는가?

     ‘이곳도 안전하지 않으니까.’

     과거.

     전장에서 싸우던 소드 마스터는 적을 쓰러뜨렸지만, 그의 활약을 보던 가족 중 하나가 샴페인을 마시다 독살당했다.

     ‘성동격서는 기본적인 전술이라고 그랬지.’

     앞에서 시선을 끌고 뒤를 찌른다.

     제국의 전술은 압도적인 승리를 끌어낼 수 있는 전면전이 나오기 전까지, 상대를 갉아먹고 망가뜨리는 방식이 근본이다.

     그렇게 제국이 되었으니까.

     앞에서는 전면전을 할 것처럼 병사를 동원하고, 뒤로는 첩자나 암살자, 테러 등을 일삼았다.

     주변의 약소국들을 점령하고, 기어이 기존의 제국을 합병했던 방식이 이러했고 실제로 큰 성과를 거두어 제국이 되었다.

     ‘이미 왕국도 몇 번 당했어.’

     지금까지 제국은 왕국을 상대로 주기적으로 무력시위를 벌여왔다.

     첩자를 보내고.

     암살자를 동원하여 장군을 죽이고.

     흑마법을 이용해 저주를 뿌리기도 하고.

     대외적으로는 제국의 짓이 ‘아무튼 아닌’ 것으로 알려졌지만, 제국이 전쟁에서 이긴 뒤에는 그 전말이 여러모로 밝혀졌다.

     

     -까고 보니 제국이 배후였다.

     라는 말이 식민지가 된 미래의 왕국 내에서 공공연하게 돌았다.

     그리고 그 말을 들으면 제국을 향한 반감이 생기기 마련인데-

     -잘 죽였다! 썩을 놈들.

     제국은 영악하게도, 배후로써 몰래 제거한 이들을 철저히 선별했다.

     영지민의 고혈을 쥐어짜던 귀족들만 죽여 영지민들의 지지를 끌어냈고. 

     왕국군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부패한 간부를 처형하여 병사들의 전향을 끌어냈다.

     빈자리에는 제국의 아카데미에서 배우고 자란 행정관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제국의 지배는 공고해졌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 제국은 전면전을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제국군이 왔네.”

     역설적으로 정작 지금, 협곡에 엄청난 수의 병사들을 데리고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크 3천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무슨 말이냐 하면, 주기적으로 군사를 국경으로 보내서 도발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국경을 넘어온 일은 거의 없다는 뜻.

     ‘약 올리는 건 아니지만, 방심하는 즉시 그대로 병력을 밀어 넣겠지.’

     대신 왕국의 신경을 긁는 방식으로 그들은 국지도발을 일으키려고 했다.

     ‘남부 해안을 빙 둘러오거나.’

     바다를 항해하는 무역선 근처에 제국의 군함을 바짝 붙인다거나.

     ‘협곡 북부, 마물의 영토를 정복하려고 한다거나.’

     마수가 들끓는 오염지대를 정복하여 길을 뚫으려고 한다거나.

     ‘협곡 남부와 해안 사이, 엘프의 영토에 길을 만들려고 한다거나.’

     엘프들이 자리 잡은 숲을 개간하여 협곡을 통하지 않는 우회로를 만들려고 한다거나.

     그 모든 방법이 결국 먹히지 않아 변경백을 회유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마물의 영토를 육로로 활용할 필요는 없어졌고.

     왕국의 지배로 엘프는 자연스레 제국에 항복하여 자치령이 되었다.

     그리고 해양을 누비던 군함들은 전부-

    [야아아아아ㅡㅡㅡㅡㅡㅡ!!]

     “어이쿠.”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큰 고함이 영사석을 타고 이곳까지 흘러들어온다.

     “노인이 목청 한번 좋군.”

     단단한 중갑을 두른 하얀 수염의 장군이 갑주를 입힌 말을 타고 관문의 앞에 다가와 소리쳤다.

     [크림슨, 이 거지발싸개 같은 놈아ㅡㅡㅡ!]

     단순한 도발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목소리에 울분이 섞여 있다.

     ‘제국은 참 무서운 곳이야.’

     대략 보이는 병사 5천.

     병사들을 관문 앞까지 끌고 온 장수는 팔신장 중 한 명, 소드 마스터 클레이돌 후작.

     [양심이 있으면 당장 튀어나와라ㅡㅡ!!]

     하지만 그런 것보다 가장 무서운 건, 저들이 이곳 협곡으로 병사들을 끌고 나온 ‘명분’이다.

     “혀, 형…? 저, 저기.”

     “궁금한 거 있어?”

     “으, 응….”

     잔뜩 겁에 질려있던 누아르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저들은 왜 온 거야? 이, 일 년 동안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누아르. 너도 잘 알아둬. 제국은 지고 들어가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전쟁하지 않아.”

     “뭐…?”

     “제국은 엄청 약은 놈들이라는 이유지.”

     시비를 걸러 온 이유는, 일견 왕국 사람들조차 합당하다는 생각이 들 테니까.

     “누아르. 이번 파티를 연 이유가 뭐지?”

     “아버지께서 오크를 토벌하신 걸 축하하는 의미에서….”

     “그러면 질문.”

     나는 병사들이 서 있는 붉은 땅을 가리켰다.

     “그 많은 오크 시체는 다 어디로 굴러갔을까?”

     협곡의 바람은.

     [네가 처죽인 마족 쓰레기들, 네가 직접 치우라고ㅡㅡㅡㅡ!!]

     왕국에서 제국 방향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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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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