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

24화. 아주 마음에 드는군.
     
     
     
     
     
     
     
     
   단 세 명을 제외하고 전부 술에 취해 곯아떨어져 끝난 파티는 강호도 처음이었다.
   그만큼 모두가 마음껏 즐겼던 만족스러운 파티였다.
     
   ‘마지막에 리사가 취한 걸 알아서 다행이지, 휴우.’
     
   강호는 여전히 두근거림이 남아있는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하마터면 정말 진심인 줄로 오해 할 뻔했지 뭔가.
     
   아직도 그녀의 일렁이던 푸른 눈동자와 붉고 도톰한 입술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 나는 어때요?
     
   다시 한번 그 고백 아닌 고백이 그녀의 주사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네.”
     
   곁에서 들려온 인데르의 목소리에 강호는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냈다.
     
   “제가 받을 인사가 아닙니다. 그건 오히려,”
     
   뭐가 좋은지, 연신 히죽거리며 빈 병을 치우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 사토시를 바라봤다.
     
   “저 친구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그도 그렇군. 허허.”
     
   대체 그 많은 술을 언제 모은 건지.
   아니,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마당에 술은 뭐 하러 모은 건지?
     
   어쨌든 그 덕에 모자름 없이 넉넉하게 음주를 즐길 수 있었다.
   특히 그가 소맥을 만들어 돌렸을 땐 거의 신처럼 추앙받았다.
     
   게다가 사토시는 의외로 음주가무에 진심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었다.
   그렇게 그가 분위기메이커가 돼 준 덕분에 사람들이 더 즐겁게 파티를 만끽했다.
   그래서 그도 취하지 않고 멀쩡한 1인이기도 했다.
     
   “그런데, 박사님은 일부러 술을 안 드신 겁니까?”
     
   강호가 인데르에게 묻자 멀리 있던 사토시가 대신 대답했다.
     
   “술을 한 모금도 못 드신답니다.”
     
   이미 관련해 대화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의왼데요?”
     
   강호의 반응에 인데르가 훗 하고 웃었다.
     
   “많이 듣는 말이네. 보기에는 내가 말술이거든. 하하.”
     
   정말 그랬다.
   인도 사람 특유의 주당 이미지가 정확히 부합하는 남자였다.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나도 충분히 취했다네. 얼마 만에 이리 마음 편히 즐거울 수 있었는지….”
     
   그는 말미에 강호의 어깨에 손을 툭 얹었다.
     
   “이 듬직한 어깨에 너무 모든 걸 다 올려두려고 하지 말게. 다 잘되지 않겠나.”
     
   그의 푸근한 미소에 강호도 마주 웃어주었다.
     
   “지금 말씀,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철책 너머로 시선을 보냈다.
     
   “그래도 할 건 해야죠.”
     
   그 말에 인데르도 강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바라보는 곳을 함께 보며 물었다.
     
   “왜 그러나? 뭔가 이상한 거라도…?”
   “아닙니다. 그저,”
     
   강호는 일단 인데르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바로 조금 전에 혼자 생각했던 건데, 의견 좀 보태주시겠습니까?”
   “말해보게.”
     
   리치를 만나고 이틀이 지난 오늘, 마을을 중심으로 자세히 살폈기에 이 마을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파티까지 허락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안전의 양면성이 떠올랐다.
     
   “안전한 마을과 상대적으로 위험하게 느껴지는 마을 외곽. 우리가 가 봐야 할 곳이 어디일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데르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리 자네여도 혼자서는 위험해.”
   “…….”
     
   즉답은 없었지만, 나름의 생각이 있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강호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안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다시 한번 인데르를 안심시켰다.
     
   “이 주변만 돌고 올 겁니다.”
     
   그리고,
     
   “사토시. 함께 가지.”
     
   주변 정리를 거의 끝내고, 두 사람의 대화를 다 듣고 있으면서 못 들은 척 점점 멀어지던 사토시가 화들짝 놀랐다.
     
