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

       

         

         

         

       새벽 2시에 기해 시작됐던 작전은 아침해가 완전히 떠올랐을 때 마무리되었다.

         

       “미쳤군.”

         

       마치 티탄의 습격이라도 벌어진 듯, 하루아침사이에 엉망이 된 말벌집의 전경을 바라보며 한 남성이 탄식을 내뱉는다.

         

       라프트 벨스.

         

       혁명전선의 상위조직인 제국노동당의 최고위원이자, 동시에 혁명전선의 4연대장직을 맡고 있는 고위 간부였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이제는 완전히 안전국의 편으로 전향한 다이엔 슈미트가 있었다.

         

       물론 그가 전향자라는 사실은, 베르너와 카린을 제외하면 안전국의 인원들조차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총통이 아주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이군. 그래봐야 주인 말 잘 듣는 사냥개인줄 알았는데….”

         

       이래서야 순 맹수나 다름없지 않은가.

         

       만일 자신이 전향을 결단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오늘 밤 싸늘한 시체가 되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건만. 쓸데없는 객기를 부려서.’

         

       내뱉은 한숨에는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혁명 동지들에 대한 연민도 담겨 있었다.

         

       제국노동당에서도 온건파에 속하는 대다가, 티탄 전쟁 당시에는 동부군관구에서 소령 계급까지 올라섰던 라프트였다.

         

       군 장교 이력이 있는 만큼, 자연스레 혁명전선의 연대장으로 임명되게 되었지만, 실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라프트가 동부군 사령부에 대한 테러활동을 극도로 반대했음에도 작전이 중지되지 않았던 이유.

         

       아무리 동부군관구가 평화에 머리가 찌든 머저리들이라 한들, 그런 과격한 테러로 혁명전선이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심지어 테러는 성공하지도 못했고 뒤따른 결과가 바로 오늘의 참극이었으니.

         

       과격파들의 농단에 소중한 동지들을 잃어버린 라프트는 그저 분할 뿐이었다.

         

       “라프트 위원님, 저기 있는 사람입니다.”

         

       그를 보좌하는 다이엔 슈미트의 말에 라프트가 고개를 돌렸다.

         

       검은 정복 차림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베르너 그라임.

         

       ‘듣던대로 젊군.’

         

       젊은 장교의 견장에서 반짝이는 국화 두 송이.

         

       과연 라프트는 그 걸음걸이에서 확실한 기개를 느낄 수 있었다.

         

       일말의 망설임이나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총명과 지혜로 가득 차 있었으나, 은은하게 빛나는 안광은 귀기가 서려 있다.

       

       안보전략국 국장, 베르너 그라임.

         

       겉모습만으로 판단했을 때에는 20대 중반 정도일까.

         

       전쟁의 여파로 20대 장성급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중령 계급은 군 내에서 그 능력을 상당히 인정받았음을 뜻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압도당하고 시작했다.

         

       엄연히 불혹의 나이에 달하는 라프트 벨스와는 차이가 꽤 나는 편이었지만, 처음의 시선 교환 만으로도 그 격의 차이를 느껴버렸다.

         

       혁명전선을 하룻밤 사이에 짖이겨놓은 맹수들의 수장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교섭을 하러 온 것이니 만큼, 흐트러지거나 나약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다.

         

       라프트는 자세를 갈무리하며 베르너를 향해 먼저 팔을 내밀었다.

         

       “제국노동당 최고위원 라프트 펠스입니다.”

         

       “반갑습니다, 위원님. 안전국 국장 베르너 그라임입니다.”

         

       형식적인 악수를 나누는 두 사람.

         

       베르너는 그 손을 맞잡자마자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먼저 혁명전선의 일에는 심심한 유감을 표합니다. 뒤늦게 저희가 도착했을 때에는 단 한명의 생존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내분으로 인해 공멸한 듯 합니다.”

         

       뜬금없다면 뜬금없는 그 말에, 라프트 펠스는 헛웃음이 튀어나오려던 것을 필사적으로 가로막았다.

         

       아아.

       초장부터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야 원, 눈 가리고 아웅이지 않은가.

         

       애초에 이야기는 다 맞춰둔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혁명 실패의 화살을 자꾸 자신에게로 돌리려던 기존의 수뇌부였다.

         

       아무리 라프트가 노동당의 최고위원이라 한들, 쓸데없는 간섭을 일삼는 부외자라 생각했을 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죽기 싫으면 먼저 죽이는 것이 세상의 도리이지 않던가.

         

       그래서 라프트는 베르너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일부 과격파가 저지른 일은 앞으로 저희가 수습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국노동당은 동부군관구와의 무력 충돌을 원하지 않습니다.”

         

       “총통 각하께서도 넓은 아량으로 제국노동당의 이념가치를 인정해주셨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야 하는 만큼, 라프트 위원께서 힘써주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국장님.”

