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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전하, 이대로 가셔도 되겠습니까?”

         

       [무어가?]

         

       “…아가씨의 곁에 이상한 자가 있는 것이 맞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보면 자네가 그 아이의 아비인 줄 알겠군. 나보다 더 걱정이 심해.]

         

       “…송구합니다.”

         

       라크는 고개를 숙였다.

       자존심 강한 사내지만, 경외하는 공작을 향해 언제든 목숨도 내놓을 사내.

       그게 라크였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 아이린 윈들러는 단순히 천재 마법사가 아니라 ‘은인’이었다.

         

       ‘그녀가 온 이후 전하께서 달라지셨다.’

         

       -좋은 방향으로.

         

       마님을 잃으신 이후 광증에 시달리시던 분이었다.

       총명하셨던 과거는 어디로 가고, 마검의 광기에 전염되어 점차 잔혹하게 변하시던 것이 얼마나 가슴 아팠던가.

       다행스럽게 아무런 죄 없는 이들에게 잔혹함을 드러내지 않고, 범죄자에게만 그러한 경향을 드러내셨으나, 저러한 잔혹함 때문에 공작가에는 피 내음이 사라지는 날이 없었다.

         

       한데 그러던 중 그녀가 나타났다.

         

       요정과 같은 아름다움.

       마치 마님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포근한 햇살과 같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가 말이다.

         

       그녀가 나타난 이후 전하께선 언제 광증을 앓았느냐는 듯 따스한 미소를 짓게 되었고, 과거 총명하던 그들의 주군으로 돌아왔다.

       공작가의 홍복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으니.

         

       그리고 그녀 자체가 선물이자 은혜로움이었다.

         

       그렇기에 라크는 그녀를 위협하는 자가 있다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물리칠 작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그녀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괜찮다. 생각한 것보다 더 괜찮은 자더군. 그 아이를 위협할 리는 없을 테지.]

         

       “…….”

         

       [여전히 불만스러워 보이는군.]

         

       “…전하의, 마님의 딸일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선을 넘는구나.]

         

       “……송구합니다.”

         

       그러나 해야 할 말이었다.

         

       그래, 그녀 아이린 윈들러는 공작님의….

         

       블레이크의 ‘친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블레이크 공작 본인이 가장 크게 느끼고 있었으며, 공작가의 몇몇 이들도 말은 안 할 뿐이지, 이미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팬드래건 왕실 쪽에서 이를 눈치 챈 것처럼, 갈라하드 또한 이미 알고 있다는 의미.

       한데도 이를 공표하지 않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러니 자중하여라.]

         

       “…….”

         

       [흥, 건방진 놈 같으니. 이제 보니 ‘그자’보다 네가 더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 같구나.]

         

       “…전하께선 너무 철저하십니다.”

         

       [그래, 난 ‘전하’지. 하니, 난 냉정해야 하고, 내 친자일지 모르는 아이를 두고도 안아줄 수 없는 거겠지.]

         

       “…음!”

         

       블레이크 공작의 발언은 정론이었다.

       아이린이 친자일 거란 가능성은 있으나, 그렇다고 하여 이를 마냥 확신할 수도 없다.

         

       ‘그녀’를 닮았으나, 친자일 거란 증거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저 닮은 사람일 뿐이라면?

         

       …나중에 블레이크 공작은 이를 뒷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정치적으로도, ……심적으로도.

         

       하여 블레이크 공작은 모든 걸 숨겼고, 그저 수양녀로 그녈 받아들일 따름이었다.

       광증에 시달리며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공작가를 원상태로 돌려놓을 시간도 필요하였으니, 아마 당분간 그녀에 대해 알아볼 시간은 부족할 터.

         

       [하여 그자가 필요하다. 아이시스, 그 아이와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으나, 분명 그자는 내 조카에게 아이린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터. 내 조카답게 참으로 적절한 인선이 아닐 수 없음이지.]

         

       조사하면서도 놀랐다.

       그 정도 인재가 기사단에 있을 줄이야.