   “네?! 저 말씀이무니까?!”
     
   강호는 그런 그를 보며, 꼭 함께 가야겠다는 의지가 생겨버렸다.
     
   “전술 배낭 챙겨서 따라와.”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성큼 앞서 나갔다.
     
   ‘아, 나도 그냥 취할걸, 왜 춤추고 노래를 불렀을까!’
     
   사토시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인데르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겠스므니다.”
     
   * * *
     
   두 사람이 장갑차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한 무리의 언데드를 발견했다.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죠?”
     
   사토시가 벽 뒤에 몸을 바짝 숨기고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강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정면 먼 곳을 응시한 채로 대답했다.
     
   “글세. 차라리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지 않겠나.”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저들의 행적이나 그 외의 어떤 종류든 단서가 필요한 상황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됐으니 말이다.
     
   ‘낮에는 없었다. 어딘가 숨어있다가 밤이 되고 나온 걸까?’
     
   애초에 언데드는 죽은 자들.
   낯이라고 활동 제약이 있는 건 아니지만, 본성이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이다.
   그러니 낮에는 볼 수 없었던 그들을 한밤에 만난 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의문이 드는 상황인 건 사실이었다.
     
   그으으으으.
   쿵. 쿵.
   덜그덕, 덜컹.
     
   마을 중심부에서 남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외곽.
   원래는 산책로의 시작점이던 공원이었다.
   그곳에서 좀비 형태의 언데드 수십 마리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돌무더기가 실린 수레를 끄는 자도 있고, 두꺼운 목재를 옮기는 자도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인간의 건설 현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뭘 하는 걸까요?”
     
   사토시도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뭔가를 짓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강호는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재난 매뉴얼에 소개된 저들의 주거 형태를 본 기억 때문이었다.
     
   ‘거점을 구축하려는 거다. 그렇다면 지하 구조물이 아닌 성채 형태다.’
     
   그는 그들의 행동을 놓치지 않고 살피는 중에도 감각의 범위를 조금씩 넓히고 있었다.
   혹시 주변에 더 강한 기척이 있는지, 아니면 더 많은 개체가 느껴지는가를 확인했다.
   이유는,
     
   “사토시. 은신하면 얼마나 가까이 접근할 수 있지?”
     
   잠깐 대답이 없던 그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모여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바로 뒤를 잡을 수 있습니다. 둘, 셋 정도면 3m 뒤까지는 가능합니다.”
     
   강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여러모로 빈틈이 많은 사람이지만, 필요할 땐 누구보다 집중력이 좋았다.
   그래서 믿음이 가는 동료였다.
     
   몇 가지 작전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던 강호가 사토시를 돌아봤다.
     
   [이름]: 사토시 한조.
   […]: ……
   [특성]: 닌자.
   [등급]: Lv.15.
   [강화]: 80%
   [속성]: 암습. 그림자 호위.
   [전문 기술]: 은신, 투척술. (신규)급소 참격.
   [기본 효과]: (신규)무영각.
   [보조 기술]: 탐색, 추적.
   [제한 효과]: 소멸.
     
   닌자라는 특성 때문인 건지, 정말 소리 없이 강해졌다.
   생각해 보면, 여러 고비마다 그의 활약은 언제나 결정적일 때 빛을 발했다.
   다만 워낙 은밀히 움직이다 보니 눈에 잘 띄지 않았을 뿐.
     
   ‘충분히 성장할만했다. 그리고 지금, 부족함 없이 강하다.’
     
   강호의 구상에 사토시는 앞으로 공격자원이 되어야 했다.
   경험이 성장에 크게 반영된다는 걸 알기에, 지금이 새로운 포지션을 시작하기 적당한 때 같았다.
     
   “사토시. 그동안 리사나 레이나가 해왔던 공격 패턴, 기억하지?”
   “네.”
   “그렇게 하도록.”
   “…….”
     
