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

   ​

    내 계획을 들은 아일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

    “……걔네들 영역에서 짓밟는다니. 정확히 뭘 하는 건데요?”

    “아까 비라가 그랬지? 녀석은 속도광이라고.”

    “예. 그랬죠……?”

    “그러니까 아일레. 너도 속도광이 되어라.”

    “……네?”

    ​

    무언가 잘못 들었다는 것마냥 고개 갸웃거리는 아일레를 보며 나는 씨익 미소지었다. 그녀는 아직 사회 경험이 적어서 그런 미치광이들을 상대하는 법을 모르겠지만 매일 같이 미치광이들과 부대껴 살던 나는 쉽게 알 수 있었다. 

    ​

    미친놈은 미친놈으로 제압해야한다는 걸.

    ​

    그리고 스피드를 즐긴다는 놈 치고서 정말로 순수하게 속도만을 추구하는 녀석들은 없다. 속도광이라는 녀석들은 모조리 남들보다 빠르다는 사실에 우월감 느끼는 정신병자들이었다. 이 세계도 그닥 다르지 않으리라.

    ​

    “네가 그 빌런 녀석보다 빠른 스피드광이 되는 거야.”

    ​

    그걸로 끝. 

    패배한 속도광은 광기를 잃는다.

    광기를 잃은 미치광이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은 빌런 하나가 그렇게 사라지게 될 것이다.

    ​

    그러나 아일레는 최후의 최후까지 걱정했다. 그러니까 본인이 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작전에서 승리한 경우에도 모스피드가 반성하지 않고 속도광 짓을 이어나갈 경우를.

    ​

    “……만약에 그렇게 이겼는데도 빌런 짓을 계속하면요?”

    “녀석이 졌는데도 빌런 짓을 계속하면?”

    “네.”

    ​

    다행히 그 경우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

    “그때는 내가 직접 빌런을 그만두지 않은 걸 후회하게 만들어줄게.”

    “앗, 넵.”

    ​

    그런 신사답지 않은 빌런을 배려해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

    ​

    * * *

    ​

    ​

    아일레 속도광 작전을 계획한 이후,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그 빌런 놈의 정보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었다. 

    ​

    녀석이 주로 어디서 활동하고, 언제 나타나고, 또 무슨 기체를 타는가 같은 녀석의 모든 정보를.

    ​

    다행히 녀석은 빌런이었고, 빌런에 대한 정보는 히어로 협회에서 공개하고 있었다. 신빙성 높은 협회 위키에 모스피드의 이름을 검색하자 이미 상당한 양의 정보가 모여 있었다.

    ​

    [모스피드Mospped]

    XXXX년 X월 XX일 M 시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빌런……

    뛰어난 운전 실력으로 추격망을 벗어나……

    빌런 행위에 주로 사용되는 차량은 붉은 색 로켓 스파이더 091로써……

    ​

    위키에는 모스피드가 처음 빌런 행위를 시작한 날짜부터 평소 출몰 위치. 사용하는 차량이요 히어로 협회의 분석관들이 분석한 심리 프로파일링. 심지어는 시민들에게 제보를 받아 만들어진 실시간 위치 추적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

    이쯤되면 대체 왜 안 잡는 건지, 이 빌런도 어느 대기업 회장이 취미로 활동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 악의 조직 같은 경우가 그렇게 흔할 리가 없었다. ……흔할 리 없다고 믿고 싶다.

    ​

    ‘애시당초, 녀석이 그랬더라면 비라가 알고 있었겠지.’

    ​

    비라는 저래보여도 나름 재벌 호위 출신의 엘리트요, 레갈리아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존재였다. 일반인들이 모르는 비밀 정보 따위도 여럿 알고 있을 것이요, 레갈리아처럼 특이한 걸 좋아하는 재벌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법 했다.

    ​

    모스피드가 실은 정체를 숨긴 재벌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를 어떻게 해보겠다고 다짐했을 때 옆에서 힘내라고 응원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말렸으리라.

    ​

    그러나 비라는 말리기는커녕 내게 따로 귀뜸해주지도 않았다.

    ​

    ‘무슨 빌런이 나도 없는 슈퍼카를…….’