         

       발타르 경 이후 망가지기 시작한 백은사자였거늘, 왕실에 있어 놀라운 행운이다.

         

       그리고 이는 갈라하드의 행운이기도 했다.

         

       [감시를 한다는 것은 곧, 그자는 아이린의 안전을 책임질 수도 있단 의미지. 그자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아이시스가, 조카가 그의 수양녀를 감시하는 것에는 아무런 불쾌감이 없었다.

       그라도 그랬을 테니까.

       아니, 오히려 더욱 심하게 손속을 두었을 테지.

       이런 걸 보면 여전히 ‘무른 아이’였다.

         

       “…그래 봤자 저보다 약합니다. 차라리 저를 보내주시지.”

         

       그러나 라크는 여전히 인정하지 못 하는 듯했다.

       어딘지 불만이 가득한 기색.

       그리고 이런 라크를, 그의 제자를 보며 공작은 피식거렸고.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놈이, 입만 살았구나.]

         

       “아, 안 쓰러집니다.”

         

       [안 쓰러지긴.]

         

       공작을 비롯한 기사단원들은 못 말린다며 고개를 저었다.

         

       라크 드 듀랑.

       갈라하드의 기대주이자, 차세대 오러 유저가 되리라 확신되는 젊은 기사의 팔다리가 얼마나 떨리는지 그들은 보았기에.

       시시나무처럼 떨리는 것이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자존심 세운다고 괜찮은 척하지만, 속이 진탕 됐을 게 분명하다.

         

       [빨리 포션이나 마시거라, 한심한 놈.]

         

       “저, 전 괜찮습니다.”

         

       […입에서 피 흐른다, 멍청한 놈아.]

         

       “…크흡.”

         

       주륵.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진 라크였고, 이를 보며 공작은 혀를 찼다.

         

       한심한 놈 같으니.

         

       [이래서 기사란 것들은.]

         

       저놈도 그렇고, 이놈도 그렇고.

         

       도무지 어른스럽지 못한 것들밖에 없다.

         

       뭐.

         

       [음흉한 ‘그놈들’보단 나을 테지만.]

         

       블레이크의 눈에 서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기사들을 향한 서늘함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대공가가 쥐새끼를 키우는가.]

         

       그들이 있던 현장에서 은밀히 숨었다 착각하는 ‘쥐새끼들’을 향한 서늘함이었지.

         

         

       그리고 쥐새끼라 불린 이는.

         

       “공작께선 말을 험하게 하는군. 안 그런가 잭?”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냥 그런 게 있다.”

       “…가끔 보면 이상한 거 아십니까?”

       “나도 안다.”

         

       흑발 머리가 잘 어울리는 대공가의 젊은 사자는 초연하게 고개를 주억거렸고, 그의 심복은 ‘또 왜 저러실까?’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모시는 분이지만, 한 번씩 이해하기가 힘들다며.

         

       * * *

         

       “…뭐 하는 거야?”

         

       한편, 이한이 집을 들어갔을 때, 다행스럽게도 두 여자는 밖에 무슨 큰일이 있었다는 낌새를 몰랐다.

         

       장작을 팬다고 미리 말한 것도 있어,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도 이해한 것도 있으며.

       제법 떨어진 거리에 있었으니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았으리라.

       포션 덕분에 그가 상처 없이 멀쩡한 까닭도 있고.

         

       어쩌면 다행인 셈이다.

         

       그로선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니.

         

       다만, 집으로 들어온 이한은 두 여인이 하는 행동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행동을 들킨 이도.

         

       “오, 오셨어요.”

         

       마찬가지로 당혹스러워하였고.

       마치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아이마냥 화들짝 놀라는 그녀였다.

         

       “…아이린 생도. 뭐 하는 거지?”

       “그, 그게 시녀님이랑 대화하다가 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 드레스를 입게 되는 건가? 아니 그보다 우리 집에 드레스가 있었던가?”

       “헤헤, 이건 제 거예요! 어때요, 기사님? 아름다우시죠!”

