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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까치 한 마리가 푸른 깃을 뽐내며 날아가고 있었다.

         

        얼룩덜룩하면서도 은은하니 청색의 궤적을 남기며 비행하던 까치는 곧장 제도 카울란 황궁의 한 창문에 내려앉았다.

         

        톡톡

         

         

        “들어오너라.”

         

         

        허락이 떨어지자 까치는 영리하게도 스스로 창문 고리를 잡아 열고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껑충거리며 뛰어들어온 까치는 라인폴드 앞에서 편지가 묶인 다리를 내밀었다.

         

         

        [에팔테르가 마족 출현에 관한 보고서]

         

        보고자: 티그리아

         

         

        “드디어.”

         

         

        금발벽안의 미청년은 보고서를 펼쳐들고 찬찬히 읽었다.

         

        앞의 내용은 이전에 보고 받은 것과 일치했다.

         

        마족은 서큐버스로 보이며 짐꾼이 당시 가지고 있던 성수를 이용해 처리했다.

         

        용사 루시에나 에스텔이 몸을 회복한 것까지.

         

         

        “음?”

         

        ‘현재 짐꾼과 용사의 예상 행선지는 발터크루아.’

         

        “발터크루아라….”

         

         

        이 세상 모든 도시 곳곳에는 라인폴드의 정보원들이 흩어져 있었다.

         

        물론, 상업도시 발터크루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한때 용사 파티 후보였던 래빈이 있는 곳인만큼 더 굵직하고 능력 있는 첩자들이 도시에 잠입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았다.

         

        래빈은 이미 정보원 하나를 잡아 죽인 전적이 있었다.

         

        정보원이라기 보다는 조무래기에 가까웠지만 시체의 품에 물고기를 안겨 보냈으니 이는 명백한 경고.

         

        게다가 ‘그들’ 역시도 더 이상 래빈을 자극하지 말라고 하여 멀찍이 지켜만 보고 있던 차였다.

         

         

        “용사와 짐꾼, 거기에 도적이 합류하면….”

         

         

        상당히 골치 아파진다.

         

        루시가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덤벼들면 성녀와 궁수, 방패기사 셋이 동시에 달려들어야 대결이 성립된다.

         

        티그리아가 있다면 서로 누가 선공을 넣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지지만 만약 기척을 죽이고 백스텝을 찌르는 도적이 저쪽에 있다면 역으로 마법사의 카운터가 된다.

         

        어느정도 보고서를 다 읽었을 때, 또다시 무언가가 창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너라.”

         

         

        이번에는 까마귀였다.

         

        보랏빛의 칠흑을 두른 까마귀는 푸른 암흑을 걸친 까치를 보고서 깃털을 부풀렸다.

         

         

        “편지나 내놓거라.”

         

         

        그러자 까마귀는 까치를 몸통으로 밀어내며 라인폴드에게 다리를 들었다.

         

        다리에서 묶인 편지에는 아주 짤막한 문장만 있었다.

         

         

        ‘붉은 머리 발견, 그들이 손보겠다고 합니다.’

         

         

        꾸깃

         

        이놈들 봐라.

         

        마치 자신들이 발견한 것처럼 서두를 써놓고는 ‘그들’이 나선다고?

         

        돈만 축내는 무능한 정보원 녀석들은 루시를 발견한 사실도 ‘그들’에게 들어놓고 재빨리 이 한 문장 써서 까마귀를 날리기에 급급했을 것이다.

         

         

        “어찌해야 할까.”

         

         

        용사 파티도, ‘그들’도 라인폴드가 이루고 있는 균형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건 매우 불쾌하고 오만불손한 행동이었다.

         

        세계의 수호자인 자신이 어련히 알아서 서로의 밸런스를 맞춰주거늘 어쩜 이리 제 욕심에만 눈이 멀어 날뛰려고만 하는지 통탄스러울 뿐이었다.

         

         

        “모르건!”

         

         

        그런 의미에서 황태녀, 리나시엔은 참으로 그의 마음에 드는 여자였다.

         

         

        “지난번 회의 이후로 귀족들도, 에팔테르가를 필두로 한 국민들도 전부 용사의 행방을 확보해야한다고 외치고 있어요.”

         

         

        타고난 혈통은 존귀하지만 그 품격에 맞지 않는 약간의 모자람.

         

        지금도 봐라.

         

        황태녀가 호위도 없이 자기 두 발로 뛰어와 집무실을 열어젖혔다.

         

        리나시엔은 땀에 젖은 백금발을 짜증스럽게 목에서 떼어냈다.

         

        그리고 불편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도도하게 굴려고 노력했다.