         

       그 날부로 안전국은 혁명전선- 제국노동당의 불편한 이웃이 되었다.

         

       일단락인 것이다.

         

       하지만 베르너는 이번 일을 이런 식으로 미적지근하게 끝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라프트 벨스가 혁명전선의 온건파와, 자신에게 우호적인 잔당들을 중심으로 조직구조를 장악해나고 있을 때.

         

       제국노동당의 몇몇 위원들과 중진들이 실종당했다.

         

       몇몇은 뒷골목의 거리에서 폭력배들에게 흠씬 두들겨맞아 불구가 되어 발견되었고.

         

       몇몇은 마약에 찌들어 매음굴을 밥먹듯이 드나드는 폐인이 되는가 하면.

         

       몇몇은 침실에 잠입한 강도에게 습격당해 일가족들이 살해당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대외적으론 단 한번도 제국노동당 소속 간부로서 발표되지 않았던 인물들까지 처참한 꼴을 면치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는 둘째치고서도 그 배후가 너무나도 뻔하지 않은가.

         

       “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 않습니까!! 분명 동부군관구와 제국노동당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시겠다 하셨으면서…!”

         

       결국 분노한 라프트가 안보전략국 동부군관구 지부에 방문했으나.

         

       “이래서야 동부군관구의 세력만 강력해질 뿐이지 않습니까! 이제와서 말씀을 바꾸신다면 저희도 가만히-.”

         

       “약속은 지켰습니다. 여기요.”

         

       “??”

         

       베르너가 책상 위에 올려둔 신문의 내용을 보고 그대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동부군 사령관 하인리히 렌달, 사임의사 표명.]

         

       [군 개혁을 위한 총통의 큰 한 걸음, 동부군 사령부 폐지… 제국 군수보급사령부로 개편.]

         

       [신임 군수보급사령관, “총을 드는 군인이 아닌, 제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군인이 될 것.”]

         

       동부군 사령부의 해체.

         

       실한 알맹이만 골라 수확 당한쪽은 비단 제국노동당만이 아니었다.

         

       사령부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릴 줄이야.

         

       라프트는 딸꾹질이 나올 뻔한 것을 가까스로 짓누르는 데 성공했다.

         

       “이제까지 엠바고가 걸려있었습니다. 군 내의 일은 기밀인지라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선 유감입니다.”

         

       “….”

         

       “동지들을 괴롭히던 동부군 사령부는 이제 없습니다. 황도파를 자처하며 부패를 일삼던 이들은 모두 중앙으로 압송당해 그 경중에 따라 처벌되겠지요. 그런데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제가 실수했군요.”

         

       자신을 꿰뚫어보듯 바라보는 눈빛에 혁명전선의 당수가 마른침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이 남자는 멋대로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이 분명했다.

         

         

         

       ***

         

         

         

       “레레~아앗~!!!”

         

       율리아 안케 대령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레아 길리아드의 개인실을 벌컥 열어젖혔다.

         

       “꺄악! 깜짝이야!!”

         

       갑작스럽기 그지 없는 연대장의 방문에 레아가 화들짝 놀라며 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감춘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매번 놀래킬때마다 반응이 재밌어 죽겠다니까. 그런데 뭐야? 또 편지 쓰고 있는 거야?”

         

       “아… 네… 맞아요.”

         

       “이야 진짜 징하다 징해. 이 정도면 슬슬 한 번 만나줄 때도 되지 않았니?”

         

       율리아가 뒤로 다소곳하게 모아져있는 팔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레아 길리아드는 지난번 연회 당시에 꽂혔던 문제의 그 대위와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그것도 손편지로!

         

       문자도 전화도 아니고 요즘 같은 시대에 편지라니.

         

       율리아가 보기엔 둘 다 극성이 아닐 수가 없었다.

         

       버튼 하나면 바다 건너편에 있는 나라와도 얼굴을 마주보고 실시간 통화를 할 수 있는 마당에, 편지가 웬 말인가?

         

       레아도 그게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축 내릴 뿐이었다.

         

       “본부가 최고사령부 쪽에 있대요. 아무래도 위관 장교다 보니 업무 외에는 움직이기도 쉽지 않고요.”

         

       “하기사 나 대위때도 바빠 뒤질 뻔 했었지. 전장에서 뛰랴, 후방에서 보고서 쓰랴. 게다가 기행기관이라 했으니, 업무만해도 장난 아닐걸.”

         

       그녀가 먼 옛날을 회상하듯 읊조렸다.

         

       사실 시기로만 따지면 고작 3년도 채 안된 기억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레아, 야식 먹을래? 편지도 좋지만 일단 뭐 좀 먹자구.”

         

       율리아가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투를 흔들었다.

