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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대주교, 그 늙은이는 왜 나를 찾는 거야?”

        ​

        “글쎄요. 이제야 뭐라도 남겨달라고 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

        울름 남작가는 일정에 없던 갑작스런 외출로 한창 바빴다. 대주교의 호출이었다.

        ​

        울름 남작이 누가 부른다고 찾아가는 사람은 아니지만, 상대가 대주교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정치적 영향력이 부족하다 한들, 하나의 광역권을 관할하는 대주교의 부름은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닌 탓이었다.

        ​

        물론, 자신이 모시는 분들을 위해 며칠 내내 뒤치다꺼리하느라 바쁘던 와중 겨우 얻은 휴일을 즐기려던 남작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

        “가보자고.”

        ​

        “예.”

        ​

        남작은 마차에 올라 성당으로 향했다.

        ​

        그의 저택이 대성당과 거리가 좀 먼 편이었기에 가는 동안 시간이 좀 걸렸다.

        ​

        “항상 느끼는데, 마차 속도가 너무 느려.”

        ​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

        남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딱히 지적하려는 건 아니었다. 다만 몇 년째 이곳에 묵어도 팔츠성 사람들의 속도에 속이 터질 뿐이었다.

        ​

        기본적으로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었기에 서행하는 마차의 속도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

        그렇다고 귀족들이 돌아다니는 곳에서 마차의 속도를 올리라고 타박을 줄 수도 없었기에 그는 그저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

        “…흠.”

        ​

        그런데,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

        어째선지 울름 남작의 문장이 새겨진 마차를 향해, 사람들이 굉장히 적의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대성당으로 향할수록 그 농도는 짙어졌다.

        ​

        의아한 일이었다. 비록 수도 정계의 영향력을 두고 대주교와 경쟁 중인 건 사실이었지만, 애초에 대주교는 이걸 용돈벌이쯤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대립이 심하다거나 하진 않았다.

        ​

        당장 울름 남작도 종종 별문제가 생기지 않는 선에서 팔츠 교구에 헌금을 두둑이 넣어주고 있었다.

        ​

        그런데 이 분위기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이봐. 에리히.”

        ​

        “부르셨습니까?”

        ​

        “혹시 요 근래 교단의 감정을 상하게 할 일을 벌인 적이 있나?”

        ​

        “그럴 리가요! 결단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

        하지만, 그렇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건수가 될 만한 것이 없었다. 남작은 고민했다.

        ​

        저들은 어째서 자신을 적대시하는 걸까. 비서와 수행원들을 싹 불러 모아 고민했지만, 자신들이 실수한 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

        “소매치기가 들킨 건가?”

        ​

        “…그것 말곤 없지 않겠습니까?”

        ​

        “그건 이상하군.”

        ​

        벌써 들킬 때가 아닌데.

        ​

        남작은 턱을 쓸었다.

        ​

        그래, 분명 고아원 아이들 중 일부와 접촉해 소매치기시킨 건 사실이었다. 몇 년간 그걸 반복해온 것도 사실이었고.

        ​

        물론 남작도 마음에 들진 않았다. 이건 귀족으로서의 품위를 헤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계획에 방해가 되니 대주교 역시 치워야 한다는 말에는 그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

        “혹시 들킬만한 일을 한 사람이 있나?”

        ​

        “저희는 이 일에 딱히 손을 대고 있지 않습니다. 남작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

        “하긴, 그렇지.”

        ​

        내키진 않지만, 아니, 내키지 않았기에 남작은 이 일을 시종들을 부려 관리했었다. 그도 내키지 않을 일이면, 그를 따르는 귀족들이라고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었으니까.

        ​

        그렇다면 시종들이 무언가 실수한 걸까 싶지만, 언제나 철저하게 보고를 받는 입장이었기에 그도 알고 있었다. 시종들은 실수하지 않았다.

        ​

        ‘일부러 귀족들이 잘 다니지 않고, 황실 기사들은 다니지 않는 시장 길목에서 움직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증언을 구하기 쉽도록 이미 소재를 완벽히 파악해둔 장물아비를 이용하라고 했고.’

        ​

        이것만 잘 지켰다면 들킬 일은 없었다.

        ​

        착오는 없었다. 이미 오랜 시간 팔츠 곳곳을 분석해 아예 귀족들이 향하지 않는 곳을 고른 것이었으니까. 갑자기 정신 나간 기사급 인재가 수도 외곽이라도 나가본답시고 고르지 않으면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을 정도로 허름하고 낙후된, 하지만 사람은 많은 그런 곳이었다.