         

         

        “지난번의 추태를 회복하지도 못했는데 여론조차 용사를 바라니 이를 타개할 계책이 필요합니다.”

         

         

        우스운 일이었다.

         

        언제는 자신을 유능하나 현실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게 흠인 책사 타입이라고 어필하지 않았었나.

         

        정작 위기에 봉착하니 라인폴드에게 대책을 요구하고 있었다.

         

        정말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여자였다.

         

        긴 백금발에 오만하면서도 인형 같은 이목구비에 깃든 아름다움.

         

        앞서 말했듯이 욕심에 비해 떨어지는 능력.

         

        그러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남몰래 노력하는 자세.

         

        라인폴드는 빈정거리는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리나시엔을 연모하고 있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한 순간부터 자신의 곁에 꼭 두고 싶은 여인이었다.

         

        그녀를 여황으로 만들고 자신이 그 곁에서 세상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수호자로 길이 남기 위해 이 불 같은 사랑을 잠시 접고 마음에도 없던 용사와 약혼하는 연기까지 했다.

         

        리나시엔을 향한 그의 마음은 언제나 진심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하. 용사 루시의 행방을 방금 알아낸 참입니다.”

         

        “어디에 있죠?”

         

        “상업도시 발터크루아.”

         

        “에팔테르가에서 발터크루아…? 단기간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에요.”

         

        “용사의 신체 능력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섰습니다. 한 번의 도약만으로 땅을 울리고 하늘의 구름에 닿을 정도지요. 단순히 전력 질주하는 것만으로도 먼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우아하진 않지만요.”

         

         

        리나시엔은 그런 쓸데없이 친절한 설명을 원한 게 아니었다.

         

         

        “라인폴드.”

         

         

        방패기사는 황태녀가 자신을 성으로 부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애정이 아닌 용건이 있을 때 그녀는 라인폴드라는 성을 부르며 정색했고, 라인폴드는 그걸 꽤나 도전적인 행동이라고 받아들였다.

         

        정식으로 부부가 되면 이런 면모는 남편으로서 꼭 고쳐줘야겠다.

         

        다소 따끔한 방법을 쓰더라도 말이다.

         

        약혼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리나시엔은 나름 냉철한 어조를 견지하며 그에게 주문했다.

         

         

        “라인폴드, 마왕을 토벌했음에도 마족 잔당은 남아있고, 대중들의 굳건한 지지와 인기를 얻고 있는 용사는 살아돌아왔어요. 그 어느 쪽도 제 황위 계승에, 그리고 황권에 도움은커녕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약혼자로서, 제 첫번째 신하로서 타개할 계책이 요구하는 바입니다.”

         

         

        말은 길었지만 결국 도와달란 뜻이었다.

         

        자존심이 세지만 방패기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황태녀.

         

        그야말로 라인폴드가 어릴 때부터 바라마지 않던 이상형 그 자체였다.

         

         

        “문제는 복합적이나 해결은 단순합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마족 잔당이 있다. 이를 손쉽게 해결하려면 용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용사가 살아있는 건 곤란하다.”

         

        “용사를 다시 영입하여 잔당을 처리하자는 건가요?”

         

         

        방패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용사는 몸을 회복한 지 얼마 안됐습니다. 만전의 상태가 아닐 가능성이 높죠. 마족이 강하다고는 하나 용사만큼은 아닙니다. 당장 토벌대를 보내 해치울 수 있을 때 해치우는 게 좋습니다.”

         

        “그렇다면 마족 잔당은?”

         

        “용사가 없는 용사 파티만으로도 충분히 소탕할 수 있습니다. 쉽진 않겠지만 대신 저희는 가장 큰 장애물인 루시에나 에스텔을 확실하게 제거하는 거죠.”

         

        “토벌대로는 누구를 보내죠?”

         

        “마법사와 성녀를 보냅니다. 티그리아가 있기 때문에 빠른 이동이 가능합니다.”

         

        “만약 용사가 만전의 상태라면?”

         

         

        깎아내리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라인폴드에 비해서지 황태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힌트를 주고 이어진 빠른 문답 속에서 황태녀는 착실하게 핵심을 짚어갔다.

         

        그런 황태녀에게 라인폴드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때는 영입을 시도합니다. 마족이라도 쉽게 제거하기 위해.”

         

        “우리는 이미 용사의 뒤를 쳤어요. 루시에나 에스텔이 다시 한 번 저희의 손을 잡으려 들까요?”

         

        “전하. 이럴 때마다 제가 무엇이 중요하다고 했는지 기억합니까?”

         

        “네.”