   대답이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질문도 없었다.
   이해는 했는데, 납득이 안 된 모양이었다.
     
   “작전은 간단해. 내가 저들을 몰아서 붙들고 있는 동안, 최대한 신속하게 수를 줄여나가면 된다.”
   “아직 그렇게 해 본 적이….”
     
   역시 경험 미숙이 걱정인 것 같았다.
     
   “그건 알아서 요령껏.”
     
   사토시는 잠깐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강호도 그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작전의 시작을 알렸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 현장에 있는 좀비 서른 마리가 전부.’
     
   추가 지원되는 언데드가 없고 리치가 없다면, 두 사람만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파츳.
   츠즈즈즈.
     
   강호의 어깨에서부터 시작되는 전격이 어두운 밤에 유난히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내가 한 번 휘젓고, 따라붙어.”
   “준비됐습니다.”
   “간다.”
     
   타타탓.
     
   강호가 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토시의 모습이 한순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스륵.
     
   거리가 가까워지자 먼저 강호의 존재를 알아챈 좀비들이 반응했다.
     
   크하아.
   취이이.
     
   인간의 언어와 다를 뿐, 그들도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괴성이 울리는 걸 보니 저들 방식의 경보가 발동된 모양이었다.
     
   ‘이걸 한번 써보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다.’
     
   강호는 넓게 펼쳐져 있는 언데드 무리의 중심을 향해 힘껏 도약했다.
     
   타아앙.
     
   지면을 차는 순간 경쾌한 파공성과 함께 몸이 로켓처럼 공중으로 솟구쳤다.
     
   “읏.”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빠른 속도로, 상당히 높이 뛰어올랐다.
   속도가 줄고 잠깐 공중에 멈춘 느낌이 들 때, 아래를 내려다봤다.
   좀비들이 전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됐다.’
     
   일단 시선을 끌었다.
   이목을 잡았으니 모여들게 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슈우웅.
     
   강호의 몸이 빠르게 지상으로 낙하했고, 도약 자체가 기술이어서인지 그 높은 곳에서의 하강과 착지에도 충격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소리는 박력 있었다.
     
   쿠우웅.
     
   전투 직전의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강호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아주 마음에 드는군.’
     
     
   
   
다음화 보기

24화. 아주 마음에 드는군.

단 세 명을 제외하고 전부 술에 취해 곯아떨어져 끝난 파티는 강호도 처음이었다.

그만큼 모두가 마음껏 즐겼던 만족스러운 파티였다.

‘마지막에 리사가 취한 걸 알아서 다행이지, 휴우.’

강호는 여전히 두근거림이 남아있는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하마터면 정말 진심인 줄로 오해 할 뻔했지 뭔가.

아직도 그녀의 일렁이던 푸른 눈동자와 붉고 도톰한 입술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 나는 어때요?

다시 한번 그 고백 아닌 고백이 그녀의 주사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네.”

곁에서 들려온 인데르의 목소리에 강호는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냈다.

“제가 받을 인사가 아닙니다. 그건 오히려,”

뭐가 좋은지, 연신 히죽거리며 빈 병을 치우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 사토시를 바라봤다.

“저 친구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그도 그렇군. 허허.”

대체 그 많은 술을 언제 모은 건지.

아니,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마당에 술은 뭐 하러 모은 건지?

어쨌든 그 덕에 모자름 없이 넉넉하게 음주를 즐길 수 있었다.

특히 그가 소맥을 만들어 돌렸을 땐 거의 신처럼 추앙받았다.

게다가 사토시는 의외로 음주가무에 진심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었다.

그렇게 그가 분위기메이커가 돼 준 덕분에 사람들이 더 즐겁게 파티를 만끽했다.

그래서 그도 취하지 않고 멀쩡한 1인이기도 했다.

“그런데, 박사님은 일부러 술을 안 드신 겁니까?”