        ​

        애초에 이 수도에서 소매치기가 판치는 동네라는 곳은 다 그런 곳이었다. 귀족들이 자주 다니는 곳은 황실과 팔츠 시장이 집중적으로 관리했기에 소매치기가 감히 활동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

        물론 언젠가는 들킬 예정이긴 했다.

        ​

        하지만 그건 대주교를 탄핵하기 위한 정치적 계획의 일부로서 계획된 일이어야지, 이렇게 우발적으로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다.

        ​

        “…모르겠군.”

        ​

        “혹시 대주교 본인이 아이들의 부정과 일탈을 감지한 것 아니겠습니까?”

        ​

        “하, 그 늙은이가?”

        ​

        비서의 질문에 남작은 고개를 저었다.

        ​

        “그는 그런 일을 발견하면 차라리 저가 실수했다고 여기고 해결하려 하지, 이를 들춰서 아이들을 추궁할 사람이 아니다.”

        ​

        물론 남작이 정치적으로 이런저런 협잡질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대주교도 청탁을 받고 뇌물을 수수하는 현실의 오물이 묻은 사람인 건 알고 있었다.

        ​

        하지만 그조차도 사회적 약자들을 대하는 대주교의 자세에는 나름의 존경을 갖고 있었다.

        ​

        단지, 그가 가진 지위 탓에 서로 대립하는 것뿐.

        ​

        “역시, 일단 대주교를 만나봐야 알겠구나.”

        ​

        철컥.

        ​

        이윽고 마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남작은 마차에서 내려 대성당 앞의 그 넓디넓은 공터를 가로질러 성당 안으로 향했다.

        ​

        그리고, 남작의 표정이 구겨졌다.

        ​

        마리아 황녀의 부마로 내정된 철부지 기사가 대주교 옆에서 건들거리며 서 있었다.

        ​

        ―――

        ​

        대주교에 대해 다시 보게 되었다.

        ​

        항상 내 앞에서는 ‘그래서 님 술 출처가?’ 한 마디에 벌벌 떠는 아저씨라 내심 만만하게 봤는데, 나와 마리아가 어떻게 불러내야 할 줄 몰라 전전긍긍하던 사람을 자기 이름 석자 내건 것만으로 며칠 만에 이렇게 쉽게 불러낼 줄이야.

        ​

        “빌헬름 경은 왜 여기 있습니까?”

        ​

        남작은 나를 보자마자 경계심을 드러냈다.

        ​

        나도 딱히 그가 반갑진 않았지만, 도리가 있으니 고개 정도는 끄덕여주었다. 내 인사를 받은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

        제 윗사람이 아니면 항상 깍듯이 대접받던 사람이라 그런지, 아랫사람으로 여겨지는 놈이 버릇없이 대하니 기분 나쁜 것 같았다.

        ​

        마음 같아서는 그의 신경을 박박 긁어주고 싶었지만, 이 자리에서 할 말이 더 많은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

        “그는 참고인입니다.”

        ​

        “참고인…말씀이십니까?”

        ​

        쾅!

        ​

        남작이 되묻기 무섭게, 대주교는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남작이 깜짝 놀라 움찔거렸다.

        ​

        “그렇습니다. 감히, 대성당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의 아이들로 범죄를 저질러 이득을 보려 한 그 불경하고 참담한 행위에 대한 참고인 말입니다!”

        ​

        “하아….”

        ​

        대주교의 말에 남작이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어째서 대주교가 그를 불렀는지 짐작했던 듯했다.

        ​

        하지만, 그는 순순히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

        “지금 발뺌하시는 겁니까?”

        ​

        “발뺌이라니요. 저는 아예 대주교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

        변명할 생각도 없이, 그는 뻔뻔하게 혐의를 부정했다.

        ​

        그리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되물었다.

        ​

        “저는 오히려 궁금하군요. 대주교께서는 대체 무슨 대단한 증거가 있기에 저를 이렇게 범죄자로 낙인찍고 몰아붙이시는 겁니까?”

        ​

        “…허.”

        ​

        그 태도에 대주교가 탄식했다. 남작은 물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

        “애초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와중에도 저는 증거가 될 만한 것을 하나도 보지 못하겠습니다. 혹시 저를 범인으로 의심하시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

        “…아이의 진술이 있었습니다.”

