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

   뭐지? 여기엔 나 혼자 밖에 없는데?

   

   재차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나의 앞에 생겨난 반투명한 막이 보였다.

   

   이 이펙트는 알고 있다.

   

   수호의 브로치.

   

   지난 번 골렘을 잡고 얻은 그 보상이 나를 지켜준 것이다.

   

   하하. 그럼 뭐해.

   

   난 이제 죽을 텐데.

   

   재차 팔을 치켜드는 미노타우르스를 보며 스스로의 운명을 비관하던 중 미노타우르스가 갑작스레 움직임을 멈췄다.

   

   뭐지? 왜 저러는 거야?

   

   나는 얼마 가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미노타우르스의 몸이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수호의 시련의 제한시간이 끝난 것이다.

   

   “시험은 끝났다. 그대는 그대가 지닌 수호의 마음을 입증했으니 다음 시련을 받을 자격이 주어지리라.”

   

   할배의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저 멀리서 문이 끼기긱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새끼…’

   “개…보다 못한… 잡종할배 같으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좆같은 할배.

   

   아무 말 안 하는 거 보면 지도 양심에 찔리기는 하나 보지?

   

   이 치졸하고 쓰레기 같은 노친네.

   

   두고 봐.

   

   내가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성기사 루엘이 어떤 인간이지에 대한 소문을 퍼트려 줄 테니까.

   

   기대해도 좋아.

   

   할배 당신은 모르겠지만 나는 빙의자라고.

   

   다른 사람들한테 그럴 듯한 악명을 퍼트리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란 말이야!

   

   당신의 명예가 땅바닥에 떨어질 그 날을 기다리라고!

   

   내가 무슨 수를 써서든 당신을 영웅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줄 테니까!

   

   미노타우르스가 사라지고 나니 다시 스킬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무너지지 않는 의지가 억지로 내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고.

   

   공포 극복이 앞으로 느껴질 고통에 대한 공포를 내쫓아 주었다.

   

   그 덕에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일어난 후 내가 첫 번째로 한 행동은 속을 게워내는 것이었다.

   

   자꾸만 위에서 무언가가 차올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미노타우르스한테 얻어맞았을 적에 내장 어디가 같이 손상된 걸까.

   

   속을 게워낼 때 위에 들어있던 것과 함께 핏물도 같이 새어나왔다.

   

   이래서야 시련을 끝내고 포셀을 만나면 한소리 듣겠네.

   

   아니지.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잔소리를 하기도 전에 일단 의사한테 데려가지 않을까.

   

   나를 업은 포셀이 전력으로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니 재밌을 것 같았다.

   

   속도가 얼마나 나오려나.

   

   잘은 몰라도 말보다 빠르지 않을까.

   

   …아 근데 이거 칼이 괜히 벌 받는 거 아냐? 나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기면 너네들도 똑같지 않냐면서 두둔을 해줘야겠다.

   

   어쨌든 칼을 나한테 휘말린 입장이니까.

   

   그 녀석이 혼나면 안 되지.

   

   어느 정도 안정이 된 후에 심호흡을 한 나는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방패랑 메이스는 어디에 있으려나.

   

   앞으로의 시련에서 쓸 일은 없지만 그래도 정이 든 애들이라 가지고 가고 싶은데.

   

   내 무구를 찾기 위해 고갤 돌리던 나는 나의 앞에 놓여 있는 물약병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안에 담긴 액체는 연한 붉은 빛을 띄우고 있었는데 액체 사이사이에 별빛 같은 것이 박혀 넘실거리며 빛을 내고 있었다.

   

   이게 내가 아는 그거 맞나?

   

   소울 아카데미 게임 속에서 이와 비슷하게 생긴 액체는 하나 밖에 없다.

   

   치유의 기적이 담긴 물약.

   

   이 물약은 평범한 HP포션과는 거리가 멀다.

   

   모든 상태이상을 해제시켜줌과 동시에 잃은 체력의 50%를 채워주는 갓템이지.

   

   이게 왜 여기에 있지?

   

   설마 할배가 준 건가?

   

   자기가 미노타우르스를 불러내서 날 죽일 뻔 해놓고는 치료하라고 이걸 준 거야?

   

   미친 새끼.

   

   이건 병주고 약주고 같은 게 아니잖아.

   

   나는 방금 진짜로 뒈질 뻔 했다고.

   

   어제 우연히 수호의 브로치를 얻지 못했다면 미노타우르스의 주먹에 피떡이 났을 거야.

   

   그런데 이까짓 물약 하나로 퉁치겠다고?