         

         

        리나시엔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정보, 상황에 대한, 적에 대한 정보.”

         

        “맞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용사가 만전의 상태인지, 그리고 용사가 저희의 영입을 받아들이게 만들 요소가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볼 참입니다.”

         

         

        라인폴드는 두 통의 편지를 썼다.

         

        그리고 일부러 황태녀에게 들으라고 소리 내어 까마귀에게 말했다.

         

         

        “가서 전해라. 용사의 약점을 찾고 기회가 된다면 죽여 없애라. 용사의 포악한 성정으로 미루어 보아 죽이지 않으면 죽을 것이니 필사즉생의 각오로 임하거라.”

         

         

        반대로 까치에게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세상이 아직도 마족으로 인해 혼란스러울 기미가 보이니 용사가 필요하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발터크루아로 가서 용사를 맞이하라. 허나 용사가 마족보다 더 큰 세상의 위협이 될 거라 여겨진다면 전투불능으로 만들거나 사살하라. 절대 준비를 서두르지 말 것.”

         

         

        그렇게 두 통의 편지가 각각 날아갔다.

         

        멀어지는 새들을 바라보던 리나시엔은 슬며시 어깨에 기댔다.

         

         

        “늘 당신에게 배우기만 하는군요.”

         

        “늦은 배움임에도 불구하고 향상이 매우 빠르십니다 전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군요.”

         

        “만인에게 인정받는 통치자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가 아니라 지금 완성된 인재여야 합니다.”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라인폴드는 황태녀의 어깨를 감쌌다.

         

         

        “좋은 그릇일수록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드는 법입니다.”

         

        “정말 의지가 돼요 모르건. 어렸을 적부터 제 곁에 당신 같은 이가 있었다면 전 벌써 여황이 되기 위한 준비를 마쳤을 거에요.”

         

        “전하께서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지낸 건 가슴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리석고 욕심만 많은 제국민들을 보다 자세히 알고 품을 수 있는 아량을 갖게 되시는 귀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그 말대로에요.”

         

         

        황태녀는 한 소년을 떠올렸다.

         

        삐쩍 말랐지만 늘 심지가 곧은 눈빛을 하고 있던 소년을.

         

        자신을 향한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타고난 고귀한 혈통으로 인해 받아줄 수 없었던 그 소년을.

         

        최선을 다해 자신을 보필한 대가를 쥐어주려 했건만 건방진 소리를 하며 떠나간 그를.

         

         

        ‘너와 대등하게 마주볼 수 있는 남자가 되어서 나타나겠어.’

         

         

        결국, 그가 가져간 것은 구정물 골목시절 뒤늦게 자신이 지어준 린 이라는 이름 하나밖에 없었다.

         

        라인폴드가 들었다면 경을 칠 무례한 발언이었지만 리나시엔은 그런 소년조차 어엿한 제국민이라고 여기며 마음으로 품어줄 것이다.

         

        통치자란 그런 것이니까.

         

        성군이란 그런 존재니까.

         

        자신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을 사랑하고 윤택하게 만들어줘야 하니까.

         

         

        ‘최근 들어서 네 생각을 좀 하게 되네, 린.’

         

         

        네가 원했던 것처럼 한적한 시골에서 아프지 말고 농사나 지으며 잘 살아있기를.

         

        네 주제에 맞게 말이야.

         

        —

         

         

         

        그렇게,

         

         

        “발터크루아로 가서 루시를 확보해라?”

         

        “준비에 하루를 투자하겠음.”

         

        “하루나? 아니야, 루시 녀석 상대하는 걸로는 오히려 짧은 걸 수도 있어.”

         

         

        마법사와 성녀가 발터크루아로 향하고.

         

         

        “작전대로 스근~하게 가자고, 이씨!”

         

        “린한테 친한 척 하지 마!”

         

        “너야말로 별 것도 아닌 걸로 폭주해서 일 망치지 마!”

         

        “어휴….”

         

         

        투닥거리는 래빈과 루시 사이에서 린은 한숨을 내쉬고.

         

         

        “그래, 움직이는 거구나.”

         

         

        그녀도 그런 그들을 지켜보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고대해왔는지 당신은 알까?”

         

         

        두근두근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그녀는 속삭였다.

         

         

        “방해꾼들만 제거하면 곧바로 데리러 갈게.”

         

         

        드디어 DLC 2장 메인 에피소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잠시만 기다려줘요, 나의 린.”

         

         

        그리고 ‘그들’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Abandoned Hero's Only Ally, 버림받은 용사의 유일한 아군이 되었다.
Score 6.8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saved the Warrior who used to ignore and bully me and now she is obsesse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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