        ​

        남작은 한쪽 입꼬리를 틀어 올리며 대주교를 비웃었다.

        ​

        “겨우 고아원 아이의 증언이라는 불확실한 증거를 이유로 저를 이렇게 불러서 추궁하시는 겁니까?”

        ​

        대주교는 남작의 비판에 반박했다.

        ​

        “제대로 된 증거는 이제부터 찾으면 될 일입니다. 수사를 시작하면, 모든 증거가 다 나올 것입니다.”

        ​

        남작은, 대주교의 그 순진하기 짝이 없는 답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

        “수사, 수사라. 그래서, 대체 누가 수사를 한다는 겁니까?”

        ​

        “…….”

        ​

        대주교도 이번만큼은 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팔츠의 치안과 관련된 모든 기관은 정쟁의 대상이 된 지 오래였다.

        ​

        검찰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 없는 건 아니었다. 경찰의 역할은 수도경비대가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기관이 파편화되어 각 파벌이 자기네 사람을 꽂아 서로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있었다.

        ​

        이런 상황에 기관에 수사를 맡긴다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었다.

        ​

        “그렇다면, 성당에서 직접 수사해서라도-”

        ​

        “지금, 교단이 제국의 정치에 관여하겠다는 겁니까?”

        ​

        대주교가 남작의 지적에 입술을 깨물었다.

        ​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을 것이다. 말이 좋아 자체적인 수사지, 밖에서 보면 성당이 내적으로 뚝딱뚝딱 범죄혐의 하나를 만들어 제국의 귀족에게 덮어씌우더니 처벌을 요구하는 형세였다.

        ​

        어떻게 보더라도 교단이 제국의 파벌 정치에 관여하는 꼴이었다.

        ​

        이전에도 청탁을 받아주지 않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꾸미는 게 아니라 청탁 의뢰인과 접수인을 연결해주는 것만 할 때와 직접 그 판에 끼어드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

        남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대주교를 보며 진중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

        “대주교님, 고아원의 아이가 불합리한 일에 휘말린 것은 유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난다 하더라도 공무를 수행해야 하는 귀족을 이런 확실하지도 않은 일로 오가라 하는 건 월권 아니겠습니까?”

        ​

        그걸 시작으로, 남작은 일방적으로 대주교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대주교도 나름 반격하긴 했지만, 이미 기세에서 밀린 시점에서 대주교가 정치판에 이골이 난 남작을 상대하긴 어려웠다.

        ​

        결국 종국에는 대주교는 억지를 써가며 이 악물고 논쟁을 질질 끌고 가는 수준이었다.

        ​

        ​

        ​

        ​

        그걸로, 대주교는 그가 해야 할 일을 모두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

        딸깍.

        ​

        품 안에 넣어둔 일회용 통신기가 작동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발신기가 내 쪽이 아닌 마리아에게 있었다.

        ​

        ‘신호가 왔다.’

        ​

        미리 약속해둔 신호에 따라, 대주교에게 눈을 두 번 깜빡여주었다. 계속 힐끗힐끗 내 쪽을 살피던 그도 등 뒤로 손을 돌려 알았다는 신호를 보냈다.

        ​

        “그러니까-!”

        ​

        이참에 아예 대주교와 서열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인지 열을 올리는 남작을 뒤로하고, 슬쩍 성당 밖으로 나섰다.

        ​

        “오랜만에, 진짜 제대로 칼 좀 휘둘러보겠는데?”

        ​

        “….살인은 되도록 피해주세요.”

        ​

        조피가 몰래 숨겨 가져온 나의 애병, 태도를 건네주었다.

        ​

        저 멀리, 성당 담벼락 너머에서 울름 남작가 소속이 분명한 경비-기사 후보생-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

        이곳은 대성당 내부, 제국의 몇 안 되는 치외법권이었다.

        ​

        “노력은 해볼게.”

        ​

        그리고, 나는 대주교로부터 주의 이름으로 오늘 대성당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책망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았다.

        ​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낭만 판타지를 꿈꿨는데 로맨스 판타지였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dreamed of a life filled with romance¹ and romanticism, but I didn’t dream of a romance fantasy… —- ¹ The “Romance” here means a feeling or atmosphere of something new, special and exciting, e.g., a hero’s adven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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