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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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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령의 표정이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내 재촉에 유령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제 이름과 사연을 천천히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에는 유령의 아니, 줄리아나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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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어어엉, 내가 흐끅,얼마나 좋아했는데..! ]
    “진짜 나쁜 놈이네.”
    [ 히끗,결혼도 하자고, 했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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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령 특, 분노가 가라앉으면 하소연하기 시작한다. 자리를 마련해주면 더 과하게 감정을 쏟아냈다. 그렇게 감정을 다 쏟아내고 나면 어느 정도 얌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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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어어어엉…! ]
    “자자, 이거 먹고 진정해요.”
    [ 흐읍,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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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가 하소연을 하는 사이 몇번이고 서랍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한 끝에 얻은 쿠키를 입에 넣어주자, 그녀는 눈물 젖은 쿠키를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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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그런 쓰레기 같은 놈 잊어버리고 새 출발 해야죠. 언제까지 다른 사람 원망하고 증오만 하면서 살 거예요?”
    [ 그응,그으치마아.. ]
    “원래 꿈이 그런 건 아니었잖아요. 그쵸?”
    [ 꿀꺽,맞아..난,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흐흑,그런데 그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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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가 눈을 번뜩이며 다시 증오에 찬 기억 속에 갇히려는 순간 내가 손을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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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이제 그 사람은 소중한 사람도 아니고 살아있는 사람도 아니잖아요.”
    [ 크흥,맞아.. ]
    “그러니까 이젠 그런 쓰레기 잊어버리고 더 좋은 목표를 가져봐요.”
    [ 그..그럴까? 내가 할 수 있을까? ]
    “에이, 못할 게 뭐 있어요? 최강 용병 줄리아나가 여기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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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쫄?”이라는 의미를 담아 말하자 쭈글쭈글해져 있던 줄리아나가 고개를 팍 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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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맞아..내가 한때는 최강이라고 불렸던 용병이야! ]
    “그쵸? 그러니까 그런 약한 소리 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자기가 원하는 걸 얻어보세요!”
    [ …알았어! ]
    “자자, 이거 먹고 이제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사는 거예요.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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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쿠키를 받아먹었다. 나는 쿠키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는 줄리아나를 보며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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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걸로 해결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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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자에게 약속이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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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일이 끝나면 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나중에 꼭 말해줄게.”같은 죽음을 암시하는 약속을 하고 죽으면 높은 확률로 미련이 남아 유령이 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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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는 인간은 쉽게 약속을 어길 수 있지만 유령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줄리아나는 내가 건네준 쿠키를 받아먹은 순간부터 타인을 해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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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원했던 거…내가 정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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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생각에 빠진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내버려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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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땐 자리를 피해주는 게 예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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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키 몇 개 남은 건 미아나 가져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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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였던 미아를 떠올리며 남은 쿠키를 접시에 담아 주방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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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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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 난 -…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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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드디어 자신이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리안에게 알려주고자 했다. 하지만 그녀를 기다려주고 있는 것은 침묵이 내려앉은 주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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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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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굉장히 오랜 시간을 유령으로 지냈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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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입을 다문 채 제 앞에 놓인 찻잔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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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한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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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흑마법사에 의해 책에 묶인 원혼이며 저주였다. 인간보다는 괴물에 더 가까운 존재였던 그녀가 이성을 유지하며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된 건 전부 리안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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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에는 죽는 줄 알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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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지평좌표계를 고정하고 계신 거죠?’라는 이상한 질문을 듣자마자 시야가 인지할 수 없는 속도로 돌아가고 제 몸이 태풍에 휩쓸린 나뭇잎처럼 날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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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대로 소멸당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똑바로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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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인간이 죽기 전에 주마등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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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의에서 벗어나 제 존재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다.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눈앞에서 무언가가 휙휙 지나가고 세상과 자신이 멀어져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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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멸을 넘어 제 존재가 세계에 거부당한 것만 같은 아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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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 되찾은 이성이 공포로 질려버리려는 순간, 줄에 묶인 몸이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처럼 날아가던 몸이 갑작스럽게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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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어? 꺄아아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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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줄을 되감은 것처럼 날아왔던 만큼 그대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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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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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을 차렸을 땐 원래 있던 서재에 돌아온 상태였다. 그녀가 봉인되어있는 책은 누군가가 벽에 던진 것처럼, 벽에서 주르륵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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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으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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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필터로 인해 아찔한 모험을 하고 돌아온 줄리아나는 극도의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전과 같은 맹목적인 분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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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할 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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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끔찍한 일을 겪게 만든 리안을 향한 분노일 뿐, 오로지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살의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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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만두지 않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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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한 두려움이 분노로 변질되었고, 그녀의 눈을 돌아버리게 했다. 