    ​

    나는 빌런이 타고 다닌다는 차량을 검색했다. 시중가 대략 20만 달러. 말도 안 되는 가격은 아니었지만 일개 서민이 구매하기에는 퍽 버거운 금액이긴 했다.

    ​

    이런 걸 아무렇지 않게 타고 다니는 시점에서 그 빌런이 평범한 중산층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재벌까지는 아니겠지만 차량에 수십만 달러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쓰는 부자라는 뜻.

    ​

    대체 이놈의 세상은 뭐 이리 사회에 불만이 많은 상류층이 많은 건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마저도 뒤로 미뤘다.

    ​

    ‘12,500마력? 이런 걸 조종할 수나 있나?’

    ​

    로켓 스파이더 091.

    12,500마력馬力의 괴물 머신. 

    뛰어난 신체능력을 지닌 히어로들을 위해 만들어진 슈퍼카.

    ​

    대충 살펴 보니 날개만 달면 그대로 하늘도 날 수 있을 거란 평가를 듣는 물건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관영차 따위가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만무한 머신.

    ​

    “─그러니까 우리도 하늘을 나는 걸 기본으로 한다.”

    “느헤에-?”

    ​

    관심 없는 빌런이요 더더욱 관심 없는 자동차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졸고 있던 아일레는 입가에 묻은 침을 쓰윽- 닦아내며 치맛단에 문질거렸다.

    ​

    당연히 방금 전까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하지 못 하는 그녀는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

    “날아요? 누가요?”

    “네가.”

    “……제가요?”

    “뭘 이제와서. 마법소녀일 때도 잘만 날아다녔잖아?”

    “그, 그렇긴 하지만…….”

    ​

    마법의 힘으로 하늘을 나는 것과 날아다니는 걸 타고 나는 걸 다르게 생각하는 지, 아일레는 퍽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

    나는 그녀가 가진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아주기로 했다.

    ​

    “생각해봐. 아일레. 마법소녀가 자라면 뭐가 되지?”

    “은퇴해요…… 일반인이 되죠…?”

    “아니. 마법소녀가 자라면 마녀가 된다.”

    “???”

    “그리고 자고로 마녀는 빗자루를 타는 게 관례지.”

    ​

    그리하여 아일레가 탈 머신은 빗자루로 결정되었다.

    나무가 아니라 쇳덩어리로 만들었고, 바퀴가 두 개쯤 달리고, 핸들이 달리긴 했지만 어쨌건.

    ​

    “자, 이건 빗자루다.”

    “……누가 봐도 바이크인데요.”

    “아니. 세상에 하늘 나는 바이크가 어딨어? 이건 빗자루라니까?”

    “하, 하늘을 나는 빗자루도 없어요…….”

    “여기 있잖아.”

    ​

    아일레가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노려 보는 가운데.

    하늘을 나는 호버크래프트Hovercraft.

    아니, 위치크래프트Witchcraft가 완성되었다.

    ​

    사실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바이크를 사다가 개조하기만 하면 끝이었기 때문이다. 

    ​

    ‘나머지는 뭐, 그 바이크를 뜯어다가 부스터랑 비행 기능 정도만 넣어주면 되니까…….’

    ​

    두 바퀴 달린 제 빗자루를 보며, 아일레는 조심스레 물었다.

    ​

    “저…… 과학자 씨?”

    “왜 그래?”

    “보통 이런 건 그, AI 같은 걸로 완벽 주행하고 그러던데. 이것도 혹시……?”

    ​

    만능 AI론을 들이밀며 요행을 부리려는 아일레를 보며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었다. 그녀에게는 아쉽게도, 이 바이크에는 AI가 들어가 있지 않았다.

    ​

    “아일레. AI한테 모든 걸 맡길 거였으면 애시당초 네가 복수할 필요가 있니?”

    “그, 그건 그렇지만…….”

    “사람이 말이야. 직접 노력해서 쟁취할 생각을 해야지. 벌써부터 요령 피우고 그러면 안 돼.”

    “……네에에. 잘못했습니다.”

    ​

    푸욱- 기 죽은 아일레를 보며,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녀의 등을 팍팍 후려쳤다. 

    ​

    “그깟 AI가 없어도 이길 수 있어. 아일레! 기운 내! 너는 악의 마법소녀잖아!”

    “그치만…… 저 면허도 없는데…….”