   

   양심은 어디에 놔두신 겁니까. 성기사님.

   

   혹시 신의 아래에 몸을 바칠 때 양심까지 같이 바쳐서 위치를 잃어버리셨습니까? 개새끼야?

   

   홧김에 물약을 걷어차려다가 발을 멈췄다.

   

   그 할배가 좆같은 것은 사실이지만 물약에는 죄가 없으니까.

   

   이걸 마시면 조금 나아지겠네.

   

   회복이라는 게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꼴보단 괜찮겠지.

   

   그리 생각을 하며 물약의 병을 열려다 멈칫했다.

   

   혹시 할배가 여기에도 함정을 파두지 않았을까 싶어서.

   

   이런 이벤트는 게임에선 없었던 일이었던지라 무어라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방금 전에 지가 삐졌다고 미노타우르스를 보낸 걸 보면 그 인간이 치졸하디 치졸한 인간인 건 분명하잖아.

   

   여기에 이상한 짓거리를 해두었다는 보장이 없어.

   

   아쉽지만 일단 물약을 마시는 건 조금 미룰까.

   

   어차피 앞으로의 시험 중에서 몸을 쓰는 건 없다.

   

   그러니 시련이 끝날 때까지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치료야 바깥에 나가서 받으면 되는 거고.

   

   물론 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던전에 들어올 수 없을 테니 더 이상 레벨업을 할 수는 없겠지만.

   

   으으. 10레벨을 찍겠다는 내 계획이 물거품이 되겠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뒈지는 것보다야 안전을 챙기는 편이 낫다.

   

   세이브로드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물약을 주머니에 넣은 난 방패와 메이스를 찾아 헤맸다.

   

   그 두 개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방패는 찌그러져서 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었다.

   

   우그러진 방패는 이미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는 메이스도 마찬가지였다.

   

   손잡이와 머리 부분이 두동강 나서 메/이스가 되어버린 무기는 짐덩이에 불과했다.

   

   어느 쪽이건 챙겨봐야 짐만 될 게 분명했다.

   

   양쪽 다 요 몇 주 동안 정이 들었던 무기들이지만 이제는 보내줘야겠지.

   

   걷는 것도 힘든 몸으로 이걸 들고 다닐 순 없어.

   

   안녕. 친구들. 다음 생에는 귀한 소재로 만든 전설템으로 태어나렴.

   

   나는 그 둘을 뒤로한 채 절뚝거리며 열린 문 너머로 향했다.

   

   다음 시련을 받을 차례였다.

   

   문 너머의 방도 이전의 바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다른 점은 단 하나.

   

   한 가운데에 석상 대신에 석판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이번 시련은 신성의 시련이다. 이는 그대의 안에 품은 신앙을 시험하기 위함이니…”

   

   할배가 무어라무어라 지껄이는 것을 흘려들으면서 석판의 앞으로 향했다.

   

   거기에 적힌 글자는 창조신이자 여러 신들의 주인인 아르마디에 관한 일화였다.

   

   내용은 이러했다.

   

   아르마디가 휘하의 신들과 함께 연회를 즐기던 중 와인이 모두 다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아르마디가 시종을 시켜 물을 들고오라 명령했고, 시종이 물통을 들고 오자 아르마디가 자신의 손을 물통에다 담갔다.

   

   그러자 물이 서서히 붉은 빛으로 물들더니 와인으로 변했다.

   

   보면 알겠지만 성경에 나오는 일화 중 하나를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그 일화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 일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시오.’

   

   이게 문제로 나왔구나.

   

   이 문제는 신성의 시련 중에서도 특이한 편에 속한다.

   

   문제의 정답을 게임 안에서도 찾아낼 수 있지만 게임 바깥에서도 찾아낼 수 있거든.

   

   이 문제는 프랑스의 시인인 바이런의 일화를 따와서 만든 거니까.

   

   당연 문제의 정답도 바이런이 이 일화를 보고서 낸 대답과 같다.

   

   “…잘 생각해서 대답을.”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을 붉히더라.’

   “허접한 물이 주인을 만나 허접답게 얼굴을 붉히더라.”

   

   그 놈의 허접. 허접.

   

   좀 그냥 평범하게 말해주면 안 될까?

   

   하아. 그래도 내용이라도 비슷하게 말해준 게 어디냐.

   

   내가 갑작스레 답을 말하자 할배가 말을 멈췄다.

   

   할배. 이거 정답 맞잖아.

   

   내가 이 시련에 나오는 문제를 모두 다 외우고 있는데 어디서 밑장을 빼려고 하고 있어.

