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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송파구 싱크홀 이재민 캠프는 난리가 났다.

    그야 당연히 난리가 나겠지.

    피가 강물처럼 흐르고, 그 위에는 사람 가죽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장면을 봐버렸는데 난리가 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피 웅덩이 중앙에 서 있는 회색 사신과 핏물 속에 잠긴 옷가지와 소지품들이 나름 독특한 풍경을 자아냈다.

    공포 영화 포스터로 쓰면 딱 좋을 것 같은 풍경인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기자들은 사진을 한 장이라도 더 찍겠다고 잔뜩 몰려와서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군인들이 열심히 밀어내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사실 여기서 더 막아봐야 기사가 나가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 회색 사신과 관련된 괴담이 하나 더 추가되겠지.

    오늘 아침이면 ‘하룻밤 새 사라진 사람들… 범인은 회색 사신?!’ 이런 기사가 신나게 올라올 것이다.

    지금 잔뜩 찍히고 있는 분위기 있는 사진과 함께 그 소식은 전국을 강타하게 될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회색 사신에게 쏠리는 악명을 그대로 두는 게 우리 입장에선 좋다는 점과 내가 이곳을 지휘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을 방지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정문을 그대로 닫아둔 채로 모르쇠로 일관했으면 넘길 수 있었을지도 몰랐지만, 이미 핏물에 놀란 군인들이 문을 열어버려서 기자들이 사진을 찍는데 성공했다는 게 문제였다. 

    작전 실행 당일인데도, 초소를 무단으로 이탈해서 이 사달을 낸 병사는 무단으로 게이트까지 열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스트레스에 관자놀이가 지끈거린다.

    이 소동을 정리하고 작업을 시작하는 게 정상이었지만, 우리에게 시간이 없었다.

    송파구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나비들과 미사일 발사의 카운트다운을 생각하면 잠시도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남은 시간은 약 24시간.

    그전에 목표로 한 오브젝트를 확보하고 파괴 작업을 시작해야했다.

    기자들을 막는 건 군인들에게 맡기고, 수색을 위해 부른 인원들만 적막한 캠프 내부로 진입했다.

    ***

    캠프 내부로 들어가자 우리들을 반겨주는 것은 거대한 피 웅덩이였다.

    척 보기에도 캠프 인원의 절반 이상은 이 곳에서 죽은 것으로 보였다.

    피의 양으로 보나, 흩어진 소지품과 옷가지 양으로 보나 그러했다.

    이 참상을 일으킨 회색 사신은 핏물 위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내 외눈 안경에는 나비를 밟아서 쫓아내는 행위로 보였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핏물 위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미치광이 오브젝트로 보이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눈이 안 보이는 영감을 제외하고는 다들 꺼림칙하게 여기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나는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박수를 쳐서 시선을 모은 뒤 명령했다.

    “자자, 이제 사전에 알려드린 대로 흩어져서 오브젝트를 찾으시면 됩니다. 발견하시면 신호탄을 쏴주세요. 저희는 캠프 중앙에서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역시 비싼 돈을 들인 프로들이니만큼, 일거리가 주어지자 일사분란하게 흩어져서 각자가 맡은 구역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와, 여기 벽이 사신 모양으로 뚫려있어요!”

    캠프 중앙으로 이동하던 와중, 후배는 이동 도중에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고 소리쳤다.

    후배의 말을 따라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니, 처참하게 부서진 흔적 중에 흥미로운 흔적이 있었다. 

    여러 가지 모양의 구멍이 뚫린 벽이었다.

    사신 모양 구멍, 사신 손바닥 모양 구멍, 사신 발바닥 모양 구멍. 

    다양한 모양의 구멍들이 있었다.

    ‘도대체 사신은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지?’

    의문스러운 흔적이었다.

    ***

    탐정이 캠프 내에 사람을 잔뜩 풀었다.

    나비들을 제거하려면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할 필요가 있었다.

    [검은 거울을 부순다.]

    아마 저 ‘검은 거울’이라는 오브젝트가 나비들을 생산하는 주체일 것이다.

    이제까지 새끼 치는 오브젝트들은 대부분 그랬으니 말이다.

    나름대로 똑똑해 보이는 탐정이 여기에 ‘검은 거울’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나름의 근거가 있는 거 아닐까? 

    물론 탐정은 자신이 찾는 것이 거울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지칭할 때는 언제나 ‘오브젝트’라고 불렀으니까 말이다.

    하긴 나처럼 파괴 조건을 보는 게 아니라면 파괴해야 하는 오브젝트가 ‘검은 거울’이라는 건 알기 힘들겠지.

    나는 언젠가 생길 나설 기회를 노리며, 탐정이 하는 행동을 흥미진진한 눈으로 관찰했다.

    ***

    결국 수색은 실패했다.

    적어도 캠프 내에는 평범하게 수색해서 발견할 수 있는 오브젝트가 없다는 결과를 얻은 것이다.

    내가 동원했던 수색반은 그 역할을 다했다. 

    영감의 작업이 시작하기 전에 그들을 일찌감치 돌려보냈다. 

    영감의 작업은 많은 사람이 봐도 좋을 게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오른손에 들린 왓슨을 힐끔 쳐다본 뒤에, 기다리고 있던 영감에게 부탁했다.