강호가 인데르에게 묻자 멀리 있던 사토시가 대신 대답했다.

“술을 한 모금도 못 드신답니다.”

이미 관련해 대화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의왼데요?”

강호의 반응에 인데르가 훗 하고 웃었다.

“많이 듣는 말이네. 보기에는 내가 말술이거든. 하하.”

정말 그랬다.

인도 사람 특유의 주당 이미지가 정확히 부합하는 남자였다.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나도 충분히 취했다네. 얼마 만에 이리 마음 편히 즐거울 수 있었는지….”

그는 말미에 강호의 어깨에 손을 툭 얹었다.

“이 듬직한 어깨에 너무 모든 걸 다 올려두려고 하지 말게. 다 잘되지 않겠나.”

그의 푸근한 미소에 강호도 마주 웃어주었다.

“지금 말씀,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철책 너머로 시선을 보냈다.

“그래도 할 건 해야죠.”

그 말에 인데르도 강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바라보는 곳을 함께 보며 물었다.

“왜 그러나? 뭔가 이상한 거라도…?”

“아닙니다. 그저,”

강호는 일단 인데르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바로 조금 전에 혼자 생각했던 건데, 의견 좀 보태주시겠습니까?”

“말해보게.”

리치를 만나고 이틀이 지난 오늘, 마을을 중심으로 자세히 살폈기에 이 마을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파티까지 허락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안전의 양면성이 떠올랐다.

“안전한 마을과 상대적으로 위험하게 느껴지는 마을 외곽. 우리가 가 봐야 할 곳이 어디일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데르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리 자네여도 혼자서는 위험해.”

“…….”

즉답은 없었지만, 나름의 생각이 있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강호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안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다시 한번 인데르를 안심시켰다.

“이 주변만 돌고 올 겁니다.”

그리고,

“사토시. 함께 가지.”

주변 정리를 거의 끝내고, 두 사람의 대화를 다 듣고 있으면서 못 들은 척 점점 멀어지던 사토시가 화들짝 놀랐다.

“네?! 저 말씀이무니까?!”

강호는 그런 그를 보며, 꼭 함께 가야겠다는 의지가 생겨버렸다.

“전술 배낭 챙겨서 따라와.”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성큼 앞서 나갔다.

‘아, 나도 그냥 취할걸, 왜 춤추고 노래를 불렀을까!’

사토시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인데르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겠스므니다.”

* * *

두 사람이 장갑차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한 무리의 언데드를 발견했다.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죠?”

사토시가 벽 뒤에 몸을 바짝 숨기고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강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정면 먼 곳을 응시한 채로 대답했다.

“글세. 차라리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지 않겠나.”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저들의 행적이나 그 외의 어떤 종류든 단서가 필요한 상황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됐으니 말이다.

‘낮에는 없었다. 어딘가 숨어있다가 밤이 되고 나온 걸까?’

애초에 언데드는 죽은 자들.

낯이라고 활동 제약이 있는 건 아니지만, 본성이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이다.

그러니 낮에는 볼 수 없었던 그들을 한밤에 만난 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의문이 드는 상황인 건 사실이었다.

그으으으으.

쿵. 쿵.

덜그덕, 덜컹.

마을 중심부에서 남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외곽.

원래는 산책로의 시작점이던 공원이었다.

그곳에서 좀비 형태의 언데드 수십 마리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돌무더기가 실린 수레를 끄는 자도 있고, 두꺼운 목재를 옮기는 자도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인간의 건설 현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뭘 하는 걸까요?”

사토시도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뭔가를 짓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강호는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재난 매뉴얼에 소개된 저들의 주거 형태를 본 기억 때문이었다.

‘거점을 구축하려는 거다. 그렇다면 지하 구조물이 아닌 성채 형태다.’

그는 그들의 행동을 놓치지 않고 살피는 중에도 감각의 범위를 조금씩 넓히고 있었다.