   

   얌전히 정답 인정하고 빨리 넘어가.

   

   아니라고 하기만 해봐.

   

   그럼 정답이 뭐냐고 따져줄 테니까.

   

   내가 날선 눈으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헛기침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답이다.”

   

   그 말과 동시에 다음 방으로 넘어가는 문이 열렸다.

   

   진작에 이랬으면 얼마나 좋아.

   

   다음 시련도 빠르게 끝내자.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게 느껴져.

   

   지금도 무너지지 않는 의지 때문에 간신히 서 있는 거지 언제 쓰러지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몸은 이미 한계다.

   

   정신으로 버티고 있지만 그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최소한 쓰러지더라도 시련이 끝내고 바깥에서 쓰러져야 해.

   

   그래야 포셀이나 칼이 나를 발견해 줄 테니까.

   

   절뚝거리며 다음 방으로 넘어가자 이번에는 온전한 형태를 갖춘 신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엄한 벽화가 그려진 벽과 천장.

   

   위에 달린 샹들리에와 예배당처럼 늘어서 있는 의자들.

   

   가운데에 난 길을 따라서 앞으로 걸으니 여신의 석상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마지막 시련은 인내의 시련이다. 이제부터 그대는 그대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악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를 보고서.”

   

   ‘그냥 빨리 좀 합시다.’

   “허접 할배. 닥치고 빨리 좀 하지?”

   

   내가 재촉하자 할배가 입을 다물었다.

   

   삐졌어?

   

   어쩌라고.

   

   이제 네가 더 뭐 어떻게 할 건데.

   

   인내의 시련에서도 수호의 시련마냥 미노타우르스라도 불러내 보시던가.

   

   어차피 이건 정신 세계에서 받는 시련이고 네가 관여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그러니까 설명은 넘겨. 조금만 더 있으면 쓰러질 것 같으니까.

   

   “알겠다. 시련을 시작하지.”

   

   할배가 목소리를 내자마자 시야가 암전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어느 화려한 연회장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여기는 어디지?

   

   꼭 판타지 세계관에 나오는 귀족들의 파티 같은 풍경인데.

   

   연회장에 있는 사람들은 말끔한 정장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채 끼리끼리 모여 있었다.

   

   다들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나누는 중에 나만이 외로히 남겨져 있었다.

   

   뭐지?

   

   내가 아는 인내의 시련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잖아.

   

   게임에서 보던 건 좀 더 잔인하고 역겹고 어지로운 악몽이었다고.

   

   할배 또 뭐 이상한 짓을 벌인 거야?

   

   하여간에 속 좁은 인간이라니까.

   

   그리 투정을 부리며 주변을 살피던 중 내 귓가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저 여자인가요? 알른 가문의 망나니 영애가?”

   “아하핫. 망나니 영애라니. 그런 천한 말을 쓰시면 어떡해요.”

   “그치만 저 여자한테 딱 어울리는 단어잖아요.”

   “그보다 더 좋은 말이 있잖아요. 알른 가문의 치욕.”

   “흣. 치욕이라니. 그게 더 심하지 않나요?”

   

   주변에서 쏟아지는 비난의 말에는 끝이 없었다.

   

   하고자 한다면 거대한 수족관의 안을 비난으로만 가득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 풍경을 무덤덤하게 지켜보던 나는 이게 나의 악몽이 아니라는 걸 눈치 챘다.

   

   나의 악몽이었다면 이런 연회장이 나올 리가 없으니까.

   

   내 악몽이라면 소울 아카데미 2가 발표됐는데 망겜으로 나온다거나.

   

   아니면 군대에 재입대 하는 걸 보여준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고아원에서 막 나왔을 무렵 정처없이 떠돌던 때에 풍경을 보여주겠지.

   

   분명했다.

   

   이건 루시의 악몽이었다.

   

   나는 지금 루시가 속으로 가장 두려워했던 것을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건 루시가 과거에 몸으로 겪었던 일인 걸까.

   

   딱히 동정이 되진 않았다. 이것도 결국 루시가 쌓은 업보의 결과물일 테니까.

   

   내가 이 풍경을 보면서 신경 쓰이는 점은 다른 것이었다.

   

   만약에 이게 루시가 실제로 겪어 본 일이라면 말야.

   

   루시의 평판은 얼마나 낮은 거지?

   

   공적인 사교의 자리에서 저런 소리를 들을 정도라면 루시는 사실상 공공의 적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이거… 왕따 각인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벌써부터 아카데미 생활의 미래가 어두워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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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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