줄리아나는 제 본체인 책을 두둥실 허공에 띄워 서재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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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기 위해 탑재된 투명화 기능을 켜고 리안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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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머릿속에 오로지 복수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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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 난 뒷골목에서 태어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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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차를 마시면서 하소연이나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리안이라는 아이 앞에선 감정이 제멋대로 이리저리 튀고, 바보처럼 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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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다 리안은 너무나 당연하게 그녀를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우해주었다. 그 사실이 차갑게 굳어있던 그녀의 마음을 살살 녹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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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주와 원망으로 속박되어 있던 영혼이 자유를 되찾는 것과 동시에 또렷한 이성을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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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꿈에서 깨어난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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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상념에서 벗어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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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에게 속죄할 순 없지만…적어도 소중한 사람을 지키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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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을 내리자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그녀는 책 속으로 들어가, 책을 두둥실 허공에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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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 그 아이를 지키고 싶다고 했던 여자아이. 그 아이를 도와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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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허공에 떠오른 책이 투명해지더니 노아의 기척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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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를 따라갔던 노아는 제 숙소에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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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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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할 때마다 제스가 꼬리를 빳빳이 세우며 밀어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피아에게 뒤를 부탁하고 식당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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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으로 돌아온 노아는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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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다시 서재에 가는 건 힘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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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들어가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리안이 들어가면 안 된다며 끌고 나온 지 반나절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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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몰래 서재에 들어갔다는 걸 알면 분명 리안이 자신에게 실망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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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움받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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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으며,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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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해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정말…그런 잔인한 방법밖에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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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혹하고 끔찍하지만 확실하게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노아는 그런 식으로 힘을 탐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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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부른 생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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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를 구하고 싶다. 네로를 지키고 싶다. 그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 어떤 고통이라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런 이유로 다른 생명을 쉽게 해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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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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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유부단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제 모습이 머저리처럼 느껴졌다. 우울한 감정에 반짝반짝 빛이 나던 눈동자가 탁하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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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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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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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노아의 발등 위로 무언가가 가볍게 떨어졌다. 노아는 무릎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떨어진 게 무엇인지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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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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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하얀 책이 그녀의 앞에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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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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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책을 펼치지 않았음에도 책이 멋대로 펼쳐졌다. 순식간에 책의 절반이 넘어가더니 새하얀 유령, 줄리아나가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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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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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넋을 놓은 채 꿈 같은 상황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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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을 원한다고 했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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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전과 달리 조금은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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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해줄 테니, 나랑 계약하지 않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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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펼친 사람을 홀리기 위한 미소가 아닌, 정말 진심이 담긴 편안한 말투와 미소에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줄리아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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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약 조건도 안 들어보고 바로 고개를 끄덕이면 어떡하니? 하아 -.. 앞으로 가르쳐야 할 게 많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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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그렇게 스승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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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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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의 저택은 과거 귀족들이 사용했던 저택이라, 그녀가 사용하지 않는 장소가 꽤 있었다. 그중 하나가 실내 연무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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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무장은 미아가 사용하든 말든 상관없다고 했던 장소였기에 노아는 부담 없이 연무장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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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하…”
    [ 다 쉬었으면 빨리 한 바퀴 더 돌아. ]
    “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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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찍한 연무장에서 노아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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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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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흐뭇하게 웃으며 굳은 의지로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노아와 그 옆에 붙어 끝없이 단련을 위한 단서를 건네는 줄리아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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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원작 속 인물다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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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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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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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몸이 흠뻑 젖어가는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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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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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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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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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을 잊고있었다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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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엠제이엠님! 후원 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0’9