       “…그래, 화려하긴 하네.”

       “헤헤, 저도 너무 화려해서 잘 안 입긴 해요.”

       “…그런 걸 저한테 입히신 건가요?”

       “아이린 아가씨라면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

         

       그녀들은 패션쇼를 벌이고 있었다.

         

       밖에서 한창 심각한 일을 벌이다가 이토록 다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한은 방금 전 결심이 무색하게 마음이 흐트러질 뻔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아이린을 쫓았는데, 확실히.

         

       ‘예쁘네.’

         

       꽃다운 나이에 맞는 청순함과 싱그러움이 느껴졌고.

       특유의 금발머리칼과 푸른색 눈동자가 어딘지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입은 드레스는 지나치게 화려했으나, 아이린 윈들러란 훌륭한 옷걸이는 지나친 드레스조차 충분히 소화해내기에 충분한 그릇이었다.

         

       허나 이것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아름답냐고 묻는다면.

         

       ‘딱 저런 여동생 있었으면 좋았겠네.’

         

       안타깝게도 이한은 연애 세포가 서서히 사멸할 나이였고, 한참 어린애한테 매력을 느끼는 놈이 아니었다.

         

       삼촌 팬이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돌을 보고 기특해하는 기분?

       딱 그 정도였지.

         

       허나 이를 모르는 아이린으로선 이한의 시선에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어딘지 오해의 냄새가 짙어지는 것 같았다.

         

       한데 그때.

         

       “아가씨, 그러지 말고 그거 보여주세요. 열심히 연습하셨잖아요.”

       “그, 그건 좀….”

       “에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해요.”

       “그, 그래도.”

         

       “…연습?”

         

       무슨 말일까 저게?

         

       다음 순간 우물쭈물 거리던 소녀는 드레스의 밑단을 살짝 올리며 무릎을 살짝 굽히고 고개를 까딱거렸다.

         

       …저게 뭘까?

         

       “기사님, 저게 커트시(Curtsey)예요. 귀족들의 인사법 같은 거죠, 어때요, 아름다운 자세죠?”

       “…아름, 답나?”

         

       저가 보았을 때 어딘지 인형이 삐걱거리는 것 같은데.

         

       “아, 아직 익숙하지 않아요.”

         

       귀족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 귀족의 인사법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린이었다.

       아니, 저게 뭐라고 밥도 안 먹고 저러는 걸까?

         

       하여튼 귀족들의 문화란 참….

         

       “헤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신 거예요. 익숙해지면 이렇게, 이렇게 자연스러워진답니다.”

         

       스윽.

         

       레이라는 방금 전 아이린이 그랬던 것처럼 슬쩍 발목이 조금 보일 정도로 치마를 잡아 올리며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까딱였다.

         

       한데, 그 자세는 무어랄까.

       

        “…….”

         

       깨끗했으며, 올곧았다.

       얼마나 깔끔하고도 물 흐르듯 진행되는지 일순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하….”

         

       이한은 놀랍게도 그녀를 보며 오늘 쌓인 불쾌감이 단번에 날아가는 듯한 상쾌함마저 느꼈다.

         

       그래, 지금 이 순간.

         

       ‘…예쁘네.’

         

       분명, 이 예쁘다는 생각은 방금 전 아이린을 향한 감정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감정표현일 것이다.

         

       그렇게 이한은 난생처음으로 높으신 분들의 문화란 게 마냥 헛짓이 아님을 깨우쳤다.

         

       “…밥 안 먹고 연습할 만하네.”

         

       저러한 말을 본인이 내뱉을 정도로.

         

         

       처음으로 맹한 줄로만 알았던 시녀 아가씨가 만개한 장미와 비견될 숙녀임을 인식하는 이한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굴욕적인 패배를 겪은 여주인공은.

         

       [……아린아, 오늘부터 커트시 연습 좀 많이 하자, 알겠지?]

         

       ‘……응.’

         

       

       굴욕과 함께 눈물을 삼켰고, 리벤지를 기약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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