         

       야근 직후 시내에서 직접 포장해온 음식이었다.

         

       사람이 가장 허기를 느낀다는 저녁 10시.

         

       때마침 위장이 출출한 참이기도 했다.

         

       레아는 곧장 쓰던 편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곤, 좌식 식탁을 펼쳤다.

         

       “어휴우….”

         

       그러자 율리아가 식탁 앞에 털썩 주저앉으며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많이 힘드시죠?”

         

       “갑작스럽게 부대 소속이 변경된다는 게 말이 되니? 그나마 사령부 직할이나 기술행정부대가 아니라 전투부대라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물자 정리에 반납에 머리 돌 뻔 했어.”

         

       “조금 급작스럽긴 했죠. 뭐어… 티탄이 완전히 사라진 지금, 안 그래도 담당하는 범위가 좁았던 동부군관구가 남아있는 것도 이상하니까 총통 각하께서 그런 지시를 내린 게 무리는 아니지만요.”

         

       “그치~? 귀족이랍시고 뻗대는 애들도 이제 다 사라지겠다.”

         

       사실상 총통의 숙청이나 다름 없었으나, 막상 동부군관구의 지휘관들은 숙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귀족의 핏줄을 타고난 이들은 동부군관구에 한해서 인사 특혜를 받았던 만큼.

         

       평민이나 타 지역에서 전입온 장교들은 눈에 훤히 보이는 차별에 질려했으니까.

         

       “그런데 편지는 좀 어때? 진전은 있어? 만나지만 않는 거지, 내용에서도 딱 드러나잖아.”

         

       “아… 그게….”

         

       레아는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편지를 나눈 지가 벌써 열흘이 다 되가는 데도 무언가 실속있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오늘은 어떤 업무를 했으며, 내일을 어떤 업무를 할 거다라는 보고서에 가까운 편지.

         

       만일 레아가 조금이라도 연애경험이 있었다면, 이것이 일종의 ‘선긋기’라는 사실을 알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레아에게는 그런 것을 판단할 만한 연애 지식이 없었던 것이다.

       

       “제대로 안 되고 있구나. 그럴 줄 알았어.”

         

       “쉽지 않더라구요.”

         

       “심지어 그것도 레아 네 전 사령관이라는 분이 힘을 써줘서 알 수 있었던 거라면서.”

         

       “전 사령관은 아니고 부사령관님이요.”

         

       “그래, 아르헨 준장님 말야.”

         

       검은 고양이 가면의 대위와 편지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아르헨 오르카의 도움 뿐이었다.

         

       혁명전선과 안보전략국에 대한 뒷조사를 이어나가던 그녀가 감찰실장으로서의 힘을 사용하여 얻어낸 루트.

         

       처음에는 월권이라며 뻐팅기던 안전국도, 감찰실장이 귀찮게 구는 것만은 막고 싶었는지 순전히 주소를 알려줬다고 했다.

         

       그렇게까지해서 간신히 얻어낸 주소건만, 활용을 못할 줄이야.

         

       쯧쯧쯧.

         

       율리아는 연애에는 영 잼병인 후임이자 부하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괜찮다면 내가 그냥 다른 남자 소개시켜줄까?”

         

       “아,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그녀가 율리아의 호의를 애둘러 거절하려던 바로 그 때였다.

         

       똑똑똑.

       누군가가 숙소의 문을 두드렸다.

         

       자정에 가까웠을 정도로 야심한 시각이다.

         

       방문할 사람이 달리 있을 리가 없다.

         

       “엥, 레아. 따로 야식 시킨 거 있어?”

         

       “아뇨.”

         

       “그럼 누구지? 누구세요~?”

         

       율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순히 방문을 착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들이 묵고 있는 곳은 여성간부 전용 숙소였다.

         

       그다지 올바른 뜻을 품지 않은 이들이 침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옆 연대에서는 속옷도둑이 들었다는 소식도 들려왔으니까.

         

       전쟁도 끝나고 살만해지니, 슬슬 사람들의 머릿속 나사가 풀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율리아가 방문을 열자.

         

       툭.

       문틈 사이에 끼워져 있던 편지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편지지에 적힌 발신지는.

         

       “그레이브야드?”

         

       한때 레아가 몸을 담았으나, 이제는 폐쇄당한 요새였다.

       

       폐쇄당한 요새에서 편지가 올리가 없건만.

       

       레아가 수상하기 짝이 없는 편지를 열어 확인하자, 그곳에는 신문의 글자를 오려서 붙인 내용이 적혀있었다.

       

       

       [편지, 보내 지 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석준하_838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응원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맨 뒷부분이 추가되었습니다)

    다음화 보기


           


A War Hero With No Regrets

A War Hero With No Regrets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victory earned after forty regressions.

It was now my turn to leave their side.

Not by anyone else’s will, but by my ow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