    “면허 없는 게 무슨 상관이야?”

    “……네?”

    “우린 빌런이다. 아일레. 빌런이 법 지키는 거 봤냐?”

    ​

    진심이냐는 듯 이쪽을 바라보는 아일레를 뒤로 하고서, 나는 그녀와 특훈에 들어갔다. 면허가 없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바이크 운전에 대한 기초는 쌓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

    엑셀이 뭐고 브레이크가 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문제가 있다면 나도 면허가 없어 운전 교육을 시켜줄 수가 없단 것이었는데, 다행히 비라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

    “─자자. 아일레. 쫄지마! 안 넘어져!”

    “너, 넘어질 거 같아요오…!”

    “마법소녀의 코어 근육이면 90도 쓰러진 바이크도 세울 수 있거든!? 엄살 부리지 말고 일어서!”

    ​

    비라는 아일레에게 앞으로 나가는 방법, 멈추는 방법, 코너링 하는 방법. 기타 등등─ 정말이지 바이크 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온갖 기술들을 모조리 교육했다.

    ​

    고작 몇 시간만에 아일레는 어디 가서 바이크 좀 타봤다는 소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복수뿐이었다. 

    ​

    “아일레. 다음주 금요일. 비가 온다네.”

    “……딱 좋네요.”

    ​

    결전은 일주일 뒤.

    그녀가 모스피드를 처음 만난 날과 같이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

    ​

    * * *

    ​

    ​

    부와아아아앙-!

    12,500 마력의 엔진이 불을 내뿜는다.

    세상을 집어삼킬 것마냥 굉음을 뱉어대며 소리를 뿜어대던 로켓 스파이더 091은 그대로 그 육중한 거체를 앞으로 쏘아냈다.

    ​

    순간, 멈춰있던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뒤로 사라진다. 모스피드는 이 순간이 가장 짜릿했다. 중력가속도에 의해 영혼이 탈곡되는 듯한 이 느낌만이 그가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끼게 해준다.

    ​

    ‘좋아. 오늘은 어디까지 달려볼까.’

    ​

    시속 300킬로미터를 훌쩍 뛰어넘는 속도로 주행하면서도, 모스피드는 누군가와 부딪치거나 스치는 일이 전무했다. 뛰어난 레이서로서 그런 사고를 일으킨다는 것 자체에 큰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

    차량으로 도로가 막히는 경우에도 딱히 상관 없었다. 보아라- 인도가 비어 있지 않느냐.

    ​

    그렇게 순식간에 도시 2개를 가로지른 모스피드는 슬슬 지루함을 느끼곤 핸들을 돌렸다. 어째선지 오늘따라 주행에 감흥이 없었다. 

    ​

    이 미친듯한 질주도 질리고야만걸까. 폭주로도 도파민을 느낄 수 없다면 이제 무얼로 도파민을 느껴야할지…… 모스피드는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

    다행히, 그의 걱정은 기우였다.

    ​

    ─스르르륵-.

    ‘……응?’

    ​

    어느 순간부터.

    그의 로켓 스파이더 091 옆을 오토바이 한 대가 따라서 달리고 있었다.

    전장이 전부 새카만, 무슨 로봇처럼 삐죽삐죽 뾰족한 가시 같은 겉장갑이 잔뜩 달린 미래형 오토바이가.

    ​

    ‘미친년인가?’

    ​

    모스피드는 웬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질주하는 여성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속옷이 훤히 다 보일 법한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서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리는 건 미친년이 맞았다.

    ​

    그리고 그 미친년이 그의 심기를 거슬렀다. 스르릉- 엔진 소음 하나 없이 그의 앞으로 나아간 오토바이녀는 그를 돌아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

    까딱까딱-.

    ​

    “─미친년이!”

    ​

    그 손가락의 의미는 이러했다.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봐라.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도발.

    ​

    모스피드는 기어봉을 붙잡고 풀악셀을 밟았다. 그의 붉은색 로켓 스파이더가 불을 뿜어내며 앞으로 쏘아졌다.

    ​

    “승부다!”

    ​

    새카만 오토바이녀는 좋다는 듯 그를 따라 스로틀을 당겼다. 

    잠시 후, 두 개의 유성이 도로를 가로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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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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