    “영감, 그럼 부탁할게.”

    “그래”

    짤막하게 대답한 할아범은 붉게 물든 책을 펼쳐들고 그 안에 가득 들어있는 대못을 꺼내서 주변 땅에다 박아넣기 시작했다.

    섬뜩한 점은 그 못을 박아넣으면 마치 땅에서 피가 나는 것처럼 피가 주르륵 흘러나온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주변을 쭉 둘러싸듯이 대못을 박아넣은 영감은 책을 덮고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아아아아아!”

    영감의 고함이 캠프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영감의 눈에서 피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예전에 봤을 때는 이런 거창한 의식을 하지도, 저렇게 고통스러워 보이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이지?

    “선배… 선배 뭔가 이상해요. 저거 저렇게 되는 거 맞는 거예요?”

    후배의 지적에 노인의 발치를 보자, 예지의 서가 숯처럼 타들어가기 시작한 게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인 거야?

    ***

    나는 죽을 날이 코앞이었다.

    매일 매일, 숨을 쉴 때마다 나는 내가 괴물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끊임없이 파괴 충동이 일어나고, 예지의 서는 나를 계속 충동질했다.

    괴물이 되기 전에 죽을 자리를 찾던 와중 연락이 왔다.

    딸을 구할 때 큰 은혜를 입은 청년이었다.

    그 때, 느낌이 왔다.

    내가 죽을 자리는 여기구나.

    그래서 나는 은혜를 갚으러 여기에 왔다.

    하지만 이 캠프에 들어오면서부터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다.

    ‘예지의 서’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강력한 존재의 경고가 느껴졌다.

    [지금 당장 여기서 꺼져.]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경고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그 말을 무시했다.

    적어도 죽기 전에 은혜를 갚기 위해서 말이다.

    수색이 끝나고 나의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이 한 번의 질문에 목숨을 걸기로 했다.

    ‘도대체 나비의 원인이 되는 오브젝트는 어디 있는가?’

    ‘예지의 서’를 출력 이상으로 사용한 고통 때문에 입에서는 제대로 된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예지의 서’는 나의 염원을 들어주었다.

    대가가 부족하다면, ‘예지의 서’여 나의 생명을 가져가라.

    나는 이곳에서 목숨을 버릴 것이다.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는 눈동자 너머로, 예지의 서가 보여주는 붉은 형상이 비춰졌다.

    그것은 거울. 

    탐정이 찾던 오브젝트는 거울이었다.

    그… 그것의 위치는!

    ***

    “뭣?”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태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지의 서’는 잿더미가 돼버렸고, 땅에 박힌 대못은 한 순간에 모두 뽑혀 날아가 버렸다.

    답을 알아낸 듯한 표정의 영감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언가를 말할 듯이 입을 열던 노인은 그대로 목이 꽈배기처럼 배배 꼬이더니 그대로 죽어버렸다.

    도대체 뭐야? 나비의 본체는 이런 짓까지 할 수 있는 오브젝트였던 건가?

    “선…선배.”

    후배도 얼굴을 새하얗게 한 채, 이 기괴한 현상에 떨고 있었다.

    서둘러서 영감에게 달려갔지만, 그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영감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가버릴 줄이야.

    척 보기에도 타살이었다. 

    ‘예지의 서’의 부작용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영감은 분명 무언가를 알아낸 것 같았으니까.

    도대체, 누가 영감을 죽인 거지?

    나비들을 만들어내는 오브젝트의 짓인 건가?

    그렇다면 더욱 미사일 공격을 막아야만 했다.

    저런 초월적인 현상을 부리는 오브젝트가 미사일 공격 따위에 파괴될 리가 없다.

    하지만 더 이상 수가 없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몰라도, 24시간 남짓한 시간으론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시선을 돌리자, 오른손에 들린 왓슨이 보였다.

    그래 왓슨이라면!

    왓슨이라면 해결책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뇌리를 메우는 꺼림칙한 예감을 애써 무시하며 유일한 선택지를 고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오른손에 든 램프를 높이 치켜들고 외쳤다.

    “왓슨, 이 나비 오브젝트의 원천이 되는 오브젝트가 뭔지 알려줘!”

    “왓슨, 이 나비 오브젝트의 원천이 되는 오브젝트가 뭔지 알려줘!”

    “왓슨, 이 나비 오브젝트의 원천이 되는 오브젝트가 뭔지 알려줘!”

    램프에서 키득키득 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싫어.]

    [싫어.]

    [싫어.]

    오른손에 들린 램프가 마구 진동했다.

    그리곤 하늘로 솟구쳐 올라 어떤 그림자를 그려내었다.

    [반칙이야. 홈즈.]

    [답안지를 훔쳐보는 오브젝트를 사용하려고 하다니, 그런 건 홈즈가 아닌걸.]

    [왓슨한테 답을 물어보다니, 그것도 역시 홈즈가 아닌걸.]

    [가짜 홈즈는 죽어야 해! 죽어야 해! 죽어야 해!]

    [그래도 왓슨은 착하니까 기회를 줄께.]

    램프를 들어 올린 그림자, 왓슨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 왓슨의 그림자에서는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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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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