OTL 자세로 쓰러진 리안.

드디어 원작 주인공을 떠올리게 되는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은 사랑입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다음화 보기

유령의 표정이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내 재촉에 유령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제 이름과 사연을 천천히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에는 유령의 아니, 줄리아나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흐어어엉, 내가 흐끅,얼마나 좋아했는데..! ]

“진짜 나쁜 놈이네.”

[ 히끗,결혼도 하자고, 했으면서! ]

유령 특, 분노가 가라앉으면 하소연하기 시작한다. 자리를 마련해주면 더 과하게 감정을 쏟아냈다. 그렇게 감정을 다 쏟아내고 나면 어느 정도 얌전해진다.

[ 흐어어어엉…! ]

“자자, 이거 먹고 진정해요.”

[ 흐읍,흡…. ]

줄리아나가 하소연을 하는 사이 몇번이고 서랍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한 끝에 얻은 쿠키를 입에 넣어주자, 그녀는 눈물 젖은 쿠키를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이제 그런 쓰레기 같은 놈 잊어버리고 새 출발 해야죠. 언제까지 다른 사람 원망하고 증오만 하면서 살 거예요?”

[ 그응,그으치마아.. ]

“원래 꿈이 그런 건 아니었잖아요. 그쵸?”

[ 꿀꺽,맞아..난,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흐흑,그런데 그놈이…! ]

줄리아나가 눈을 번뜩이며 다시 증오에 찬 기억 속에 갇히려는 순간 내가 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이제 그 사람은 소중한 사람도 아니고 살아있는 사람도 아니잖아요.”

[ 크흥,맞아.. ]

“그러니까 이젠 그런 쓰레기 잊어버리고 더 좋은 목표를 가져봐요.”

[ 그..그럴까? 내가 할 수 있을까? ]

“에이, 못할 게 뭐 있어요? 최강 용병 줄리아나가 여기 있는데?”

“쫄?”이라는 의미를 담아 말하자 쭈글쭈글해져 있던 줄리아나가 고개를 팍 들며 말했다.

[ 맞아..내가 한때는 최강이라고 불렸던 용병이야! ]

“그쵸? 그러니까 그런 약한 소리 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자기가 원하는 걸 얻어보세요!”

[ …알았어! ]

“자자, 이거 먹고 이제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사는 거예요. 알았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쿠키를 받아먹었다. 나는 쿠키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는 줄리아나를 보며 웃음 지었다.

‘이걸로 해결이네.’

죽은 자에게 약속이란 매우 중요하다.

“이 일이 끝나면 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나중에 꼭 말해줄게.”같은 죽음을 암시하는 약속을 하고 죽으면 높은 확률로 미련이 남아 유령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살아있는 인간은 쉽게 약속을 어길 수 있지만 유령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줄리아나는 내가 건네준 쿠키를 받아먹은 순간부터 타인을 해할 수 없게 된다.

[ 내가 원했던 거…내가 정말로… ]

그녀는 생각에 빠진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내버려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땐 자리를 피해주는 게 예의였다.

‘쿠키 몇 개 남은 건 미아나 가져다줘야겠다.’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였던 미아를 떠올리며 남은 쿠키를 접시에 담아 주방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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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난 -…어? ]

줄리아나는 드디어 자신이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리안에게 알려주고자 했다. 하지만 그녀를 기다려주고 있는 것은 침묵이 내려앉은 주방이었다.

[ 아… ]

굉장히 오랜 시간을 유령으로 지냈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듯했다.

줄리아나는 입을 다문 채 제 앞에 놓인 찻잔을 바라보았다.

[ ..이상한 사람. ]

그녀는 흑마법사에 의해 책에 묶인 원혼이며 저주였다. 인간보다는 괴물에 더 가까운 존재였던 그녀가 이성을 유지하며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된 건 전부 리안 덕분이었다.

[ 처음에는 죽는 줄 알았는데.. ]

‘어떻게 지평좌표계를 고정하고 계신 거죠?’라는 이상한 질문을 듣자마자 시야가 인지할 수 없는 속도로 돌아가고 제 몸이 태풍에 휩쓸린 나뭇잎처럼 날아다녔다.

‘아, 이대로 소멸당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똑바로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인간이 죽기 전에 주마등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살의에서 벗어나 제 존재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다.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눈앞에서 무언가가 휙휙 지나가고 세상과 자신이 멀어져감을 느꼈다.

소멸을 넘어 제 존재가 세계에 거부당한 것만 같은 아찔함.

겨우 되찾은 이성이 공포로 질려버리려는 순간, 줄에 묶인 몸이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처럼 날아가던 몸이 갑작스럽게 멈췄다.

[ 어어? 꺄아아악! ]

마치 줄을 되감은 것처럼 날아왔던 만큼 그대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쾅!

정신을 차렸을 땐 원래 있던 서재에 돌아온 상태였다. 그녀가 봉인되어있는 책은 누군가가 벽에 던진 것처럼, 벽에서 주르륵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 으윽… ]

개그 필터로 인해 아찔한 모험을 하고 돌아온 줄리아나는 극도의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전과 같은 맹목적인 분노는 아니었다.

[ 망할 놈이..! ]

끔찍한 일을 겪게 만든 리안을 향한 분노일 뿐, 오로지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살의는 아니었다.