혹시 주변에 더 강한 기척이 있는지, 아니면 더 많은 개체가 느껴지는가를 확인했다.

이유는,

“사토시. 은신하면 얼마나 가까이 접근할 수 있지?”

잠깐 대답이 없던 그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모여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바로 뒤를 잡을 수 있습니다. 둘, 셋 정도면 3m 뒤까지는 가능합니다.”

강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여러모로 빈틈이 많은 사람이지만, 필요할 땐 누구보다 집중력이 좋았다.

그래서 믿음이 가는 동료였다.

몇 가지 작전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던 강호가 사토시를 돌아봤다.

[이름]: 사토시 한조.

[…]: ……

[특성]: 닌자.

[등급]: Lv.15.

[강화]: 80%

[속성]: 암습. 그림자 호위.

[전문 기술]: 은신, 투척술. (신규)급소 참격.

[기본 효과]: (신규)무영각.

[보조 기술]: 탐색, 추적.

[제한 효과]: 소멸.

닌자라는 특성 때문인 건지, 정말 소리 없이 강해졌다.

생각해 보면, 여러 고비마다 그의 활약은 언제나 결정적일 때 빛을 발했다.

다만 워낙 은밀히 움직이다 보니 눈에 잘 띄지 않았을 뿐.

‘충분히 성장할만했다. 그리고 지금, 부족함 없이 강하다.’

강호의 구상에 사토시는 앞으로 공격자원이 되어야 했다.

경험이 성장에 크게 반영된다는 걸 알기에, 지금이 새로운 포지션을 시작하기 적당한 때 같았다.

“사토시. 그동안 리사나 레이나가 해왔던 공격 패턴, 기억하지?”

“네.”

“그렇게 하도록.”

“…….”

대답이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질문도 없었다.

이해는 했는데, 납득이 안 된 모양이었다.

“작전은 간단해. 내가 저들을 몰아서 붙들고 있는 동안, 최대한 신속하게 수를 줄여나가면 된다.”

“아직 그렇게 해 본 적이….”

역시 경험 미숙이 걱정인 것 같았다.

“그건 알아서 요령껏.”

사토시는 잠깐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강호도 그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작전의 시작을 알렸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 현장에 있는 좀비 서른 마리가 전부.’

추가 지원되는 언데드가 없고 리치가 없다면, 두 사람만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파츳.

츠즈즈즈.

강호의 어깨에서부터 시작되는 전격이 어두운 밤에 유난히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내가 한 번 휘젓고, 따라붙어.”

“준비됐습니다.”

“간다.”

타타탓.

강호가 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토시의 모습이 한순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스륵.

거리가 가까워지자 먼저 강호의 존재를 알아챈 좀비들이 반응했다.

크하아.

취이이.

인간의 언어와 다를 뿐, 그들도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괴성이 울리는 걸 보니 저들 방식의 경보가 발동된 모양이었다.

‘이걸 한번 써보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다.’

강호는 넓게 펼쳐져 있는 언데드 무리의 중심을 향해 힘껏 도약했다.

타아앙.

지면을 차는 순간 경쾌한 파공성과 함께 몸이 로켓처럼 공중으로 솟구쳤다.

“읏.”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빠른 속도로, 상당히 높이 뛰어올랐다.

속도가 줄고 잠깐 공중에 멈춘 느낌이 들 때, 아래를 내려다봤다.

좀비들이 전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됐다.’

일단 시선을 끌었다.

이목을 잡았으니 모여들게 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슈우웅.

강호의 몸이 빠르게 지상으로 낙하했고, 도약 자체가 기술이어서인지 그 높은 곳에서의 하강과 착지에도 충격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소리는 박력 있었다.

쿠우웅.

전투 직전의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강호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아주 마음에 드는군.’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Status: Ongoing
When a disaster strikes, I know what to do. Only I know.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