[ 가만두지 않겠어! ]

과도한 두려움이 분노로 변질되었고, 그녀의 눈을 돌아버리게 했다. 줄리아나는 제 본체인 책을 두둥실 허공에 띄워 서재를 빠져나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기 위해 탑재된 투명화 기능을 켜고 리안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녀의 머릿속에 오로지 복수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 사실 난 뒷골목에서 태어난 -.. ]

절대 차를 마시면서 하소연이나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리안이라는 아이 앞에선 감정이 제멋대로 이리저리 튀고, 바보처럼 울게 되었다.

거기다 리안은 너무나 당연하게 그녀를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우해주었다. 그 사실이 차갑게 굳어있던 그녀의 마음을 살살 녹여주었다.

저주와 원망으로 속박되어 있던 영혼이 자유를 되찾는 것과 동시에 또렷한 이성을 찾게 되었다.

오랜 꿈에서 깨어난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줄리아나는 상념에서 벗어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떠올렸다.

[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에게 속죄할 순 없지만…적어도 소중한 사람을 지키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 ]

결론을 내리자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그녀는 책 속으로 들어가, 책을 두둥실 허공에 띄웠다.

[ ‘리안, 그 아이를 지키고 싶다고 했던 여자아이. 그 아이를 도와주자.’ ]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허공에 떠오른 책이 투명해지더니 노아의 기척을 향해 날아갔다.

제스를 따라갔던 노아는 제 숙소에 앉아있었다.

“내가 할! 수! 있어!”

노아가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할 때마다 제스가 꼬리를 빳빳이 세우며 밀어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피아에게 뒤를 부탁하고 식당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방으로 돌아온 노아는 생각에 잠겼다.

‘…오늘 다시 서재에 가는 건 힘들겠지.’

다시 들어가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리안이 들어가면 안 된다며 끌고 나온 지 반나절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야기 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몰래 서재에 들어갔다는 걸 알면 분명 리안이 자신에게 실망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움받고 싶지 않아.’

노아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으며, 생각에 잠겼다.

‘강해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정말…그런 잔인한 방법밖에 없는 걸까?’

잔혹하고 끔찍하지만 확실하게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노아는 그런 식으로 힘을 탐하고 싶지 않았다.

‘..배부른 생각인 걸까?’

그를 구하고 싶다. 네로를 지키고 싶다. 그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 어떤 고통이라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런 이유로 다른 생명을 쉽게 해하고 싶지 않았다.

‘바보 같아.’

우유부단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제 모습이 머저리처럼 느껴졌다. 우울한 감정에 반짝반짝 빛이 나던 눈동자가 탁하게 가라앉았다.

툭.

“…?”

그때, 노아의 발등 위로 무언가가 가볍게 떨어졌다. 노아는 무릎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떨어진 게 무엇인지 확인했다.

“…!?”

새하얀 책이 그녀의 앞에 떨어져 있었다.

촤르륵.

노아가 책을 펼치지 않았음에도 책이 멋대로 펼쳐졌다. 순식간에 책의 절반이 넘어가더니 새하얀 유령, 줄리아나가 튀어나왔다.

“아..”

노아는 넋을 놓은 채 꿈 같은 상황을 바라보았다.

[ 힘을 원한다고 했었지? ]

줄리아나는 전과 달리 조금은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해줄 테니, 나랑 계약하지 않을래? ]

책을 펼친 사람을 홀리기 위한 미소가 아닌, 정말 진심이 담긴 편안한 말투와 미소에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줄리아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계약 조건도 안 들어보고 바로 고개를 끄덕이면 어떡하니? 하아 -.. 앞으로 가르쳐야 할 게 많겠네. ]

노아는 그렇게 스승을 얻게 되었다.

***

미아의 저택은 과거 귀족들이 사용했던 저택이라, 그녀가 사용하지 않는 장소가 꽤 있었다. 그중 하나가 실내 연무장이었다.

연무장은 미아가 사용하든 말든 상관없다고 했던 장소였기에 노아는 부담 없이 연무장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아,하…”

[ 다 쉬었으면 빨리 한 바퀴 더 돌아. ]

“끄응..!”

널찍한 연무장에서 노아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고 있었다.

‘열심히 하네.’

난 흐뭇하게 웃으며 굳은 의지로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노아와 그 옆에 붙어 끝없이 단련을 위한 단서를 건네는 줄리아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원작 속 인물다운 -…’

갑자기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원작 속…’

온몸이 흠뻑 젖어가는 게 느껴진다.

‘아….’

잊고 있었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고 말았다.

“주인공을 잊고있었다아아…!”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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